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312)

강지윤의 비밀투쟁

by 이 범


한 달 후, 강지윤은 다시 공장으로 출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의 눈빛에는 단순한 생존이 아닌, 명확한 목적이 담겨 있었다.

공장 안, 수백 명의 여성들이 고개를 숙이고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강지윤은 자리에 앉으며 주변을 살폈다.

옆자리의 젊은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왜 우세요?"

강지윤이 작게 물었다.

"제 동생이... 어제 정신대로 끌려갔어요..."

강지윤의 가슴이 철렁했다.

"정신대요?"

"네... 열일곱 살밖에 안 됐는데... 일본군 위안부로 보낸대요..."

여성의 목소리는 떨렸다. 강지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디로 보냈는지 아세요?"

"모르겠어요... 그냥 트럭에 태워서... 어디론가..."

그날 저녁, 강지윤은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여보, 정신대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리 마을에서만 벌써 열 명이 넘게 끌려갔대요."

이산갑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소. 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소. 읍사무소에서 명단을 만들면 헌병들이 직접 와서 데려가니까."

"명단을요?"

"그렇소. 미혼 여성 명단을 작성해서, 나이 순으로 끌고 가는 거요."

강지윤은 생각에 잠겼다. 명단. 그렇다면 명단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여보, 제가 읍사무소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누구요?"

"박 서기요. 그 사람 부인하고 제가 친해요. 같이 공장에서 일하거든요."

이산갑의 눈이 빛났다.

"혹시 명단을 미리 알아낼 수 있겠소?"

"해보겠어요."

다음 날, 강지윤은 공장에서 박 서기 부인을 찾았다.

"영숙씨,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러죠, 마님."

쉬는 시간, 두 사람은 공장 뒤편으로 나갔다.

"영숙씨,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뭔데요?"

"영숙씨 남편분이 읍사무소에서 일하시잖아요. 혹시... 정신대 명단을 미리 볼 수 있을까요?"

박영숙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님, 그건... 위험한 일이에요..."

"알아요. 하지만 우리 딸들을 구해야 하지 않겠어요? 영숙씨 딸도 열여섯이잖아요."

박영숙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도 딸을 둔 어미였다.

"...생각해볼게요."

사흘 후, 박영숙이 강지윤에게 작은 쪽지를 건넸다.

"마님... 이거..."

쪽지에는 열다섯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음 달 정신대 명단이었다.

강지윤은 쪽지를 품 속 깊이 넣었다.

"고마워요, 영숙씨."

"부디... 조심하세요..."

그날 밤, 강지윤과 이산갑은 비밀 회의를 열었다. 독립운동 동지 다섯 명이 모였다.

"선생님들, 이 명단에 있는 아이들을 구해야 합니다."

강지윤이 명단을 펼쳤다.

"어떻게 구한단 말입니까? 헌병들이 직접 데리러 오는데..."

"미리 피신시켜야 합니다. 헌병이 오기 전에."

"어디로요?"

"산속에 숨어 있는 독립군 기지로 보내면 됩니다."

이산갑이 말했다.

"하지만 열다섯 명이나... 너무 많지 않습니까?"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죠. 우리 딸들입니다."

강지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동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함께합시다."

다음 날부터 강지윤은 명단에 있는 집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밤이 되면 조용히 집 뒤편으로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저예요, 이산갑네 집 강지윤이요."

"아, 마님. 이 밤중에 웬일이세요?"

"중요한 얘기가 있어요.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방 안에 들어가자, 강지윤은 조용히 말했다.

"따님이 다음 달 정신대 명단에 올라 있어요."

"뭐라고요?!"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따님을 구하는 겁니다."

"어떻게요? 헌병들이 오면..."

"그 전에 피신시켜야죠. 제가 안전한 곳을 알고 있어요."

"안전한 곳이요?"

"네, 하지만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대신 확실히 안전합니다."

어머니는 고민했다. 하지만 딸을 정신대로 보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알겠습니다. 믿겠습니다."

"3일 후 밤 11시에 집 뒷산에서 만나요. 따님과 함께요."

