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와의 전쟁
의심의 시작
1945년 10월.
의용경찰단이 발족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치안은 많이 안정됐다. 도둑질도 줄고, 밤길도 안전해졌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단장님!"
한 단원이 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읍사무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
"일본인 재산 목록이... 조작되고 있다는 소문이..."
이계민의 표정이 굳었다.
"자세히 말해봐."
"일본인이 남기고 간 재산 목록을 읍사무소에서 작성하고 있잖습니까. 그런데... 일부 재산이 빠져 있다는 겁니다."
"빠져 있다고?"
"네, 특히 좋은 땅이나 큰 건물들이..."
이계민과 산돌은 읍사무소로 갔다.
읍사무소는 해방 후 혼란스러웠다. 일본인 직원들은 다 떠나고, 조선인 임시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일본인 재산 목록을 좀 볼 수 있을까요?"
"누구시오?"
"의용경찰단장 이계민입니다."
"아... 네, 잠시만요."
직원이 장부를 가져왔다.
이계민이 살펴봤다.
'이상하다...'
분명 읍내 중심가에 있던 큰 여관이 목록에 없었다. 쌀 창고도 빠져 있었다.
"이 재산들은 왜 목록에 없습니까?"
"그건... 원래 일본인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아니었다고요? 분명 일본인이 운영했는데요?"
"명의가... 조선인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누구 명의죠?"
직원이 머뭇거렸다.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한데요..."
"말해주십시오. 의용경찰단 공식 조사입니다."
"...박용식 씨 명의입니다."
"박용식?"
이계민은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읍내에서 장사를 하는 부자였다.
"박용식 씨가 일본인 재산을 자기 명의로 돌려놓았다는 건가요?"
"그건... 제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계민은 직원의 눈빛을 봤다. 뭔가 숨기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조사하겠습니다."
읍사무소를 나와 산돌이 물었다.
"형님, 이거 심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요. 누군가 일본인 재산을 가로채고 있어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증거를 찾아야죠. 확실한 증거를."
조사의 시작
며칠 동안 이계민과 산돌은 은밀히 조사했다.
일본인들이 떠나기 전 재산 목록, 등기부등본, 마을 사람들의 증언...
하나하나 맞춰보니 그림이 그려졌다.
박용식은 해방 직전부터 일본인들과 거래를 했다.
일본인들이 급히 떠나면서 재산을 헐값에 팔 때, 박용식이 사들였다.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었다.
일부 재산은 아예 명의를 조작했다. 일본인 소유를 박용식 소유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건... 명백한 사기입니다."
산돌이 말했다.
"그래요. 하지만 증거가 약해요. 박용식이 부정한 방법으로 명의를 바꿨다는 확실한 증거가..."
그때 한 노인이 이계민을 찾아왔다.
"도련님... 제가 아는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박용식이... 읍사무소 직원에게 돈을 줬습니다... 명의 변경을 빨리 해주라고..."
"정말입니까? 증거가 있습니까?"
"제가... 봤습니다... 돈 봉투를 전달하는 걸..."
"증언해주시겠습니까?"
노인은 겁이 났는지 머뭇거렸다.
"박용식이 무서운 사람입니다... 저한테 해코지하면..."
"걱정 마세요. 의용경찰단이 보호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증언하겠습니다."
증거가 확보됐다.
이계민은 한도회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숙부님들,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산복, 이산화, 그리고 아버지 이산갑이 모였다.
"박용식이 일본인 재산을 부정한 방법으로 가로채고 있습니다."
증거를 제시했다.
이산갑의 표정이 굳었다.
"이런... 이건 명백한 범죄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버지?"
"체포해야지. 하지만..."
이산복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박용식은 돈이 많아. 그리고 읍사무소에 인맥도 있어. 함부로 건드렸다가 우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하지만 법은 법입니다."
이계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의용경찰단을 만든 이유가 뭡니까? 법과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잖아요. 부정부패를 방치하면 안 됩니다."
이산화도 거들었다.
"계민이 말이 맞아. 우리가 나서야 해."
"하지만 신중해야 해."
이산갑이 말했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해. 실수하면 안 돼."
"알겠습니다, 아버지."
다음 날, 이계민은 박용식을 만나러 갔다.
박용식의 집은 읍내에서 제일 큰 기와집이었다.
"누구시오?"
하인이 문을 열었다.
"의용경찰단장 이계민입니다. 박용식 씨를 뵙고 싶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잠시 후 박용식이 나왔다. 40대 중반의 살찐 남자였다.
"오, 이산갑 선생 아드님! 어서 오시게!"
박용식은 웃으며 맞았다.
