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나의 상처

스콧의 삶

by 이 범

2078년 봄, 춘천 수콧.

선우민준의 딸 디나는 23세였다.레이코의 막내딸.오빠들과 달리 디나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았고, 세상을 알고 싶어 했다.수콧의 삶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디나에게는 답답했다.

"아버지, 저 서울에 가고 싶어요."

"왜?"

"친구들도 만나고, 세상 구경도 하고 싶어요. 여기는 너무 조용해요."

민준은 잠시 생각했다.

"조심해야 한다."

"알아요, 아버지. 저 이제 어른이에요."

"그래도 세상은 위험하다."

"아버지는 너무 걱정이 많아요."

레이코가 옆에서 말했다. "민준, 아이가 세상을 봐야죠. 평생 수콧에만 있을 순 없잖아요."

"...알았어. 하지만 조심해야 해."

"감사해요, 아버지!"

디나는 서울로 갔다.

서울의 삶은 화려했다. 수콧과는 완전히 달랐다.

친구들과 카페를 다니고, 전시회를 보고, 파티에 참석했다.

어느 날, 한 파티에서 남자를 만났다.

강석환. 28세. 대기업 임원의 아들. 잘생기고, 말도 잘하고, 세련됐다.

"선우 디나 씨죠? 선우민준 회장님 딸이요?"

"예."

"와, 정말 아름다우시다."

디나는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들었다.

수콧에서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화를 나눴다. 석환은 재미있고 매력적이었다.

"오늘 제 집에서 다른 친구들이랑 2차 할건데, 오실래요?"

디나는 망설였다.

'아버지가 조심하라고 했는데...'

"괜찮아요. 다들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래, 나도 이제 어른이잖아.'

"좋아요."

그날 밤.

디나는 알 수 없는 일을 당했다.

음료에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디나는 모르는 방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았다.

몸이 떨렸다.

눈물이 쏟아졌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석환이 들어왔다.
"잘 잤어?"
디나는 말을 못 했다.
"너 정말 예쁘더라. 나 너한테 반했어."
"저... 저 가야 해요."
"왜? 우리 이제 사귀는 거 아냐?"
"무슨 소리예요? 당신이 저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석환이 당황했다. "잠깐, 진정해. 너도 좋아했잖아."
"아니에요! 저는... 저는 기억도 못해요!"
"어, 그건..."
디나는 가방을 들고 뛰쳐나왔다.
길에서 택시를 잡았다.
춘천으로 돌아갔다.
수콧.
디나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문 앞에서 멈췄다.
'아버지한테 뭐라고 하지? 오빠들은? 엄마는?'
수치심이 밀려왔다.
'내 잘못이야. 내가 조심했어야 했어. 내가 따라갔잖아.'
디나는 몇 시간을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결국 들어갔다.
레이코가 보였다.
"디나야, 왜 이렇게 늦었니? 전화도 안 받고..."
레이코가 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알았다.
"디나야."
"엄마..."
"무슨 일이 있었니?"
"엄마... 저..."
디나가 무너졌다.
레이코가 딸을 껴안았다.
한참 울고 난 후, 디나가 말했다.
"엄마, 아버지한테는 말하지 마요."
"왜?"
"아버지가 걱정할 거잖아요. 그리고... 오빠들이 알면 난리 날 거예요."
"디나야, 이건 숨길 수 없어."
"제발요, 엄마. 저만 알고 있게 해주세요."
레이코는 딸을 바라봤다.
상처받고, 부끄럽고, 두려워하는 딸을.
"알았어. 하지만 나와 함께 병원에 가야 해. 오늘."
"병원이요?"
"응. 먼저 네 몸을 확인해야 해."


