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헤어짐
2077년 1월 16일, 새벽.
형제의 재회 다음날.
선우그룹 본사 회장실에서 형 태준과 민준이 마주 앉았다.
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민준아, 이제 함께 가자."
"예?"
"나와 함께 선우그룹을 이끌자. 공동 회장 체제로. 우리 형제가 함께."
민준은 잠시 침묵했다.
"형님..."
"왜? 싫으냐?"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민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형님, 저는 다른 길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태준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소리냐?"
"형님은 선우그룹을 이끄셔야 합니다. 그것이 형님의 길입니다."
"그럼 너는?"
"저는... 제가 세운 'AI 윤리 재단'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태준이 일어섰다. "민준아, 너는 부회장이다. 아니, 이제 공동 회장이 되어야 한다. 왜 거부하느냐?"
민준도 일어났다.
"형님, 제 말을 들어주세요."
"말해봐라."
"저는 프니엘에서 깨달았습니다. 제 소명이 무엇인지."
"소명?"
"저는 더 이상 비즈니스맨이 아닙니다. 저는 이제...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태준이 당황했다. "선생님?"
"예. AI 윤리를 가르치는 사람. 기술이 인간을 섬기도록 만드는 사람. 젊은 세대를 키우는 사람."
"하지만 선우그룹은?"
"형님께서 이끄십시오. 그리고 제 아들 르우벤이 돕도록 하겠습니다."
태준은 난색을 표했다.
"민준아, 우리 함께 가야 하지 않겠니? 어제 그렇게 감동적으로 화해했는데..."
"형님, 함께 간다는 것이 같은 길을 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민준이 형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같은 목적지를 향합니다.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미래."
태준은 한참을 생각했다.
"민준아, 너는 아직 약하다."
"예?"
"85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아. 그리고 네 가족들... 레이코, 리나, 일곱 자녀. 그들은 아직 정착하지 못했어."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형님. 저희는 약합니다. 아이들도 어리고, 가족 구조도 복잡하고."
"그렇다면 내가 사람들을 보내주마. 너를 도울 수 있게."
"아닙니다, 형님."
"왜?"
"저희는 천천히 가야 합니다. 제 속도로, 제 가족의 속도로."
민준이 설명했다.
"형님께서 앞장서시면, 저는 형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저는 제 길을, 제 속도로 가야 합니다."
태준이 한숨을 쉬었다.
"그럼 적어도 내 사람들 몇 명을 데려가라. 너를 보호하고 도울 수 있게."
"형님, 그럴 필요 없습니다. 형님께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셨으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형님, 저를 믿어주세요.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십니다."
태준은 동생을 오래 바라봤다.
"너... 정말 변했구나."
"예, 형님. 프니엘에서 변했습니다."
그날 오후, 태준은 선우그룹으로 돌아갔다.
400명의 사람들과 함께.
민준은 가족들과 함께 남았다.
레이코가 물었다. "정말 형님과 함께 안 가세요?"
"응. 우리는 다른 길을 가야 해."
"왜요?"
민준이 가족들을 모았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어디로 가는데요?" 리나가 물었다.
"수콧으로."
"수콧이 어디예요?"
"강원도 춘천입니다. 제가 땅을 샀어요. 거기에 우리 집을 짓고, 재단 본부도 만들 겁니다."
일곱 자녀가 웅성거렸다.
"서울을 떠나요?"
"도쿄도 아니고, 서울도 아니고, 춘천이요?"
민준이 미소 지었다.
"우리는 조용한 곳에서 살아야 해.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평화로운 곳에서."
"왜요?"
"우리 가족은 약하니까. 새끼 딸린 짐승들처럼. 천천히, 조심스럽게 가야 해."
르우벤이 물었다. "아버지, 그럼 선우그룹은요?"
"너희 삼촌 태준 회장님께서 이끄실 거야. 그리고 르우벤, 네가 가서 도와드려라."
"저요?"
"응. 너는 가장 책임감 있는 아들이야. 네가 형님을 도와드려."
르우벤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2077년 2월.
민준과 가족들은 춘천으로 이사했다.
소양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그곳에 집을 지었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따뜻했다.
레이코와 리나, 일곱 자녀가 함께 살 수 있는 집.
그리고 그 옆에 작은 건물을 지었다.
'선우 AI 윤리 재단 본부'
초막 같은 건물이었다.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미 있었다.
개소식 날, 태준이 찾아왔다.
"민준아, 이게 뭐냐? 재단 본부가 이렇게 초라해도 되느냐?"
민준이 웃었다. "형님, 이것은 '수콧'입니다."
"수콧?"
"히브리어로 '초막'이라는 뜻이에요. 야곱이 에사우와 헤어진 후 처음 정착한 곳의 이름이죠."
"왜 초막?"
"화려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내용이지, 건물이 아니니까요."
태준이 건물을 둘러봤다.
작은 강의실, 도서관, 연구실.
소박했지만 필요한 것은 다 있었다.
"민준아, 너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왜요?"
"35조 원의 재산이 있으면서, 이렇게 소박하게 살다니."
민준이 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형님, 저는 이제 알았어요.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의미에서 온다는 것을."
그날 밤, 형제는 소양호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민준아, 정말 후회 없니?"
"무엇을요?"
"선우그룹 회장 자리를 포기한 것."