"들어와서 차나 한잔 하시게!"
"괜찮습니다. 업무차 왔습니다."
"업무? 무슨 업무?"
"일본인 재산 문제로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박용식의 눈빛이 변했다.
"...무슨 문제인가?"
"당신 명의로 된 재산 중 일부가... 원래 일본인 소유였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증언? 누구 증언인가?"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허허, 젊은 친구가 오해하고 있군. 그 재산들은 내가 정당하게 산 거야."
"정당하게요?"
"그렇지. 일본인들이 떠나면서 급매로 내놓길래 산 거지. 뭐가 문제인가?"
"명의 변경 과정에 부정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박용식의 얼굴이 굳었다.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하던가?"
"조사 중입니다.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협조? 자네가 지금 날 의심하는 건가?"
"의심이 아니라 조사입니다."
박용식이 비웃었다.
"젊은 친구가 너무 나간다. 자네 아버지가 한도회 간부라고 해서 날 함부로 대하면 안 돼."
"함부로 대하는 게 아닙니다. 법에 따라 조사하는 겁니다."
"법? 허허... 지금이 무슨 법이 있나? 혼란기야, 혼란기!"
"그래서 더 법이 필요합니다."
이계민은 물러서지 않았다.
박용식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 후회할걸세."
"무슨 뜻입니까?"
"날 건드리면... 자네나 자네 가족이 무사하지 못할 거야."
"협박입니까?"
"협박이 아니라 충고지. 어린 친구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이계민은 주먹을 꽉 쥐었다.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참았다.
"조사는 계속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이계민은 돌아섰다.
"이계민!"
박용식이 불렀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하지. 그만둬. 자네 앞날을 위해서."
"거절하겠습니다."
이계민은 집을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산돌이 물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저도 들었습니다. 협박까지 하더군요."
"협박에 굴복할 수는 없어요. 계속 조사해요."
압박과 위협
그날 밤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계민의 집 담장에 돌이 던져졌다.
"퍽!"
한밤중에 큰 소리가 났다.
"뭐야!"
이계민이 뛰어나갔다. 하지만 범인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담장에 돌과 함께 쪽지가 붙어 있었다.
"더 이상 조사하면 후회한다."
이튿날 밤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사흘째 되는 날, 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이계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달 셋이었다.
"이계민이지?"
"누구세요?"
"우리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건달 하나가 몽둥이를 들었다.
"박용식 조사를 그만두라는 거지."
"거절합니다."
"후회할걸?"
건달들이 다가왔다.
이계민은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싸워야 하나...'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산돌과 의용경찰단원들이 달려왔다.
"누구야, 너희들!"
건달들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의용경찰단이다! 당장 무기 버려!"
건달들은 몽둥이를 버리고 도망갔다.
"조카님, 괜찮으십니까?"
"고마워요, 아제. 어떻게 알고 왔어요?"
"조카님이. 걱정돼서 미행했습니다. 역시..."
산돌이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박용식 놈이 건달까지 동원하다니!"
"증거는 없어요. 하지만... 분명히 그놈 짓이겠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 강지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계민아, 들었다. 건달들이 너를 공격하려 했다며?"
"괜찮아요, 어머니. 산돌 아제가 구해줬어요."
"이래서야 안 되겠다. 위험해."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 박용식 조사를 그만둬!"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어머니. 저는 의용경찰단장이에요. 부정부패를 보고 모른 척할 수 없어요."
"하지만 네 안전이..."
"어머니."
이계민이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도 일제시대에 위험을 무릅쓰고 한도회 활동 하셨잖아요. 저도 똑같이 하는 거예요."
강지윤은 아들을 봤다.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어엿한 청년이었다.
"...알았어. 하지만 조심해라. 꼭."
"네, 어머니."
그날 밤, 이산갑이 아들을 불렀다.
"계민아, 앉아라."
"네, 아버지."
"박용식 건... 계속할 거냐?"
"네, 해야죠."
"위험하다."
"알고 있습니다."
이산갑은 담뱃대를 물었다.
"나는... 너를 말리고 싶다. 아버지로서."
"..."
"하지만... 한도회 간부로서는 너를 응원한다."
이산갑이 아들을 봤다.
"너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 계속해라. 하지만 혼자 하지 마라."
"네?"
"한도회가 함께한다. 우리가 너를 지킬 것이다."
이계민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한테 고마워할 것 없다. 당연한 일이야."
결정적 증거
며칠 후, 결정적 증거가 나왔다.
읍사무소 직원 하나가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저... 고백하겠습니다..."
젊은 직원이 이계민을 찾아왔다.