레이코는 디나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의사가 검사를 하고 말했다.
"음료에 수면제 성분이 검출됩니다. 이것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경찰에 신고하셔야 합니다."
"경찰이요?" 디나가 떨었다.
"예. 이것은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피해자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레이코는 고민했다.
'민준에게 말해야 할까? 디나가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날 밤, 민준이 레이코의 표정을 봤다.
"여보, 무슨 일 있어요?"
"..."
"레이코,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요?"
레이코는 눈물을 흘렸다.
"민준..."
"말해요."
레이코가 모든 것을 말했다.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앉아서 들었다.
레이코가 다 말하고 나서 물었다.
"민준, 괜찮아요?"
여전히 침묵.
"아들들한테 말할 거예요? 르우벤이 알면..."
"잠깐만요."
민준이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레이코는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
방에서 나온 민준의 눈이 빨갰다.
"레이코, 아들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립시다."
"왜요?"
"이것은 신중하게 처리해야 해요. 감정적으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하지만..."
"디나를 부탁합니다. 제가 아들들을 기다리겠습니다."
며칠 후, 르우벤이 서울에서 왔다.
시메온도, 레위도, 유다도.
형제들이 모였다.
민준은 아들들에게 말했다.
조용히. 차분하게.
하지만 아들들의 반응은 달랐다.
"뭐라고요?!"
르우벤이 주먹을 쥐었다.
"그 자식 이름이 뭡니까?!"
시메온이 벌떡 일어섰다.
"가만두면 안 됩니다!"
레위도 분노했다.
"아버지, 왜 이제야 말씀하셨어요?"
민준이 손을 들었다.
"조용히 해라."
"아버지!"
"앉아라."
아들들이 마지못해 앉았다.
"나도 화가 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중해야 합니다."
"신중이요? 디나가 저런 일을 당했는데!"
"알아. 하지만 감정으로 움직이면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럼 아버지는 아무것도 안 하실 겁니까?"
"아니요. 하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민준은 디나를 불렀다.
"디나야."
"아버지..."
"아버지가 알게 됐어. 미안하다. 엄마가 말해줄 수밖에 없었어."
"저... 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조심했어야 했는데..."
"디나야."
민준이 딸의 손을 잡았다.
"이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제가 따라갔잖아요."
"그래도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따라간 것과 그가 나쁜 짓을 한 것은 다른 거야."
디나가 울었다.
"아버지, 저 어떡해요? 이제 어떻게 살아요?"
민준은 딸을 껴안았다.
"이 아버지가 있다. 엄마가 있다. 오빠들이 있다."
"하지만 오빠들이 알면 무슨 짓을 할지..."
"걱정마. 아버지가 오빠들을 잡을 거야."
민준은 아들들에게 돌아왔다.
"아들들아, 우리는 법으로 싸울 겁니다."
"법이요?"
"예. 강석환을 경찰에 고발할 겁니다. 디나의 음료에 수면제를 탄 것, 그것이 증거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그 집안이 대기업 집안이에요. 법으로 싸우면 덮어버릴 수도..."
"모든 것을 공개할 겁니다."
아들들이 놀랐다.
"공개요?"
"예. 선우 AI 윤리 재단의 이름으로 공개할 겁니다. 권력이 아무리 강해도, 진실 앞에서는 무너집니다."
르우벤이 말했다. "아버지, 그러면 디나가 더 힘들어질 수 있어요. 공개되면..."
"디나에게 물어봤어."
모두가 멈췄다.
"디나는... 동의했어요?"
"응. 디나가 말했어. '나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면 안 된다'고."
아들들이 숙연해졌다.
"디나가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도 용기를 내야 합니다."
민준이 일어섰다.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해라."
"무엇입니까?"
"우리는 폭력으로 복수하지 않는다. 분노로 행동하지 않는다."
"아버지..."
"들어라. 복수는 우리 것이 아니야. 정의를 세우는 것이 우리 역할입니다."
"..."
"디나를 위한 정의를, 법으로, 진실로, 올바르게 세울 겁니다."
아들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날 밤, 민준은 평창 새벽터를 찾았다.
"하느님, 제 딸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바람이 불었다.
"저는 분노합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말씀하십니다. '복수는 내 것'이라고."
"그래서 저는 법으로, 진실로 싸울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드립니다."
민준이 무릎을 꿇었다.
"제 딸 디나를 치유해주십시오. 그 상처가 그녀를 평생 짓누르지 않게 해주십시오."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제 아들들의 분노를 다스려 주십시오. 그들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소나무가 흔들렸다.
"이 아픔도... 당신의 계획 안에 있습니까?"
침묵.
"모르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신뢰합니다."
"제 딸을, 제 가족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
민준의 일기, 2078년 4월 15일:
"오늘 제 딸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들들이 올 때까지.
이것이 현명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신중해야 했습니다.
디나는 강합니다.
상처를 입었지만,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제 딸이 저보다 용감합니다.
하느님, 제 딸을 지켜주십시오.
이 상처가 그녀를 망가뜨리지 않게.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붙잡아 주십시오.
분노가 저를 삼키지 않도록.
아멘."
—끝—
에필로그
강석환은 결국 법정에 섰다.
선우 가문의 공개 고발과 증거 앞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디나가 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수십 명의 비슷한 피해자들이 용기를 냈다.
그녀의 용기가 더 큰 변화를 만들었다.
2년 후, 디나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를 설립했다.
"수콧 피해자 지원 재단."
민준의 재단 옆에.
디나가 말했다.
"제 상처가 다른 사람을 위한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민준은 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디나는 내가 가르쳐준 게 아니야.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치셨어.'
평창 새벽터에 새로운 돌이 놓였다.
"디나의 용기"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상처에서 용기로
2078
나는 상처를 입었다.
수치스러웠다.
숨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생기면 안 된다.'
그래서 말했다.
공개했다.
싸웠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가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피해자이기 전에
하느님의 딸이다.
선우민준의 딸이다.
당신도 상처가 있다면:
숨지 마라.
혼자 싸우지 마라.
도움을 구하라.
당신의 상처가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선우디나"
그 돌은 오늘도
상처받은 모든 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상처는 당신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사랑받는 자입니다."

월, 화, 수,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