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수호자
프롤로그: 지식의 탄생
기원전 4000년, 고대 수메르
신전의 깊은 지하, 촛불 하나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점토판들이 쌓여있는 방에서 한 노인이 고대 문자를 해독하려 애쓰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대제사장 김우르난셰(Ur-Nanshe)가 중얼거렸다.
갑자기 점토판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노인은 놀라 뒤로 물러섰다. 빛 속에서 한 존재가 나타났다. 인간보다 훨씬 크고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두려워 마라, 인간이여." 그 존재가 말했다. "나는 디음(Dumu), 지식의 수호자다."
김우르난셰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아눈나키?"
"그렇다. 나는 엔키(Enki)의 명으로 인간들에게 지식을 전하러 왔다."
디음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빛나는 수정이 들려있었다.
"이것은 지혜의 수정이다. 이 안에는 우주의 모든 지식이 담겨있다. 하지만..." 디음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식은 양날의 검이다. 올바르게 사용하면 문명을 발전시키지만, 잘못 사용하면 파멸을 가져온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까?" 김우르난셰가 물었다.
"그것을 배우는 것도 지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디음이 대답했다. "나는 너희에게 지식을 주겠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너희가 선택해야 한다."
첫 번째 학생
20년 후
디음은 인간 세계에 머물며 선택된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쳤다. 수학, 천문학, 의학, 건축술... 그의 가르침으로 수메르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신전을 찾아왔다. 이름은 천니사바(Nisaba)였다. 그녀는 겨우 열 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또렷했다.
"저도 배우고 싶어요!" 천니사바가 외쳤다.
신전의 제사장들이 그녀를 막았다. "물러서라! 여자는 신성한 지식을 배울 수 없다!"
하지만 디음이 나타나 제사장들을 제지했다.
"왜 여자는 배울 수 없다고 하는가?"
"그것은... 전통입니다. 여자는 집안일을 하고, 남자가 학문을..."
"전통?" 디음이 고개를 저었다. "지식에는 성별이 없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그는 천니사바를 바라봤다. "아이야, 네가 왜 배우고 싶은지 말해보거라."
"저는..." 천니사바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요. 왜 해가 뜨는지, 왜 비가 오는지, 왜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지... 알고 싶어요!"
디음은 미소 지었다. "좋다. 너를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지식의 길은 험하고 외로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를 이상하게 볼 것이다. 그래도 계속할 수 있겠느냐?"
"예!" 천니사바가 힘차게 대답했다.
배움의 길
천니사바는 놀라운 속도로 배웠다. 다른 학생들이 몇 년 걸려 배우는 것을 몇 달 만에 습득했다. 특히 수학과 천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선생님." 어느 날 천니사바가 물었다. "별들은 왜 움직이나요?"
"별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디음이 설명했다. "지구가 돌고 있기 때문이지."
"지구가 돈다고요?" 천니사바는 놀랐다. "하지만 우리는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는데요..."
"그것은 지구가 매우 크고, 우리가 매우 작기 때문이다. 마치 거대한 배 위에 있는 개미처럼."
천니사바의 눈이 빛났다. "그렇다면 다른 별들도 지구처럼 둥근가요?"
"그렇다. 그리고 어떤 별들 주변에는 다른 세계들이 돌고 있지."
"다른 세계요? 거기에도 사람들이 살까요?"
디음은 잠시 멈췄다. "어쩌면. 우주는 너무나 광대해서 우리가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천니사바는 매일 밤 별을 관찰하며 기록했다. 그녀의 관찰 일지는 점점 두꺼워졌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녀를 질투하고 시기했다. 특히 김엔릴쿠두르(Enlil-kudur)라는 학생이 가장 심했다.
"여자 주제에 잘난 척하는군." 김엔릴쿠두르가 비웃었다. "곧 한계를 보일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천니사바가 차분하게 물었다.
"여자의 뇌는 남자보다 작으니까. 복잡한 수학은 이해하지 못해."
천니사바는 화가 났지만 참았다. 대신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1년 후, 그녀는 김엔릴쿠두르가 풀지 못한 수학 문제를 해결했다.
"이건... 불가능해..." 김엔릴쿠두르가 천니사바의 답안을 보며 중얼거렸다.
"불가능한 것은 없어요." 천니사바가 웃으며 말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위기
천니사바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수메르에 큰 가뭄이 들었다. 농작물이 말라죽고, 사람들이 굶주리기 시작했다.
왕은 제사장들을 불러 해결책을 물었다. "신들이 노하신 것이 분명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제사장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 늙은 제사장이 말했다.
"그것은... 여자가 신성한 지식을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니사바를 추방해야 합니다!"
"말도 안 돼!" 김우르난셰 대제사장이 반박했다. "니사바는 가장 뛰어난 학생이다! 그녀와 가뭄은 아무 관련이 없다!"
하지만 백성들은 이미 소문을 믿기 시작했다. 천니사바를 향한 적대감이 커졌다.
천니사바는 디음을 찾아갔다. "선생님, 제가 떠나야 할까요? 제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면..."
"아니다." 디음이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떠나도 가뭄은 끝나지 않는다. 가뭄은 자연 현상이다. 신들의 노여움이 아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과학적으로."
디음과 천니사바는 함께 문제를 연구했다. 그들은 유프라테스 강의 물길을 연구하고, 관개 시스템을 개선할 방법을 찾았다.
"여기를 보세요, 선생님." 천니사바가 지도를 가리켰다. "만약 이곳에 운하를 파면, 물을 더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어요."
"훌륭하다! 하지만 운하를 파는 것은 큰 공사다. 왕을 설득해야 한다."
천니사바는 자신의 계획을 왕에게 제시했다. 하지만 왕은 회의적이었다.
"여자의 말을 믿으라고? 제사장들은 제물을 바치면 비가 온다고 하는데..."
"폐하." 천니사바가 무릎을 꿇었다. "제물로는 비를 오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운하는 확실히 물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만약 실패하면, 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왕은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좋다. 하지만 3개월 안에 결과를 보여라. 그렇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