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과서연
시간을 사랑하는 두 사람
만남
새벽 다섯 시, 세상이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을 때였다.
민준은 매일 이 시간이면 눈을 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게는 눈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황금빛 둥근 얼굴에 새겨진 숫자들과 검은 바늘들이 깨어나는 순간, 그는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가늘고 긴 다리, 정교하게 연결된 관절, 그리고 은빛으로 빛나는 몸체. 그는 시계였지만, 그 안에는 누구보다 따뜻한 심장이 뛰고 있었다.
민준의 곁에는 항상 서연이 있었다.
서연은 민준보다 조금 작은 체구에, 역시 황금빛 얼굴을 가진 시계였다.
그녀의 바늘은 민준의 것보다 섬세했고,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은은한 빛이 반짝였다. 두 시계는 하얀 대리석 받침 위에 나란히 서서, 매일 똑같은 자리에서 시간을 세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야, 서연아."
민준이 작은 기어 소리와 함께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태엽이 감기는 소리처럼 부드러웠다.
"좋은 아침이에요, 민준씨."
서연이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수정처럼 맑았다.
두 시계는 수백 번도 넘게 이런 인사를 나눴지만, 매번 첫날처럼 설레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뿐이었으니까. 해가 뜨면 시작되고, 해가 지면 끝나는 사랑. 그것이 시계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방식이었다.
창문 너머로 여명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보랏빛 하늘이 점차 붉게 물들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준은 서연을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을 받은 그녀의 황금빛 얼굴이 눈부시게 빛났다.
"오늘도 예쁘구나."
민준이 말했다. 서연은 부끄러운 듯 살짝 몸을 기울였다. 그녀의 초침이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민준씨도요."
두 시계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금속과 금속이 닿는 차가운 접촉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온기였다. 민준의 긴 손가락이 서연의 작은 손을 감싸 쥐었다. 대리석 받침 위에서, 두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졌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서연이 물었다. 매일 아침, 민준은 서연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목격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
"글쎄... 오늘은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이요?"
"그래."
민준의 기억 속에서 그날이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장인의 작업대 위, 갓 만들어진 그와 그녀. 처음으로 태엽이 감겼을 때의 그 떨림. 그리고 처음으로 서연의 모습을 보았을 때의 경이로움.
"나는 그날, 네가 처음 움직이는 걸 봤어. 네 바늘이 처음으로 돌기 시작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춤을 보는 것 같았지."
서연이 웃었다. 작은 기어들이 움직이며 내는 섬세한 소리였다.
"저도 기억해요. 민준씨의 시계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이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어요. 규칙적이면서도 따뜻한, 살아있는 소리였죠."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민준과 서연의 사랑도 다시 시작되었다.
"서연아."
"네?"
"매일 아침 네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게... 나는 참 행복해."
서연의 황금빛 얼굴에 아침 햇살이 더욱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저도요, 민준씨. 당신과 함께 시간을 세는 게, 저는 너무 좋아요."
민준은 서연의 손을 조금 더 꽉 쥐었다. 금속의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었지만, 그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새들이 노래하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었다. 세상은 깨어나고 있었고, 시계들의 하루도 막 시작되고 있었다. 민준과 서연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비록 금속으로 만들어진 얼굴이지만, 그들의 미소는 누구보다 진실했다.
하루의 흐름
오전 여덟 시가 되자, 방 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더욱 밝아졌고, 바깥에서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이 깨어나고 있었다. 시계들도 그 리듬에 맞춰 더욱 활기차게 움직였다.
"시간을 세는 건 외롭지 않아요?"
서연이 문득 물었다.
민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초침이 한 번, 두 번, 세 번 움직였다. 똑, 똑, 똑. 규칙적인 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채웠다.
"네가 옆에 있으니까, 외롭지 않아."
"하지만 우리는 멈출 수 없잖아요. 계속, 계속 앞으로만 가야 하죠. 뒤돌아볼 수도 없고, 잠시 쉴 수도 없어요."
