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명의 딸
7년의 사랑
2030년 가을, 도쿄.
선우민준은 선우다나카 테크놀로지 CEO로 일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합병 후 1년, 회사는 안정 궤도에 올랐지만, 그의 개인 생활은 여전히 공허했다.
어느 금요일 저녁, 다나카 켄이치 명예회장이 민준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선우 CEO, 오늘은 회사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당신은 몇 살입니까?"
"39세입니다."
"결혼은?"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입니다."
다나카 회장이 한숨을 쉬었다. "일만 하면 안 됩니다. 인생은 균형입니다."
"알고 있습니다만..."
"저에게 딸이 둘 있습니다."
민준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큰딸 레이코는 42세, 작은딸 리나는 37세입니다. 둘 다 제 회사에서 일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레이코 상무와 리나 이사님이시죠."
"레이코는 재무를 담당합니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그녀를 어려워합니다. 너무 엄격하고 차갑다고 하죠."
민준은 레이코를 떠올렸다. 키 큰 체구, 날카로운 눈매, 항상 정장 차림. 회의 때마다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
"리나는 기획을 담당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밝고, 창의적이고, 아름답죠."
민준은 리나도 떠올렸다. 부드러운 미소, 우아한 매너, 항상 직원들에게 친절한 사람.
"왜 갑자기 따님들 이야기를 하십니까?"
다나카 회장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선우 CEO, 당신은 우리 회사를 살렸습니다. 당신은 이제 제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제 딸 중 하나와 결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민준은 숨이 멎었다. "회장님, 그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는 것 압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두 집안이 진정한 가족이 된다면, 이 회사는 영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따님들의 의견은..."
"물론 그들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리나가 당신과 잘 맞을 것 같습니다."
민준은 혼란스러웠다. 결혼은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제안을 받을 줄은 몰랐다.
"회장님, 시간을 주십시오. 생각해보겠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인생은 짧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민준은 회사 복도에서 리나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선우 CEO님." 리나가 밝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리나 이사님."
"잠깐 시간 있으세요? 새 프로젝트 제안서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들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리나는 'AI 기반 고객 경험 개선'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열정적이고, 창의적이고, 설득력 있었다.
"훌륭합니다. 승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 순간, 민준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달았다. 긴 흑발, 우아한 몸짓, 지적인 눈빛.
'다나카 회장님 말씀이... 혹시?'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데, 레이코가 복도에 서 있었다.
"선우 CEO, 재무 보고서 검토 좀 해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들은 레이코의 사무실로 갔다. 레이코는 숫자들을 빠르게 설명했다. 정확하고, 논리적이고, 완벽했다.
"잘 정리되었습니다, 레이코 상무님."
"감사합니다." 레이코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감정이 없었다.
민준은 두 자매를 비교하게 됐다. 리나는 따뜻하고 접근하기 쉬웠다. 레이코는 차갑고 거리감이 있었다.
그날 밤, 민준은 형 태준에게 전화했다.
"형님, 이상한 제안을 받았어요."
"무슨?"
민준은 다나카 회장의 제안을 설명했다.
"오, 그거 좋은데? 결혼도 하고 회사도 안정시키고."
"하지만 형님, 이건 사랑이 아니라 전략결혼이잖아요."
태준이 웃었다. "민준아, 사랑은 천천히 생길 수도 있어. 중요한 것은 존경과 신뢰야.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수 있겠느냐는 거지."
"리나는... 좋은 사람 같아요. 밝고, 똑똑하고."
"그럼 한번 제대로 알아봐. 데이트도 해보고."
민준은 결심했다. 다음날, 그는 리나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리나 이사님, 혹시 금요일 저녁에 시간 있으십니까?"
리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요?"
"예, 프로젝트 이야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알고 싶어서요."
리나의 볼이 붉어졌다. "좋아요."
금요일 저녁, 도쿄 롯폰기의 프렌치 레스토랑.
민준과 리나는 마주 앉았다.
"이 곳 처음이에요?" 리나가 물었다.
"아니요, 가끔 옵니다. 음식이 좋아요."
대화는 자연스러웠다. 리나는 MIT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예술을 사랑했고, 여행을 좋아했다.
"CEO님은 왜 일본에 오셨어요?"
"회사 때문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이유요?"
민준은 리나의 눈을 바라봤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당신 같은."
리나가 미소 지었다.
그날 밤, 민준은 확신했다. '리나다. 그녀와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
다음 주, 민준은 다나카 회장을 찾아갔다.
"회장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오! 정말입니까?"
"예,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리나 이사님과 제대로 교제하고 싶습니다. 급하게 결혼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다나카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1년 정도요."
