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326)

새해의 시작

by 이 범

1947년, 갈림길
새해의 시작
1947년 1월 1일. 이계민은 새벽 일찍 일어났다. 마루에 나가 동쪽 하늘을 바라봤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새해구나..." 지난 한 해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의용경찰단 해체, 정국 혼란, 10월 항쟁... "올해는... 좀 나아질까?" "계민아." 아버지 이산갑이 나왔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아버지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해를 바라봤다. "계민아, 올해는 중요한 해가 될 거다." "네?"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된대." "정말입니까?"
"그래, 신문에 나왔어. 5월에 다시 열린다고." 이계민의 눈이 빛났다. "그럼... 통일 정부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글쎄... 쉽지 않을 거야. 작년에도 실패했으니까."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그래, 희망은 있지." 이산갑이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해. 어떤 결과가 나오든."
혼담
1월 중순, 김학두 댁을 방문하는 날이 왔다. 이계민은 새 두루마기를 입었다. "잘 어울린다, 아들." 어머니 강지윤이 만족스러워했다. "긴장하지 마라. 그냥 차나 마시고 이야기하면 돼." "네, 어머니." "첫인상이 중요하단다. 예의 바르게 행동해라." "알겠습니다." 이산갑, 강지윤, 이계민 세 사람이 함께 김학두 댁으로 향했다. 김학두는 한도회 동지였다. 평양에서 큰 부자로 살다가 공산화를 피해 월남했다. 서사 집안으로 대대로 학식이 높기로 유명했다.
"어서 오십시오, 산갑 형님!" "오랜만이네, 학두 형." 두 사람이 반갑게 인사했다. "이분이 계민이인가?" "그렇네. 이제 스물다섯이야." "훌륭하게 자랐구먼. 의용경찰단장을 했다며?" "예, 잠깐 했습니다." 이계민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계민은 계속 신경이 쓰였다. '딸은... 언제 나오려나...' "그나저나 우리 딸 좀 불러볼까?" 김학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시지." 잠시 후, 한 여인이 들어왔다.
스물한 살의 젊은 여인이었다. 단정한 한복 차림에, 맑은 눈동자. "절 올리겠습니다." 여인이 공손하게 절했다. "저는 김서연입니다." "......" 이계민은 말을 잃었다. 예쁘다는 생각보다, 눈빛이 똑똑해 보였다. '저 눈빛... 보통 여자가 아닌데...' "계민아, 인사해라." 어머니가 옆구리를 찔렀다. "아, 네. 이계민입니다." 이계민이 얼른 절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두 젊은이는 잠깐 눈이 마주쳤다. 서연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서연아, 계민 씨랑 정원 좀 거닐지 않겠니?" "네, 아버지." 이계민과 서연은 정원으로 나갔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 두 사람이 동시에 말을 꺼냈다. "먼저 말씀하세요." 서연이 말했다. "아니, 아가씨가 먼저..." "전 괜찮습니다." 이계민이 용기를 냈다. "아가씨는... 평양에서 오셨다고요?" "네, 작년 여름에 월남했습니다."
"힘드셨겠습니다." "괜찮았어요. 저희는 배로 왔으니까요." 서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는 건 슬펐습니다." "......" "제 친구들, 이웃들... 모두 두고 왔어요." 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계민이 말했다. "통일이 되면, 다시 갈 수 있어요." "정말 그럴까요?" "네, 반드시." 이계민의 눈빛이 진지했다. "저도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연이 이계민을 봤다. "이 선생님은... 정치를 하시나요?" "아니요, 아직은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도회 일을 돕고 계시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버지께 들었어요. 차세대 리더가 될 거라고." 서연이 미소 지었다. "대단하시네요." "아닙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정원을 걸었다. 이상하게 어색함이 사라졌다. 오히려 편안했다. "아가씨는 무엇을 공부하셨습니까?" "저는... 여학교를 나왔습니다."
"평양에서요?" "네, 정신여학교요." "그럼 영어도 하시겠네요?" "조금요. 그리고 일본어도..." 서연이 수줍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 일본어는 쓸 일이 없겠죠." "그렇죠." 이계민이 웃었다. "해방됐으니까요." 두 사람은 한참을 이야기했다. 통일에 대한 생각, 미래에 대한 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계민아!" 어머니가 불렀다. "이제 들어와야지!" "네!" 이계민과 서연은 집으로 돌아갔다.
작별 인사를 하며, 이계민이 물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을까요?" "글쎄요..." 서연이 살짝 웃었다. "어른들께서 허락하신다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가 물었다. "어떠니? 마음에 드니?" "...괜찮은 것 같습니다." "괜찮은 정도야?" "아니... 좋습니다." 이계민이 솔직하게 말했다. "똑똑하고,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 같습니다." "그럼 됐구나!" 강지윤이 기뻐했다. "혼사를 진행해야겠다." "그런데 어머니, 김 선생님 집안이 서사라고 하셨죠?" "그래, 학식 높은 집안이야. 대대로 학자를 배출했지."
