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5년, 도쿄.
2075년, 도쿄.
선우민준은 85세가 되었다. 45년을 일본에서 살았다.
선우다나카 테크놀로지는 세계 최고의 AI 기업이 되었고, 그의 재산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민준의 마음 한편에는 늘 그리움이 있었다.
서울. 평창. 선우그룹 본사. 형 태준.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느 날 아침, 민준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평창 새벽터의 바위가 말했다.
"민준아, 이제 돌아갈 때가 됐다."
"어디로요?"
"네 고향으로. 네가 시작한 곳으로."
"하지만 저는 여기 일본에 가족이 있고, 회사가 있고..."
"그들을 데리고 가거라. 네가 모은 것을 모두 가지고 돌아가거라."
민준은 벌떡 일어났다. 새벽 5시였다.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도쿄의 불빛이 반짝였다.
'정말 돌아갈 때가 된 걸까?'
아침 식사 자리에서 민준은 레이코와 리나에게 말했다.
"여보들,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일곱 자녀도 함께 앉아 있었다. 모두 성인이 되었다.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침묵.
레이코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갑자기요?"
"45년간 일본에 있었어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리나가 물었다. "영구적으로요? 아니면 잠깐?"
"영구적으로요. 한국에 본부를 옮기고, 거기서 살고 싶어요."
막내 벤자민(20세)이 흥분해서 말했다. "좋아요! 저 한국 가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장남 르우벤(45세)은 난색을 표했다.
"아버지, 하지만 회사는 어떡하죠? 선우다나카는 일본 회사예요."
"회사를 한국으로 옮기는 게 아니야. 내가 돌아가는 거지."
"그럼 아버지가 CEO 자리를 내놓으신다는 건가요?"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할 것 같구나. 너희 세대에게 넘겨줄 때가 됐어."
다음 날, 민준은 형 태준과 화상 통화를 했다.
"형님, 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태준은 이미 90세였다. 하지만 여전히 정정했다.
"정말이냐? 민준아, 네가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형님, 제가 일본에서 모은 것들을 가지고 갈게요. 그리고 한국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어요."
"무슨 일?"
"AI 윤리 연구소요. 비영리 재단이요. 기술이 인간을 섬기도록 만드는 일이요."
태준의 눈이 빛났다. "좋은 생각이다. 선우그룹이 지원하마."
"감사합니다, 형님."
"민준아, 하지만 조심해라."
"무슨 말씀이세요?"
"다나카 가문의 친척들 말이다. 네가 일본을 떠난다고 하면, 분명 문제를 일으킬 거야. 그들은 네가 회사의 재산을 빼돌린다고 주장할 거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대비하고 있어요."
일주일 후, 민준은 이사회를 소집했다.
"존경하는 이사 여러분, 저는 CEO직을 사임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겠습니다."
이사회가 술렁였다.
다나카 가문 친척 이사 하나가 일어났다.
"선우 회장, 농담이시죠?"
"진심입니다."
"당신이 떠나면 회사는 어떻게 됩니까?"
"제 장남 르우벤이 새로운 CEO가 될 것입니다. 그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르우벤이 일어나 인사했다.
"하지만 당신의 지분은요? 35%의 지분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개인 자산입니다. 제가 관리하겠습니다."
친척 이사가 얼굴을 붉혔다. "당신은 이 회사의 재산을 빼돌리려는 겁니다! 45년간 쌓아온 것을 몽땅 가져가려는 거죠!"
레이코가 벌떡 일어났다.
"무례합니다! 선우 회장님은 정당하게 본인의 지분을 확보하셨습니다. 한 푼도 불법적으로 가져간 게 없습니다!"
"하지만 레이코 씨, 그는 외국인입니다! 일본 회사의 재산을 외국으로 빼가는 겁니다!"
민준이 조용히 말했다.
"제 지분 35%의 절반, 즉 17.5%를 회사에 기부하겠습니다."
이사회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머지 17.5%는 제 자녀들에게 나눠주겠습니다. 그들은 이 회사를 이어갈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빈손으로 한국에 가신다는 겁니까?"
"아니요. 저는 제가 개인적으로 투자한 다른 자산들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사실 민준은 지난 20년간 조용히 글로벌 투자를 해왔다. 아마존, 테슬라, 바이오 기업들. 그 가치만 해도 30조 원이 넘었다.
이사회는 결국 민준의 사임을 승인했다.
민준의 귀국 준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다나카 가문의 친척들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선우민준이 회사 재산을 불법적으로 해외로 반출하려 한다!"
법원은 민준의 자산 일부를 동결했다.
민준은 변호사들과 만났다.
"회장님, 싸우려면 1-2년 걸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다릴 수 없어요."
"그럼?"
민준은 결심했다.
"조용히 떠나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법적으로 문제없는 자산만 가지고, 조용히 출국하겠어요."
그날 밤, 민준은 가족들을 모았다.
"짐을 꾸려라. 최소한만. 우리는 일주일 후 떠난다."
"아버지, 소송은요?" 르우벤이 물었다.
"포기한다. 시간 낭비야. 우리가 정당하게 가져갈 수 있는 것만 가지고 떠나자."
리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이렇게 급하게 떠나면..."
"라반이 양털 깎으러 간 사이에 야곱이 떠난 것처럼, 우리도 조용히 떠나야 해."
레이코가 민준의 손을 잡았다. "당신이 결정한 거라면, 저는 따르겠어요."
일주일 후, 이른 새벽.
선우 가족은 나리타 공항에 모였다.
