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집의 공포
징집의 공포
열일곱 살의 계민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다.
일제가 학도 동원령을 발표한 것이다.
"계민아, 큰일이다."
정혁진이 급히 찾아왔다.
"무슨 일이세요, 삼촌?"
"학도 동원령이 내려졌다. 열여섯 이상의 학생들을 징집한다고 한다."
계민의 얼굴이 굳었다.
"저도요?"
"그렇다. 너도 대상이야."
이산갑이 나섰다.
"안 됩니다. 계민이는 보낼 수 없습니다."
"형님, 하지만 명령을 거부하면..."
"알고 있네. 하지만 내 아들을 일본 놈들 전쟁터에 보낼 수는 없어."
그날 밤, 가족 회의가 열렸다.
"계민이를 피신시켜야 합니다."
삼촌 이산호가 말했다.
"어디로?"
"산속에 있는 오두막이 있습니다. 거기에 숨어 지내면..."
"하지만 언제까지 숨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쟁이 끝날 때까지요. 소문으로는 일본이 전쟁에서 밀리고 있다고 합니다."
계민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는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계민아!"
"하지만 아부지, 제가 도망치면 아부지가 위험해지잖아요."
"그건... 아부지가 감당할 일이다."
"싫어요. 저는 아부지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요."
이산갑은 아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어느새 의젓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계민아, 네 마음은 고맙다. 하지만 네가 끌려가는 것을 아부지는 볼 수 없어."
결국 계민은 산속 오두막으로 피신했다.
"계민아, 여기 식량이다. 그리고 이것도."
이산갑은 아들에게 책 몇 권을 건넸다.
"책요?"
"그래, 숨어 있는 동안 공부해라. 그리고 그림도 그려라.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알겠어요, 아부지."
"그리고 계민아."
이산갑이 아들의 어깨를 잡았다.
"반드시 살아남아라. 네가 살아야 아부지의 일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
"네, 아부지."
계민은 석 달 동안 산속에 숨어 지냈다. 외로웠고, 무서웠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버텼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주변의 식물들을 스케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산갑이 급히 찾아왔다.
"계민아, 이제 괜찮다."
"정말요?"
"헌병대에서 네가 병으로 죽었다고 신고했다."
"예?"
"정혁진이 의사를 매수해서 사망 진단서를 위조했단다."
계민은 놀라움과 감사함에 눈물을 흘렸다.
"삼촌이..."
"그래, 네 삼촌이 목숨을 걸고 해낸 일이다. 고마워해라."
"네,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계민아, 당분간은 조심해야 한다. 읍내에 함부로 나다니면 안 돼."
"알겠어요, 아부지."
계민은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예전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