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323)

새로운 시작

by 이 범

보복의 그림자
박용식 재판 후 일주일.
겉으로는 평온했다. 하지만 이계민은 불안했다.
'박용식이 가만있을 리 없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의용경찰단 순찰 중이었다.
"조카님, 저기 연기가!"
산돌이 가리켰다.
저 멀리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저건... 우리 집 쪽이야!"
이계민은 달렸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사랑방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여기 있다, 계민아!"
다행히 가족은 모두 무사했다. 불은 사랑방만 태우고 꺼졌다.
"누가... 누가 불을 질렀어요?"
"모르겠다. 한밤중에 갑자기..."
이산갑이 불탄 사랑방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방화야. 누군가 일부러 불을 질렀어."
"박용식일까요?"
"증거는 없지만... 틀림없어."
다음 날, 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산돌이 길에서 습격당했다.
건달 다섯 명이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으악!"
"이게 네놈들이 박용식한테 한 짓 값이다!"
산돌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돼서 겨우 도망쳤다.
"아제!"
이계민이 산돌을 부축했다.
"괜찮아요... 형님..."
"괜찮긴! 피가 이렇게 많이..."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산돌은 갈비뼈가 부러졌다.
한 달은 쉬어야 했다.
"박용식... 이 자식..."
이계민은 분노했다.
박용식을 찾아갔다.
"박용식!"
박용식은 뻔뻔하게 웃었다.
"오, 이계민 단장님! 무슨 일로?"
"당신이 시킨 거지? 우리 집 방화! 산돌 습격!"
"무슨 소리야? 증거 있어?"
"......"
"증거도 없이 함부로 떠들면 명예훼손이야. 조심해."
이계민은 주먹을 쥐었다. 한 대 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여기서 폭력을 쓰면 내가 범죄자가 돼...'
"증거를 찾을 거야. 기다려."
"허허, 젊은이가 참 고집이 세네. 언제까지 버틸지 보자고."
집으로 돌아온 이계민은 좌절했다.
'이래서야... 법으로 해결하려 했는데... 상대는 법을 무시하는데...'
그날 밤, 가족 회의가 열렸다.
이산갑, 강지윤, 그리고 숙부들.
"계민아, 이제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니냐?"
이산복이 말했다.
"너무 위험해. 박용식은 수단방법을 안 가려."
"하지만..."
"계민아."
어머니 강지윤이 아들의 손을 잡았다.
"어미는 네가 걱정된다. 너까지 다치면..."
"어머니, 저는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 산돌이가 저렇게 다쳤잖아!"
강지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그만둬... 의용경찰단도 그만두고, 공부나 해..."
"안 돼요, 어머니. 저는 단장이에요. 책임이 있어요."
"책임보다 네 목숨이 중요해!"
"어머니..."
이산갑이 입을 열었다.
"계민아, 네 어미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
"아버지..."
"네가 계속하고 싶다면, 계속해라. 한도회가 너를 지킬 것이다."
"하지만 당신!"
강지윤이 남편을 봤다.
"우리 아들을 위험에 빠뜨릴 겁니까!"
"부인, 우리 아들은 이제 어른이오. 스스로 선택할 나이요."
이산갑이 아들을 봤다.
"계민아, 네 선택은 뭐냐?"
이계민은 고민했다.
어머니의 눈물, 산돌의 피, 불탄 사랑방...
모두가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박용식 같은 사람들이 계속 부정부패를 저지를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겁먹고 아무도 나서지 않을 거야...'
'그럼 이 나라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계민은 결심했다.
"계속하겠습니다."
"계민아!"
"죄송합니다, 어머니. 하지만 저는 해야 해요."
이계민이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도 일제시대에 고문당하면서도 한도회 활동 계속하셨잖아요. 저도 어머니처럼 하고 싶어요."
강지윤은 눈물을 흘렸다.
"이 고집쟁이..."
하지만 그녀는 아들을 안았다.
"...알았어. 하지만 약속해라. 목숨만은 지켜라."
"네, 어머니. 약속할게요."

