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지 하살마웻의아내(픽션)

딸들의 어머니

by 이 범


흙과 영혼
1994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이 토양 샘플은 질소 함량이 높은데..."
박민지(22세)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뭐?" 옆 연구실 동료가 물었다.
"뭔가 부족해. 육안으로는 안 보이는 뭔가."
"너 너무 집착하는 거 아냐?"
"농업은 집착이에요. 흙이 살아야 사람이 살아요."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흙을 사랑했다.
서울대 농대 수석 입학.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전액 장학금.
"당신 딸은 박사가 될 거요." 교수들이 부모에게 말했다.
하지만 민지는 학문만 사랑한 게 아니었다.
실천을 원했다. 현장을. 농부들을.
"논문은 책상에서 쓰지만, 답은 밭에 있어요."
1995년 봄, 국제농업학술대회
"다음 발표자는 서울대학교의 하살마웻입니다."
민지는 청중석에 앉아 있었다.
무대에 한국 남학생이 올라왔다. 긴장한 얼굴.
"저는 한국의 계곡 농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발표는 독특했다.
산간 골짜기의 전통 농법. 계단식 밭. 물 관리.
민지는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흥미롭네...'
발표가 끝난 후, 그녀가 질문했다.
"물 관리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가요?"
하살마웻(23세)이 그녀를 봤다.
"좋은 질문입니다. 현재는 지속가능하지만, 기후 변화를 고려하면..."
"그렇다면 적응 전략은요?"
"그걸 연구 중입니다."
"저도 같은 걸 연구해요. 데이비스에서요."
"정말요?"
발표회 후, 둘은 카페에서 만났다.
"박민지입니다. 농업경제학 전공이에요."
"하살마웻이요. 농학 전공이고요."
"한국 분이시죠?"
"네. 서울대에서 왔어요."
"저도 서울대 출신이에요!"
두 사람은 웃었다.
그리고 밤새 이야기했다.
농업에 대해. 흙에 대해. 미래에 대해.
"농업은 단순히 식량 생산이 아니에요." 민지가 말했다.
"그럼 뭐죠?"
"문화예요. 생존이고. 인류의 근본이죠."
하살마웻의 눈이 빛났다.
"정확해요. 그래서 저는 골짜기 농업을 연구해요. 선조들의 지혜를..."
"그리고 저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연구하고요."
"우리... 협력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좋아요."
그렇게 동업이 시작되었다.
학문의. 그리고 예기치 않게 인생의.
1996년, 공동 연구
"민지 씨, 이 데이터 좀 봐요."
하살마웻이 그래프를 보여줬다.
"전통 농법이 현대 농법보다 토양 보존율이 높아요."
"하지만 수확량은요?"
"육십 퍼센트밖에 안 돼요."
민지는 생각했다.
"그럼 혼합 모델은 어때요?"
"뭐요?"
"전통 지혜 더하기 현대 기술. 둘 다 최고로."
하살마웻이 감탄했다.
"천재네요."
"아니에요. 실용주의자일 뿐이에요."
육 개월 후, 그들은 공동 논문을 발표했다.
"지속가능한 계곡 농업: 혼합 접근법"
학계의 반응이 뜨거웠다.
"이 두 사람 함께하면 굉장하네."
"완벽한 조합이야."
하지만 더 완벽한 건 따로 있었다

1997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민지 씨."
"응?"
연구실에서 둘만 남아 있었다.
"나... 고백할 게 있어요."
"논문에 오류 발견했어요?"
"아니요. 나... 당신 좋아해요."
민지는 멈췄다.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그를 봤다.
"...갑자기요?"
"갑자기가 아니에요. 이 년 동안 계속 좋아했어요."
"왜 이제 말해요?"
"용기가 없었어요. 거절당할까 봐."
민지는 미소 지었다.
"저도요."
"...뭐요?"
"저도 당신 좋아했어요. 이 년 동안."
하살마웻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요?"
"응. 처음 발표회 때부터."
"그럼... 사귈래요?"
"조건이 있어요."
"뭔데요?"
"결혼 전까지는 같은 연구실 쓰면 안 돼요. 프로답게 해야죠."
"...그게 조건이에요?"
"응. 그리고 하나 더."
"뭐요?"
"아들 낳으라고 압박하지 마요."
하살마웻이 놀랐다.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한국 남자들, 다 아들 원하잖아요. 특히 재벌."
"나는 아니에요."
"정말?"
"정말.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어요. 건강하면 돼요."
민지는 그를 뚫어지게 봤다.
"약속해요?"
"약속합니다."
"좋아요. 그럼 사귀어요."
그들의 첫 키스는 연구실에서였다.
흙 샘플과 현미경 사이에서.
참 그들다웠다.