"좋습니다. 하지만 그 1년 동안 당신이 우리 회사에서 계속 일해주시겠습니까? CEO로서요."
"물론입니다. 어차피 계약 기간이 아직 6년 남았는걸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7년. 당신이 7년간 우리 회사를 이끌어주신다면, 리나와의 결혼을 축복하고, 당신을 제 후계자로 공식 인정하겠습니다."
"7년..."
"너무 깁니까?"
민준은 미소 지었다. "아니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7년도 짧습니다."
그날부터 민준과 리나의 교제가 시작됐다.
주말마다 데이트를 했다. 미술관, 콘서트, 레스토랑.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리나는 완벽했다. 교양 있고, 아름답고, 이해심 많고. 민준은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1년이 흘렀다. 민준은 청혼을 준비했다.
2031년 봄, 도쿄 타워가 보이는 레스토랑.
"리나, 나와 결혼해주겠습니까?"
민준이 반지를 꺼냈다.
리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네, CEO님. 아니, 민준 씨."
두 사람이 포옹했다.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 2031년 12월 1일.
하지만 결혼 일주일 전, 민준은 다나카 저택에 초대됐다.
"민준, 와줘서 고맙네."
다나카 회장과 두 딸이 모여 있었다. 레이코와 리나.
"오늘은 가족 모임입니다. 당신도 곧 가족이 되니까요."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밤 9시, 다나카 회장이 갑자기 말했다.
"민준, 미안하지만... 변경 사항이 있습니다."
"무슨 변경 사항이죠?"
다나카 회장이 레이코를 바라봤다. "레이코가 먼저입니다."
"예?"
"우리 가문의 전통상, 큰딸이 먼저 결혼해야 합니다. 작은딸이 먼저 결혼하면 큰딸이 평생 결혼하지 못한다는 미신이 있습니다."
민준의 머리가 하얘졌다. "그럼..."
"일주일 후, 당신은 레이코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뭐라고요?!"
레이코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감정 없는 얼굴로.
리나가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 이럴 수 없어요!"
"조용히 해, 리나. 이것은 가문의 규칙이다."
민준이 일어섰다. "회장님, 저는 리나를 사랑합니다. 레이코 상무님을 존경하지만,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중에 생깁니다." 다나카 회장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민준, 당신은 선택해야 합니다. 레이코와 결혼하고 이 회사에 남든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든지."
"이건 협박입니다!"
"아니요, 이것은 조건입니다. 당신이 7년 전에 동의한 조건입니다. 제 딸과 결혼하기로 했죠. 어느 딸인지는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민준은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리나만 생각했지만, 계약서에는 "다나카 회장의 딸"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 후 레이코와 결혼하십시오. 그리고 7년 후, 리나와도 결혼할 수 있습니다."
"7년이나 더요?"
"예. 레이코와 7년, 그 다음 리나와 함께. 아니면 지금 떠나십시오."
민준은 리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레이코를 봤다. 그녀는 무표정했지만, 눈가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이 사람도 원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아버지에게 복종하고 있어.'
민준은 결정해야 했다.
떠날 것인가? 리나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이 터무니없는 조건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는 평창 새벽터를 떠올렸다. 하느님의 약속.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어디를 가든."
그는 심호흡했다.
"알겠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리나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요, 민준 씨!"
민준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리나, 나를 믿어요. 7년이 걸려도, 나는 당신과 결혼할 거예요."
"하지만 7년이에요!"
"성경에 나오는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일했어요. 그리고 그 7년이 며칠같이 느껴졌대요. 사랑했으니까."
리나가 울면서 민준을 껴안았다.
레이코는 여전히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일주일 후, 민준과 레이코의 결혼식.
조용한 신사에서의 전통 일본식 결혼식이었다. 하객은 가족과 몇몇 임원들뿐.
민준은 레이코 옆에 섰다. 그녀는 흰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아름다웠지만, 슬퍼 보였다.
서약을 교환할 때, 레이코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선우 CEO."
민준은 놀라 그녀를 봤다.
"이게 제 선택이 아니라는 것, 알아주세요."
"알아요, 레이코 씨. 저도 이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거 알아요."
"당신이 리나를 사랑한다는 것도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민준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리 최선을 다합시다. 7년 동안."
"7년..."
"그리고 서로를 존중합시다. 사랑은 아니어도, 동반자로서."
레이코가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작지만 진실한 미소.
결혼 후, 민준과 레이코는 같은 집에 살았지만, 따로 방을 썼다. 그들은 회사에서 동료로 일했고, 집에서는 조용히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레이코는 생각보다 깊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차가움 뒤에는 상처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예쁘지 않다", "동생만 못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저는 항상 그늘이었어요." 어느 날 밤, 레이코가 고백했다. "리나는 햇빛이었고, 저는 그늘이었어요."
