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316)

일본인 상인의 양심

by 이 범

일본인 상인의 양심
그 무렵,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영광 읍내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던 일본인 상인 다나카가 강지윤을 찾아왔다.
"실례합니다..."
막심네가 문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저는... 다나카입니다. 읍내 잡화점 주인입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막심네가 안으로 들어가 강지윤에게 알렸다.
"마님, 일본 사람이 찾아왔어요."
강지윤은 경계했다. 등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다나카는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더니 작게 말했다.
"이산갑 선생님은 안 계십니까?"
"네... 지금 안 계세요."
"그렇군요. 사실... 부인께 경고하러 왔습니다."
"경고요?"
다나카는 품에서 서류를 꺼냈다.
"이것은... 헌병대의 비밀 명단입니다."
강지윤이 서류를 받아봤다. 거기에는 '요시찰 인물'이라는 제목 아래 여러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중에는 이산갑, 김만석, 그리고 한도회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이름이 있었다.
"이게..."
"헌병대가 선생님들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고요."
강지윤의 심장이 철렁했다.
"왜... 이걸 저한테 보여주시는 겁니까?"
다나카는 한숨을 쉬었다.
"저는... 이 전쟁에 반대합니다. 조선을 이렇게 괴롭히는 것도 반대합니다."
"..."
"저는 20년 전에 조선에 왔습니다. 장사를 하며 조선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친절했고, 정직했습니다."
다나카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군부는... 여러분을 사람 취급하지 않습니다. 짐승처럼 다룹니다. 저는... 그게 너무 괴롭습니다."
"..."
"전쟁은 곧 끝날 겁니다. 일본이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헌병대가 선생님들을 체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요?"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이것도 드립니다."
다나카는 또 다른 보자기를 꺼냈다.
"이게 뭡니까?"
강지윤이 보자기를 열어보니 약이 가득 들어있었다.
"소독약, 붕대, 진통제... 제 가게에 있던 것들입니다. 부인의 상처에 쓰십시오."
강지윤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떻게... 제 상처를..."
"읍사무소에서 소문이 났습니다. 부인이 고문당했다고. 하지만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고..."
다나카는 고개를 숙였다.
"일본인으로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입니다. 저는 군인도 아니고, 권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양심은 있습니다."
다나카는 일어섰다.
"조심하십시오, 부인. 그리고... 광복이 오면, 저 같은 일본인도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십시오."
"기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나카가 떠난 후, 강지윤은 서류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요시찰 인물... 한도회가 의심받고 있다...'
그녀는 급히 산으로 전갈을 보냈다.
산돌이 밤에 산을 내려와 전갈을 받아 갔다.
"나리, 마님께서 긴급 전갈을 보내셨습니다."
이산갑은 전갈을 읽고 한도회 간부들을 소집했다.
"동지 여러분, 우리가 감시당하고 있습니다."
김만석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으니까 우리를 잡지 못하는 거겠죠."
"그렇소. 하지만 더 조심해야 하오. 증거를 만들지 말아야 하오."
"모든 활동을 더 은밀하게 해야겠습니다."
"연락도 더 신중하게 하고요."
이계민이 말했다.
"아버지, 제가 연락책을 맡겠습니다. 젊으니까 의심을 덜 받을 겁니다."
"아니다, 계민아. 너는 너무 어리다."
"아닙니다, 아버지. 저도 한도회 회원입니다. 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산돌도 나섰다.
"저도 돕겠습니다. 산길은 제가 제일 잘 아니까요."
이산갑은 두 청년을 바라봤다. 열일곱 살 아들과 스무 살 산돌. 이들이 한도회의 미래였다.
"알겠다. 너희들이 맡아라. 하지만 절대 무리하지 마라."
"네, 아버지!"
"네, 나리!"
한편, 다나카는 자기 가게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또 다른 일본인 상인들이 모여 있었다.
"다나카, 어떻게 됐어?"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약도 줬고요."
"잘했어. 우리도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영광에는 다나카 같은 일본인이 몇 명 더 있었다. 오래 조선에 살면서 조선 사람들과 친해진 사람들이었다.
"우치다, 너는?"
"저는 헌병대 보급 창고 배치도를 복사했습니다."
"뭐? 그걸 어디다 쓸 건데?"
"한도회에서 혹시 필요하실 수도 있잖습니까."
"위험하지 않아?"
"위험하죠. 하지만... 해야 할 일입니다."
다른 일본인 상인 사카모토가 말했다.
"나는 읍사무소 서류를 몰래 복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가 있으면 조선 분들께 전해드리고 있어요."
"우리 다 죽을 수도 있어."
"알아요.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요."
다나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일본인이지만... 인간이기도 합니다. 인간으로서 할 도리를 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조선의 광복을 우리도 돕습시다."
이렇게 몇몇 일본인 상인들은 비밀리에 조선인들을 도왔다.
정보를 흘려주고, 물자를 지원하고, 때로는 헌병들의 눈을 피하게 도와주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있었다. 들키면 반역죄로 처형당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우면... 한 사람이라도 더 살 수 있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광복을 맞을 때, 우리도 같이 기뻐할 수 있기를..."
"그래, 우리는 적이 아니야. 같은 인간이야."

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