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의 여왕
숫자로 말하는 소녀
1998년 가을, 뉴욕 맨해튼
"레이첼, 답은?"
수학 선생님이 물었다.
열두 살 레이첼 골드만은 일어섰다.
"이천삼백사십칠 곱하기 오천육백팔십구는 십삼만 삼천삼백육십삼입니다."
"...계산기 썼니?"
"아니요. 암산이요."
교실이 웅성거렸다.
"괴물이네..."
레이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숫자는 그녀의 언어였다.
가장 정직하고, 명확한.
골드만 가문
"레이첼, 오늘 시장이 어땠니?"
아버지 데이비드 골드만이 물었다.
저녁 식사 시간.
"다우존스 삼백십이 포인트 하락. 나스닥은 백오십일 하락했어요."
"원인은?"
"연준 금리 인상 우려. 그리고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
"좋아.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매도보다 매수요. 공황은 기회니까요."
아버지는 미소 지었다.
"역시 내 딸이야."
골드만 가문은 월스트리트의 전설이었다.
삼 대째 투자은행.
레이첼은 어릴 때부터 배웠다.
숫자 읽는 법.
시장 보는 법.
돈 버는 법.
"감정은 투자의 적이야."
아버지의 가르침.
"냉철해야 해. 항상."
2004년,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
"레이첼 골드만 양, 합격입니다."
MBA 과정 최연소 합격.
스물두 살.
"축하해, 레이첼."
"당연한 결과예요, 아버지."
"자만하지 마라."
"자만이 아니에요. 팩트죠."
레이첼은 항상 자신감 넘쳤다.
아니, 오만했다.
하지만 실력이 뒷받침했다.
와튼 MBA 생활
"이번 과제는 그룹으로 합니다."
교수가 발표했다.
"레이첼 골드만, 당신은... 아비마엘 조크탄과 한 팀."
"아비마엘?"
고개를 돌리니 한국인 남학생.
잘생겼다.
"안녕하세요. 아비마엘입니다."
"레이첼 골드만."
악수.
그의 손은 단단했다.
첫 팀 미팅
"이 케이스는 M&A 시나리오입니다."
레이첼이 분석을 시작했다.
"목표 기업의 EBITDA는..."
아비마엘이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그 전에 전략적 시너지부터 봐야죠."
"숫자가 먼저예요."
"아니요. 비전이 먼저죠."
둘은 부딪쳤다.
레이첼은 숫자로.
아비마엘은 전략으로.
하지만 결과는 완벽했다.
"최우수 팀, 레이첼-아비마엘!"
교수가 발표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맞췄어요?"
"서로 달라서요." 아비마엘이 대답했다.
"저는 숫자, 그는 전략. 보완적이죠."
레이첼이 덧붙였다.
"좋은 팀이네요."
둘은 서로를 봤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2년 후, 2006년
"레이첼."
"응?"
도서관에서 공부 중.
"나... 고백할 게 있어."
"뭔데?"
"나 너 좋아해."
레이첼은 펜을 놓았다.
"왜?"
"...왜?"
"왜 좋아하는데? 데이터는?"
아비마엘은 당황했다.
"데이터? 사랑에 무슨 데이터..."
"모든 감정은 논리적 근거가 있어."
"음... 우리가 함께 일할 때 내 효율성이 사십 퍼센트 증가해."
"계속."
"너랑 대화하면 새로운 관점이 생겨. 평균 세 개."
"그리고?"
"너 없으면... 외로워."
레이첼은 잠시 생각했다.
"나도 비슷한 데이터가 있어."
"정말?"
"응. 너랑 있으면 심박수가 십이 퍼센트 증가. 생산성은 삼십팔 퍼센트 증가."
"그럼?"
"사귀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해."
아비마엘은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고백이네."
"로맨틱?"
"응. 너답게."
숫자와 사랑의 공식
2008년, 졸업 후
레이첼은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아비마엘은 JP모건에.
"장거리 연애네." 아비마엘이 말했다.
"뉴욕에서 뉴욕인데 무슨 장거리?"
"회사가 달라서."
"주말에 보면 돼."
"그것만으로 충분해?"
"효율적이잖아.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사랑하고."
아비마엘은 고개를 저었다.
