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세 자 모르는 선비

조선시대 유식과 무식에 대한 풍자 이야기

by seungbum lee


등장인물
이지허(李知虛) - 글은 많이 읽었지만 세상 이치는 모르는 양반 선비
복동이 - 글은 모르지만 세상 물정에 밝은 머슴
정마담(鄭麻聃) - 동네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노인




첫째 마당: 선비의 자랑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시골 마을에 이지허라는 양반 선비가 살았습니다. 그의 이름 '지허'는 "아는 것이 텅 비었다"는 뜻인데, 정작 본인은 그 뜻을 깨닫지 못했지요.
이 선비는 어려서부터 사서삼경을 달달 외우고, 한시를 지어 친구들과 주고받으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유식한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사랑방 벽에는 온통 글씨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책들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습니다.
어느 봄날, 이지허 선비는 마을 어귀 정자에 앉아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허허, 내가 어제 읽은 책을 말해볼까? 주자가 말씀하시길, '격물치지'라 하셨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앎에 이르는 것이지. 자네들 같은 무식한 것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심오한 경지라네."
마을 사람들은 고개만 끄덕일 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글 아는 양반이 하시는 말씀이니 틀림없이 대단한 것이겠지'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때 복동이라는 머슴이 지나가다가 선비의 말을 듣고 물었습니다.
"나으리, 그래서 그 격물치지가 뭡니까?"
이지허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습니다.
"허허! 무식한 것이 감히! 그런 것은 글 읽은 사람이나 알 수 있는 것이니, 네 따위가 알 바가 아니다!"


둘째 마당: 씨앗을 심다
며칠 후, 봄철 농사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이지허 선비의 집에도 논밭에 씨앗을 뿌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비는 땅을 일구는 일은 천한 일이라 여겨 늘 머슴들에게 맡겼습니다.
이번에는 복동이가 선비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나으리, 올해는 논에 무엇을 심을까요? 벼를 심을까요, 보리를 심을까요?"
이지허는 책을 덮으며 대답했습니다.
"그야 당연히 벼를 심어야지. 농사경(農事經)에 이르기를,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것이 하늘의 이치'라 하였네."
"그런데 나으리," 복동이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올해는 가뭄이 심할 것 같습니다. 며칠 전부터 개구리들이 울지 않고, 제비도 낮게 날지 않습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없고 하늘이 계속 맑기만 합니다."
"허허!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선비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책에 나온 대로 하면 되는 것을! 개구리와 제비가 농사를 짓는가? 하늘의 이치는 책에 다 적혀 있다네."
복동이는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양반 어른께서 책에서 읽으셨다는데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복동이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마을의 다른 농부들은 모두 올해는 가뭄이 들 것이라 예상하고 밭에 조와 수수를 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복동이는 몰래 논 한쪽 구석에 조를 조금 심어두기로 했습니다. '만약 정말 가뭄이 들면 이것이라도 있어야 식구들이 굶지 않을 텐데...'
이지허 선비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자신의 사랑방에서 농사경을 다시 한 번 읽으며 만족스러워했습니다.


