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341)

1955년 혼란의 시대

by 이 범


제3세력 암살 음모
1955년 1월, 서울.
이계민은 신문을 펼치다 얼어붙었다.
"제3세력 40인 암살 명단 폭로!"
"이정재,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
손이 떨렸다.
'이런 일이...'
"계민 씨, 무슨 일이에요?"
아내 김민화가 다가왔다.
"이것 좀 봐요. 자유당에서 야당 인사들을 암살하려 했대요."
"뭐라고요!"
민화도 놀랐다.
"조봉암, 신익희... 모두 40명이나..."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이계민은 한숨을 쉬었다.
해방 이후 10년.
나라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한국전쟁을 겪고, 이제 겨우 복구 중인데...
정치는 더욱 혼탁해졌다.
"한도회 회의를 소집해야겠어요."
"지금요?"
"네. 이런 상황을 그냥 넘길 순 없어요."
며칠 후, 한도회 긴급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참석자는 많지 않았다.
"...이게 전부입니까?"
이계민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한 동지가 한숨을 쉬었다.
"많은 동지들이... 전쟁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
"그리고 살아남은 분들도 뿔뿔이 흩어졌고요."
이계민은 가슴이 아팠다.
한때 수십 명이던 한도회.
이제 열 명도 안 남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목이 메었다.
1950년, 한국전쟁.
북한군이 내려왔을 때.
부모님은 피란을 거부했다.
"우리는 여기 남겠다."
"아버지, 안 됩니다! 위험해요!"
"계민아, 너와 민화는 가거라."
"하지만..."
"우리는 늙었어. 피란길에 짐만 될 거야."
어머니 강지윤도 고집했다.
"계민아, 의호랑 민화랑 가거라."
"어머니..."
결국 이계민은 아내와 어린 동생 이의호만 데리고 피란을 떠났다.
그것이 부모님과의 마지막이었다.
한 달 후 소식을 들었다.
"부모님께서... 인민군에게..."
"......"
말을 잇지 못했다.
민화가 남편을 안았다.
"울어요, 계민 씨. 참지 말고..."
그날 밤, 이계민은 처음으로 울었다.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회의를 계속했다.
"제3세력 암살 음모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당연히 규탄해야죠!"
"성명서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한 늙은 동지가 고개를 저었다.
"조심해야 합니다. 자유당이 뭘 하는 사람들입니까?"
"그래도..."
"우리까지 명단에 오를 수 있어요."
침묵이 흘렀다.
이계민이 입을 열었다.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계민 동지..."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걸어야 한다고."
"......"
"성명서를 냅시다.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동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동진 저격 사건
2월 중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김동진이 저격당했습니다!"
"뭐라고!"
김동진.
암살 명단을 폭로한 그 사람이었다.
"단성사 앞에서 총격을 당했답니다."
"범인은?"
"이석재라는 자입니다. 이정재의 재종형제이자 부하라고..."
"이정재가 또..."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저격당했답니다. 중상이래요."
며칠 후, 이정재가 구속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김윤도 검사가 수사를 지휘하고 있답니다."
"잘됐군요."
"살인교사죄로 구속됐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한 달 후.
"이정재가 석방됐습니다!"
"뭐라고!"
"검사가 교체됐답니다. 곽영주의 압력으로..."
"이럴 수가..."
"이석재만 구속기소됐답니다."
이계민은 분노했다.
"법이 무슨 소용입니까! 권력자들 마음대로잖아요!"
"계민 씨, 진정하세요."
민화가 남편을 진정시켰다.
"흥분하면 안 돼요. 몸 상하잖아요."
"하지만 이건..."
"알아요. 저도 분해요."
민화도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
"살아남는 게 먼저예요. 그래야 언젠가 정의를 실현할 수 있어요."
이계민은 주먹을 쥐었다.
'아버지... 이런 세상을 위해 싸우신 게 아닐 텐데...'
사사오입 개헌
2월 말, 또 다른 충격이 왔다.
"사사오입 개헌이 통과됐습니다!"
"사사오입이 뭡니까?"
동생 이의호가 물었다.
이계민이 설명했다.
"개헌을 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해."
"그런데?"
"재적 의원이 203명이야. 그럼 135.333...명이 찬성해야 해."
"그럼 136명이 필요하군요?"
"그래야 정상이지. 하지만 자유당은 135명만 찬성했어도 통과시켰어."
"어떻게요?"
"사사오입이라는 수학 원리를 적용했대. 0.333을 반올림하면 0이 되니까 135명이면 된다고..."
"말도 안 돼요!"
의호가 분노했다.
열다섯 살 중학생이었지만,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형, 이런 게 민주주의예요?"
"...아니야. 민주주의가 아니지."
"그럼 뭐예요?"
"독재야."
이계민이 쓸쓸하게 말했다.
"그게 이승만 대통령이 3선을 하기 위한 개헌이야."
한도회 회의에서도 논란이 됐다.
"우리가 뭔가 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뭘 하겠습니까? 국회에서 통과됐는데..."
"성명서라도 내야죠!"
"그랬다간 우리도 위험합니다."
"그럼 그냥 보고만 있자는 겁니까?"
격론이 벌어졌다.