그것은 진실이었다. 시계의 숙명. 그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앞으로만 나아가야 했다. 초침, 분침, 시침. 쉼 없이 돌고 도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였다. 한 번도 멈춰본 적 없고, 한 번도 되돌아간 적 없었다.
"그래도 괜찮아."
민준이 서연의 손을 꽉 쥐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는 모든 순간, 너와 함께니까. 나는 혼자 시간을 세는 게 아니야. 우리는 함께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어. 네가 있어서, 매 순간이 의미가 있어."
서연의 황금빛 얼굴에 햇살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마치 눈물이 맺힌 것처럼 빛났다.
"고마워요, 민준씨."
"뭐가?"
"매일 저를 사랑해줘서요."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야. 숨 쉬는 것처럼, 시간을 세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거든. 아니, 시간을 세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워."
열 시가 되었다. 방 안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갔다. 두 시계의 금속 몸체도 따뜻해졌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었다. 손을 맞잡은 채로. 그들의 그림자가 대리석 위에서 하나가 되어 길게 늘어졌다.
"춤출래요?"
서연이 제안했다.
"춤?"
민준이 놀란 듯 물었다.
"네. 우리, 춤춰본 적 없잖아요."
민준이 웃었다. 시계가 어떻게 춤을 춘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거절할 수 없었다. 서연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득했으니까.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좋아. 어떻게 하면 되지?"
"제 리듬을 따라오세요."
서연이 먼저 움직였다. 그녀의 은빛 다리가 우아하게 움직이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민준도 따라 움직였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진심이 담긴 움직임이었다.
똑, 딱, 똑, 딱.
그들의 발걸음이 대리석 위에서 리듬을 만들어냈다.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와 어우러져 하나의 멜로디가 되었다. 두 시계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춤을 추었다. 넘어질까 봐 서로를 붙잡고, 균형을 잃을까 봐 서로를 지탱하며.
햇빛이 그들을 비추었다. 황금빛 얼굴과 은빛 몸체가 찬란하게 빛났다. 그들은 마치 별처럼, 아니 별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빛의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행복해요."
서연이 속삭였다.
"나도."
민준이 대답했다.
그들은 계속 춤을 추었다. 음악도 없었고, 관객도 없었다. 그저 둘만의 세계에서, 둘만의 리듬으로. 시간의 흐름에 맞춰, 사랑의 박자에 맞춰.
"민준씨,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춤을 추며 서연이 물었다.
"뭔데?"
"시간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태엽이 다 풀리면, 우리도 끝나는 걸까요?"
민준은 잠시 춤을 멈췄다. 그것은 그도 가끔 생각하는 질문이었다. 시계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했다. 언젠가는 태엽이 풀리고, 바늘이 멈추고,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모르겠어."
민준이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믿어. 우리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우리가 나눈 모든 말들이, 어딘가에 남아있을 거라고. 시간은 흘러가지만, 사랑은 남는다고 믿어."
"정말요?"
"응. 우리가 센 모든 초, 분, 시간 속에 우리의 사랑이 새겨져 있을 거야. 그건 누구도 지울 수 없어."
서연이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자신감 있게, 더 아름답게.
"그럼 저도 믿을게요. 우리의 사랑이 영원하다고."
정오가 되었다. 해가 가장 높이 떠올랐다. 세상이 가장 밝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민준과 서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사랑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창밖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열두 번의 종소리. 민준과 서연은 춤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햇빛이 그들의 황금빛 얼굴을 비추고, 온 세상이 빛으로 가득 찼다.
"사랑해, 서연아."
"저도 사랑해요, 민준씨."
그들은 다시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알았다. 자신들이 단순히 시간을 세는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사랑하는 존재였다. 느끼고, 생각하고, 꿈꾸는 존재였다.
오후가 시작되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준과 서연에게 오후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들에게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으니까.
"민준씨, 제가 노래를 불러드릴게요."