가뭄이 들다
복동이의 예상대로 그해 여름은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하늘에서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고, 개울물도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이지허 선비의 논에 심은 벼는 모두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파릇파릇하던 모가 누렇게 시들고, 결국 베어낼 것도 없이 모두 말라 비틀어졌습니다.
선비는 논둑에 앉아 허탈한 표정으로 말라버린 벼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럴 수가... 책에는 분명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둔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가?"
그때 복동이가 다가왔습니다.
"나으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몰래 심어둔 것이 있습니다."
복동이는 선비를 논 한쪽 구석으로 안내했습니다. 그곳에는 가뭄에도 잘 견디는 조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가뭄에 강한 곡식이라 물이 적어도 잘 자랍니다. 이것이라도 있으면 올겨울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지허는 감동받았지만 동시에 창피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무시했던 '무식한' 머슴이 집안을 구한 것이었습니다.
"복동아... 네가 어찌 이런 것을 알았느냐?"
"나으리, 저는 글을 모릅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밭에서 자라며 하늘을 보고, 땅을 만지고, 짐승들의 움직임을 보며 배웠습니다. 개구리가 울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것, 구름의 모양으로 날씨를 알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은 책에 없어도 세상이 가르쳐준 것입니다."
선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평생 자신이 유식하다고 믿었는데, 정작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는 글자 한 자 모르는 머슴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진짜 유식함
그날 밤, 이지허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평생의 자부심이 무너진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는 마을의 현명한 노인 정마담을 찾아갔습니다.
"어르신, 제가 평생 글을 읽었는데 정작 농사 하나 제대로 못 짓고, 글자 모르는 머슴에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유식하다고 믿었는데, 이것이 진짜 유식함입니까?"
정마담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읽은 사서삼경이 쓸모없다는 말이 아니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식한 것이지. 책은 도구일 뿐이네.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을 어떻게 쓰느냐일세."
"복동이는 글을 모르지만, 세상을 읽을 줄 아네. 하늘과 땅과 생명의 이치를 몸으로 배웠지. 자네는 글을 알지만 세상을 읽지 못했네. 글자만 알았지 그 속의 뜻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한 것이야."
"진짜 유식함이란," 정마담이 계속 말했습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네. 그리고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이지. 자네가 복동이에게서 배우고, 복동이도 자네에게서 배운다면, 둘 다 더 유식해지는 것 아니겠나?"
이지허는 깊이 절을 올렸습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어르신."
집으로 돌아온 이지허는 복동이를 불렀습니다.
"복동아, 미안하네. 그동안 내가 자네를 무식하다고 업신여겼네. 하지만 이제 알겠네. 자네는 내가 모르는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나으리..." 복동이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하세. 자네가 나에게 농사와 날씨와 자연의 이치를 가르쳐주게. 그리고 내가 자네에게 글을 가르쳐주지. 자네가 하늘을 읽는 법을 가르쳐주면, 나는 자네에게 책을 읽는 법을 가르쳐주겠네."
복동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정말입니까, 나으리? 저 같은 것도 글을 배울 수 있습니까?"
"물론이네! 그리고 앞으로 나를 선생이라 부르게. 우리는 이제 서로의 선생이 되는 것이니까."
그날부터 이지허의 사랑방에는 신기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양반 선비가 머슴에게 글을 가르치고, 머슴이 양반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모습 말입니다.
어느 날 저녁, 두 사람은 마당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복동이가 물었습니다. "저 별들은 무엇입니까?"
"천문지리서에 의하면 저것은 북두칠성이라고 하네. 일곱 개의 별이 국자 모양을 이루고 있지."
"그렇군요! 그런데 선생님," 복동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저 북두칠성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계절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봄이니 동쪽을 가리키고 있지요. 여름이 되면 남쪽을, 가을에는 서쪽을, 겨울에는 북쪽을 가리킵니다."
"허허, 그런 것까지 알고 있었나! 나도 몰랐던 것을 자네가 가르쳐주는구나."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양반과 상놈이 아니라, 서로에게서 배우는 동료가 된 것입니다.
소문은 금방 마을에 퍼졌습니다. 처음에는 "양반이 상놈에게 무릎을 꿇었다"며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지허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허허, 내가 평생 고집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네. 진짜 무식한 것은 글자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거부하는 것이었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양반들도 조금씩 백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백성들도 글을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이지허와 복동이는 작은 서당을 열었습니다. 낮에는 복동이와 다른 백성들이 글을 배우고, 저녁에는 이지허를 비롯한 양반들이 농사와 날씨, 자연의 이치를 배웠습니다.
마을은 점점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책의 지혜와 땅의 지혜가 만나 더 좋은 결실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맺음말
이 이야기가 끝날 무렵, 마을에는 재미있는 속담이 생겨났습니다.
"책만 읽는 선비는 글자 세 자 모르는 선비요,
세상만 아는 농부는 하늘 세 자 모르는 농부라."
정마담 노인은 종종 이렇게 덧붙이곤 했습니다.
"진짜 유식한 사람은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 진짜 무식한 사람은 자신이 다 안다고 믿는 사람이지. 양반이든 상놈이든, 글을 알든 모르든,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가 진정한 지혜의 시작이라네."
그리고 이지허와 복동이는 평생의 친구이자 스승으로 함께 늙어갔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마을의 전설이 되었고, 그 이야기는 대대손손 전해 내려왔습니다.
- 끝 -
작가의 말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 제도가 있었습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이 곧 권력이자 지위였지요. 하지만 진정한 지혜는 신분이나 글자를 아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조선시대의 여러 야담과 풍자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창작물입니다. '양반전'이나 '허생전' 같은 고전소설들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요.
오늘날에도 이 이야기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학벌이나 지위가 높다고 해서 진정으로 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진짜 유식함은 계속해서 배우려는 열린 마음과,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겸손함에서 나옵니다.
어린이 여러분도, 어른 여러분도, 이 이야기를 통해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책 속의 지식도 중요하지만, 삶 속에서 얻는 지혜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누군가를 '무식하다'고 무시하기 전에,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아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면에서는 선생이고, 어떤 면에서는 학생이니까요.
2026년 1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