이계민은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산갑이라면 당당하게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한도회는 약해졌다.
많은 동지들이 죽었고, 남은 사람들도 두려워했다.
'하지만... 침묵할 순 없어...'
"동지 여러분."
이계민이 일어섰다.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반대합시다."
"어떻게요?"
"개인 자격으로 신문에 투고하는 겁니다. 한도회 이름은 빼고."
"그럼 안전하겠군요."
"네. 하지만 우리의 목소리는 낼 수 있습니다."
동지들이 동의했다.
며칠 후, 여러 신문에 투고문이 실렸다.
"사사오입 개헌은 헌정 유린이다."
"수학적 꼼수로 헌법을 바꿀 수 없다."
"이승만 3선을 위한 편법이다."
물론 큰 반향은 없었다.
하지만 이계민은 만족했다.
'최소한 우리는 침묵하지 않았어.'
국방부 서울 이전
3월, 국방부가 대구에서 서울로 이전했다.
"드디어 수도가 정상화되는군요."
"그렇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2년이 됐으니..."
서울은 조금씩 복구되고 있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건물들이 다시 지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했다.
거리엔 전쟁 고아들이 넘쳐났다.
"아저씨, 돈 좀 주세요..."
어린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이계민은 주머니를 뒤졌다.
얼마 없었지만, 전부 꺼내 줬다.
"여기..."
"고맙습니다!"
아이가 달려갔다.
"계민 씨, 우리도 여유가 없는데..."
민화가 걱정했다.
"괜찮아요. 우리보단 저 아이가 더 힘들어요."
"...당신은 항상 그렇게 착해요."
"착한 게 아니에요. 당연한 거죠."
이계민과 민화는 처가에 얹혀 살고 있었다.
전쟁으로 집을 잃었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장인어른."
"괜찮네. 식구인데."
장인 김학두는 관대했다.
"전쟁통에 모두 힘들지 않나."
"감사합니다."
"민화 잘 돌봐주게나."
"그러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가살이는 쉽지 않았다.
눈치가 보였다.
특히 식사 때면 더욱 그랬다.
"사위, 더 들게나."
장모가 밥을 더 퍼줬다.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아니에요. 드세요."
"...감사합니다."
밥을 먹으며 이계민은 생각했다.
'빨리 독립해야 하는데...'
하지만 돈이 없었다.
전쟁으로 재산을 다 잃었다.
2만 7천 평의 땅도 사라졌다.
북한군이 점령했을 때 몰수됐다.
'다시 시작해야 해...'
김두한과 시라소니
4월 어느 날,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다.
"김두한이 국회의원이 됐답니다!"
"김두한? 그 주먹 김두한?"
"네, 맞습니다!"
이계민은 놀랐다.
김두한.
일제시대 때 종로의 주먹이었던 사람.
해방 후엔 우익 청년단체를 이끌었다.
"어떻게 국회의원이..."
"반공 투사로 인정받았나 봅니다."
며칠 후, 더 놀라운 소식이 들렸다.
"시라소니도 서울에 나타났답니다!"
"시라소니?"
"네, 일제시대 유명한 의적 아닙니까?"
"아, 그 시라소니..."
"김두한하고 친하다더군요."
이계민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복잡한 심정이 됐다.
'주먹들이 정치를 하고... 세상이 참 많이 변했어...'
어느 날 서울 나들이 길에서 우연히 김두한을 봤다.
국회 앞에서였다.
"저분이 김두한입니다."
"...강인해 보이는군요."
김두한은 덩치가 크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국회 계단에서 누군가와 격렬하게 논쟁하고 있었다.
"자유당 놈들! 국민을 우롱하느냐!"
목소리가 우렁찼다.
"저런 사람이 국회의원이라..."
"계민 씨, 어떻게 생각해요?"
민화가 물었다.
"글쎄요...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왜요?"
"최소한 자유당과는 다르잖아요. 민중 편에 서는 것 같고."
"그렇긴 하네요."
"거칠긴 하지만... 정의감은 있어 보여요."
며칠 후, 시라소니에 대한 이야기도 들렸다.
"시라소니가 명동에서 깡패들을 혼내줬답니다!"
"왜요?"
"약한 사람들 괴롭힌다고요."
"의적답네요."
"김두한하고 함께 다닌답니다."
이계민은 미소 지었다.
'거친 세상엔 거친 정의도 필요한가 보군...'
동생을 향한 애정
5월, 집에서.
이계민은 동생 이의호를 공부시키고 있었다.
"형, 이 문제 어떻게 푸는 거예요?"
"여기를 봐. 이렇게 하는 거야."
의호는 열다섯 살.
중학생이었다.
부모님을 잃고 형만 의지했다.
"형, 저 잘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넌 똑똑해."
"하지만 돈이 없는데... 고등학교는 갈 수 있을까요?"
"걱정 마. 형이 어떻게든 보낼게."
이계민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꼭 공부해야 해. 부모님이 원하셨어."
"...네, 형."
밤에 민화와 이야기했다.
"여보, 의호 학비 걱정이에요."
"저도 알아요."
"제 패물을 팔까요?"
"안 돼요! 그건 시집올 때 가져온 거잖아요."
"괜찮아요. 의호 공부가 더 중요해요."
이계민은 아내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요, 여보."
"뭘요. 당연한 거죠."
민화가 미소 지었다.
"의호도 제 동생이나 마찬가지예요."
"...당신은 정말..."
"그리고 계민 씨."
"네?"
"의호를 마치 자식처럼 돌봐주세요."
"...네?"
"저도 그렇게 할게요. 우리 자식처럼."
민화의 눈빛이 따뜻했다.
"부모님을 잃었잖아요. 우리라도 잘해줘야죠."
이계민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고마워요, 여보. 정말..."
"울지 마세요. 우리 함께 잘 키워봐요."
"네..."
그날 밤, 이계민은 다짐했다.
'의호를 꼭 훌륭하게 키우자.'
'그리고 언젠가 부모님 복수도...'


