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시작점
2076년 4월, 서울.
법정 승리 후 한 달이 지났다.
선우민준은 '선우 AI 윤리 재단' 설립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다나카 가문과의 관계가 여전히 껄끄러웠다.
법적으로는 이겼지만,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뜻밖의 연락이 왔다.
"회장님, 다나카 히로시 씨가 직접 방문하고 싶다고 합니다."
"또 무슨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온다고 합니다."
민준은 레이코와 리나에게 알렸다.
"히로시가 온답니다. 가족들과 함께."
레이코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또 문제를 일으키려는 건 아닐까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만나봐야죠."
사흘 후, 인천공항.
다나카 히로시가 일본에서 왔다. 가족 15명과 함께.
민준은 선우그룹 본사 대회의실을 준비했다.
히로시가 들어섰다. 피곤해 보였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선우 회장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히로시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이제 그만 끝내고 싶습니다."
"끝낸다니요?"
"우리 사이의 갈등을요. 법정에서 졌습니다. 당신이 옳았습니다. 그것을 인정합니다."
민준은 조용히 들었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저는 여전히 걱정됩니다."
"무엇이 걱정입니까?"
히로시가 레이코를 바라봤다.
"레이코와 리나는 제 조카들입니다. 혈육입니다. 당신이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 걱정됩니다."
레이코가 일어섰다. "오빠, 민준은 저희를 잘 대해줘요."
"알아. 하지만..." 히로시가 말을 멈췄다. "만약 당신이 다른 여자를 만나면? 레이코와 리나를 버리면?"
민준이 답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보장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히로시가 고개를 저었다.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확실한 약속이 필요합니다."
민준은 잠시 생각했다.
'히로시는 진심이다. 그는 가족을 지키려는 거다.'
"좋습니다. 어떤 약속을 원하십니까?"
히로시가 서류를 꺼냈다.
"계약서입니다. 당신과 우리 다나카 가문 사이의."
민준이 서류를 받아 읽었다.
주요 내용:
선우민준은 다나카 레이코와 리나를 평생 존중하고 보호한다
다나카 가문은 선우민준의 사업에 더 이상 간섭하지 않는다
양측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이 계약은 양측의 후손들에게도 유효하다
"계약을 문서화하고 싶은 겁니까?"
"예. 그래야 마음이 놓입니다."
민준은 레이코와 리나를 바라봤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이 계약을 특별한 곳에서 맺고 싶습니다."
"어디입니까?"
"평창. 제가 처음 하느님을 만난 곳입니다."
일주일 후, 평창 새벽터.
양측 가족 30명이 모였다.
선우 가족: 민준, 레이코, 리나, 일곱 자녀
다나카 가족: 히로시와 그의 가족 15명
새벽터의 바위 앞에서 민준이 말했다.
"이곳은 제게 특별한 곳입니다. 45년 전, 저는 여기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히로시가 바위를 바라봤다. "신성한 곳이군요."
"예. 그래서 여기서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하느님을 증인으로."
민준은 큰 돌 하나를 들어 바위 옆에 세웠다.
"이것이 기념 기둥입니다. 우리 계약의 증표입니다."
그리고 양측 가족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돌을 모아주십시오."
30명이 움직였다. 산에서 돌을 주워 왔다.
한 시간 후, 큰 돌무더기가 만들어졌다.
"이 돌무더기를 '갈엣'이라 부르겠습니다. '증인의 돌무더기'라는 뜻입니다."
히로시가 물었다. "일본어로는 뭐라 부르면 좋을까요?"
"'아카시노 이시즈카'는 어떻습니까? 같은 뜻입니다."
"좋습니다."
민준과 히로시가 돌무더기 앞에 섰다.
민준이 먼저 선언했다.
"오늘 이 돌무더기가 저와 다나카 가문 사이의 증인입니다."
히로시가 이었다.
"우리가 서로 볼 수 없는 동안, 하느님께서 우리를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민준이 계속했다.
"저는 맹세합니다. 레이코와 리나를 구박하지 않을 것을, 그들을 두고 다른 여자를 맞이하지 않을 것을."
레이코와 리나가 눈물을 흘렸다.
"우리 곁에 아무도 없더라도, 하느님께서 저와 당신 사이의 증인이십니다."
히로시가 맹세했다.
"저도 맹세합니다. 선우 회장과 그의 가족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것을, 그들의 사업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이 돌무더기를 보십시오. 이 기념 기둥을 보십시오."
"제가 이 돌무더기를 넘어 당신 쪽으로 나쁜 뜻을 품고 가지 않을 것이며, 당신도 이 돌무더기를 넘어 저희 쪽으로 나쁜 뜻을 품고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 돌무더기가 증인이고, 이 기념 기둥이 증인입니다."
민준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께서 우리 사이의 심판자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양측이 함께 무릎을 꿇었다.
30명 모두가 돌무더기 앞에서 기도했다.
기도 후, 민준이 준비한 음식이 펼쳐졌다.
한식과 일식이 섞인 연회였다.