"역시 레이첼답다."
2010년, 프러포즈
"레이첼."
"응?"
센트럴파크를 걷고 있었다.
"결혼하자."
"왜?"
"...또 왜야?"
"논리적 근거가 있어야지."
아비마엘은 서류를 꺼냈다.
"이게 뭐야?"
"결혼의 경제적 이점 분석 보고서."
레이첼은 펼쳐봤다.
"세금 혜택, 자산 통합, 리스크 분산..."
"제대로 준비했네?"
"당연하지. 너한테 맞춰서."
레이첼은 웃었다.
"오케이. 결혼하자."
"정말?"
"응. 데이터가 설득력 있어."
"그게 이유야?"
"그리고... 너랑 평생 일하고 싶어서."
"일?"
"응. 너는 최고의 비즈니스 파트너야."
아비마엘은 한숨 쉬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그건 당연한 거고."
"...정말 너답다."
2011년, 결혼식
결혼식은 맨해튼 고급 호텔.
삼백 명 하객.
대부분 금융계 인사들.
"신랑 신부 입장!"
레이첼은 아름다웠다.
베라 왕 드레스.
하지만 표정은 차갑게 유지했다.
"감정 드러내지 마." 어머니의 가르침.
"골드만 가문은 항상 우아하게."
서약.
"레이첼 골드만, 아비마엘 조크탄을 남편으로 맞이하겠습니까?"
"예."
짧고 명확하게.
"아비마엘 조크탄, 레이첼 골드만을 아내로 맞이하겠습니까?"
"예."
키스.
박수.
신혼여행은 생략
"왜?" 친구들이 물었다.
"시간 낭비야." 레이첼이 대답했다.
"신혼여행이 낭비?"
"응. 그 시간에 투자 기회 분석하는 게 더 생산적이야."
"레이첼... 너 진짜..."
"뭐?"
"아무것도 아니야."
2012년, 첫 아들 탄생
"아들입니다!"
아비마엘이 기뻐했다.
"이름은?"
"데이비드. 내 아버지 이름이야."
"좋아."
첫 아들, 아비마엘 데이비드.
레이첼은 출산 후 삼 주 만에 복귀했다.
"벌써?" 동료들이 놀랐다.
"왜? 문제 있어?"
"산후조리는?"
"베이비시터 있어. 효율적이야."
"하지만..."
"일이 밀렸어. 계속할게."
2016년, 둘째 아들 탄생
"또 아들이에요!"
"이름은 조나단. 내 할아버지 이름."
둘째, 아비마엘 조나단.
이번에도 레이첼은 빨리 복귀했다.
"엄마 역할은?" 시어머니가 물었다.
"베이비시터가 잘해요."
"하지만 엄마가 있어야..."
"저는 일하는 게 더 잘 맞아요."
시어머니는 걱정스러웠다.
2018년, 사모펀드 설립
"레이첼, 나랑 펀드 만들자."
아비마엘이 제안했다.
"같이?"
"응. 나는 전략, 너는 실행."
"자본은?"
"내 가족과 네 가족이 출자."
레이첼은 계산했다.
"가능해. ROI 예상은?"
"연 이십 퍼센트 이상."
"오케이. 하자."
골드만-조크탄 파트너스 설립
"오늘 우리 펀드가 출범합니다."
레이첼(서른이 살)과 아비마엘(서른오 살)이 공동 대표.
"목표는 아시아 기업 투자입니다."
언론이 주목했다.
"월스트리트 파워 커플"
"금융계의 빌-멜린다 게이츠"
성과는 놀라웠다.
첫 해 수익률 이십팔 퍼센트.
"어떻게 이렇게 높아?" 투자자들이 물었다.
"우리는 숫자만 봐요." 레이첼이 대답했다.
"감정은 배제하고."
"그게 비결이에요."
차가운 성공의 대가
2020년, 코로나 대박
"시장이 폭락했습니다!"
직원이 보고했다.
"좋아." 레이첼이 말했다.
"좋아요?"
"응. 매수 기회야. 전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하지만 리스크가..."
"계산했어. 실행해."
코로나 위기 속에서 펀드는 급성장했다.
"골드만-조크탄, 코로나 속 수익률 사십 퍼센트"
"냉혹한 판단이 성공 이끌어"
레이첼은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악마라는 소리도 들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돈을 벌다니..."
