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글라의 아내(사막의장미)
年齡: 43세
出身: 모로코 王室 遠親
學歷: American University of Paris
職業: 國際貿易 컨설턴트
性格: 異國的, 神秘로움
子女: 딸 3명 (16세, 14세, 11세)
特徵: 디글라의 中東 香料 事業의 核心. 아랍圈 Network의 열쇠.
두 세계 사이
2000년 가을, 파리
"라일라, 똑바로 앉아."
어머니가 아랍어로 말했다.
스물한 살 라일라 알-파시는 자세를 고쳤다.
카페 테라스. 에펠탑이 보였다.
"파리에 왔으면 파리답게 살아야지."
친구가 프랑스어로 놀렸다.
라일라는 두 언어 사이를 오갔다.
아랍어와 프랑스어.
모로코와 파리.
전통과 현대.
"나는... 어디에 속하는 걸까?"
American University of Paris
"라일라 알-파시 양, 발표 부탁합니다."
국제무역론 수업.
라일라가 일어섰다.
히잡은 쓰지 않았지만, 우아한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중동과 유럽의 향료 무역에 대해 발표하겠습니다."
그녀의 발표는 독특했다.
역사, 문화, 경제를 넘나들었다.
"향료는 단순한 상품이 아닙니다."
"문명의 교류이고, 문화의 다리입니다."
"사프란 하나에 천 년의 역사가 담겨 있죠."
교수도 학생들도 매료되었다.
"당신... 시인인가요, 상인인가요?"
"둘 다요."
라일라는 미소 지었다.
신비로운 미소.
2002년, 모로코 여름 휴가
"라일라, 결혼 생각 없니?"
삼촌이 물었다.
"아직이요, 삼촌."
"왕실 친척으로서 좋은 혼처 찾아야지."
"제가 찾을게요. 제 방식으로."
라일라는 독립적이었다.
모로코 왕실 원친이었지만.
프랑스 교육을 받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
마라케시 시장
"이 향료 얼마예요?"
라일라가 상인에게 물었다.
"아가씨, 이건 진짜 아프가니스탄산 사프란이오."
"아니에요. 이란산이죠. 색깔로 알 수 있어요."
상인이 놀랐다.
"어떻게 아시오?"
"저희 가문이 삼백 년간 향료 무역을 했거든요."
"오... 실례했습니다."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말이 맞아요."
돌아보니 한국인 남자.
서른 살쯤. 잘생겼다.
"한국 분이세요?"
"네. 디글라예요. 향료 공부하러 왔어요."
"향료를?"
"네. 한국에서 향료 사업 하려고요."
라일라의 눈이 빛났다.
"흥미롭네요."
"저는 라일라 알-파시예요."
"알-파시... 그 유명한 가문?"
"알고 계세요?"
"당연하죠. 향료계의 전설이잖아요."
라일라는 웃었다.
"과장이세요."
"아니에요. 진심입니다."
악수.
그의 손은 따뜻했다.
일주일 후
디글라는 매일 시장에 왔다.
"또 왔어요?"
"향료 배우러 왔죠."
"정말 열심히시네요."
"선생님이 좋아서요."
라일라는 얼굴이 붉어졌다.
"저는 선생님 아니에요."
"그럼 친구?"
"...친구는 될 수 있죠."
한 달 동안 그들은 시장을 돌았다.
라일라가 향료를 가르쳤다.
"이건 계피. 스리랑카산이 최고죠."
"이건 정향. 인도네시아에서 와요."
"이건 카다몬. 제가 가장 좋아하는 향이에요."
디글라는 열심히 배웠다.
하지만 향료보다 라일라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라일라."
"네?"
"나... 당신 좋아해요."
"...뭐라고요?"
"사랑해요."
라일라는 당황했다.
"우리 한 달밖에 안 알았잖아요."
"충분해요.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엔."
"하지만... 저는 모로코 사람이고 당신은 한국 사람이에요."
"상관없어요."
"제 가족은 전통적이에요. 쉽지 않을 거예요."
"설득할게요."
라일라는 그의 눈을 봤다.
진심이 보였다.
"...생각해볼게요."
사막과 한강 사이
2003년, 양가 상봉
"절대 안 돼!"
라일라의 아버지가 소리쳤다.
"한국 남자? 무슬림도 아니고?"
"아버지, 디글라는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도 안 돼. 우리 가문의 전통이..."