민준은 미소 지었다.
"형님, 저는 더 큰 것을 얻었어요."
"뭔데?"
"자유요. 저는 이제 제가 원하는 삶을 살아요. 누군가의 기대가 아니라, 제 소명을 따라."
태준이 동생을 바라봤다.
"너... 행복해 보인다."
"행복합니다, 형님."
"그럼 됐다."
태준이 일어섰다.
"나는 내일 서울로 돌아간다. 회사 일이 많아."
"예, 형님. 조심히 가세요."
"너도... 잘 지내라. 그리고 가끔 서울에 올라와라. 보고 싶을 테니까."
"그러겠습니다, 형님."
형제가 포옹했다.
"사랑한다, 민준아."
"저도 사랑합니다, 형님."
태준이 떠났다.
민준은 홀로 호수를 바라봤다.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새로운 삶이.'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선우 AI 윤리 재단은 작지만 영향력 있는 기관이 되었다.
매년 100명의 젊은 엔지니어들이 그곳에서 교육받았다.
"기술은 인간을 섬겨야 한다"는 철학을.
민준은 직접 강의했다.
88세의 노인이, 절뚝거리며, 하지만 열정적으로.
학생들은 그를 사랑했다.
"선우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더 이상 "회장님"이 아니었다.
레이코와 리나는 재단의 운영을 도왔다.
일곱 자녀 중:
르우벤은 선우그룹에서 태준을 보좌했다
시메온은 의사가 되어 춘천 병원에서 일했다
레위는 목사가 되어 지역 교회를 섬겼다
유다는 예술가가 되어 춘천에서 작업했다
디나는 사회복지사가 되어 약자를 도왔다
요셉은 아버지를 도와 재단에서 일했다
벤자민은 대학생으로 아직 길을 찾고 있었다
각자 자기 길을 갔다.
하지만 명절이 되면 모두 춘천 '수콧'에 모였다.
2080년 추석.
가족 모임.
민준은 91세가 되었다.
형 태준은 94세.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하지만 여전히 선우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형제만의 시간.
"민준아."
"예, 형님."
"너... 후회 안 하니?"
"뭘요?"
"이렇게 조용히 사는 것. 화려한 삶을 포기한 것."
민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소양호의 석양.
"형님, 저는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정말?"
"정말입니다. 이것이 제 길이었어요."
태준이 동생의 손을 잡았다.
"민준아, 너는 현명했어."
"예?"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지. 나는 비즈니스, 너는 교육. 함께 가지 않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형제야."
"맞습니다, 형님."
"그리고 각자의 길에서 행복했어."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우리가 3년 전에 헤어진 것은 이별이 아니었어요."
"그럼?"
"각자의 소명을 따르는 것이었어요. 형님은 형님의 길을, 저는 제 길을."
"하지만 목적지는 같았지."
"예, 더 나은 세상."
두 형제가 미소 지었다.
그날 밤, 민준은 일기를 썼다.
"3년 전, 저는 형님과 헤어졌습니다.
함께 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감동적으로 화해했는데, 왜 떨어져?'
하지만 저는 알았습니다.
함께 간다는 것이
같은 길을 간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갑니다.
형님은 도시에서 비즈니스로.
저는 시골에서 교육으로.
둘 다 옳습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수콧.
초막.
화려하지 않지만 의미 있는 곳.
여기가 제 집입니다.
여기가 제 소명의 현장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제게 제 길을 보여주셔서.
아멘."
—끝—
에필로그
태준은 2082년, 96세에 세상을 떠났다.
민준은 2092년, 100세에 세상을 떠났다.
두 형제의 장례식은 각각 다른 곳에서 열렸다.
태준은 서울 선우그룹 본사 앞 광장에서.
수만 명이 모였다.
화려했다.
민준은 춘천 수콧 재단 앞 잔디밭에서.
수백 명이 모였다.
소박했다.
하지만 둘 다 아름다웠다.
각자의 방식으로.
평창 새벽터에 두 개의 돌이 나란히 세워졌다.
열네 번째 돌: "태준의 길"
열다섯 번째 돌: "민준의 길"
태준의 돌:
"도시의 길
1986-2082
나는 도시에서 살았다.
비즈니스로 세상을 섬겼다.
화려했지만 의미 있었다.
동생 민준과 다른 길을 갔지만,
같은 목적지를 향했다.
더 나은 세상.
선우태준"
민준의 돌:
"초막의 길
1992-2092
나는 시골에서 살았다.
교육으로 세상을 섬겼다.
소박했지만 의미 있었다.
형님 태준과 다른 길을 갔지만,
같은 목적지를 향했다.
더 나은 세상.
수콧 - 초막.
화려함보다 의미.
크기보다 내용.
각자의 길을 가라.
하지만 같은 목적지를 향하라.
선우민준
'사랑받는 자'"
그 돌들은 오늘도
갈림길에 선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함께 간다는 것이
같은 길을 간다는 뜻은 아니다.
각자의 길을 가라.
각자의 속도로.
하지만 같은 목적지를 향하라.
그것이 진정한 동행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용기를 얻는다.
자신만의 길을 갈 용기.
화려하지 않아도,
남들과 다르더라도,
자신의 소명을 따를 용기.
수콧.
초막.
작지만 의미 있는 삶.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