아이들의 외로움
"엄마, 오늘 학교에서..."
데이비드(여덟 살)가 말하려 했다.
"나중에. 지금 통화 중이야."
"하지만..."
"데이비드, 나중에!"
아들은 울며 나갔다.
조나단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같이 놀아줘."
"베이비시터한테 가."
"엄마랑 놀고 싶어."
"엄마는 바빠."
"맨날 바빠..."
아비마엘이 아내와 대화했다.
"레이첼, 애들이 외로워해."
"베이비시터 있잖아."
"베이비시터는 엄마가 아니야."
"나는 일하는 엄마야."
"알아. 하지만 가끔은..."
"가끔도 시간이 없어. 펀드가 천억 달러야!"
"돈이 아이들보다 중요해?"
레이첼은 멈췄다.
"...그건 아니야."
"그럼?"
"나는... 방법을 모르겠어."
"뭘?"
"어떻게 엄마가 되는지."
2024년, 데이비드의 반항
"나는 엄마 같은 사람 안 될 거야!"
데이비드(열두 살)가 소리쳤다.
"뭐라고?"
"엄마는 로봇이야! 돈밖에 몰라!"
"데이비드!"
"사실이잖아! 우리보다 주식이 더 중요하잖아!"
쾅!
문이 닫혔다.
레이첼은 충격받았다.
그날 밤, 혼자 앉아 있었다.
'나는... 나쁜 엄마인가?'
처음으로 숫자가 답을 주지 못했다.
2025년, 심리 상담
"레이첼 씨, 왜 감정을 억압하세요?"
상담사가 물었다.
"억압?"
"네. 아이들에게도, 자신에게도."
"감정은 비효율적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배웠어요. 골드만 가문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래서 나는... 차갑게 자랐어요."
레이첼의 눈에 처음으로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외로웠어요. 계속."
2026년, 욕단 회장 별세
한국으로 갔다.
시아버지 장례식.
열세 형제가 모였다.
"유산 분쟁이 있을 거예요." 레이첼이 분석했다.
"어떻게 알아?" 아비마엘이 물었다.
"숫자가 말해요. 너무 많아서 공정하게 나눌 수 없어."
"그럼 어떡하지?"
"우리는 중립을 지켜요. 그리고 기회를 봐요."
"레이첼... 이건 가족 문제야."
"가족도 비즈니스예요."
아비마엘은 한숨 쉬었다.
형제들의 화해
하지만 형제들은 화해했다.
"같이 가자."
레이첼은 놀랐다.
"왜 놀라워?" 아비마엘이 물었다.
"비논리적이에요. 경쟁이 당연한데."
"가족은 경쟁이 아니야."
"하지만..."
"레이첼, 가족은 숫자가 아니야."
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
숫자 너머의 가치
2027년, 변화의 시작
"데이비드, 조나단."
레이첼이 아들들을 불렀다.
"뭐?"
"미안해."
"...뭐가?"
"엄마가... 너희를 소홀히 했어."
아이들은 놀랐다.
"엄마가 사과를?"
"응. 엄마가 잘못했어."
"앞으로는... 시간 낼게. 너희랑."
데이비드가 물었다.
"정말?"
"응. 약속해."
"일은?"
"줄일 거야."
아이들은 엄마를 안았다.
생전 처음.
일과 가정의 균형
레이첼은 스케줄을 바꿨다.
저녁 여섯시 이후는 가족 시간.
"대표님, 회의가..."
"내일로 미뤄."
"하지만 중요한..."
"가족보다 중요한 건 없어."
직원들은 놀랐다.
'레이첼 골드만이 변했다?'
아이들과의 시간
"엄마, 숙제 도와줘."
"그래, 데이비드."
"수학 문제인데..."
"엄마가 제일 잘하는 거네."
둘은 웃었다.
"엄마, 게임 같이 해."
조나단이 조르었다.
"게임?"
"응. 포트나이트."
"엄마는 게임 못 하는데..."
"괜찮아. 가르쳐줄게."
레이첼은 서툴렀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엄마, 재밌어?"
"응... 생각보다."
2030년, 펀드 구조조정
"공동 대표직 사임하겠습니다."