"전통? 저희 가문도 다른 문화와 교류하며 커왔잖아요!"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라일라 말도 맞아요, 여보."
"당신도?"
"딸이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한국 쪽도 마찬가지였다.
"모로코 여자?"
욕단 회장이 의아해했다.
"네, 아버지. 라일라는 특별해요."
"무슬림이잖아."
"네. 하지만 개방적이에요."
"아들아, 문화 차이가..."
"극복할 수 있어요. 사랑으로."
욕단 회장은 한숨 쉬었다.
"네가 정말 사랑한다면... 반대 안 할게."
2004년, 두 번의 결혼식
첫 번째는 모로코에서.
이슬람 전통 방식.
라일라는 전통 의상을 입었다.
금색과 붉은색이 화려했다.
디글라는 흰색 젤라바를 입었다.
"알라의 이름으로..."
이맘이 축복했다.
두 번째는 서울에서.
한국 전통 방식.
라일라는 한복을 입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가 물었다.
"아니에요. 아름다워요."
디글라가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시어머니 한나라 여사가 옷을 입혀줬다.
"우리 며느리, 어디서든 빛나네요."
2005년, 서울 생활 시작
"여보, 이게 뭐예요?"
라일라가 김치를 보며 물었다.
"김치요. 먹어봐요."
한 입.
"매워!"
디글라는 웃었다.
"천천히 익숙해질 거예요."
하지만 쉽지 않았다.
언어, 음식, 문화... 모든 게 낯설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국어는 어려웠다.
발음도, 문법도.
2006년, 첫 딸 탄생
"딸입니다!"
디글라가 기뻐했다.
"이름은?"
"파티마."
"파티마?"
"네.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 이름이에요."
"좋아요. 파티마 디글라."
첫 딸, 디글라 파티마.
하지만 시댁의 반응은...
"이름이 너무 이슬람스럽지 않아?"
친척이 수군거렸다.
"여기는 한국인데..."
라일라는 들었다.
가슴이 아팠다.
디글라가 위로했다.
"신경 쓰지 마요."
"하지만... 나는 이방인 같아요."
"아니에요. 당신은 내 아내예요."
"고마워요..."
라일라는 울었다.
2008년, 둘째 딸 탄생
"또 딸이에요."
"이름은 아이샤. 예언자의 아내 이름이에요."
둘째, 디글라 아이샤.
2011년, 셋째 딸 탄생
"세 번째도 딸이에요."
"이름은 살마. 평화라는 뜻이에요."
셋째, 디글라 살마.
세 딸.
모두 아랍 이름.
라일라는 정체성을 지켰다.
2015년, 향료 사업 시작
"여보, 나랑 같이 사업 할래요?"
디글라가 제안했다.
"무슨 사업?"
"중동 향료 수입. 당신 네트워크 필요해요."
라일라는 생각했다.
"좋아요. 해볼게요."
그녀는 고향에 연락했다.
"삼촌, 한국에 향료 수출할 수 있어요?"
"물론이지. 네가 보증하면."
"감사해요."
'디글라 스파이스' 설립
모로코, 이란, 인도에서 최고급 향료 수입.
라일라가 품질을 직접 관리했다.
"이건 안 돼요. 품질이 떨어져요."
"저건 좋아요. 최고급이에요."
그녀의 감각은 정확했다.
사업은 성공했다.
"디글라 스파이스, 한국 최고급 향료"
"CEO 라일라 알-파시, 중동의 향을 한국에"
언론이 주목했다.
2018년, 딸들의 정체성 혼란
"엄마, 나는 한국인이야? 모로코인이야?"
파티마(열두 살)가 물었다.
"둘 다야."
"그게 뭔 뜻이야? 학교에서 애들이 이상하게 봐."
"이름이 이상하대. 생김새도 이상하대."
라일라의 가슴이 찢어졌다.
아이샤도 힘들어했다.
"엄마, 나 한국 이름 갖고 싶어."
"왜?"
"외국인 같잖아."
"하지만 너는 우리 문화도 가지고 있어."
"싫어! 나는 그냥 한국인이고 싶어!"
디글라와 상의했다.
"아이들이... 힘들어해요."
"나도 알아."
"우리... 잘못한 걸까요?"
"아니에요. 세상이 아직 준비 안 된 거죠."
"어떻게 해야 해요?"