둘째 아들 범현의 탄생
6월, 기쁜 소식이 있었다.
"계민 씨!"
민화가 불렀다.
"왜요?"
"저... 아이가 생긴 것 같아요."
"정말이에요!"
이계민이 기뻐했다.
"의사 선생님께 가봐야겠어요!"
다음 날, 병원에 갔다.
"축하합니다. 임신 두 달째시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보, 이번엔 아들일까요? 딸일까요?"
"글쎄요... 건강하기만 하면 돼요."
"저는 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왜요?"
"아들이 있으면 든든하잖아요."
"그렇긴 하네요."
몇 달 후, 출산 날이 왔다.
"으윽..."
민화가 진통을 겪었다.
"여보, 힘내요!"
"...알았어요..."
열 시간의 산고 끝에.
"응애! 응애!"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들입니다!"
"정말입니까!"
이계민이 달려 들어갔다.
작은 아기가 울고 있었다.
"여보... 우리 아들이에요..."
"...예뻐요."
민화가 지친 얼굴로 웃었다.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요?"
"범현이 어때요?"
"범현?"
"네. 범상치 않게 나타난 아들이니까."
"좋아요. 이범현."
이계민은 아들을 안았다.
"범현아, 아빠야."
"응애..."
"건강하게 자라렴. 이 험한 세상에서..."
눈물이 흘렀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손자가 태어났어요...'
'부디 하늘에서 지켜봐 주세요...'
의호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형, 조카 보고 싶어요."
"그래, 이리 와."
의호가 아기를 내려다봤다.
"작네요..."
"너도 이렇게 작았어."
"정말요?"
"그럼. 형이 너 업고 다녔거든."
"...고마워요, 형."
"뭘. 당연한 거지."
이계민이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의호야, 넌 이제 승국이와 범현의 삼촌이야."
"네!"
"범현이 잘 돌봐줘야 해."
"알겠습니다, 형!"


한도회의 미래
7월, 한도회 회의.
"동지 여러분, 우리의 미래를 논의해야 합니다."
이계민이 말했다.
"현재 한도회는 약해졌습니다."
"인원도 적고, 재정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습니다."
동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민주주의, 정의, 민족 통일."
"이것을 위해 계속 싸워야 합니다."
한 늙은 동지가 물었다.
"하지만 계민 동지,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겠습니까?"
"작게 시작합시다."
"작게요?"
"네. 청년 교육부터 시작합시다."
이계민이 설명했다.
"젊은 세대를 교육하는 겁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그들이 자라서 사회를 바꿀 겁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교육 자료를 만들어야겠군요."
"제가 하겠습니다."
이계민이 자원했다.
회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계민 씨, 회의 어땠어요?"
"좋았어요.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했어요."
"다행이네요."
민화가 범현이를 안고 있었다.
"범현이 잘 자고 있네요."
"네, 천사 같아요."
이계민이 아들을 바라봤다.
'이 아이가 자랄 때쯤엔...'
'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암울했다.
이정재는 풀려났고, 자유당은 더욱 독재적이 됐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순 없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야 해.'
'언젠가는... 정의가 승리하는 날이 올 거야.'
이계민은 책상 앞에 앉아 교육 자료를 쓰기 시작했다.
밤이 깊도록.
아들의 미래를 위해.
조국의 미래를 위해.
그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1955년의 혼란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월, 화, 수,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