토지 상속 완료
2월, 토지 상속 절차가 완료됐다. "계민아, 이제 이 땅들이 다 네 것이다." 아버지가 서류를 건넸다. "2만 7천 평... 법적으로 네 이름으로 등기됐어."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할 것 없어. 원래 네 것이 될 거였으니까." 이산갑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계민아, 이 땅을 잘 지켜야 한다." "네?" "북에서 토지개혁이 일어났잖니. 남한도 언젠가..." "남한에서도 토지개혁을 하겠습니까?" "가능성이 있어. 미군정도 그걸 검토하고 있다더군."
"그럼 우리 땅도..." "몰수당할 수 있지. 하지만 네 이름으로 해뒀으니, 젊은 사람 땅이라 좀 낫지 않겠니." "......" "물론 확실한 건 아니야. 하지만 최선을 다한 거지." 이계민은 서류를 들여다봤다. 논 1만 5천 평, 밭 8천 평, 임야 4천 평. "아버지, 이 땅을 어떻게 관리해야 합니까?" "소작인들이 있어. 그들한테 계속 맡기면 돼." "소작료는 얼마입니까?" "수확량의 절반이야. 관례대로." "...절반은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이계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 "소작인들이 힘들게 농사짓는데, 절반을 가져가는 건..." "그게 관례야. 다른 지주들도 다 그래." "하지만 공정하지 않습니다." 이계민이 주장했다. "한도회가 정의를 추구한다면서, 우리는 불공정한 걸 하면 안 됩니다." 이산갑은 아들을 물끄러미 봤다. "...네 생각은?" "3할 정도면 어떨까요? 수확량의 30%만." "그럼 우리 수입이 대폭 줄어들어." "괜찮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가진 게 많습니다." 이산갑이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 땅이니 네 뜻대로 해라." "정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소작인들한테 제대로 설명해야 해. 갑자기 바꾸면 놀랄 테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 날, 이계민은 소작인들을 모았다. 스무 가구 정도 됐다. "여러분, 오늘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소작인들이 긴장했다. "혹시 우리를 쫓아내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계민이 손을 저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소작료를 낮추려고 합니다." "...네?" "지금까지 수확량의 절반을 내셨죠?" "네..." "이제부터 3할만 내시면 됩니다." "정말입니까!" 소작인들이 환호했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고맙습니다!" 하지만 한 늙은 소작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다른 지주들이 뭐라 하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제 땅이니 제가 결정하는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계민이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처럼 착취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합니다." 소작인들이 눈물을 흘렸다. "도련님... 고맙습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이계민 도련님이 소작료를 3할로 낮췄대!" "정말? 그런 지주는 처음이야!" 다른 지주들은 불만이었다. "이계민이 왜 저러는 거야?" "우리까지 압박받게 생겼잖아!" 하지만 이계민은 개의치 않았다. '옳은 일이야. 이게.'
미소공동위원회 재개
5월,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서울에서 회의가 시작됐대요!" "이번엔 성공하겠죠?" 사람들이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한도회 회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글쎄요,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한 동지가 말했다. "미국과 소련의 입장 차이가 여전합니다." "그래도 회의는 하고 있지 않습니까?" "회의를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정혁진이 말했다. "작년에도 회의는 했어요. 하지만 결렬됐죠."
"이번엔 다를 겁니다!" 이계민이 강하게 말했다. "우리 민족이 원하는 게 통일인데, 외세가 막을 순 없어요."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 어렵다고 포기할 순 없습니다." 이계민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통일을 원한다고." "어떻게?" "서명 운동을 하면 어떨까요?" 이계민이 제안했다. "전국적으로 통일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는 겁니다." "좋은 생각이네." 이산갑이 동의했다. "해봅시다."
한도회는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계민이 앞장섰다. "여러분! 통일 정부 수립을 원하십니까?" 시장에서, 거리에서,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외쳤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입니다!" "분단을 원하지 않습니다!" "서명해주십시오!" 사람들이 호응했다. "맞아! 우리는 하나야!" "분단 반대!" 서명이 쏟아졌다. 일주일 만에 천 명이 넘었다. 한 달 만에 만 명을 넘어섰다.
"대단하구나, 계민아." 아버지가 기뻐했다. "네, 사람들도 통일을 원합니다." "당연하지. 누가 분단을 원하겠어." 산돌도 서명 운동에 참여했다. "조카님, 저도 사람들 많이 모았습니다!" "고맙네, 산돌이." "우리 마을 사람들 거의 다 서명했어요!" "잘했어." 하지만 6월 중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미소공동위원회가 또 결렬됐습니다!" "뭐라고!" "미국과 소련이 합의하지 못했답니다!"