"아이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줘야 해요. 두 문화를 가진 게 축복이라고."
정체성의 전쟁
2020년, 코로나와 차별
"중국인! 저리 가!"
거리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라일라를 향해.
"저는 중국인이 아니에요. 모로코..."
"아무튼 외국인이잖아! 바이러스 옮기지 마!"
라일라는 충격받았다.
집에 돌아와 울었다.
"여보..."
"나는... 이십 년을 여기 살았어요..."
"세 딸을 낳았어요..."
"사업도 하고, 세금도 내고..."
"그런데도 나는... 외국인일 뿐이에요..."
디글라는 아내를 안았다.
"미안해요... 내가 지켜주지 못해서..."
2022년, 파티마의 반항
"엄마, 나 이슬람 싫어."
파티마(열여섯 살)가 선언했다.
"뭐라고?"
"학교에서 놀림받아. 무슬림이라고."
"테러리스트 가족이래."
라일라는 할 말을 잃었다.
"파티마... 그건 편견이야..."
"알아! 하지만 나는 지쳤어!"
"그냥 평범한 한국 애처럼 살고 싶다고!"
아이샤는 이름을 바꾸고 싶어했다.
"나는 이제 지수예요."
"지수?"
"응. 한국 이름. 친구들이 지어줬어."
"하지만 네 이름은 아이샤..."
"싫어요! 아이샤는 이상해요!"
막내 살마만 달랐다.
"엄마, 나는 내 이름 좋아."
"정말?"
"응. 평화라는 뜻이잖아. 멋있어."
라일라는 막내를 안았다.
"고마워, 살마야..."
2024년, 정체성 교육
라일라는 결심했다.
"딸들에게 우리 문화를 제대로 가르쳐야 해."
여름방학, 모로코로 데려갔다.
"여기가 엄마 고향이야."
마라케시 시장.
"와... 예쁘다..."
딸들이 감탄했다.
향료 냄새, 화려한 색깔, 이국적인 음악.
"이게 우리 문화야."
할아버지 댁 방문.
"어서 와, 손녀들아."
할아버지가 아랍어로 말했다.
딸들은 못 알아들었다.
라일라가 통역했다.
한 달 동안 그들은 배웠다.
언어, 음식, 전통...
"엄마, 재밌어."
"정말?"
"응. 우리가... 특별한 거 같아."
라일라는 울었다.
기쁨의 눈물.
2026년, 욕단 회장 별세
장례식.
라일라는 시아버지를 존경했다.
"아버님...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했어요."
열세 며느리 중 유일한 외국인.
하지만 차별받지 않았다.
"라일라, 고마워. 디글라 잘 돌봐줘서."
돌아가시기 전 하신 말씀.
형제들의 분쟁
"디글라, 중동 네트워크 우리한테 줘."
형제들이 요구했다.
"그건... 라일라 거예요."
"뭐? 며느리가 뭘 가져?"
"라일라가 만든 거예요. 그녀의 가문, 그녀의 노력으로."
"그래도 가족인데 공유해야지."
라일라가 나섰다.
"제 것은 제 것입니다."
"뭐?"
"도와드릴 수는 있어요. 하지만 빼앗기지는 않아요."
며느리들이 놀랐다.
조용했던 라일라가 강하게 나왔다.
두 세계의 여왕
2027년, 화해 후
형제들이 화해했다.
"라일라 형수님, 미안했어요."
"괜찮아요."
"중동 진출 도와주실 수 있어요?"
"물론이죠. 우리 가족이잖아요."
라일라는 욕단그룹의 중동 진출을 도왔다.
그녀의 네트워크가 열쇠였다.
2028년, 파티마의 변화
"엄마, 미안해."
파티마가 사과했다.
"뭐가?"
"이슬람 싫다고 한 거."
"괜찮아."
"아니야. 나... 깨달았어."
"뭘?"
"내가 특별하다는 것. 두 문화를 가진 게 축복이라는 것."
"파티마..."
"대학에서 중동학 전공할 거야. 엄마처럼."
라일라는 딸을 안았다.
2030년, 아이샤의 꿈
"엄마, 나 통역사 될래."
"통역사?"
"응. 아랍어-한국어. 두 세계를 잇고 싶어."
"내 이름 아이샤로 다시 쓸 거야. 자랑스러우니까."
라일라는 눈물을 흘렸다.