이런 식으로 강지윤은 열다섯 집을 모두 찾아다녔다. 그리고 모든 가족이 동의했다.

3일 후 밤, 뒷산에는 열다섯 명의 소녀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이 모였다.

"마님... 정말 안전한 거죠?"

"네, 걱정 마세요."

강지윤은 소녀들을 이끌고 산길을 올라갔다. 이산갑과 동지들이 길을 안내했다.

밤새 산을 넘어, 새벽녘에 그들은 깊은 산속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가 어디예요?"

"임시 피난처예요. 여기서 한 달 정도 숨어 있다가, 헌병들 수색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옮길 거예요."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소녀들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걱정 마세요, 여기는 안전해요."

소녀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님... 고맙습니다..."

"고마워할 것 없어요. 당연한 일을 한 거예요."

강지윤은 소녀들을 두고 다시 산을 내려왔다.

며칠 후, 헌병들이 마을에 나타났다.

"정신대 모집이다! 명단에 있는 여자들 나와!"

헌병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녔다. 하지만 열다섯 명 모두 사라진 뒤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명단에 있는 애들이 다 없어졌어!"

일본인 읍장은 분노했다.

"당장 찾아! 집집마다 뒤져!"

헌병들은 마을을 샅샅이 뒤졌지만, 소녀들은 찾을 수 없었다.

"누가 숨겼을 거야! 스파이가 있어!"

읍사무소는 발칵 뒤집혔다. 박 서기가 의심을 받았다.

"박 서기, 너 명단 새어나간 거 아니야?"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그럼 어떻게 열다섯 명이 한꺼번에 사라져!"

박 서기는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결국 읍사무소는 다른 서기를 희생양으로 삼아 헌병대에 넘겼다.

강지윤은 마음이 아팠다. 죄 없는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전쟁이고, 독립투쟁이라는 것을.

그날 밤, 이산갑이 말했다.

"여보, 잘했소. 열다섯 명의 아이를 구했소."

"하지만 읍사무소 서기가 잡혀갔어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가 어쩔 수 없소. 그 사람도 나중에 구해내야겠소."

강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 저는 계속할 거예요. 이 일을."

"알고 있소. 하지만 조심해야 하오."

"알아요."

그날부터 강지윤은 본격적으로 여성 해방 운동을 시작했다.

공장에서는 여성들 사이에서 은밀한 조직을 만들었다. '백합회'라는 이름의 비밀 결사였다.

"자매님들, 우리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요."

강지윤은 밤마다 신뢰할 수 있는 여성들을 모아서 회의를 열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약한 여자들인데..."

"아니에요! 우리는 약하지 않아요! 우리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들이에요! 우리가 없으면 이 나라도 없어요!"

강지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정보를 수집하고, 아이들을 보호하고, 독립자금을 모으고, 일본놈들의 계획을 방해하고..."

여성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님 말씀이 맞아요. 우리도 뭔가 할 수 있어요!"

"그래요! 우리도 독립운동을 할 수 있어요!"

백합회는 빠르게 성장했다. 한 달 만에 50명, 석 달 만에 100명으로 불어났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일을 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군복에 일부러 바느질을 잘못해서 터지게 만들었다.

"어? 이 군복 솔기가 이상한데?"

"몰라, 그냥 입어. 급하잖아."

일본군들이 입은 군복은 조금만 움직여도 터졌다.

읍사무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서류를 몰래 복사해서 강지윤에게 전달했다.

"마님, 다음 달 징용 계획입니다."

"고마워요. 이 정보로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어요."

시장에서 장사하는 여성들은 독립자금을 모았다.

"오늘 수익금의 10%는 독립운동 자금으로..."

조금씩, 조금씩 돈이 모였다. 한 달에 수백 원씩.

강지윤은 이 돈을 모아서 상해 임시정부로 보냈다.

법성포 조창 작전

어느 날, 강지윤은 위험한 소식을 들었다.

"마님, 법성포 조창에 큰일이 생겼어요."

백합회 회원 중 한 명이 급히 찾아왔다. 그녀의 남편은 법성포 부두에서 일하는 인부였다.