이계민은 좌절했다. "결국... 또 실패인가..." "계민아." 아버지가 위로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하지만... 결과가..." "결과는 우리가 정할 수 없어.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지." 이계민은 주먹을 쥐었다. '이러다가... 정말 분단되는 거 아닌가...'
혼례 준비
7월, 이계민과 김서연의 혼례 날짜가 정해졌다. 10월 15일. "석 달 남았구나." 어머니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예물도 준비해야 하고, 혼수도 장만해야 하고..." "어머니, 너무 거창하게 하지 마세요." "이게 어딜 거창해? 장남 혼례인데!" 이계민은 가끔 서연을 만났다. 부모님 허락 아래 산책을 하거나 차를 마셨다. "계민 씨, 요즘 공부는 어떠세요?" "잘 하고 있습니다. 법률 책을 읽고 있어요." "법률이요?"
"네,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정치를 하실 생각이세요?" "글쎄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이계민이 솔직하게 말했다. "다만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어요." "훌륭하시네요." 서연이 미소 지었다. "저도 돕고 싶어요." "뭐라고요?" "혼인하면, 저도 계민 씨를 도울 수 있잖아요." "......" 이계민은 가슴이 뛰었다. '이 사람... 정말 특별해...' "서연 아가씨." "네?" "저와 결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벌써..." 서연이 얼굴을 붉혔다. "아직 혼례도 안 올렸는데요."
"그래도 미리 말하고 싶었어요."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손을 마주 잡았다. 부끄러웠지만, 행복했다. 8월, 혼수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불은 열 채..." 어머니가 세고 있었다. "농도 새로 짜야 하고..." "어머니,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넌 공부나 해. 이건 어미가 할 일이야." 아버지는 신방을 준비했다. 사랑채 옆에 새 방을 지었다. "계민아, 여기가 네 신방이다." "너무 크지 않습니까?" "이 정도는 돼야지. 장가가는데."
김학두 댁에서도 준비가 한창이었다. "서연아, 혼수 준비 잘 되고 있니?" "네, 아버지." "시집가면 고생할 텐데..." "괜찮아요. 계민 씨 좋은 분이에요." "그래도 친정이 그리울 거야." "...그렇겠죠." 서연이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견딜게요. 어른이 됐잖아요." 김학두가 딸을 안았다. "우리 딸... 잘 자랐구나..." "아버지..." 부녀가 한참을 안고 있었다.
유엔의 개입
9월, 국제 정세가 변화했다. "유엔에서 한국 문제를 다루기로 했대요!" 신문에 큰 활자로 실렸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하자, 미국이 유엔에 상정했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한도회 회의가 급히 소집됐다. "유엔이 개입하면..." 한 동지가 말했다. "국제 감시 하에 선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전국적으로요?" "그게 문제입니다. 소련이 북한에서 선거를 허용할까요?" "...안 할 겁니다." 정혁진이 단언했다.
"그럼 남한만 선거를 하게 되고..." "분단이 고착화됩니다." 침묵이 흘렀다. "그걸... 막을 수 없습니까?" 이계민이 물었다. "어렵습니다." 이산갑이 한숨을 쉬었다. "이미 국제 문제가 됐어요. 우리 힘으로는..." "그래도 포기할 순 없습니다!" "계민아." "아버지, 우리가 포기하면 끝입니다!" 이계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시도해봅시다!"
"무엇을?" "남북 협상입니다." 이계민이 제안했다. "유엔이 오기 전에, 남북이 직접 만나서 협상하는 겁니다." "가능할까?" "해봐야 알지 않습니까?" "하지만 누가 가겠어? 북은 공산당 천지인데..." "제가 가겠습니다." "뭐라고!" 모두가 놀랐다. "계민아, 네가?" "네, 제가 가겠습니다." 이계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젊으니까 위험도 덜할 겁니다."
"안 돼!" 이산갑이 반대했다. "너무 위험해!" "하지만..." "계민아, 북에 가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 "혼례도 앞두고 있잖니!" 이계민은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 말이 맞았다. 너무 위험했다. 그리고 서연이 있었다. '나 때문에 서연이가 슬퍼하면...' 결국 이계민은 포기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알면 됐어." 회의는 다른 방안을 모색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혼례
10월 15일. 이계민과 김서연의 혼례날이 밝았다. 맑은 가을날이었다.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신랑 나가신다!" 이계민이 흰 도포를 입고 나왔다. "으이그, 잘생겼네!" 마을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말을 타고 김학두 댁으로 향했다. 신부 집 대문 앞에서 기러기를 봉정했다. "신부를 맞이하러 왔습니다." 문이 열리고, 서연이 나왔다. 붉은 저고리, 푸른 치마. 얼굴에는 연지곤지를 찍었다.
