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나날
은둔의 나날
1941년, 열여덟 살의 계민은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낮에는 학당 안에만 머물렀다. 밤에만 조심스럽게 산책을 나갔다.
"계민아, 답답하지 않니?"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어머니. 할 일이 많아요."
계민은 아버지의 식물도감 작업에 더욱 매진했다. 수백 종의 식물을 그렸다. 그림 실력은 날로 발전했다.
"계민아, 네 그림이 정말 훌륭하구나."
이산갑은 아들의 그림을 보며 감탄했다.
"고마워요, 아부지. 아부지 덕분이에요."
"아니다. 이것은 네 재능이야."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작업했다. 이산갑이 식물을 연구하고 설명을 쓰면, 계민이 그림을 그렸다.
"계민아, 이 도감이 완성되면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정말요?"
"그래. 우리말로 된, 우리 땅의 식물을 담은 책. 이것은 일본 놈들이 절대 빼앗을 수 없는 우리의 것이란다."
계민은 가슴이 뭉클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민족의 유산을 만드는 일이었다.
"아부지, 제가 더 열심히 할게요."
"고맙다, 아들아."
2. 정혁진의 가르침
1942년, 계민은 정혁진 삼촌으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계민아, 이리 와 보거라."
정혁진이 계민을 불렀다.
"무슨 일이세요, 삼촌?"
"너에게 가르쳐줄 것이 있다."
정혁진은 계민을 학당 뒤편으로 데려갔다.
"계민아, 너는 이제 스무 살이 되었다."
"예."
"남자라면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정혁진은 나무 몽둥이를 건넸다.
"이것으로 무엇을 하나요?"
"호신술을 가르쳐주겠다."
"호신술이요?"
"그래. 만약에 대비해야 한다. 일본 놈들이 너를 발견하면, 싸워야 할 수도 있으니까."
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계민은 정혁진에게 기본적인 무술을 배웠다. 몽둥이 다루는 법, 맨손 격투술,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도망치는 법.
"계민아, 싸움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주저 없이 싸워야 한다."
"알겠습니다, 삼촌."
"그리고 기억해라. 일본 놈들은 우리의 적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싸워야 할 적."
계민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은 힘들었다. 몸은 아팠고, 땀은 비 오듯 흘렀다. 하지만 계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강해져야 해. 아부지를 지키고, 조선을 지킬 수 있을 만큼.'
3. 위기의 순간
1943년 여름, 큰 위기가 찾아왔다.
어느 날 저녁, 계민이 학당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저기 사람이 있다!"
갑자기 헌병 두 명이 담을 넘어 들어왔다.
"누구냐!"
계민은 깜짝 놀라 일어났다.
"저, 저는..."
"네 나이가 몇이냐?"
"열, 열여덟입니다."
"거짓말! 스무 살은 넘어 보이는데! 징집 영장 받았느냐?"
"저는... 병으로 면제받았습니다."
"증명서를 보여라!"
계민은 당황했다. 증명서는 집 안에 있었다.
"잠시만요, 가져올게요."
"안 돼! 지금 당장 따라와!"
헌병이 계민의 팔을 잡았다.
바로 그때, 이산갑이 뛰어나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자는 누구요?"
"제 아들입니다. 병으로 징집 면제를 받았습니다."
"증명서를 보여주시오!"
이산갑이 급히 집으로 들어가 서류를 가져왔다. 위조된 사망 진단서였다.
헌병은 서류를 꼼꼼히 살폈다.
"흠... 1940년에 사망했다고?"
"예, 폐병으로..."
"그런데 왜 살아 있소?"
"아, 그것은... 다행히 회복되었습니다."
헌병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계민을 쳐다보았다.
"이상하군. 조사가 필요하겠소."
"제발... 제 아들을 데려가지 마십시오."
이산갑이 헌병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돈이든, 무엇이든..."
헌병은 잠시 생각하더니 손을 내밀었다.
"오늘은 눈감아주겠소. 하지만 다음에는 안 된다."
이산갑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헌병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헌병들이 떠난 후, 이산갑은 계민을 안았다.
"괜찮니?"
"예, 아부지... 하지만 무서웠어요."
"이제 정말 조심해야 한다. 다시는 밖에 나가면 안 돼."
"네, 알겠어요."
그날 밤, 계민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잡혀갈 뻔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아부지가 또 위험해지셨어. 다 나 때문이야.'
계민은 자책감에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