"무슨 일인데요?"

"일본놈들이 조창을 완전히 접수했어요. 조선 시대부터 있던 그 큰 창고를요."

강지윤도 법성포 조창에 대해 알고 있었다. 조선시대부터 세곡을 모아 한양으로 보내던 거대한 공물 수송창고였다. 영광, 함평, 무안 일대의 쌀이 모두 그곳으로 모였다가 배로 실려나갔다.

"그래서요?"

"거기에 지금 쌀을 가득 쌓아놓고 있어요. 우리 조선 사람들 것을 빼앗아서요. 다음 주에 큰 배가 온대요. 일본 본토로 가져갈 거래요."

강지윤의 눈빛이 변했다.

"얼마나 많은데요?"

"제 남편 말로는 창고 세 동이 가득 찬대요. 수천 가마는 될 거래요."

"수천 가마라고요?"

강지윤은 숨이 막혔다. 수천 가마면 수만 명이 먹을 쌀이었다. 그걸 일본놈들이 가져간다고?

"배는 언제 온대요?"

"다음 주 화요일 밤 9시래요. 만조 때 맞춰서 큰 배가 들어온대요."

"화요일..."

강지윤은 생각에 잠겼다.

그날 밤, 강지윤은 남편과 동지들을 불렀다.

"법성포 조창을 불태워야 합니다."

"뭐라고요?"

이산갑이 놀라서 물었다.

"조창이요? 그 큰 창고를?"

"네, 거기 쌀이 수천 가마나 쌓여 있어요. 일본놈들이 본토로 가져가려고요. 우리가 막아야 해요."

동지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조창은 헌병들이 지키고 있어요."

"알아요. 하지만 해야 해요. 우리 쌀을 빼앗기게 둘 수는 없어요."

강지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마님, 계획이 있으십니까?"

"네, 들어보세요."

강지윤은 지도를 펼쳤다. 법성포 조창의 약도였다.

"조창은 바닷가에 있어요. 창고 세 동이 나란히 서 있고, 앞쪽에는 부두가 있죠. 헌병들은 정문에만 있어요. 뒤쪽 바닷가 쪽은 경비가 약해요."

"그래서요?"

"뒤쪽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밤에 배를 타고요. 그리고 창고에 불을 지르는 거예요."

"배로요?"

"네, 법성포 어부들 중에 우리 편이 있어요. 그 사람들 배를 빌리면 돼요."

동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하시겠습니까?"

"배가 오기 전날 밤. 그러니까 다음 주 월요일 밤이요. 쌀을 실어가기 직전에 불태우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며칠간 준비가 진행됐다.

법성포의 어부 김덕삼이 배를 내주기로 했다.

"마님, 제 배 쓰세요. 작은 고깃배지만 사람 예닐곱 명은 탈 수 있어요."

"고마워요, 덕삼씨."

"당연한 일 아닙니까. 일본놈들한테 우리 쌀 빼앗기는 것보다 태워버리는 게 나아요."

백합회 회원들은 석유를 모았다. 한 집에서 조금씩 모아서 큰 병 다섯 개를 채웠다.

"마님, 이걸로 충분할까요?"

"충분해요. 창고가 나무로 되어 있어서 잘 탈 거예요."

월요일 밤이 왔다.

강지윤은 검은 옷을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둘렀다. 이산갑과 동지 네 명, 그리고 김덕삼까지 일곱 명이 모였다.

"여보, 정말 하시겠소?"

이산갑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네, 해야 해요."

"위험하오."

"알아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죠."

밤 10시, 일곱 명은 작은 고깃배에 올랐다. 배는 조용히 법성포 앞바다로 나갔다.

달빛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다. 파도 소리만 들렸다.

"저기 보이시오?"

김덕삼이 가리켰다. 멀리 조창의 검은 윤곽이 보였다.

"조심히 접근하시오."

배는 천천히 조창 뒤쪽으로 다가갔다. 헌병들은 앞쪽 정문만 지키고 있었다. 뒤쪽 바닷가는 어두웠다.