세 딸의 탄생
1998년, 결혼식
"결혼식은 간단하게 해요."
"나도 그러고 싶어요."
"의식보다 내용이 중요하죠."
전형적인 지식인 커플.
결혼식은 소규모였다.
하지만 서약은 깊었다.
"나 박민지는 하살마웻을..."
"평생 연구 동료로..."
"인생 동반자로 맞이합니다."
하살마웻도 같은 서약을 했다.
박수.
혼례가 끝난 후.
"신혼여행은 어디로?" 친구들이 물었다.
"전라도."
"거기?"
"응. 한국 최고의 농업 지역이잖아요. 현장 조사 겸."
다들 웃었다.
"역시 너희다워."
1999년, 첫 딸 탄생
"딸입니다!"
"딸..." 하살마웻이 감격했다.
민지는 지쳐 있었지만 미소 지었다.
"미안해요. 아들 아니라서..."
"왜 미안해요? 딸 좋은데."
"시부모님이..."
"상관없어요. 우리 딸이에요."
민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고마워요."
"이름은?"
"수아. 벼이삭의 싹."
"농업스러워요."
"당연하죠. 우리 딸인데."
첫 딸, 하살마웻 수아.
하지만 현실은...
"아들은 언제 낳을 거야?"
시어머니 한나라 여사가 물었다.
"...아직 계획이..."
"하살마웻이는 장남이야. 아들이 있어야지."
민지는 참았다.
"...노력하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울었다.
"왜 울어?" 하살마웻이 안았다.
"미안해요... 아들을 못 낳아서..."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나는 딸이 좋아요."
"하지만 어머님이..."
"어머니는 내가 말씀드릴게. 당신은 신경 쓰지 마요."
하지만 압박은 계속되었다.


