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 헌병 보조원이 찾아왔다.
"이산갑, 나와."
"무슨 일입니까?"
"읍사무소에 가야 한다. 조사할 게 있다."
이산갑은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야마자키 건이 다시 불거진 것은 아닐까?
"계민아, 걱정 마라. 금방 다녀올게."
이산갑은 아들과 아내를 안심시키고 헌병을 따라갔다.
읍사무소에는 일본인 읍장이 앉아 있었다.
"이산갑, 앉게."
"네."
"자네, 최근에 토지 명의를 아들에게 많이 옮기고 있다던데?"
"네, 그렇습니다."
"이유가 뭔가?"
"제가 나이가 들어서요. 미리 물려주려고요."
읍장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이산갑을 바라봤다.
"자네 나이가 몇인가?"
"마흔여덟입니다."
"마흔여덟이면 한창 때 아닌가? 왜 벌써 물려주려고 하나?"
이산갑은 머뭇거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조선에서는 일찍 물려주는 게 풍습입니다."
"흠... 그런가?"
읍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하지만 다음 질문이 날아왔다.
"그런데 자네, 몇 달 전에 야마자키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나?"
이산갑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저는...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그래, 알고 있네. 하지만 의심은 여전히 있네. 혹시 재산을 빼돌리려는 것 아닌가?"
"아닙니다! 제 아들에게 물려주는 건데, 어떻게 빼돌리는 겁니까?"
"재산을 아들 명의로 해놓고, 자네가 독립운동 하다가 잡히면 재산 몰수를 피할 수 있지 않은가?"
이산갑은 할 말을 잃었다. 면장의 추리가 정확했다.
"저는... 독립운동 같은 거 안 합니다."
"정말인가?"
"네, 정말입니다."
읍장은 한참을 이산갑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좋아. 믿겠네. 하지만 앞으로 토지 명의 변경은 한 달에 한 번만 하게. 그리고 매번 면사무소에 와서 이유서를 제출하게."
"네... 알겠습니다."
이산갑은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여보! 어떻게 됐어요?"
강지윤이 달려왔다.
"일단은 넘어갔소. 하지만 앞으로 더 조심해야 하오."
"어떻게 할 건데요?"
"속도를 더 늦춰야 하오. 한 달에 한 필지만 옮기고, 매번 이유서를 쓰고."
계민이 방에서 나왔다.
"아부지, 무슨 일이세요? 헌병한테 끌려가셨다면서요?"
"아니다, 계민아. 걱정 마라. 토지 명의 때문에 확인하는 거였어."
"토지 명의요?"
"그래. 아버지가 우리 땅을 조금씩 네 이름으로 바꾸고 있단다."
계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요? 아직 제가 어린데..."
"어리지 않다. 너는 이제 어른이야. 그리고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니까, 미리 준비하는 거야."
계민은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아부지... 고맙습니다."
"고맙긴.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이산갑의 마음은 무거웠다. 읍장의 의심을 받는 이상, 앞으로 일이 순조롭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