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311)

강지윤의 결단

by 이 범

강지윤의 결단
강지윤은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다가 몸이 휘청거렸다.
"마님!"
나이든 노파 막심네가 달려와 부축했다.
"괜찮아요. 그냥 좀 어지러울 뿐이에요."
하지만 강지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최근 몇 달간, 그녀는 밤마다 남편 이산갑이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을 지켜봤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비밀 연락망을 운영하고, 일본의 정보를 빼돌리고.
그 스트레스가 그녀의 건강을 갉아먹고 있었다.
"마님, 의원에 가보세요."
"아니야, 괜찮아. 그냥 날씨 때문에 그래."
하지만 강지윤은 의원에 갈 수 없었다. 마을의 의원은 일본인이었고, 그들은 이산갑 집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병원에 가면 또 의심을 받을 것이다.
그날 저녁, 이산갑이 집에 돌아왔다.
"여보, 오늘 읍사무소에서 또 통지가 왔소."
"무슨 통지요?"
"모든 가정에서 쇠붙이를 공출하라고. 숟가락, 젓가락, 솥, 다 내놓으라고."
강지윤은 한숨을 쉬었다.
"숟가락까지 빼앗아가다니... 우리보고 어떻게 밥을 먹으라는 거예요?"
"나무 숟가락 쓰면 되지. 참아야 하오."
"언제까지 참아야 해요? 이렇게 살아서 뭐해요?"
강지윤의 목소리에 절망이 묻어났다. 이산갑은 아내를 껴안았다.
"조금만 더 참으시오. 전쟁이 곧 끝날 거요. 일본이 지고 있소."
"정말요?"
"네, 비밀 연락망에서 들었소. 미국이 일본을 밀어붙이고 있대요. 길어야 1~2년이면 끝날 거요."
강지윤은 남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거네요."
"그렇소. 그러니 힘을 내시오."
하지만 일은 강지윤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며칠 후, 읍사무소에서 또 다른 통지가 왔다.
"부인회 소집. 모든 조선 여성은 읍사무소 앞에 집합하라."
강지윤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읍사무소로 향했다. 마을의 여성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일본인 여자 직원이 나와서 말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군복 제작에 동원됩니다.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까지 일하게 됩니다."
여성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럼 집안일은 누가 해요?"
"애들은 누가 돌봐요?"
"시어머니가 편찮으신데..."
하지만 일본인 직원은 차갑게 말했다.
"그런 건 당신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황국 신민의 의무를 다하세요."
강지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황국 신민이라니. 우리는 조선 사람인데.
그날부터 강지윤은 매일 군복 공장으로 출근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밥을 짓고, 막심네에게 집안일을 부탁하고, 8시까지 공장에 도착해야 했다.
공장은 지옥 같았다. 좁은 공간에 수백 명의 여성이 빽빽이 앉아서 바느질을 했다. 환기도 안 되고, 먼지가 날리고, 일본인 감독관은 쉬지 말고 일하라고 소리쳤다.
"빨리 해! 군인들이 기다리고 있어!"
강지윤의 손가락은 바늘에 찔려 피가 났지만, 쉴 수 없었다. 쉬면 매를 맞았다.
저녁 6시가 되어서야 공장 문이 열렸다. 강지윤은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마님!"
막심네가 깜짝 놀라 달려왔다.
"괜찮아요... 그냥 좀 피곤할 뿐이에요..."
하지만 강지윤은 현관에서 쓰러졌다.
"마님! 마님!"
이산갑이 뛰어나왔다.
"여보! 정신 차려요!"
강지윤은 간신히 눈을 떴다.
"여보... 미안해요... 제가... 약해서..."
"무슨 소리요! 당신은 강한 사람이오!"
이산갑은 아내를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계민을 불렀다.
"계민아, 한의원 김 선생님 모셔와라. 빨리!"
"네, 아부지!"
계민은 달려갔다. 다행히 한의원 김 선생은 조선 사람이었고, 믿을 수 있는 분이었다.
김 선생은 강지윤의 맥을 짚어보고 한숨을 쉬었다.
"과로입니다. 몸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최소 한 달은 쉬어야 합니다."
"한 달을요? 하지만 내일부터 공장에 가야 하는데..."
"그럼 죽습니다. 이대로 가면 몇 달 못 가요."
이산갑의 얼굴이 굳어졌다.
"선생님, 방법이 없습니까?"
"글쎄요... 진단서를 써드릴 수는 있지만, 읍사무소에서 받아줄지 모르겠네요."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다음 날, 이산갑은 진단서를 들고 읍사무소로 갔다.
"제 아내가 병이 났습니다. 한 달만 쉬게 해주십시오."
일본인 직원은 진단서를 대충 보고 집어던졌다.
"안 됩니다. 모두가 일해야 합니다."
"제발... 아내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당신 문제입니다. 내일까지 출근 안 하면 불순분자로 간주하겠습니다."
이산갑은 주먹을 쥐었다. 이놈을 한 대 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여기서 문제를 일으키면 가족 전체가 위험해진다.
집으로 돌아온 이산갑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미안하오. 내가 무능해서..."
강지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이 세상이 잘못된 거죠."
"그래도...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하오."
그때 계민이 방으로 들어왔다.
"아부지, 제가 방법을 찾았어요."
"무슨 방법이냐?"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들 중에 몇 명은 돈을 내고 빠졌대요. 뇌물을 주면 출근하지 않아도 된대요."
이산갑은 눈살을 찌푸렸다.
"뇌물을 달라고? 얼마나?"
"한 달에 50원이래요."
"50원이면... 쌀 한 가마 값이잖아..."
"하지만 어머니 목숨과 바꿀 수는 없잖아요!"
이산갑은 고민했다. 50원은 큰돈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알았다. 내가 해결하겠다."
다음 날, 이산갑은 읍사무소의 일본인 계장을 찾아갔다.
"계장님, 제 아내 건으로 왔습니다."
"아, 이 선생. 어제 그 건 말인가?"
"네. 제발 한 달만 쉬게 해주십시오. 이거... 작은 성의입니다."
이산갑은 봉투를 건넸다. 안에는 50원이 들어있었다.
계장은 봉투를 열어보고 빙그레 웃었다.
"이 선생, 일찍 이렇게 하시지. 좋아요, 한 달만 쉬게 해드리죠. 하지만 다음 달부터는 꼭 나와야 해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산갑은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한 달 쉴 수 있소."
"정말요? 어떻게요?"
"묻지 마시오. 어쨌든 한 달은 쉴 수 있으니, 푹 쉬시오."
강지윤은 눈물을 흘렸다.
"당신... 고마워요..."
그날 밤, 강지윤은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제가 한 가지 결심한 게 있어요."
"무엇이오?"
"저도... 당신처럼 뭔가 하고 싶어요. 나라를 위해서."
"여보, 무슨 소리요? 당신은 집안일만 해도 충분하오."
"아니에요. 저도 조선 여자예요. 나라가 어려울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이산갑은 아내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여보... 위험합니다."
"알아요. 하지만 당신도 위험한 일 하고 계시잖아요. 저도 같이하고 싶어요."
이산갑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하지만 무리하지 마시오."
"네, 약속해요."
그날부터 강지윤도 비밀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녀는 여성들 사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독립자금을 모으고, 일본의 동향을 살폈다.
그리고 그녀는 알게 됐다. 자신과 같은 조선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지. 징용으로 끌려가고, 위안부로 팔려가고, 공장에서 죽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강지윤은 결심했다. 이 여성들을 구해야 한다고. 그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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