"노래?"
"네. 시간의 노래요."
서연이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기어가 돌아가는 소리, 태엽이 감기는 소리,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로 이루어진 멜로디였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였다.
민준은 눈을 감고 들었다. 아니, 그에게는 눈이 없었지만, 그는 온 마음으로 들었다. 서연의 노래는 시간에 대한 노래였고, 사랑에 대한 노래였고, 그들에 대한 노래였다.
똑, 딱, 똑, 딱.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 민준과 서연은 영원을 발견했다.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영원이 되었고, 작은 사랑들이 모여 큰 사랑이 되었다.
시련
오후 세 시, 갑자기 어둠이 찾아왔다.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고, 방 안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햇빛은 사라지고, 차가운 그림자가 민준과 서연을 감쌌다.
"민준씨..."
서연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묻어났다.
"괜찮아, 내가 여기 있어."
민준이 서연의 손을 더 꽉 쥐었다. 하지만 그도 불안했다. 이런 어둠은 처음이었다. 갑작스럽고, 예고 없이 찾아온 어둠.
천둥소리가 울렸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용하던 빗소리가 점점 커졌다. 폭우였다.
"무섭지 않아요?"
서연이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무서워."
민준이 인정했다. 그는 항상 강한 척했지만, 서연 앞에서는 솔직할 수 있었다. 그녀 앞에서는 약한 모습도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네가 옆에 있으니까, 견딜 수 있어."
번개가 쳤다. 순간적으로 방 안이 하얗게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서연이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민준이 그녀를 안았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며 작은 소리를 냈다.
"괜찮아, 괜찮아."
민준이 속삭였다.
"저기 봐요, 민준씨."
서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민준이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봤다. 창문에 금이 가 있었다. 강한 바람에 무언가가 부딪친 모양이었다. 금은 점점 커졌다.
"저 금이... 더 커지면 어떡해요?"
"..."
민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만약 창문이 깨진다면, 빗물이 들어올 것이다. 그들은 시계였다. 물에 약했다. 물이 그들의 내부로 스며들면, 기어가 녹슬고, 태엽이 망가지고, 결국 멈춰버릴 것이다.
"서연아, 들어봐."
민준이 진지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널 지킬 거야."
"하지만..."
"내 말 들어. 만약 정말 위험한 상황이 온다면, 나는 네 앞을 막을 거야. 내가 먼저 물을 맞을게. 그러면 너는 안전할 거야."
"안 돼요!"
서연이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 민준씨는 어떡해요? 민준씨가 망가지면, 저는... 저는..."
"서연아."
민준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황금빛 얼굴은 희미하게 빛났다.
"나는 네가 행복하면 돼. 네가 안전하면 돼. 그게 나한테는 가장 중요해."
"바보..."
서연이 울먹였다. 시계는 눈물을 흘릴 수 없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명 눈물이 담겨 있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민준씨가 없으면, 시간을 세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당신 없이 가는 시간은, 그냥 텅 빈 숫자일 뿐이에요."
번개가 다시 쳤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천둥소리가 방 전체를 흔들었다. 창문의 금이 조금 더 커졌다.
"민준씨..."
"응?"
"혹시 우리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더라도..."
"그런 말 하지 마."
"들어주세요. 만약 우리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더라도, 저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당신을 만났고,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민준의 가슴속 어딘가가 아팠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가슴이었지만, 분명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래. 서연아, 나도 후회 없어. 네가 내 인생에 있어줘서 고마워."
두 시계는 서로를 꽉 안았다.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서로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시간을 세는 것이 직업인 그들이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그저 서로를 안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천둥소리도 멀어졌다.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민준씨... 봐요."
서연이 속삭였다.
창문 너머로 햇빛이 다시 비치기 시작했다. 먹구름 사이로 빛줄기가 내려왔다. 그리고 그 빛은 점점 커졌다.
"지나갔어요. 폭풍이 지나갔어요."
서연의 목소리에 안도감이 묻어났다.