"박용식이... 저한테 돈을 줬습니다. 명의 변경을 빨리 처리해달라고..."
"얼마를 받았습니까?"
"백 원입니다..."
백 원이면 큰돈이었다.
"영수증이나 증거가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직원이 봉투를 꺼냈다. 박용식의 이름이 적힌 봉투였다.
"이걸 왜 보관했습니까?"
"혹시 몰라서... 나중에 문제가 될까 봐..."
"잘하셨습니다. 용기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처벌받을까요?"
"정직하게 자백했으니 참작이 될 겁니다. 걱정 마세요."
드디어 확실한 증거를 잡았다.
이계민은 의용경찰단원들을 소집했다.
"오늘 밤, 박용식을 체포한다."
"드디어입니까!"
"네, 증거가 확보됐습니다. 영장도 준비했습니다."
"영장이요?"
"네, 마을 유지회에서 발부한 임시 체포영장입니다."
물론 정식 법원 영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혼란기에 임시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단원들, 준비하세요. 저항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네!"
밤 9시.
의용경찰단 20명이 박용식의 집을 포위했다.
"박용식! 의용경찰단이다! 나와라!"
이계민이 소리쳤다.
안에서 소란이 일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박용식이 나왔다.
"이게 무슨 짓이야!"
"박용식, 당신을 부정부패 혐의로 체포한다!"
"뭐? 체포?"
"여기 영장이 있다. 순순히 따라와라."
박용식이 비웃었다.
"영장? 이딴 종이쪽지가 영장이야?"
"임시 영장이다. 법적 효력이 있다."
"웃기고 있네! 너희가 무슨 권한으로!"
"의용경찰단은 마을 유지회의 승인을 받았다. 충분한 권한이 있다."
"난 안 간다!"
박용식이 문을 닫으려 했다.
"단원들, 돌입!"
의용경찰단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놔! 놔라고!"
박용식이 저항했다. 건달 몇 명도 나타나 싸움이 벌어졌다.
"으악!"
"제압해!"
난투극 끝에 박용식과 건달들을 모두 체포했다.
"이계민! 너 후회할 거야! 내가 가만 안 둬!"
박용식이 소리쳤다.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 법정에서 보자."
박용식을 읍사무소 지하 유치장에 가뒀다.
재판
사흘 후, 공개 재판이 열렸다.
마을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 모였다.
재판장은 김만석, 배심원은 마을 유지 10명.
"피고인 박용식을 재판하겠습니다."
김만석이 망치를 두드렸다.
"혐의는 뇌물 수수와 공문서 위조입니다."
"증거를 제시하세요."
이계민이 나섰다.
"첫째, 읍사무소 직원의 증언입니다."
직원이 나와 증언했다.
"박용식이 저에게 백 원을 주며 명의 변경을 빨리 처리해달라고 했습니다."
"거짓말이야!"
박용식이 소리쳤다.
"조용히 하세요! 증거가 더 있습니다."
이계민이 봉투를 제시했다.
"이것이 박용식이 건넨 돈봉투입니다. 박용식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건... 그건 조작이야!"
"필적 감정을 했습니다. 박용식의 글씨가 맞습니다."
박용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둘째, 명의 변경 기록입니다."
이계민이 서류를 제시했다.
"일본인 소유였던 재산 다섯 건이 해방 직후 박용식 명의로 변경됐습니다. 정상적인 절차보다 10배 빠른 속도로요."
"그건... 우연이야..."
"우연이 다섯 번이나 일어났습니까?"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셋째, 목격자 증언입니다."
노인이 나와 증언했다.
"제가 직접 봤습니다. 박용식이 읍사무소 직원에게 돈봉투를 전달하는 걸..."
"거짓말이야! 저 늙은이가 눈이 어두워서!"
"조용히 하세요!"
김만석이 망치를 두드렸다.
배심원들이 협의했다.
10분 후, 판결이 나왔다.
"피고인 박용식에게 유죄를 선고합니다."
"뭐?"
"부정하게 취득한 재산은 모두 몰수하고, 벌금 천 원을 부과합니다."
천 원이면 박용식 재산의 절반이었다.
"안 돼! 이건 불공평해!"
"판결에 불복하면 정식 법원이 생긴 후 항소할 수 있습니다."
"이계민! 너 때문이야! 너!"
박용식이 이계민을 노려봤다.
"법은 법입니다. 받아들이세요."
재판은 끝났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의용경찰단 만세!"
"이계민 만세!"
"부정부패 척결!"
하지만 이계민은 기쁘지 않았다.
박용식의 눈빛이 무서웠다. 복수할 것 같았다.
'조심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