민준, 레이코, 리나, 그리고 일곱 자녀.
수십 개의 짐가방과 함께.
"다 왔니?" 민준이 확인했다.
"예, 아버지."
르우벤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버지, 정말 괜찮으세요? 이렇게 급하게 떠나서..."
민준은 도쿄의 하늘을 바라봤다.
"괜찮아. 하느님께서 부르신다.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야."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리나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공항 보안 검색대를 지날 때, 그녀의 가방에서 삐삐 소리가 났다.
"부인, 가방을 열어주시겠습니까?"
리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가방 안에는 작은 금색 조각상이 있었다.
다나카 가문의 가보였다. 대대로 내려오는 수호신 조각상.
보안 요원이 물었다. "이게 뭡니까?"
"저... 제 개인 소장품이에요."
"신고하셨습니까? 문화재는 반출 허가가 필요합니다."
민준이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그는 조각상을 보고 얼어붙었다.
'리나가... 왜?'
리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민준 씨. 하지만... 이것은 제 것이기도 해요. 제 아버지의 것이었잖아요."
"하지만 이것은 가문의 가보예요. 레이코 언니의 것이기도 하고..."
레이코가 나섰다. "제 것이에요."
보안 요원이 놀랐다. "부인의 것입니까?"
"예. 제가 여동생에게 보관하라고 맡긴 겁니다. 반출 허가는 여기 있습니다."
레이코가 서류를 내밀었다. 사전에 준비한 것이었다.
보안 요원이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통과하십시오."
비행기 안에서, 민준은 레이코에게 물었다.
"당신이 준비했었군요. 리나가 가져갈 줄 알았어요?"
"응. 리나는 늘 그런 아이야. 감상적이고, 소유욕이 강하지."
"하지만 괜찮았어요? 가문의 가보를..."
레이코가 미소 지었다. "민준, 진짜 가보는 사람이에요. 저 조각상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가보예요."
비행기가 이륙했다.
창밖으로 도쿄가 멀어졌다.
45년을 살았던 도시.
일곱 자녀를 낳고 키운 곳.
재산을 모으고, 회사를 키운 곳.
"안녕, 도쿄." 민준이 중얼거렸다. "고마웠어."
인천공항 도착.
형 태준이 직접 마중 나와 있었다.
90세의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민준아!"
"형님!"
형제가 포옹했다. 두 사람 모두 울었다.
"45년 만이구나, 민준아."
"예, 형님. 다녀왔습니다."
태준은 레이코와 리나, 그리고 일곱 자녀를 바라봤다.
"이 아이들이... 너희 가족이구나."
"예, 형님. 제 가족입니다."
"잘 왔다. 모두 환영한다."
일주일 후, 평창 새벽터.
선우 가족 전체가 그곳에 모였다.
민준은 45년 만에 그 바위 앞에 섰다.
"애들아, 여기가 할아버지가 처음 하느님을 만난 곳이란다."
일곱 자녀가 바위를 만졌다.
"저는 여기서 약속을 받았어. '어디를 가든 함께하겠다'고. '다시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민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45년이 걸렸지만... 하느님은 약속을 지키셨어. 나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셨어."
레이코가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빈손으로 떠났지만,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돌아왔어. 가족, 재산, 경험, 지혜."
리나가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를요."
민준이 웃었다. "그래, 너희들이 가장 큰 선물이지."
그들은 함께 무릎을 꿇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약속을 지켜주셔서.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주셔서."
바람이 불었다.
소나무가 춤췄다.
그리고 그들은 알았다.
여정이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2076년, 서울.
민준은 '선우 AI 윤리 재단'을 설립했다.
자신의 재산 20조 원을 출연했다.
재단의 미션:
"기술이 인간을 섬기게 하라"
형 태준이 명예 이사장이 되었고, 민준이 이사장이 되었다.
일곱 자녀가 이사진에 합류했다.
개소식에서 민준이 말했다.
"저는 45년 동안 일본에서 살았습니다. 재산을 모았습니다.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재산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을."
"이제 저는 이 재단을 통해, 기술이 정말로 인간을 위해 쓰이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박수가 터졌다.
"라반의 집에서 45년을 일했던 야곱처럼, 저도 45년을 타국에서 일했습니다."
"이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모은 것을 나누려 합니다."
기립박수.
민준의 일기, 2076년 12월 31일:
"주님, 한 해를 돌아봅니다.
저는 돌아왔습니다.
45년 만에 고향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함께하셨다는 확신입니다.
도쿄에서도,
인천에서도,
평창에서도,
당신은 함께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압니다.
집은 장소가 아니라 임재입니다.
당신이 계신 곳이 집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를 인도해주셔서.
저를 지켜주셔서.
저를 집으로 데려와주셔서.
이제 남은 생은
나누는 삶이 되게 해주소서.
아멘."
—끝—
에필로그
민준의 장례식 (100세).
평창 새벽터에 여덟 번째 돌이 놓였다.
"귀향의 돌"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집으로의 귀환
2030-2076
나는 떠났다.
빈손으로, 혼자서.
45년을 타국에서 살았다.
일했고, 모았고, 사랑했다.
그리고 돌아왔다.
가족과 함께, 재산을 가지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 함께하셨다는 것.
떠날 때도,
머물 때도,
돌아올 때도.
집은 장소가 아니다.
집은 임재다.
당신도 두려워 말고 떠나라.
하느님이 함께하신다.
그리고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리라.
선우민준"
그 돌은 오늘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떠나도 괜찮다.
하느님이 함께하신다.
그리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