2001년, 둘째 딸 탄생
"또 딸입니다."
민지는 마음이 무거웠다.
대기실에서 시댁 가족의 반응이 들렸다.
"또 딸이래..."
"아이고..."
하살마웻이 들어왔다.
얼굴이 밝았다.
"민지야! 둘째도 딸이래! 수아가 동생 생겼어!"
"...미안해요."
"왜 또 미안해요?"
"아들이 아니라서..."
하살마웻이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들어봐요. 나는 딸이 좋아요. 진심으로."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요. 우리 딸이에요. 건강하고 예쁜."
"이름은?"
"수진. 벼이삭의 보배."
"또 농업이네요."
"우리답잖아요."
둘째 딸, 하살마웻 수진.
2003년, 셋째 딸 탄생
"세 번째도 딸입니다."
이번에는 민지가 울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세 명이나. 축복이네요."
"정말 괜찮아요?" 하살마웻이 걱정했다.
"응. 이제 확신해요. 우리는 딸들과 인연이 있는 거예요."
"이름은?"
"수연. 벼이삭이 이어지다."
"삼 자매네요."
"응. 아름다운 삼 자매."
셋째 딸, 하살마웻 수연.
하지만 주위는...
"아들 포기한 거야?" 친척들이 수군거렸다.
"삼 녀만... 집안이 어떻게 되려고..."
"하살마웻이가 욕단가 장남인데..."
민지는 들었다. 다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당신들 말이 맞아요. 저는 아들을 못 낳았어요."
그녀가 친척 모임에서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세 딸을 훌륭하게 키울 자신은 있어요."
"성별이 뭐가 중요해요? 능력이 중요하죠."
"제 딸들은 아들 열 명보다 나을 거예요."
친척들은 말문이 막혔다.
하살마웻이 아내 옆에 섰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 딸들을 무시하지 마세요."
그날 이후, 아무도 감히 딸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딸들의 성장과 편견과의 싸움
2010년, 수아 11세, 수진 9세, 수연 7세
"엄마, 학교에서 애들이 그래."
수아가 울먹였다.
"뭐라고?"
"너희 집은 아들이 없어서 불행하대."
민지의 가슴이 찢어졌다.
하지만 침착했다.
"수아야, 이리 와봐."
딸을 무릎에 앉혔다.
"우리 집이 불행해?"
"...아니."
"왜?"
"엄마 아빠가 사랑하고, 우리 세 자매가 있잖아."
"맞아. 그게 행복이야."
"하지만 애들이..."
"애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가 행복하면 그게 진짜야."
"성별이 행복을 결정하지 않아."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수아야."
"응?"
"너는 여자라서 못할 게 하나도 없어. 알지?"
"...응."
"남자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여자도 할 수 있어. 아니, 더 잘할 수 있어."
"정말?"
"정말. 엄마가 증명할게."
민지는 딸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2012년, 농업진흥청 고문 임명
"박민지 박사를 한국농업진흥청 수석 고문으로 임명합니다."
박수.
민지(마흔 살)는 한국 농업계 최연소 여성 고문이 되었다.
"엄마 대단해!" 딸들이 환호했다.
"봤지? 여자도 할 수 있어."
"엄마처럼 우리도 할 거야!"
민지는 미소했다.
'그래. 너희는 더 잘할 거야.'
2015년, 수아의 진로 선택
"엄마, 나 농대 갈래."
수아(열여섯 살)가 말했다.
"정말?"
"응. 엄마 아빠처럼 농업 연구하고 싶어."
민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힘들어. 농업은..."
"알아. 하지만 하고 싶어. 엄마가 사랑하는 일이잖아."
하살마웻이 끼어들었다.
"수아야, 정말 확실해?"
"응, 아빠. 나는 흙이 좋아. 어릴 때부터."
"그럼... 환영해."
부부는 딸을 껴안았다.
"자랑스러워, 수아야."
2016년, 수진의 선언
"나는 농업경제학 할래."
수진(열다섯 살)이 발표했다.
"엄마 전공?"
"응. 엄마 논문 읽어봤는데 정말 재밌어."
"정말 읽었어?"
"응. '지속가능한 농업의 경제적 모델' 완전 멋있어."
민지는 놀랐다.
"그게... 어려운 논문인데..."
"알아. 세 번 읽었어. 이제 이해돼."
"수진아..."
"엄마, 나도 엄마처럼 학자가 되고 싶어."
민지는 울었다.
기쁨의 눈물.
2017년, 수연의 꿈
"언니들은 다 농업인데, 나는..."
막내 수연(열네 살)이 말했다.
"너는 뭐 하고 싶어?" 민지가 물었다.
"나는... 요리사."
"요리사?"
"응. 농장에서 식탁으로. 농부들이 키운 걸 요리로 만드는 거."
하살마웻이 웃었다.
"그것도 농업이야, 수연아."
"정말?"
"그럼. 농업의 마지막 단계지. 소비."
"그럼 나도 농업 가족이구나!"
"당연하지."
삼 자매.
각자 다른 길.
하지만 모두 흙과 연결된.
민지는 행복했다.


2018년, 욕단가 모임에서
"하살마웻, 아들 없으면 나중에 사업 어떻게 할 거야?"
친척이 또 물었다.
민지가 대답했다.
"딸들이 하면 되죠."
"여자가?"
"왜요? 여자는 안 돼요?"
"그게... 전통이..."
"전통은 바뀌는 거예요. 능력이 성별을 이기는 시대예요."
수아가 옆에서 말했다.
"저 내년에 서울대 농대 들어가요. 엄마 아빠처럼."
수진이 이었다.
"저는 경제학 할 거예요."
수연이 마무리했다.
"저는 요리학교 가서 농장 식탁 요리 배울 거예요."
친척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하살마웻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봤죠? 제 딸들입니다. 아들 부럽지 않아요."
민지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마워요. 이십 년 동안 믿어줘서.'