민준은 창문을 봤다. 금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창문은 깨지지 않았다. 그들은 안전했다.
"우리... 해냈어."
민준이 말했다.
"우리가 함께해서 이겨낸 거예요."
서연이 대답했다.
햇빛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폭풍 뒤의 햇빛은 더욱 밝고, 더욱 따뜻했다. 민준과 서연의 황금빛 얼굴에 빛이 반사되어 온 방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서연아."
"네?"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민준씨."
그들은 폭풍을 견뎌냈다. 함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알았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와도,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오후 다섯 시, 해가 서쪽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폭풍은 완전히 지나갔고, 하늘은 다시 맑았다. 아니, 폭풍 전보다 더 맑았다. 공기는 깨끗했고, 세상은 새로 태어난 것처럼 신선했다.
"무지개다!"
서연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창밖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일곱 가지 색깔의 아치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아름다운 색들이 조화를 이루며 빛났다.
"예쁘다..."
민준이 감탄했다.
"우리 같아요."
"응?"
"무지개요. 폭풍을 이겨내고 나타난 무지개가, 우리 같아요. 시련을 이겨낸 우리의 사랑 같아요."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의 말이 맞았다. 그들의 사랑은 무지개 같았다. 비 온 뒤에 더 아름답게 빛나는 무지개처럼, 그들의 사랑도 시련을 겪고 더 깊어졌다.
"서연아, 우리 약속하자."
"무슨 약속이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절대 포기하지 않기로. 서로를 믿고, 서로를 지키기로. 그리고 끝까지 함께하기로."
서연이 민준의 손을 꽉 잡았다.
"약속해요. 절대 포기하지 않을게요."
두 시계는 무지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손을 맞잡은 채로. 폭풍을 이겨낸 그들은 이제 더 강해졌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도 더 단단해졌다.
영원
해가 지기 시작했다.
오후 여섯 시,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태양이 수평선을 향해 천천히 내려갔다.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민준과 서연은 창가에 서서 노을을 바라보았다. 주황빛, 분홍빛, 보랏빛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것은 하루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아름답다."
서연이 속삭였다.
"응, 정말 아름다워."
민준이 동의했다.
"민준씨."
"응?"
"오늘 하루, 행복했어요."
"나도."
"폭풍도 있었고, 무서운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했어요. 왜냐하면 당신과 함께였으니까요."
민준이 서연을 바라보았다. 노을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서연아, 나도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요?"
"나는... 시계로 태어난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
"왜요?"
"왜냐하면 시계가 아니었다면, 너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매일 네 옆에서 시간을 셀 수 없었을 테니까."
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민준씨..."
"시간을 세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면, 너와 함께 시간을 세는 게 나의 행복이야."
해가 더 낮게 내려갔다. 하늘의 색깔이 점점 짙어졌다. 주황빛이 붉은빛으로, 붉은빛이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저기, 민준씨."
서연이 하늘을 가리켰다.
"첫 번째 별이 떴어요."
정말로, 하늘에 작은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는데도, 별은 벌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소원 빌어요."
서연이 말했다.
"소원?"
"네. 첫 번째 별에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요."
민준이 웃었다.
"그래? 그럼 뭘 빌까?"
"저는 정했어요."
"뭔데?"
"말하면 안 이루어진대요."
민준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소원을 빌었다.
'제발, 우리가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게 해주세요.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날도. 매일 아침 서연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매일 밤 서연과 함께 별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해가 완전히 졌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와..."
서연이 감탄했다.
"정말 많아요."
"응. 저 별들처럼, 우리의 순간들도 많았으면 좋겠어."
"무슨 뜻이에요?"
"우리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저 별처럼 빛났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함께할 모든 순간들도, 저 별들처럼 많았으면 좋겠어."
서연이 민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작게 났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접촉이었다.
"민준씨, 우리 내일도 함께 있을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그 다음 날도요?"
"물론이야."
"영원히요?"