민준은 그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레이코 씨, 당신은 그늘이 아니에요. 당신은... 달빛 같아요.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레이코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신의 지혜, 당신의 능력, 당신의 헌신. 그것들이 이 회사를 지탱하고 있어요."
그날 밤, 레이코는 처음으로 민준 앞에서 울었다.
시간이 흘렀다. 1년, 2년, 3년.
민준은 여전히 리나를 사랑했다. 그들은 회사에서 마주칠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레이코와의 관계도 변했다. 사랑은 아니었지만, 깊은 우정과 신뢰가 생겼다.
7년째 되는 해, 다나카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서, 민준은 레이코와 리나 옆에 섰다.
유언장이 공개됐다.
"민준에게: 너는 약속을 지켰다. 7년을 참았다. 이제 자유다. 레이코와 이혼해도 좋고, 리나와 결혼해도 좋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한다. 내 딸들을 모두 사랑해주길."
민준은 두 자매를 바라봤다.
레이코는 울고 있었다. 리나도 울고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7년 동안, 그는 리나만을 사랑하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레이코도 사랑하게 되었다. 다른 방식으로. 더 깊은 방식으로.
"레이코, 리나."
두 자매가 그를 봤다.
"나는... 나는 당신들 둘 다 사랑합니다. 레이코, 당신은 내 동반자입니다. 리나, 당신은 내 첫사랑입니다. 나는 당신들 모두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레이코가 말했다. "민준, 당신은 자유예요. 리나와 결혼하세요. 저는... 이해해요."
"아니요." 민준이 레이코의 손을 잡았다. "당신을 떠날 수 없어요. 우리는 7년을 함께 했어요. 그게 의미가 없지 않아요."
리나가 다가왔다. "민준 씨... 언니도 사랑해요?"
"예. 다른 방식이지만, 사랑해요."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들은 평화를 느꼈다.
2038년, 선우다나카 테크놀로지는 세계 1위 AI 기업이 되었다.
민준은 회장이 되었다. 레이코는 부회장, 리나는 COO.
세 사람은 완벽한 팀을 이뤘다.
민준은 레이코와 공식적으로 결혼한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리나와도 깊은 유대를 유지했다. 결혼은 아니었지만, 가족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사랑은 하나의 형태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가족도 하나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민준은 평창 새벽터를 찾았다. 레이코와 리나를 데리고.
"여기가 제가 말한 그곳입니다."
두 자매는 바위를 만졌다.
"이곳에서 저는 배웠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하느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은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것을."
레이코가 말했다. "민준, 당신이 저를 사랑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어요. 하지만 존중해줘서 감사해요."
리나가 덧붙였다. "민준 씨, 당신과 결혼하지 못했지만 괜찮아요. 당신이 제 가족이니까요."
세 사람은 바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함께 기도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상한 여정이었지만, 결국 사랑을 배웠습니다. 여러 형태의 사랑을. 감사합니다."
바람이 불었다.
소나무가 춤췄다.
그리고 하늘에서 빛이 내렸다.
세 사람을 축복하듯이.
—끝—
에필로그
민준은 평생 레이코와 결혼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리나와도 평생 가족으로 함께 했다.
세 사람 사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났다.
레이코의 두 아들, 리나의 한 딸.
(법적으로 복잡한 구조였지만, 그들은 해결책을 찾았다.)
아이들은 "세 명의 부모"에게 사랑받으며 자랐다.
그들은 물었다. "왜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과 달라요?"
민준이 대답했다. "사랑은 하나의 형태만 있는 게 아니란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고 돌보는 거야."
레이코가 덧붙였다. "가족은 혈연만이 아니야. 선택이기도 해."
리나가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선택했단다."
아이들은 이해했다.
그리고 그들도 자라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선우민준의 장례식에서 (그는 85세까지 살았다),
레이코와 리나가 나란히 섰다.
두 사람 모두 백발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아했다.
"언니, 우리 잘 살았죠?"
"응, 리나. 우리 잘 살았어."
"민준 씨를 사랑했어요?"
"응. 너만큼은 아니었지만, 내 방식대로 사랑했어."
"저도 언니를 사랑해요."
"나도 너를 사랑해, 리나."
두 자매가 포옹했다.
관 속의 민준은 평화로워 보였다.
그는 자신의 여정을 완성했다.
7년을 참았다.
14년을 사랑했다.
평생을 함께했다.
그리고 이제, 평창 새벽터의 하느님 곁으로 갔다.
"잘했다, 나의 종아.
너는 사랑을 배웠다.
여러 형태의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