반격의 시작
다음 날부터 이계민은 작전을 바꿨다.
박용식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그의 범죄 증거를 모으기로 했다.
"단원들, 박용식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세요."
"네!"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를 가는지, 무슨 거래를 하는지... 모두 기록하세요."
의용경찰단원들이 교대로 박용식을 미행했다.
일주일 후,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단장님, 박용식이 밤마다 읍사무소 부읍장을 만납니다."
"부읍장을?"
"네, 그리고 돈봉투를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또 뇌물이군..."
"더 조사해볼까요?"
"그래요. 부읍장 쪽도 조사하세요."
부읍장은 조씨라는 사람이었다. 일제시대부터 읍사무소에서 일했다.
"조 부읍장이... 친일파였습니다."
한 단원이 보고했다.
"일제시대에 일본 경찰에 협력했대요.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한 적도 있고요."
"뭐라고?"
이계민은 분노했다.
"친일파가 아직도 버젓이 공직에 있다니..."
"그것도 부읍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더 파보세요. 뭔가 약점이 있을 겁니다."
며칠 후, 결정적 증거가 나왔다.
조 부읍장이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 10명을 일본 경찰에 넘긴 기록이 발견됐다.
그중에는... 한도회 회원도 있었다.
"이건... 김 선생님이잖아..."
이산갑이 기록을 보며 떨었다.
김 선생은 한도회 회원이었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가 고문당해 죽었다.
"조 부읍장이... 김 선생을 밀고했어..."
"이 자식... 이 자식..."
이산갑은 울분을 참지 못했다.
"아버지, 이 증거로 조 부읍장을 고발하겠습니다."
"그래... 반드시... 처벌받아야 해..."
이계민은 조 부읍장을 찾아갔다.
"부읍장님, 잠깐 시간 되십니까?"
"오, 의용경찰단장! 무슨 일인가?"
"질문이 좀 있습니다."
이계민이 서류를 꺼냈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를 밀고한 사실이 있으십니까?"
조 부읍장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소리인가?"
"여기 기록이 있습니다. 1942년, 김재홍 선생을 일본 경찰에 밀고했죠?"
"그건... 오해야..."
"오해요? 일본 경찰 기록에 당신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데요?"
조 부읍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건... 어쩔 수 없었어... 일본놈들이 협박해서..."
"협박이라고 하기엔 대가가 컸던 것 같은데요? 돈 500원 받았죠?"
"......"
"친일 행위로 고발하겠습니다. 공직에서 물러나십시오."
"안 돼!"
조 부읍장이 소리쳤다.
"나는... 나는 살아남기 위해 한 거야!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
"변명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계민! 너 이러면 안 돼! 나랑 박용식이 무슨 관계인지 알아?"
"알고 있습니다. 공범이죠."
조 부읍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너... 어디까지 아는 거야..."
"충분히 압니다. 당신과 박용식이 함께 일본인 재산을 빼돌렸다는 것도요."
"증거는?"
"있습니다. 곧 공개하겠습니다."
이계민은 돌아섰다.
"기다리세요!"
조 부읍장이 불렀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용서는 피해자들이 하는 겁니다. 저는 단지 법을 집행할 뿐입니다."
3. 최후의 대결
사흘 후, 대규모 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은 박용식과 조 부읍장.
마을 광장에 천 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숙청하라!"
"친일파를 처단하라!"
사람들이 소리쳤다.
재판이 시작됐다.
이계민이 증거를 제시했다.
일본인 재산 빼돌리기, 뇌물 수수, 친일 행위...
모든 증거가 명확했다.
박용식과 조 부읍장은 변명했지만, 소용없었다.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합니다."
김만석이 망치를 두드렸다.
"박용식은 부정 취득 재산 전액 몰수 및 벌금 2천 원."
"조 부읍장은 공직 박탈 및 친일 행위 배상금 1천 원."
"안 돼!"
"이건 억울해!"
두 사람이 소리쳤지만, 판결은 번복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만세!"
"정의가 승리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이계민!"
박용식이 소리쳤다.
"너 같은 애송이가! 세상 물정도 모르는 놈이!"
"법은 법입니다."
"법? 법이 뭐가 중요해! 이 혼란기에!"
박용식이 비웃었다.
"곧 정부가 들어서면, 너 같은 놈들은 다 밀려날 거야! 그때 후회하지 마!"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는 옳은 일을 했으니까요."
이계민은 당당했다.
재판은 끝났다.
하지만 박용식의 말이 신경 쓰였다.
'정부가 들어서면... 의용경찰단은 어떻게 되는 거지?'


