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최후 발악
제국의 최후 발악 (1944년 겨울 ~ 1945년 봄)
정신대의 기만
1944년 12월, 영광읍 사무소 앞에 큰 현수막이 걸렸다.
"여자정신근로령 실시 - 대일본제국을 위한 영광스러운 근로! 공장에서 일하며 기술을 배우자!"
강지윤은 그 현수막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또 시작이군요..."
옆에 선 박영숙이 속삭였다.
"마님, 이번엔 좀 다른 것 같아요. 공장 근로라고 하는데..."
"속지 마세요. 저번에도 그랬잖아요. 공장 간다고 하더니 위안부로 보냈어요."
읍사무소 앞에는 젊은 여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본인 직원이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여러분! 이번에는 정말 공장입니다! 오사카의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됩니다! 월급도 나오고, 기숙사도 제공됩니다! 조선에 있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정말인가요?"
한 여성이 물었다.
"물론입니다! 여기 계약서도 있습니다. 2년 계약이고, 월급은 30엔입니다!"
여성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30엔이면 적지 않은 돈이었다.
"저... 신청하면 정말 공장으로 가나요?"
"그렇습니다! 서두르세요! 인원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몇몇 젊은 여성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가난한 집의 딸들이었다.
강지윤은 급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얘야, 가지 마라. 저건 거짓말이야."
"아줌마, 무슨 소리예요? 계약서도 있는데요."
"계약서가 뭐가 중요하니? 저번에도 계약서 있었어. 그런데 어떻게 됐니? 다들 위안부로 끌려갔잖아."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는데요..."
"속지 마라. 일본놈들 말 믿으면 안 돼."
하지만 젊은 여성은 강지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줌마, 저희 집은 너무 가난해요. 동생들이 굶고 있어요. 30엔이면 동생들 먹여 살릴 수 있어요."
강지윤은 할 말을 잃었다. 가난. 그것이 일본놈들의 무기였다.
결국 그날 스무 명의 여성이 신청서를 냈다.
일주일 후, 그들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났다.
"안녕히 가세요!"
"돈 많이 벌어 올게요!"
가족들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강지윤은 알고 있었다. 저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날 밤, 한도회 긴급회의가 이산갑의 사랑방에서 열렸다.
영광 지역 한도회 간부들이 모였다. 이산갑을 중심으로 마을 유지 다섯 명, 그리고 젊은 회원들인 이계민과 산돌도 함께였다.
"동지 여러분, 정신대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산갑이 입을 열었다.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만 스무 명이나..."
한 간부가 한숨을 쉬었다.
"강제로 끌고 가는 것보다 더 악랄합니다. 가난을 이용해서 스스로 가게 만드는 거니까요."
"맞습니다.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강지윤이 말했다. 그녀는 한도회 산하 여성 조직인 백합회를 이끌고 있었다.
"어떻게 막겠습니까?"
"정보를 퍼뜨려야 합니다. 저게 거짓말이라는 걸."
"하지만 증거가..."
그때 산돌이 조용히 말했다.
"나리, 제가 함평에 다녀왔습니다."
모두가 산돌을 보았다. 그는 이산갑 집에서 자란 하인 출신이었지만, 이제는 한도회의 믿음직한 회원이었다.
"함평에서?"
"네, 거기서 정신대로 간 여자의 편지를 구했습니다."
산돌은 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다.
"이걸 어떻게 구했나?"
"그 집 하인이 제 친구입니다. 읍사무소에서 검열당한 편지를 몰래 빼냈다고 합니다."
이산갑이 편지를 펼쳤다. 촛불 아래서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 저는 공장이 아니라 중국 어디론가 왔어요. 여기는... 군인들이 많아요. 저희는... 저희는..."
편지는 거기서 끊겨 있었다. 검열관이 뒷부분을 잘라낸 것이다.
방안이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이 편지를 복사해서 마을에 뿌려야 합니다."
강지윤이 단호하게 말했다.
"위험합니다, 마님. 들키면..."
"들켜도 괜찮아요. 우리 딸들을 구하는 게 먼저예요."
이산갑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 말이 맞소. 계민아, 네가 편지를 필사해라. 글씨를 바꿔서 여러 장 쓰거라."
"네, 아버지."
이계민이 붓을 들었다. 열일곱 살 청년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결연했다.
다음 날부터 마을 곳곳에 편지 사본이 나타났다.
새벽에 대문 앞에 놓이거나, 우물가에 버려지거나, 시장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산돌과 이계민이 밤중에 돌아다니며 뿌린 것이었다.
사람들은 편지를 읽고 경악했다.
"정신대가 거짓말이었어!"
"공장이 아니라 위안부로 보내는 거였어!"
"우리 딸을 보낼 뻔했네!"
읍사무소는 발칵 뒤집혔다.
"누가 이런 유언비어를 퍼뜨렸어!"
일본인 읍장이 분노했다.
"마을 사람들 다 조사해! 배후를 찾아내!"
헌병들이 마을을 뒤졌지만,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 편지는 마치 바람처럼 마을 전체에 퍼져 있었다.
그 후로 정신대에 지원하는 여성이 뚝 끊겼다.
"왜 아무도 안 와!"
읍사무소 직원이 소리쳤다.
결국 일본은 다시 강제 징집으로 돌아갔다. 헌병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여성들을 끌고 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백합회가 미리 경고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미리 피신해 있었다.
"명단에 있는 여자가 없어!"
"또 숨었어!"
한 달에 50명을 끌고 가려던 계획이 10명도 채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