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폭풍전야
진주관의 밀담
1943년 가을, 광주의 진주관(珍珠館)은 겉으로는 평범한 요정이었다. 기생들의 노랫소리와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곳은, 그러나 밤이 깊으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형님 계십니까?"
2층 복도 끝 방 앞에서 정혁진이 낮은 목소리로 기침을 했다. 인기척이었다.
방 안에서는 신우혁이 촛불 아래 단도를 닦고 있었다. 낡은 칼날이지만 손질은 완벽했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천천히 단도를 비단 보자기에 감쌌다.
"어... 어이.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정혁진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과 흥분이 교차하고 있었다. 정혁진은 인사도 없이 상 위에 놓인 찻주전자를 들어 자신 앞 찻잔에 녹차를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목이 타는구먼."
신우혁은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정혁진은 찻잔을 내려놓고 신우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형님, 아무래도 거사를 앞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
신우혁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정혁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학도 동원령, 수탈, 여성 아이 할 것 없이 수탈을 일삼는 일본 놈들을 보면 아무래도 그놈들 종말이 가까워진 듯싶습니다."
정혁진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어 갔다.
"이번에 부임한 야마자키 헌병대장은 살인귀 같은 자로... 폭정이 말을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아귀입니다. 곧 있을 동원령에 읍내 남자들 씨를 말릴 계획을 하고 있어요. 한도회도 더 이상은 못 참겠답니다."
정혁진의 주먹이 떨렸다. 분노가 온몸을 타고 흘렀다.
신우혁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오른쪽 다리가 무의식 중에 욱신거렸다. 1929년, 광주에서 받은 총탄의 상처가 언제나 그렇듯 긴장할 때마다 통증을 보냈다.
"야마자키..."
신우혁이 그 이름을 되뇌었다.
"그 자가 부임한 지 석 달. 벌써 세 명이 고문으로 죽었고, 다섯 집안이 풍비박산 났지."
"예, 형님. 그리고..."
정혁진이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그 자가 다음 주에 읍내 장정들을 소집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학도병 동원령 전달식이라는 명목이지만, 실상은 강제 징집입니다."
"얼마나 끌고 갈 작정인가?"
"최소 50명. 열여섯부터 스물다섯까지 모조리..."
신우혁의 턱이 굳어졌다. 50명이면 영광 읍내 젊은이의 거의 절반이었다. 그들이 끌려가면 이 땅은 완전히 황폐해질 것이다.
"한도회의 의견은?"
"만장일치입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신우혁은 천천히 일어났다. 절름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창가로 갔다. 어두운 거리에는 헌병 순찰대의 랜턴 불빛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산갑 선생의 생각은?"
"선생님께서는 신중하셔야 한다고 하셨지만... 학당 아이들이 징집 대상이라는 말을 듣고는 안색이 변하셨습니다."
신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산갑. 평생을 조선의 학문과 자연을 연구해 온 선비. 그가 칼을 드는 것을 동의한다는 것은, 상황이 정말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산돌이는?"
"형님, 산돌이 가 오늘 저녁에 올 겁니다. 헌병대 내부 정보를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아래층에서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 독특한 리듬이었다. 세 번 빠르게, 한 번 느리게.
신우혁과 정혁진의 눈이 마주쳤다. 산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