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첫 제사
1954년, 첫 제사
제사 준비
1954년 음력 7월 15일.
이산갑 일가 열두 명이 학살당한 지 사 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계민은 제대 후 처음으로 제사를 준비했다.
열두 명의 제사.
아버지 이산갑, 어머니, 둘째 숙부 이산호, 셋째 숙부 이선호, 면장 이은주, 그리고 다른 친척들.
"형수님, 제수용품이 부족합니다."
의호가 말했다.
"알아. 하지만 어쩌겠니. 구할 수 있는 것만 준비하자."
1954년 한국은 폐허였다.
전쟁이 끝났지만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 70달러.
세계 최빈국.
물자는 극도로 부족했다.
쌀도 귀했다. 밀가루로 대신했다. 미국 원조 밀가루.
설탕도 귀했다. 사카린으로 대신했다.
과일도 귀했다. 제사상에 올릴 배, 사과, 대추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민화는 영광 장터를 돌아다니며 간신히 구했다.
"이것밖에 없어요."
"괜찮아. 이것만으로도 감사해."
생선도 구하기 어려웠다. 법성포가 가까워 조기는 구할 수 있었지만, 비쌌다.
"한 마리에 얼마예요?"
"쌀 두 되."
민화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샀다. 제사를 지내야 했다.
친인척의 집결
제사 전날, 친인척들이 모여들었다.
살아남은 이산갑의 친척들.
멀리서도 왔다. 광주에서, 목포에서, 서울에서.
모두 가난했다. 옷은 남루했다. 얼굴은 수척했다.
하지만 왔다. 이산갑을 기억하기 위해.
"형수님, 오랜만입니다."
"어서 오세요. 고생하셨어요."
이산갑의 사촌들, 조카들, 친구들.
한도회 멤버들도 왔다.
한재호, 남진국과 한선단 생존자들.
"도련님."
남진국이 이계민에게 절했다.
"대장님, 오셨습니까."
"당연히 와야지요. 선생님 제사인데."
사랑채, 안채, 대청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삼십여 명.
모두 검은 옷을 입었다. 상복은 아니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저 가장 어두운 옷.
대청의 제단
대청에 제단이 마련되었다.
열두 개의 위패.
이산갑, 부인 정씨, 이산호, 이선호, 이은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쓴 위패.
그 앞에 제수가 놓였다.
부족했다. 풍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성을 다했다.
밀가루로 만든 떡.
미국 원조 밀가루로 만든 전.
귀하게 구한 조기.
작은 배 몇 개.
나물.
막걸리.
그것이 전부였다.
이계민은 제단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 이것밖에 준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위령제
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초를 켰다. 열두 개.
희미한 불빛이 대청을 밝혔다.
이계민이 제주가 되어 앞에 섰다.
그 옆에 민화, 의호, 그리고 어린 승국이.
뒤에 친인척들이 줄지어 섰다.
"절!"
모두가 절했다.
깊이.
오래.
이계민이 축문을 읽었다.
"維 歲次 甲午年 七月 十五日..."
목소리가 떨렸다.
"...不肖子 啓玟이 삼가 아버님 李山岳 선생님, 어머님, 숙부님들, 그리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일가 열두 분의 영전에 고합니다..."
축문을 읽다가 목이 메었다.
"...아버님께서는 평생을 조국을 위해 사셨습니다... 독립운동을 지원하시고... 한도회를 이끄시고... 한선단을 조직하시고..."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인민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하게..."
이계민의 목소리가 커졌다.
"...죽창에 찔려... 피를 흘리며..."
참석자들도 울기 시작했다.
"...아버님... 어머님... 숙부님들..."
이계민이 무릎을 꿇었다.
"...제가...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소리 내어 울었다.
"으아아악!"
분노의 울음이었다.
슬픔의 울음이었다.
후회의 울음이었다.
"왜... 왜 그렇게 돌아가셔야 했습니까!"
이계민이 바닥을 쳤다. 주먹으로.
"아버님은... 잘못한 게 없으십니다! 평생 선하게 사셨습니다! 사람들을 도우셨습니다!"
"왜... 왜 죽창에 찔려 돌아가셔야 했습니까!"
민화가 남편을 안았다.
"여보... 진정하세요..."
"진정할 수 없어! 아버지가... 어머니가... 그렇게... 그렇게 비참하게..."
의호도 울었다.
"형님... 형님..."
승국이도 울었다. 무서워서. 아빠가 우니까.
"으앙! 으앙!"
대청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다.
남진국도 울었다.
"선생님... 선생님..."
한재호도 눈물을 닦았다.
한선단 대원들도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친척들도 모두 울었다.
사 년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한도회의 위로
한참을 울고 나서야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제사는 계속되었다.
헌작, 삽시정저, 사신.
마지막 절.
그리고 음복.
대청에 둘러앉아 제수를 나눠 먹었다.
적막한 분위기였다.
한재호가 입을 열었다.
"계민 도련님."
"예, 선생님."
"도련님의 마음을 압니다.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한재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산갑 선생님은... 제 스승이셨습니다. 저를 이끌어주신 분이셨습니다."
"......"
"하지만 이제는... 앞을 봐야 합니다."
한재호가 이계민의 손을 잡았다.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복수가 아닙니다. 도련님이... 잘 사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분노를. 억울함을."
남진국도 말했다.
"도련님, 저도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백호신을... 찾아가서... 죽이고 싶었습니다."
"......"
"하지만 복수는... 끝이 없습니다. 복수하면 또 복수가 옵니다."