2032년, 살마의 선택
"엄마, 나는 향료 사업 이어받을래."
막내 살마(스물한 살)가 말했다.
"정말?"
"응. 엄마가 만든 거 계속하고 싶어."
"그리고 더 크게 키울 거야. 전 세계로."
"고마워, 살마야."
"엄마가 보여준 거야. 외국인도, 여자도, 뭐든 할 수 있다는 것."
2035년, 유엔 초청 강연
"오늘 우리는 라일라 알-파시 대표를 모셨습니다."
유엔 다문화 포럼.
라일라(오십여섯 살)가 무대에 섰다.
여전히 아름다웠다.
우아한 스카프, 자신감 있는 자세.
"저는 두 세계 사이에 살았습니다."
"모로코와 한국."
"이슬람과 기독교."
"아랍어와 한국어."
"쉽지 않았습니다."
"차별받았고, 외로웠고, 정체성에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두 세계를 가진 것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는 것을."
"저는 다리입니다. 두 문화를 잇는."
"제 딸들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미래입니다. 글로벌 시민의."
기립박수.
2038년, 파티마의 책
"엄마, 내 책 나왔어!"
파티마가 책을 보여줬다.
제목: "사막의 딸, 한강의 딸"
"우리 이야기야. 엄마와 나의."
라일라는 책을 읽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고마워... 우리 이야기를 기록해줘서..."
"엄마 이야기는 영감이야. 나한테."
2040년, 손녀의 탄생
"할머니! 저 딸 낳았어요!"
파티마가 전화했다.
"축하해!"
"이름은... 라일라."
"...뭐라고?"
"할머니 이름이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라일라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손녀를 안았다.
"안녕, 라일라야..."
작고 아름다웠다.
어두운 머리, 큰 눈.
두 세계의 피가 섞인.
"예쁘다..."
디글라가 옆에서 말했다.
"우리 손녀도 할머니처럼 강하게 자랄 거예요."
"두 세계의 여왕으로."
에필로그: 향료보다 진한 사랑
2042년, 모로코-한국 문화교류 행사
"오늘 우리는 라일라 알-파시 여사를 기립니다."
양국 정부가 공동 주최.
라일라(예순세 살)가 무대에 섰다.
"사십 년 전, 저는 사랑 때문에 한국에 왔습니다."
"낯설었고, 외로웠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했으니까."
"남편을, 딸들을, 그리고 이 땅을."
"이제 저는 두 나라를 모두 사랑합니다."
"모로코는 제 뿌리."
"한국은 제 날개."
"둘 다 저예요."
박수.
디글라가 무대로 올라왔다.
"아내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라일라, 고마워요."
"낯선 땅에 와서, 나를 믿어줘서."
"세 딸을 낳아줘서."
"그리고... 두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줘서."
"당신은 내 인생의 향료예요."
"당신 없었으면... 삶이 무미건조했을 거예요."
라일라는 눈물을 흘렸다.
"나야말로 고마워요."
"당신이 날 사랑해줘서."
"내가 누구든."
부부는 포옹했다.
사십 년 전처럼.
마라케시 시장에서처럼.
그날 저녁, 한강 공원.
부부는 손을 잡고 걸었다.
"여보, 후회 없어요?"
"뭐가?"
"나같은 외국인이랑 결혼한 거."
디글라는 웃었다.
"후회? 절대."
"왜?"
"당신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했으니까."
"다른 문화, 다른 시각, 다른 아름다움."
"당신 덕분에 내 세계가 넓어졌어요."
라일라는 미소 지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당신 덕분에... 나는 두 세계를 모두 가질 수 있었어요."
"잃은 게 아니라 얻은 거예요."
"사랑해요, 디글라."
"나도 사랑해요, 라일라."
한강 위로 달이 떴다.
사막의 달과 같은.
하지만 다른.
그 아래서 두 사람은 걸었다.
손을 꼭 잡고.
두 세계를 잇는 다리처럼.
"사랑은 국경을 넘고, 문화를 잇고, 차이를 녹인다."
— 라일라 알-파시, 2042년
작가의 말
라일라 알-파시의 이야기는 모든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낯선 땅에서.
다른 언어로.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차별받고.
외로워하고.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합니다.
하지만 라일라는 증명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두 문화를 가진 것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는 것을.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모든 국제결혼 가정에게.
모든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
당신은 특별합니다.
두 세계를 품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