이계민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름답다...' 전안례를 올리고, 교배례를 올렸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됐다. "백년가약을 맺었으니,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거라!" 김학두가 축복했다. "네, 아버님!" 신부를 태운 가마가 이계민 집으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이 길 양옆에 늘어서서 축하했다. "축하합니다!" "백년해로 하세요!" 이계민의 집에 도착했다. 폐백을 올리고, 큰상을 받았다. "며느리야, 고생이 많겠구나." 시어머니 강지윤이 서연의 손을 잡았다.
"괜찮습니다, 어머님."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 "네, 열심히 모시겠습니다." 저녁에 잔치가 열렸다. 한도회 동지들도 많이 왔다. "계민이, 축하하네!" "이제 어엿한 가장이구먼!" "행복하게 살게나!" 이계민과 서연은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밤이 깊어지고, 드디어 두 사람만의 시간이 왔다. 신방에 들어서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 두 사람이 또 동시에 말을 꺼냈다. "또 이러네요." 서연이 웃었다. "그러게요." 이계민도 웃었다. "서연 씨... 아니, 이제 마누라라고 불러야 하나..." "편하게 부르세요." "서연아." "네." "앞으로 잘 부탁해." "저야말로요." 두 사람은 마주 보고 미소 지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신혼생활
며칠 후부터 신혼생활이 시작됐다. 서연은 부지런했다. "어머님,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다, 며느리야. 넌 아직 익숙하지 않잖니." "배워야죠. 가르쳐주세요." 서연은 빨래, 청소, 요리를 배웠다. 시어머니와 사이도 좋았다. "우리 며느리 참 착하구나." 강지윤이 흐뭇해했다. "계민이가 좋은 사람 만났어." 이계민은 신혼의 행복을 만끽했다. 하지만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서연아, 내가 공부하는 거 방해되지 않니?" "아니요. 오히려 좋아요." "왜?" "계민 씨가 열심히 하는 모습 보면 저도 힘이 나요." 서연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사책, 소설, 시집... "이거 재미있네요." "뭔데?" "김소월 시집이요. '진달래꽃' 읽어봤어요?" "응, 좋지." 두 사람은 책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
11월, 유엔에서 중요한 결의가 나왔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한대요!" "한국에 파견해서 선거를 감시한답니다!" "전국적으로요?" "그게 목표래요. 하지만..." 신문을 읽던 이계민의 표정이 굳었다. "소련이 북한 입국을 거부했대요." "......" "결국 남한만 선거를 하게 생겼습니다." 서연이 남편을 봤다. "계민 씨, 괜찮아요?" "...아니." 이계민이 솔직하게 말했다. "괜찮지 않아. 이러면... 분단이야."
"......" "우리가 그렇게 반대했는데... 결국..." 이계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연이 남편의 손을 잡았다. "계민 씨는 최선을 다했어요." "하지만 결과가..."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서연이 남편을 봤다. "최선을 다했다는 게 중요해요." "......" "그리고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계민 씨답지 않아요." 이계민은 아내를 봤다. 맑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계속 싸워야 해...' "고마워, 서연아." "천만에요. 전 당신 아내잖아요." 두 사람은 포옹했다. 서로에게 힘이 됐다.
12월, 한파
12월,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정치적으로도 한파였다. "좌우 대립이 더 심해졌어요." 정혁진이 말했다. "좌익은 선거 반대 투쟁을 벌이고..." "우익은 좌익 탄압을 강화하고..." "가운데는 없습니다." 이계민은 한도회 회의에 참석했다. "동지 여러분, 내년이 중요합니다." 이산갑이 말했다. "유엔 감시 하에 선거가 열릴 겁니다."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선거에 참여해야 합니다." 한 동지가 말했다. "참여해서 우리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아니, 남한만의 선거는 분단을 고착화시킵니다!" 다른 동지가 반대했다. "참여하면 안 됩니다!" 의견이 갈렸다. 이계민은 고민에 빠졌다.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서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손이 차가워요." 서연이 남편의 손을 녹여줬다.
"회의 어땠어요?" "...어려워." "무엇이요?" "내년 선거 문제야. 참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서연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계민 씨 마음은 어때요?" "...모르겠어. 둘 다 일리가 있어." "그럼 시간을 두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시간이 없어." "그래도 서두르면 후회할 수 있어요." 서연이 차를 따라줬다. "천천히 생각하세요. 제가 옆에 있을게요." "...고마워." 이계민은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1947년이 저물어갔다. 분단의 조짐은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이계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한도회 동지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하얗게 세상을 덮었다. 새로운 시작의 예고였다. 1948년, 운명의 해가 다가오고 있었다.

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