딸들의 승리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식량 안보가 위기입니다."
뉴스가 쏟아졌다.
민지는 농진청 긴급 회의를 주도했다.
"지역 식량 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도시 농업을 확대하고..."
그녀의 제안이 정부 정책이 되었다.
"박민지 박사 덕분에 한국이 식량 위기를 넘겼습니다."
표창.
딸들이 축하했다.
"엄마 최고!"
"우리 자랑스러워!"
2021년, 수아의 서울대 수석 입학
"농대 수석 합격!"
"엄마처럼!"
민지는 울었다.
"수아야... 축하해..."
"엄마, 나 엄마 넘을 거야."
"그래. 넘어야지. 그게 세대 발전이야."
모녀가 포옹했다.
2024년, 수진의 데이비스 전액 장학금
"엄마! 전액 장학금 받았어!"
"데이비스?"
"응! 엄마 학교!"
민지는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응! 나도 엄마처럼 농업경제학 박사 할 거야!"
"수진아..."
"엄마가 걸어간 길을 따라갈게. 그리고 더 나아갈게."
민지는 딸을 안고 울었다.
이십오 년 전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2025년, 수연의 요리학교 입학
"엄마, 나 르 꼬르동 블루 붙었어!"
"파리?"
"응! 그리고 전공은 지속가능 요리!"
"지속가능 요리?"
"응! 농장에서 식탁으로, 쓰레기 제로, 지역 재료!"
하살마웻이 웃었다.
"역시 우리 딸이야. 농업을 요리로 잇는구나."
"그럼요, 아빠!"
삼 자매.
모두 성공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2026년 1월, 욕단 회장 별세
장례식.
민지는 시어머니 한나라 여사를 도왔다.
"며느리, 고마워요."
"괜찮습니다, 어머님."
"내가... 미안했어요."
"...예?"
"아들 낳으라고 압박한 것. 미안해요."
민지는 놀랐다.
"어머님..."
"당신이 옳았어요. 성별이 아니라 능력이죠."
"수아, 수진, 수연... 세 손녀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아들 열 명보다 낫네요."
민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아니에요. 내가 배웠어요. 당신한테."
두 여인이 포옹했다.
세대를 넘어선 이해.
2027년, 욕단그룹 공동 경영 체제
"하살마웻 형님, 농업 부문 총괄 맡으시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박민지 박사님도 고문으로..."
민지가 일어섰다.
"제가 하겠습니다. 지속가능 농업 전략."
"환영합니다!"
딸 수아도 참석했다.
"저도 연구팀에 합류하겠습니다."
"수아도?"
"네. 엄마 아빠 도울게요."
가족 사업이 되었다.
삼 대가 함께하는.
2028년, 국제 농업 학술대회
"기조 연설자: 박민지 박사"
민지(쉰여섯 살)가 무대에 올랐다.
"오늘 저는 딸들과 함께 발표하겠습니다."
수아(스물아홉 살)가 나왔다.
"계곡 농업 혁신"
수진(스물일곱 살)도 나왔다. (화상으로, 데이비스에서)
"경제적 지속가능성 모델"
수연(스물다섯 살)도 나왔다.
"농장에서 식탁으로 요리 운동"
모녀 네 사람의 발표.
청중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믿을 수 없어..."
"삼 대 여성이..."
"혁명이에요!"
발표 후, 기자가 물었다.
"박 박사님, 아들이 없어서 후회하신 적 없으세요?"
민지는 딸들을 봤다.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어요. 단 한 번도."
"이 세 딸들이 제 최대의 자랑입니다."
"성별은 중요하지 않아요. 열정과 능력이 중요하죠."
"그리고 제 딸들은 그 둘 다 가졌어요."
딸들이 엄마를 안았다.
"사랑해요, 엄마."
"나도 사랑해. 너희가 최고야."
2029년, 수아의 결혼
"엄마, 저 결혼해요."
"정말? 누구?"
"농업 연구원이에요. 같은 연구실에서."
"남자? 여자?"
"남자예요. 그런데..."
"응?"
"그 사람도 농업 집안이에요. 그리고 딸만 셋이래요."
민지가 웃었다.
"완벽한 짝이네."
"그죠?"
결혼식.
민지는 딸을 보며 울었다.
"행복해라, 수아야."
"응, 엄마. 엄마처럼."
"엄마처럼?"
