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변론

소송

by 이 범

20년의 변론
2076년 2월, 인천공항 입국 3일 후.
선우민준은 서울 본가에서 짐을 풀고 있었다.
45년 만의 귀향이었다. 레이코, 리나, 일곱 자녀와 함께.
그런데 그날 저녁, 긴급 연락이 왔다.
"회장님, 도쿄에서 다나카 가문 대표단이 한국에 왔습니다."
"뭐라고?"
"소송을 제기하겠답니다. 회장님이 회사 재산을 불법 반출했다고요."
민준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그냥 두지 않는군.'
다음날 오전, 선우그룹 본사 회의실.
다나카 가문의 대표 5명이 앉아 있었다. 그 중심에는 다나카 히로시, 레이코의 먼 친척이자 가문의 실권자였다.
민준이 들어서자, 히로시가 냉소를 지었다.
"선우 씨, 오랜만이군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냐고요? 당신이 우리 가문의 재산을 훔쳐갔잖습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히로시가 서류를 던졌다.
"이것 보십시오. 당신이 가져간 자산 목록입니다. 주식, 부동산, 특허권... 총 20조 엔이 넘습니다!"
"그것은 제 개인 자산입니다."
"개인 자산? 웃기지 마십시오! 당신은 45년간 우리 회사에서 급여를 받으며 모은 겁니다. 그것은 회사의 것입니다!"
민준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는 합법적으로 제 것을 가져왔습니다. 한 푼도 불법적으로 빼돌린 게 없습니다."
"그럼 이건 뭡니까?" 히로시가 또 다른 서류를 내밀었다. "가문의 가보인 금색 수호신상. 당신의 처가 훔쳐갔더군요!"
민준의 얼굴이 굳었다. '리나가 가져간 그것을...'
"그것은 레이코가 허락했습니다."
"레이코는 권한이 없습니다! 그것은 가문 전체의 것입니다!"
히로시가 일어섰다.
"선우 씨, 우리는 국제 소송을 제기할 겁니다. 당신이 불법으로 가져간 모든 것을 돌려받을 때까지."
"하십시오." 민준도 일어섰다. "하지만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

일주일 후, 서울중앙지방법원.
다나카 가문 vs 선우민준 재산 분쟁 조정 청문회.
히로시 측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재판장님, 피고 선우민준은 45년간 다나카 가문의 신뢰를 악용하여 부당하게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피고는 회사 자금으로 개인 투자를 했습니다. 그 수익이 20조 원입니다."
민준의 변호사가 반박했다.
"반론합니다. 선우 회장의 투자는 모두 개인 자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회사 자금을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증명할 수 있습니까?"
"모든 거래 내역이 있습니다."
변호사가 두꺼운 서류 뭉치를 제출했다.
판사가 서류를 검토했다. 한참 후,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됩니다. 피고의 투자는 모두 합법적입니다."
히로시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재판장님! 피고는 회사 기밀을 이용했습니다! 내부 정보로 투자했습니다!"
민준이 벌떡 일어섰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판사가 말했다. "피고, 진술하시겠습니까?"
"예, 재판장님."
민준이 증인석에 섰다.

"재판장님, 그리고 방청석의 여러분."
민준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저는 20년 전, 정확히는 2055년에 다나카 가문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직책도, 재산도, 권한도."
히로시가 비웃었다. "그래서 우리 것을 훔친 거죠?"
"조용히 하십시오." 판사가 제지했다.
민준이 계속했다.
"20년간 저는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회사가 파산 직전일 때, 저는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미국에서 3년을 고생하며 현지 법인을 키웠습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일했습니다."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다나카 테크놀로지와의 합병을 성사시켰습니다. 불가능하다던 일을 해냈습니다."
레이코가 방청석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다나카 AI 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제 개인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회사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 연구소가 성공하자, 저는 제 지분을 합법적으로 현금화했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글로벌 기업에 투자했습니다."
"모든 것이 합법적이었습니다. 투명했습니다."
민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다나카 가문은 무엇을 했습니까?"
히로시가 벌떡 일어났다. "무슨 소리를!"
"제 급여를 10번이나 삭감했습니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처음에 약속한 연봉은 5억 엔이었습니다. 하지만 매년 핑계를 대며 줄였습니다."
"회사가 어렵다, 경기가 나쁘다, 다른 임원들과 형평성이... 온갖 이유를 들었습니다."
"결국 제 연봉은 2억 엔으로 줄었습니다. 60%나 삭감된 겁니다!"
민준의 변호사가 급여 명세서를 제출했다.
판사가 확인했다. "사실입니다."
히로시가 변명했다. "그건... 회사 사정이..."
"회사 사정?" 민준이 웃었다. "제가 CEO로 있는 동안 매출은 10배 증가했습니다! 이익은 20배 늘었습니다! 무슨 회사 사정입니까?"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그뿐입니까?"
민준이 계속했다.
"제가 레이코와 결혼할 때, 14년을 일하라고 했습니다. 첫 7년은 레이코를 위해, 다음 7년은 리나를 위해."
"저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14년을 참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 20년을 더 일했습니다. 총 34년입니다!"
레이코가 눈물을 흘렸다.
"34년 동안 저는 무엇을 했습니까?"
민준이 손가락을 꼽았다.
"회사를 파산에서 구했습니다."
"매출을 100배 늘렸습니다."
"직원을 200명에서 5,000명으로 늘렸습니다."
"세계 1위 AI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나카 가문은 저를 어떻게 대했습니까?"
민순의 목소리가 떨렸다.
"외부인 취급했습니다. 한국인이라고 무시했습니다. 중요한 결정에서 배제했습니다."
"낮에는 더위 속에서 일했고, 밤에는 걱정으로 잠을 못 잤습니다."
"출장으로 집을 비울 때면, 아이들 얼굴도 제대로 못 봤습니다."
일곱 자녀가 방청석에서 울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민준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제 아버지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께서 제 편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제 고통을 보셨습니다. 제 수고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제 것을 모으는 지혜를."
민준이 히로시를 똑바로 봤다.
"만약 하느님께서 제 편이 아니셨다면, 다나카 가문은 저를 빈손으로 쫓아냈을 겁니다."
"34년을 바쳐도, 한 푼 못 받고 쫓겨났을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정의로우십니다. 진실을 아십니다."