새로운 시작
1946년 봄.
미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식 경찰 조직이 만들어졌다.
"의용경찰단은 해산합니다."
미군정 담당자가 발표했다.
"이제 정식 경찰이 치안을 맡을 것입니다."
의용경찰단원들이 모였다.
"형님, 우리... 해산하는 건가요?"
산돌이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알아요. 하지만 정식 경찰이 생겼으니, 우리 역할은 끝난 거죠."
이계민은 씁쓸했다.
6개월간 의용경찰단을 이끌며 마을을 지켰다.
치안을 세우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하지만 이제 끝이었다.
"단원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계민이 단원들 앞에 섰다.
"우리는 비록 해산하지만, 우리가 한 일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혼란기에 법과 질서를 세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단원들이 박수를 쳤다.
"단장님 만세!"
"의용경찰단 만세!"
그날 밤, 마지막 회식이 열렸다.
"조카님! 이제 뭐 하실 겁니까?"
산돌이 물었다.
"공부해야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도 가고 싶어요."
"대학이요?"
"네, 법을 공부하고 싶어요. 변호사나 판사가 되고 싶어요."
"멋지십니다!"
"아제는요?"
"저는... 글쎄요. 일단 농사일을 도와야죠."
"아니에요. 아제도 공부하세요."
"제가요?"
"왜요? 못 할 것 없잖아요. 야학이라도 다니면서 배우세요."
산돌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형님... 고맙습니다..."
"고마울 것 없어요. 우리 동지잖아요."
두 사람은 잔을 부딪쳤다.
5. 에필로그
1946년 여름.
이계민은 학교에 집중했다.
의용경찰단 활동을 하지 않으니, 시간이 많았다.
성적이 쑥쑥 올랐다.
"이계민, 이번 시험 1등이네!"
선생님이 칭찬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이계민은 뿌듯했다.
'이제 내 길을 갈 수 있어...'
방과 후, 산돌이 찾아왔다.
"형님!"
"아제, 무슨 일이에요?"
"저... 야학에 등록했습니다!"
"정말요?"
"네! 형님 말씀대로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잘했어요!"
두 사람은 껴안았다.
"형님, 우리 함께 공부해요."
"그래요. 함께 공부해서, 함께 새로운 조선을 만들어요."
"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 강지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민아, 편지 왔다."
"편지요?"
서울에서 온 편지였다.
발신인은... 한도회 본부.
"한도회에서...?"
이계민은 편지를 열었다.
"이계민 동지에게.
그대의 영광 의용경찰단 활동 소식을 들었습니다.
혼란기에 법과 질서를 세우고, 부정부패를 척결한 것은 한도회의 자랑입니다.
해방 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데 그대 같은 젊은이가 필요합니다.
서울로 올라와 함께 일하지 않겠습니까?
한도회 중앙본부"
이계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서울로... 한도회 본부와 함께...'
하지만 고민도 됐다.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계민아, 어떻게 할 거니?"
어머니가 물었다.
"...일단 공부를 마치겠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가고... 그 다음에 한도회 일을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강지윤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천히 가거라. 급할 것 없어. 너는 아직 젊으니까."
"네, 어머니."
그날 밤, 이계민은 일기를 썼다.
'1946년 7월 15일.
의용경찰단이 해산됐다.
6개월간의 활동이 끝났다.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다.
나는 법과 질서의 중요성을 배웠고, 부정부패와 싸우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공부할 차례다.
배우고, 성장하고,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언젠가 정말로 새로운 조선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한도회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창밖으로 별이 빛나고 있었다.
열여덟 살 이계민의 앞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었다.



후기
1945년 8월부터 1946년 여름까지.
해방의 혼란기, 영광의 젊은이들은 의용경찰단을 조직해 마을을 지켰다.
단장 이계민, 부단장 산돌, 그리고 50명의 단원들.
그들은 치안을 세우고, 일본인 재산을 관리하고, 부정부패와 싸웠다.
힘들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법과 질서, 정의를 위해 끝까지 싸웠다.
의용경찰단은 해산됐지만, 그들의 정신은 계속됐다.
이계민은 훗날 법률가가 되어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기여했다.
산돌은 교육자가 되어 후세를 가르쳤다.
한도회의 정신은 그렇게 이어졌다.
평등과 정의, 법과 질서...
그것이 그들이 꿈꾼 새로운 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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