남진국이 승국이를 바라보았다.
"저 아이를 보십시오. 도련님의 아드님. 선생님의 손자."
승국이는 엄마 품에서 제수를 먹고 있었다. 밀가루떡을.
"저 아이가... 희망입니다. 미래입니다."
"......"
"도련님께서 할 일은... 저 아이를 잘 키우시는 겁니다. 선생님의 뜻을 이어가도록."
이계민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세 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승국아."
"응?"
"할아버지가... 너를 사랑하신단다."
"할아버지?"
아이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었다.
"응. 하늘에 계셔."
"하늘?"
"그래. 하늘에서... 너를 지켜보고 계셔."
승국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할아버지! 안녕!"
순수한 목소리.
이계민은 다시 눈물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슬픔만이 아니라... 희망도 섞여 있었다.
가해자들의 고통
며칠 후, 이계민은 군서면으로 갔다.
아버지를 죽창으로 찔렀던 사람들이 사는 곳.
남진국이 말렸다.
"도련님, 가지 마십시오."
"가봐야 합니다."
"위험합니다."
"괜찮습니다. 복수하러 가는 게 아닙니다."
이계민은 혼자 갔다.
군서면 작은 마을.
전쟁의 상처가 역력했다.
빈집이 많았다. 부서진 담장. 굶주린 아이들.
이계민은 한 집을 찾았다.
박씨네 집.
아버지를 죽창으로 찔렀던 사람 중 한 명.
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여자 목소리. 중년 여인이 나왔다.
"박 아무개 씨 댁입니까?"
여인의 얼굴이 굳었다.
"...누구시죠?"
"이계민입니다. 이산갑의 아들."
여인이 뒷걸음질 쳤다.
"......"
"박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 사람은... 없습니다..."
"어디 갔습니까?"
여인이 울먹였다.
"죽었습니다... 작년에..."
"...어떻게?"
"병으로... 아니... 스스로..."
이계민은 이해했다.
"자살하셨습니까?"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괴로워했습니다... 매일 밤... 악몽을 꾸었습니다..."
"......"
"이산갑 선생님이... 나타나신다고... 피를 흘리며..."
여인이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람도... 고통스러웠습니다...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 하면 자기가 죽을까 봐..."
"......"
"용서해주십시오... 제발..."
여인이 무릎을 꿇었다.
이계민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척하고, 남루하고, 절망에 찬 얼굴.
"일어나십시오."
"......"
"용서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하실 일입니다."
이계민이 돌아섰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네?"
"당신도... 희생자입니다. 그 시대의."
여인이 소리 내어 울었다.
이계민은 마을을 나왔다.
다른 집들도 비슷했다.
어떤 이는 죽었다. 병으로, 자살로.
어떤 이는 살아 있었지만 폐인이 되어 있었다.
술에 찌들어, 정신이상으로.
"이산갑 선생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노인이 이계민을 보고 중얼거렸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다.
"매일... 꿈에 나타나십니다... 피를 흘리며..."
이계민은 그들을 보며 깨달았다.
복수는... 이미 이루어졌다.
그들은 스스로를 벌하고 있었다.
죄책감으로, 악몽으로, 고통으로.
1954년의 현실
돌아오는 길, 이계민은 영광읍을 지나갔다.
거리는 폐허였다.
전쟁의 상처가 역력했다.
부서진 건물들.
남대문 시장처럼, 영광 장터도 처절한 생존의 현장이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들.
"양담배! 양담배!"
"양키 초콜릿!"
"밀가루! 설탕!"
미국 원조물자가 암시장에 팔렸다.
총 수입의 85%가 미국 원조.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었다.
아이들이 구걸했다.
"아저씨, 돈 좀..."
"밥 좀..."
전쟁고아들이었다.
부모를 잃고, 거리를 떠도는.
이계민은 주머니를 뒤졌다. 돈이 조금 있었다.
나눠줬다.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달려갔다. 빵집으로.
하지만 아이들은 너무 많았다.
모두를 도울 수 없었다.
'이 나라는... 언제쯤 나아질까...'
이계민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집으로
이산갑 댁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이었다.
민화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리밥. 된장국. 김치.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따뜻했다.
"다녀왔어요."
"어떻게 됐어요?"
이계민은 그날 본 것을 이야기했다.
가해자들의 고통을.
민화는 조용히 들었다.
"당신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나요?"
"...조금은."
"그럼 됐어요."
민화가 밥을 떴다.
"이제 앞을 봅시다. 승국이를 키우고, 이 집을 일으키고."
"그래야지."
승국이가 아빠에게 달려왔다.
"아빠! 밥!"
"그래, 먹자."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가난했다.
1인당 국민소득 70달러.
세계 최빈국.
하지만 살아있었다.
함께였다.
희망이 있었다.
"승국아."
"응?"
"너는 커서 뭐가 될 거니?"
"음... 대통령!"
아이의 천진난만한 대답.
이계민과 민화가 웃었다.
"그래, 대통령 되어라. 이 나라를 잘 이끌어라."
"응!"
창밖으로 별이 빛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
희망처럼.
미래처럼.
이계민은 생각했다.
'아버지, 지켜보고 계십시오. 제가 이 집을 일으키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언젠가는... 풍요로워지고... 평화로워지기를...'
그것이 이계민의 기도였다.
죽은 자들을 위한.
산 자들을 위한.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를 위한.
1954년 대한민국
1인당 국민소득: 70달러
총 수입의 85%: 미국 원조
하지만 살아있었다
희망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