법정이 숙연해졌다.
판사가 히로시에게 물었다.
"원고 측, 반박하시겠습니까?"
히로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판사가 판결했다.
"이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합니다."
"피고 선우민준이 취득한 재산은 모두 합법적이고 정당합니다."
"원고 다나카 가문의 청구를 기각합니다."
"또한 원고는 피고에게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10억 원을 지급하라."
쾅!
방청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레이코와 리나가 달려와 민준을 껴안았다.
일곱 자녀도 함께 울었다.
히로시는 고개를 떨구고 법정을 나갔다.
그날 밤, 평창 새벽터.
민준은 혼자 그곳을 찾았다.
바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34년간의 고통을 보셨습니다."
"제 억울함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시비를 가려주셨습니다."
민준은 눈물을 흘렸다.
"저는 빈손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함께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저를 높이셨습니다."
"사람들이 제 것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지켜주셨습니다."
바람이 불었다.
"이제 저는 압니다."
"싸움은 제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입니다."
"변론도 제가 한 게 아니라 당신이 하신 겁니다."
"승리도 제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입니다."
소나무가 춤췄다.
민준은 배낭에서 법원 판결문을 꺼냈다.
바위 옆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이것을 여기 둡니다. 제 20년 변론의 기록을."
"후세 사람들이 보게 하소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느님께서 시비를 가려주신다는 것을."
그날 밤, 별이 쏟아졌다.
민준은 평화를 느꼈다.
싸움이 끝났다.
진실이 승리했다.
정의가 이겼다.
일주일 후, 다나카 히로시가 민준을 찾아왔다.
"선우 회장님."
"무슨 일입니까?"
히로시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민준은 놀랐다.
"판결문을 읽고, 당신의 34년을 돌아봤습니다. 우리 가문이... 정말 잘못했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주십시오."
"뭐라고요?"
"회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없으니 방향을 잃었습니다. 제발 돌아와 주십시오."
민준은 잠시 생각했다.
"아니요."
"예?"
"저는 이제 한국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겁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신 제안이 있습니다."
민준이 서류를 꺼냈다.
"제 아들 르우벤이 CEO를 맡고 있죠? 그를 전적으로 믿으십시오. 간섭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을 존중하십시오. 그들이 회사의 진짜 주인입니다."
히로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레이코와 리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그들은 제 가족입니다."
"약속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악수했다.
민준의 일기, 2076년 3월 15일:
"34년의 여정이 끝났습니다.
아니, 끝난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저는 변론했습니다.
제 20년, 아니 34년을 변론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변론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너는 정당하다. 네가 옳다.'
이제 저는 자유입니다.
과거에서 자유입니다.
억울함에서 자유입니다.
분노에서 자유입니다.
이제 저는 용서합니다.
다나카 가문을 용서합니다.
34년의 고통을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 고통을 통해
저를 성장시키셨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제 변론을 들어주셔서.
제 시비를 가려주셔서.
이제 저는 앞으로 갑니다.
새로운 소명으로.
아멘."
—끝—
에필로그
민준의 장례식 때, 아홉 번째 돌이 평창 새벽터에 놓였다.
"20년 변론의 돌"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정의의 변론
2055-2076
나는 34년을 일했다.
밤낮으로, 더위와 추위 속에서.
사람들은 나를 무시했다.
내 급여를 10번이나 깎았다.
내 것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참았다.
하느님께서 보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마침내 심판의 날이 왔다.
나는 변론했다.
34년의 수고를, 고통을, 헌신을.
그리고 하느님께서 응답하셨다.
'너는 정당하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당신에게:
참으십시오.
하느님께서 보십니다.
때가 되면 시비를 가려주십니다.
그리고 그때
당신은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선우민준"
그 돌은 오늘도
억울함을 품은 모든 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참으십시오.
하느님께서 보십니다.
반드시 정의가 이깁니다."

월, 화, 수,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