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293)

폭풍의 밤

by 이 범


이산갑의 결단
거사 전날, 정혁진은 이산갑을 찾아갔다. 학당은 고요했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이산갑은 혼자 책상에 앉아 식물도감을 넘기고 있었다.
"형님."
정혁진의 목소리에 이산갑이 고개를 들었다.
"혁진이, 무슨 일인가?"
정혁진은 문을 닫고 이산갑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형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산갑은 정혁진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짐작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예, 형님."
정혁진은 모든 것을 설명했다. 70명의 징집 명단, 이계민의 이름, 선생 자신의 체포 계획, 그리고 내일 밤의 거사.
이산갑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창밖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붉은 저녁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계민이가... 명단에 올라 있다고?"
"예, 형님."
이산갑의 손이 떨렸다. 평생 붓을 잡고 살아온 손. 식물을 어루만지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형님, 저희는 형님의 허락을 구하려 온 것이 아닙니다."
정혁진이 말했다.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다만... 형님께 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이산갑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책장으로 가서 오래된 상자를 꺼냈다. 먼지가 앉은 상자를 열자, 녹슨 칼 한 자루가 나왔다.
"이것은 내 숙부께서 의병 활동을 하실 때 쓰시던 칼이라네."
정혁진이 숨을 죽였다.
"그분께서는 1907년에 일본군과 싸우시다 돌아가셨지. 나는 그때 겁이 많은 열다섯 소년이었고, 아버지의 유지를 잇지 못했네."
이산갑은 녹슨 칼을 쓰다듬었다.
"평생 후회하며 살았네. 나는 칼 대신 붓을 들었고, 싸움 대신 학문을 택했지.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았네."
"선생님..."
"하지만 이제는 알겠네. 때로는 붓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칼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이산갑이 정혁진을 바라보았다.
"내 아들을, 내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 늙은이도 칼을 들 수 있네."
"형님!"
정혁진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자네들의 계획에 내가 끼어들 수는 없네. 나는 늙었고, 싸움에 익숙지 않아.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네."
"향님, 그런 말씀을..."
"대신."
이산갑이 정혁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만약 자네들이 실패하면, 내가 책임을 지겠네. 모든 것이 내 계획이었다고 말하겠네."
"안 됩니다!"
"자네들은 살아야 하네. 해방이 오면, 이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들이 필요하니까."
정혁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계민이를 데리고 가지 말게. 그 아이는 학문을 해야 하네. 싸움은... 우리 세대가 하는 것으로 충분하네."
정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형님."
이산갑은 창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노을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내일 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해주게."
"선생님께서는 학당에 계십시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돌아오지 못하면..."
정혁진이 말을 잇지 못했다.
"알겠네. 자네들의 뜻을 기억하겠네. 그리고 반드시 후대에 전하겠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밤은 깊어갔고, 내일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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