"여기서 내리시오."

배가 조창 뒤편 갯벌에 닿았다. 일곱 명은 조용히 내렸다.

"석유병 챙기시오."

강지윤이 석유병 두 개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들었다.

"조심히 가시오."

그들은 어둠 속을 조용히 걸었다. 갯벌을 지나 창고 뒤편에 도착했다.

거대한 나무 창고가 세 동이나 서 있었다. 안에는 수천 가마의 쌀이 쌓여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창고부터 하시오."

강지윤이 속삭였다.

그들은 창고 벽에 석유를 뿌렸다. 톡 쏘는 냄새가 났다.

"다음 창고로."

두 번째, 세 번째 창고에도 석유를 뿌렸다.

"됐소. 이제 불을 붙이시오."

이산갑이 성냥을 그었다. 치익- 작은 불꽃이 일었다.

그리고 석유에 던졌다.

"화르륵!"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았다. 첫 번째 창고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빨리 다음 창고로!"

두 번째, 세 번째 창고에도 불을 붙였다.

"됐소! 빨리 도망가시오!"

일곱 명은 달렸다. 갯벌을 지나 배로 뛰어올랐다.

"빨리 노를 젓소!"

김덕삼이 힘껏 노를 저었다. 배는 빠르게 바다로 나갔다.

뒤에서 "콰아아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창고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불이야! 불이야!"

헌병들의 외침이 들렸다.

하지만 이미 배는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성공했소!"

동지들이 환호했다.

강지윤은 뒤를 돌아봤다. 법성포 조창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우리 쌀... 일본놈들 손에 넘어가지 않았어요..."

강지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배는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법성포는 발칵 뒤집혔다.

"조창이 전소됐다!"

"쌀이 전부 탔다!"

일본인 읍장이 달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방화입니다! 누군가 일부러 불을 질렀어요!"

"누가! 누가 감히!"

헌병대가 출동했다. 법성포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조선 독립군의 소행이다! 다들 조사받아!"

마을 사람들이 줄줄이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밤에 배를 탄 사람들을 본 사람이 없었다.

"빌어먹을! 수천 가마가 다 탔어! 본토에 보고해야 하는데!"

일본인 읍장은 분노했다.

결국 경비를 소홀히 한 헌병들이 처벌받았다.

강지윤은 집에서 조용히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님, 대단하세요!"

밤에 백합회 회원들이 찾아왔다.

"법성포 조창을 태우시다니! 온 마을이 떠들썩해요!"

"쌀이 수천 가마나 탔대요! 일본놈들이 기절초풍했대요!"

강지윤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우리가 한 일이에요. 우리 모두가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어요... 일본놈들이 연대책임으로 쌀 공출을 더 늘렸대요..."

한 여성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강지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알아요. 마음이 아파요. 하지만..."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우리가 태운 쌀 수천 가마로, 일본군이 몇 달은 굶을 거예요. 그만큼 전쟁이 빨리 끝날 거예요.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어요."

여성들은 침묵했다.

"지금 우리가 고통받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참지 않으면, 우리 아들들, 딸들이 더 고통받아요. 전쟁터에서, 정신대에서, 징용에서..."

강지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니 조금만 더 견뎌요. 광복이 곧 올 거예요."

여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님. 함께 견디겠어요."

그날 밤, 강지윤은 일기를 썼다.

'1944년 11월 22일.

오늘 나는 법성포 조창을 불태웠다.

수천 가마의 쌀이 탔다.

우리 조선 사람들의 쌀.

하지만 일본놈들 손에 넘어가느니, 차라리 태워버리는 게 나았다.

나는 약한 여자가 아니다.

나는 조선의 어머니이고, 전사다.

언젠가 광복이 오면, 우리 여성들도 당당히 새 나라를 세우는 일에 참여할 것이다.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싸운다.

법성포 앞바다를 붉게 물들인 그 불길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창밖으로 달빛이 들어왔다. 강지윤은 펜을 내려놓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멀리서 바람에 실려오는 바다 냄새가 났다. 법성포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그녀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