아이젠하워 매트릭스
일주일이 지났다. 서현은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매트릭스를 그렸다. 그리고 하루의 일들을 분류했다.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첫째, 그녀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차장님, 이거 급한데요!"
"얼마나 급해?"
"오늘까지요!"
"왜 오늘까지인데?"
"그게..."
"정말 오늘 안 하면 큰일 나는 일이야? 아니면 그냥 빨리 끝내고 싶은 거야?"
대부분은 후자였다.
둘째, 그녀는 중요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 오전, 두 시간은 '전략 회의 시간'으로 막아뒀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시간. 그 시간에 그녀는 다음 달, 다음 분기를 계획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한 시간씩은 팀원 면담. 한 명씩, 차근차근.
첫 번째 면담 상대는 준호였다.
"차장님, 왜 갑자기 면담을 하시려고...?"
준호는 긴장한 표정이었다.
"준호야, 그냥 얘기 좀 하고 싶어서. 요즘 어때? 힘든 거 없어?"
"음... 사실 좀 있어요."
"말해봐."
준호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차장님, 저... 이 일이 제 적성에 맞는지 모르겠어요. 매일 급한 일만 하다 보니까, 제가 뭘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랬어. 아니, 지금도 그래. 매일 불 끄느라 정신없었어. 근데 최근에 깨달았어. 급한 일만 하면, 진짜 중요한 건 못 한다는 거."
"중요한 거요?"
"응. 성장, 학습, 관계 쌓기... 이런 것들. 급하지 않지만, 우리 커리어에 정말 중요한 것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서현은 종이를 꺼내 매트릭스를 그렸다.
"이거 봐. 일을 네 가지로 나눠. 그리고 여기,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영역에 시간을 투자해."
"근데 차장님, 급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요."
"그 중 몇 개는 사실 안 급해. 다른 사람이 급하다고 하는 것뿐이야. 우리가 구분해야 해."
준호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제가 배우고 싶은 걸 배울 시간도 만들 수 있어요?"
"당연하지. 일주일에 두세 시간이라도 '학습 시간'으로 막아놔. 그게 쌓이면 1년 뒤에 엄청난 차이가 나."
면담이 끝나고, 준호는 밝은 표정으로 나갔다. 서현도 기분이 좋았다.
'이게... 중요한 일이구나.'
셋째, 그녀는 예방을 시작했다.
전에는 문제가 터지면 급하게 해결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긴급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미리 준비했다.
예를 들어, 매달 말 클라이언트 리포트가 항상 급했다. 마감 전날 밤을 새워 만들곤 했다.
하지만 이제 서현은 매주 조금씩 준비했다. 첫째 주에 데이터를 모으고, 둘째 주에 분석하고, 셋째 주에 초안을 쓰고, 마지막 주에 다듬었다.
마감일에는 여유가 있었다. 급하지 않았다.
"차장님, 이번 달 리포트 벌써 끝났어요?"
준호가 놀라 물었다.
"응. 미리미리 하니까 여유롭더라."
"대박..."
2주 후, 회사에서 전사 워크숍이 있었다. 주제는 '효율적인 업무 관리'.
외부 강사가 왔다. 그는 화이트보드에 매트릭스를 그렸다.
"여러분, 이걸 아시나요? 아이젠하워 매트릭스입니다."
서현은 미소 지었다. 이제 익숙한 그림이었다.
강사가 계속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 1사분면에 살아요. 긴급하고 중요한 일. 그리고 여기, 3사분면.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여기, 2사분면에 투자해요.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왜일까요? 2사분면에 투자하면, 1사분면의 일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했다.
"예를 들어볼까요? 건강관리는 긴급한가요?"
청중들이 대답했다.
"아니요!"
"중요한가요?"
"네!"
"그럼 2사분면이죠. 하지만 우리는 건강관리를 미룹니다. 긴급하지 않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병원에 갑니다. 그때는 긴급하고 중요해지죠. 1사분면이 됩니다."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팀원들과 대화하는 것, 긴급한가요? 아니죠. 중요한가요?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룹니다. 그러다 팀원이 퇴사합니다. 그제서야 긴급해집니다."
서현은 뒷목이 서늘했다. 자신의 지난 3년이 떠올랐다.
워크숍이 끝나고, 김 이사가 서현에게 다가왔다.
"서현 차장, 요즘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그런가요?"
"응. 전보다 더 여유로워 보여. 근데 일은 더 잘되고. 비결이 뭐야?"
서현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이사님, 저 깨달은 게 있어요."
"뭔데?"
"모든 게 급한 게 아니라는 거요. 정말 급한 게 뭔지, 정말 중요한 게 뭔지 구분해야 한다는 거요."
김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나도 옛날엔 그랬어. 모든 게 급해 보였지. 근데 나이 들면서 알았어. 급한 건 별로 없다는 거."
"이사님도요?"
"그럼. 20년 전 내가 급하다고 난리친 일들, 지금 생각하면 하나도 안 급했어. 진짜 급한 건 손에 꼽을 정도야."
서현은 묻고 싶었다.
"그럼 진짜 중요한 건 뭐였어요?"
김 이사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 그리고 성장. 이 두 가지였어."
"사람이요?"
"응. 팀원들, 클라이언트들, 가족들. 관계에 투자하는 거. 그게 긴급해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해."
"성장은요?"
"나 자신의 성장. 배우고, 발전하고,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거. 이것도 긴급하지 않아. 하지만 이걸 안 하면, 10년 뒤에 뒤처져 있어."
서현은 깊이 공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