"자, 이제 함께 먹읍시다. 우리는 이제 적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양측이 돌무더기 위에서 음식을 나눴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하지만 점점 분위기가 풀렸다.
아이들이 함께 뛰어놀았다.
어른들이 웃으며 대화했다.
히로시가 민준에게 다가왔다.
"선우 회장님, 고맙습니다."
"무엇이요?"
"이렇게 아름다운 방법을 생각해내 주셔서요. 법정에서 싸우는 대신, 이렇게 평화롭게 끝낼 수 있어서요."
민준이 미소 지었다.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야곱과 라반이 이렇게 평화의 경계선을 만들었죠."
"지혜롭습니다."
"지혜는 하느님께서 주신 겁니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민준이 모두를 모았다.
"이 돌무더기에 이름을 새기겠습니다."
그는 큰 돌판에 조각을 시작했다.
"갈엣 - 증인의 돌무더기
미츠파 - 하느님께서 보시는 곳
2076년 4월 30일
선우 가문과 다나카 가문이
이곳에서 평화의 계약을 맺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하느님을 증인으로 삼아
평화롭게 살기를 약속하다"
모두가 박수를 쳤다.
그날 밤, 양측 가족은 새벽터에서 야영을 했다.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우고, 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민준과 히로시가 모닥불 앞에 앉았다.
"선우 회장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당신을 미워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 가문의 것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틀렸습니다."
"예?"
"당신은 빼앗은 게 아니라, 정당하게 얻으신 겁니다. 34년의 수고로."
민준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오늘 깨달았습니다. 당신은 단순히 사업가가 아니라, 신앙인이라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 돌무더기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을 진심으로 믿는 분이라는 것을."
히로시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도 불교 신자입니다만, 오늘 당신의 하느님을 느꼈습니다. 이곳에서."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하느님입니다."
"그렇군요."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히로시가 손을 내밀었다.
"친구가 됩시다."
민준이 그 손을 잡았다.
"친구가 됩시다."
다음날 아침, 다나카 가족이 일본으로 떠났다.
작별 인사를 나누며 히로시가 말했다.
"이 돌무더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저도요."
"그리고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저도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레이코와 리나를 평생 사랑하고 보호하겠습니다."
히로시가 차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며 손을 흔들었다.
민준도 손을 흔들었다.
차가 사라질 때까지.
그날 저녁, 민준은 혼자 돌무더기 앞에 섰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갈등을 평화로 바꿔주셔서."
"적을 친구로 만들어주셔서."
그는 돌무더기를 쓰다듬었다.
"이 돌들이 증인입니다."
"당신께서 우리 사이를 보신다는 것을."
"우리가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을."
민준은 평화를 느꼈다.
진정한 평화.
승리가 아니라 화해로 얻은 평화.
민준의 일기, 2076년 5월 1일:
"오늘 갈등이 끝났습니다.
34년의 긴장이 풀렸습니다.
법정에서 이긴 것보다
오늘 평화를 얻은 것이 더 큽니다.
돌무더기를 쌓았습니다.
경계선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리의 벽이 아니라
존중의 표시입니다.
'여기까지는 내 것, 저기부터는 네 것'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족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사이를 보십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저는 진정으로 자유입니다.
과거에서 자유.
분노에서 자유.
두려움에서 자유.
갈엣.
미츠파.
증인의 돌무더기.
하느님께서 보시는 곳.
감사합니다, 주님.
아멘."
—끝—
에필로그
10년 후, 2086년.
평창 새벽터는 이제 유명한 명소가 되었다.
특히 '갈엣 돌무더기'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갈등을 겪는 가족들.
싸우는 비즈니스 파트너들.
분쟁 중인 이웃들.
그들은 이곳에 와서 돌을 쌓았다.
평화의 돌무더기를.
새벽터에는 이제 열 번째 돌이 놓였다.
"평화의 경계선"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갈등의 해결
2076.4.30
우리는 싸웠다.
법정에서, 말로, 감정으로.
하지만 하느님께서
더 좋은 길을 보여주셨다.
갈엣 - 증인의 돌무더기
미츠파 - 하느님께서 보시는 곳
우리는 경계선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벽이 아니라
존중의 표시다.
'여기까지는 네 것,
저기부터는 내 것,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다'
갈등하는 당신에게:
싸우지 마십시오.
경계선을 만드십시오.
존중하십시오.
하느님을 증인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평화가 옵니다.
선우민준 & 다나카 히로시"
그 돌은 오늘도
갈등하는 모든 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싸우지 마십시오.
경계선을 만드십시오.
하느님께서 보십니다."
현재, 새벽터를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작은 돌을 가져와
갈엣 돌무더기에 더한다.
그 돌무더기는 계속 커진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만큼.
그리고 그 위에는 늘
누군가가 앉아 식사를 나눈다.
적이었던 사람들이
이제 친구가 되어.
갈엣.
미츠파.
증인의 돌무더기.
하느님께서 보시는 곳.
평화의 시작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