"응.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연구하고, 딸들 낳고, 행복하게."
"...딸들?"
"응. 나도 딸만 낳을 거야. 엄마처럼."
민지는 웃으며 울었다.
"바보야... 아들 낳아도 돼..."
"싫어. 딸이 좋아."
2030년, 수진의 박사 학위
"수진 하살마웻 박사"
데이비스 졸업식.
민지와 하살마웻이 참석했다.
"축하해, 수진아!"
"엄마, 나 해냈어. 엄마처럼 박사!"
"자랑스러워."
"그리고 엄마..."
"응?"
"나도 한국 돌아가서 농진청 들어갈 거야. 엄마처럼."
"정말?"
"응. 그리고 엄마 뒤를 이을 거야."
민지는 딸을 안았다.
"고마워... 이 길을 선택해줘서..."
"엄마가 멋진 길을 보여줬잖아."
2031년, 수연의 식당 개업
"엄마, 아빠, 내 식당에 와!"
파리에서 돌아온 수연.
서울에 식당을 열었다.
이름: 세 딸 농장 식탁
"세 딸?"
"응. 언니, 둘째 언니, 그리고 나. 우리 삼 자매."
"그리고 엄마."
메뉴판에 적혀 있었다:
"모든 재료는 지속가능한 한국 농장에서,
박민지 박사가 선별"
민지는 울었다.
"수연아..."
"엄마,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거였어. 엄마 농업을 요리로."
"고마워..."
식당은 대성공이었다.
미슐랭 별.
"한국 최초 농장 식탁 파인 다이닝"
에필로그: 딸들의 유산
2035년, 박민지 은퇴 기념식
"오늘 우리는 박민지 박사의 사십 년 농업 생애를 축하합니다."
민지(예순세 살)는 무대에 섰다.
세 딸이 옆에.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세 딸을 낳았으니까요."
"주위에서는 불행하다고 했죠. 아들이 없다고."
"하지만 저는 가장 행복한 어머니입니다."
"제 딸들을 보세요."
수아가 일어섰다.
"저는 현재 농업진흥청 지속가능농업 부장입니다."
수진이 일어섰다.
"저는 데이비스 조교수이자 국제농업경제학회 이사입니다."
수연이 일어섰다.
"저는 한국 지속가능 요리 운동을 이끌고 있습니다."
민지가 계속했다.
"이 세 여성이 제 아들 열 명보다 나을까요?"
"아니요. 백 명보다 낫습니다."
박수가 터졌다.
하살마웻이 무대로 올라왔다.
"제 아내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민지야, 삼십오 년 전 당신이 말했죠. 아들 낳으라고 압박하지 말라고."
"저는 약속을 지켰어요. 그리고 후회 없어요."
"왜냐하면 당신이 옳았으니까."
"세 딸. 세 명의 놀라운 여성. 세 명의 혁명가."
"이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어요."
"성별로 판단하던 시대를 끝내고 있어요."
"고마워요, 민지야. 이 가족을 만들어줘서."
민지는 남편을 안았다.
그리고 딸들이 함께 안았다.
네 사람의 포옹.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그 사진은 한국 여성사의 아이콘이 되었다.
2036년, 수아의 딸 탄생
"할머니! 저도 딸 낳았어요!"
"축하해, 수아야!"
"이름은 민아. 할머니 이름에서 따왔어요."
민지는 손녀를 안았다.
"안녕, 민아야..."
"할머니, 저도 딸만 낳을 거예요."
"왜?"
"딸이 최고니까요. 할머니가 증명했잖아요."
민지는 웃으며 울었다.
"그래... 딸이 최고지..."
네 세대.
모두 여성.
모두 강하고 아름다운.

"성별은 운명이 아니다. 선택과 능력이 운명을 만든다."
— 박민지, 2035년
작가의 말
박민지와 세 딸의 이야기는 수많은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
"여자는 안 된다"는 편견.
"전통"이라는 이름의 차별.
하지만 민지는 싸웠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딸들을 최고로 키웠습니다.
그리고 증명했습니다.
성별이 아니라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도 누군가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
딸들은 축복입니다.
아들 못지않은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완벽합니다.
- 완 -

월, 화, 수,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