레이첼이 발표했다.
투자자들이 놀랐다.
"왜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요."
"하지만 수익률이..."
"수익률이 전부가 아니에요."
"레이첼 골드만이 이런 말을?"
"네. 저도 변했어요."
아비마엘이 단독 대표가 되었다.
레이첼은 고문으로.
"후회 안 해?" 아비마엘이 물었다.
"안 해. 이게 맞는 것 같아."
"정말 변했네."
"응. 너 덕분에. 그리고 아이들 덕분에."
2035년, 데이비드의 진로
"엄마, 나 금융 안 할래."
"뭐?"
"음악 할 거야."
레이첼은 깊게 숨을 쉬었다.
예전 같았으면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좋아.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정말?"
"응. 행복이 제일 중요해."
데이비드는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 엄마."
2038년, 조나단의 선택
"나는 금융 할래. 엄마처럼."
"정말?"
"응. 하지만 엄마랑은 다르게."
"어떻게?"
"사람을 먼저 보는 투자."
레이첼은 미소 지었다.
"더 나은 방법이네."
"엄마가 가르쳐준 거야."
"내가?"
"응. 숫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2040년, 은퇴 기념식
"오늘 레이첼 골드만의 삼십 년 금융 경력을 축하합니다."
레이첼(오십팔 살)이 무대에 섰다.
"저는... 평생 숫자만 봤습니다."
"차트, 수익률, ROI..."
"그게 전부였죠."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숫자로 잴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을 봤다.
"가족의 사랑."
"아이들의 웃음."
"함께한 시간."
"이것들은 밸류에이션이 불가능해요."
"하지만 가장 소중해요."
박수.
아비마엘이 무대로 올라왔다.
"아내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레이첼, 자랑스러워."
"왜?"
"변했으니까."
"차가운 투자자에서, 따뜻한 엄마로."
"완벽한 파트너에서, 완벽한 아내로."
"고마워. 함께해줘서."
레이첼은 눈물을 흘렸다.
"나야말로. 인간이 되게 해줘서."
에필로그: 계산할 수 없는 가치
2042년, 손주의 탄생
"할머니! 저 딸 낳았어요!"
데이비드가 전화했다.
"축하해!"
"이름은... 레이첼."
"...내 이름?"
"네. 할머니처럼 강한 여자로 키우고 싶어요."
레이첼은 병원으로 갔다.
손녀를 안았다.
"안녕, 레이첼..."
작고 따뜻했다.
"할머니처럼 되지 마."
"네?"
"더 나아져. 숫자도 보고, 사람도 봐."
데이비드는 웃었다.
"그럼 할머니 지금처럼요."
"...그래. 지금처럼."
그날 저녁, 센트럴파크.
레이첼과 아비마엘이 걸었다.
삼십 년 전처럼.
"후회 없어?" 아비마엘이 물었다.
"뭐가?"
"커리어 포기한 거."
"포기 아니야. 선택이야."
"차이가 뭐야?"
"포기는 잃는 거. 선택은 얻는 거."
"무엇을?"
"더 소중한 것."
손을 꼭 잡았다.
"사랑해, 아비마엘."
"나도 사랑해, 레이첼."
"내가 변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원래 당신 안에 있었어. 나는 그냥 기다렸을 뿐."
달이 떠올랐다.
센트럴파크 위로.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았다.
"저기." 레이첼이 말했다.
"응?"
"우리 인생의 ROI 계산해봤어."
"또 숫자?"
"응. 근데 이상해."
"뭐가?"
"무한대야."
"무한대?"
"응. 사랑은 계산할 수 없어. 무한대의 가치."
아비마엘은 웃었다.
"드디어 배웠구나."
"응. 가장 중요한 걸."
끝
"인생 최고의 투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쓰는 것이다."
— 레이첼 골드만, 2042년
작가의 말
레이첼 골드만의 이야기는 많은 커리어 우먼들의 이야기입니다.
성공을 위해 달렸지만.
가족을 뒤로했고.
감정을 억눌렀습니다.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진짜 성공은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진짜 부는 돈이 아니라 관계라는 것을.
진짜 가치는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일하는 부모들에게.
모든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지만, 전부를 말하지도 않습니다.
계산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