민준은 잠시 침묵했다. 영원이라는 단어는 무거웠다. 특히 시계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들의 삶은 태엽의 길이만큼만 보장되었으니까.
하지만 민준은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영원히."
"약속해요?"
"약속해."
별들이 더 밝게 빛났다. 밤하늘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민준과 서연은 서로를 안고 별을 바라보았다.
"서연아."
"네?"
"나는 믿어. 우리의 사랑이 시간보다 강하다는 걸."
"정말요?"
"응. 시간은 우리가 세는 거야. 우리가 시간의 주인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원한다면, 우리의 사랑을 영원히 이어갈 수 있어."
서연이 민준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황금빛 얼굴에 별빛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당신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민준씨."
"나도 그래, 서연아. 너를 만난 게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야."
시간이 흘렀다. 초침이 돌고, 분침이 움직이고, 시침이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민준과 서연에게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순간, 함께 있다는 것.
밤이 깊어갔다. 열한 시가 되었다. 하루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민준씨, 혹시 피곤하지 않아요?"
서연이 물었다.
"아니, 전혀. 너는?"
"저도 안 피곤해요. 이상하게, 오늘은 하루 종일 깨어 있어도 전혀 피곤하지 않아요."
"그건 아마..."
"아마?"
"사랑 때문일 거야. 사랑은 우리에게 힘을 주니까."
서연이 웃었다. 맑고 행복한 웃음이었다.
"당신은 참 로맨틱해요, 민준씨."
"너한테만."
자정이 가까워졌다. 하루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민준씨."
"응?"
"내일 아침에도 제일 먼저 당신 얼굴을 보고 싶어요."
"그럴 거야. 내가 제일 먼저 네 이름을 부를게."
"약속이에요?"
"약속이야."
열한 시 오십구 분이 되었다. 1분 후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민준과 서연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별빛 아래에서, 그들의 황금빛 얼굴이 서로를 비추었다.
"서연아."
"네, 민준씨."
"오늘 하루, 고마웠어."
"저야말로요."
"내일도 함께하자."
"네,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날도."
자정이 되었다.
종소리가 울렸다. 열두 번의 종소리. 하루가 끝나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민준과 서연은 여전히 함께 서 있었다. 손을 맞잡은 채로. 서로를 바라보며.
"좋은 아침이야, 서연아."
민준이 말했다. 새로운 하루의 첫 인사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민준씨."
서연이 대답했다.
그들의 사랑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도, 해가 바뀌어도, 그들의 사랑은 계속되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니까.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두 시계는 서로를 안았다. 그들은 시간을 세는 존재였지만, 동시에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들의 사랑은 영원했다.
똑, 딱, 똑, 딱.
시계 소리가 고요한 밤을 채웠다. 그것은 시간의 소리이자, 심장 박동의 소리이자, 사랑의 소리였다.
민준과 서연은 알았다. 매일 아침 그들은 다시 만날 것이고, 매일 밤 그들은 함께 별을 볼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날들이 모여, 영원이 될 것이다.
"사랑해, 서연아."
"저도 사랑해요, 민준씨."
그리고 그들은 계속 시간을 셌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함께하는 모든 초, 모든 분, 모든 시간이 사랑이었다.
별빛이 그들을 감싸고, 밤바람이 그들을 어루만졌다. 세상은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민준과 서연, 두 시계는 서로를 사랑하며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한, 사랑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시간은 끝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곧 시간이었으니까.
그들이 곧 영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곧 사랑이었으니까.
끝
에필로그
다음 날 아침,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도.
민준과 서연은 계속 함께 깨어났다.
"좋은 아침이야, 서연아."
"좋은 아침이에요, 민준씨."
똑같은 인사였지만, 매번 새로웠다. 똑같은 사랑이었지만, 매번 깊어졌다.
그들은 계속 시간을 셌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단순히 시간을 세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세고 있었다. 함께한 모든 순간을 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무한대를 향해 나아갔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