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342)

1956년, 운명의 갈림길

by 이 범


새해 벽두
1956년 1월 1일. 이계민은 범현이를 안고 새해를 맞았다. "범현아, 새해다." "응애..." 여섯 달 된 아기는 아빠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잘 모르지? 새해가 뭔지." 이계민이 웃었다. 민화가 다가왔다. "계민 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당신도요." "올해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게요." 이계민이 하늘을 봤다. '올해는... 제발 평온하기를...' 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신문에는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기사들이 실렸다. "5월 대통령 선거 준비 본격화!" "이승만, 자유당 후보로 확정!" "야당, 신익희 후보 추대 논의!"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군요." 동생 이의호가 신문을 읽으며 말했다. "그래, 5월에." "야당이 이길 수 있을까요?" "...모르겠다." 이계민이 솔직하게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너무 강해." "하지만 국민들이 원하잖아요. 바뀌기를." "원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야, 의호야." "...그렇군요." 의호가 풀이 죽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면 안 돼." 이계민이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언젠간 바뀌게 되어 있어."


장인 김학두
1월 중순 어느 날. 이계민은 장인 김학두의 서재에 불려 갔다. 서재는 항상 법률 서류와 문서들로 가득했다. 김학두. 원래는 전라도 영광 법원에서 근무했던 사람이었다. 수십 년간 법원 일을 하면서 누구보다 법을 잘 알았다. 월남 후에는 영광 유일의 사법서사로 일했다. 문서 작성, 등기, 소송... 법률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맡았다. "계민이, 앉게나." "네, 장인어른." "요즘 어떻게 지내나?" "그럭저럭 하고 있습니다." "영태 약방 일은 도움이 되고 있나?" 이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인의 큰아들, 김영태. 민화의 오빠였다. 그는 영광 최초의 약방인 호연당 약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제시대부터 약학을 공부한 덕분이었다. "네, 영태 형님이 많이 도와주십니다." "좋아." 김학두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서랍에서 두꺼운 서류 뭉치를 꺼냈다. "이게 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자네 땅 문서들이야." "예?" 이계민이 눈을 크게 떴다. "제 땅이요?" "그래. 자네 아버지 이산갑 선생이 자네 이름으로 등기해둔 땅들이야." "하지만... 그 땅은 전쟁 통에 다 잃었다고..." "다 잃은 게 아니야." 김학두가 서류를 펼쳤다. "전쟁 중에 몰수된 것들도 있지만, 일부는 등기가 살아있어." "정말입니까?" "내가 법원에서 오래 일했잖나. 등기부를 확인해봤어." "언제부터 조사하셨습니까?" "자네가 처가에 온 뒤로 줄곧." 김학두가 안경을 고쳐 썼다. "자네 아버지가 얼마나 꼼꼼하게 준비해두셨는지... 놀라웠어." 이계민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가..." "논 몇 마지기는 살아있어. 특히 영광 쪽 땅이." "영광이요?" "그래. 자네 아버지가 일찌감치 영광에도 땅을 사두셨더군." 이계민은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미리 준비해두신 거야...' "찾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도와줄게." 김학두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법서사로서 내가 직접 서류를 만들고 신청할 테니까." "장인어른..." "자네 아버지한테 빚이 있어." "빚이요?" "한도회에서 함께 활동했을 때, 이산갑 선생이 나를 많이 도와줬어." 김학두의 눈빛이 잠시 먼 곳을 향했다. "그때 고마움을 갚을 기회가 생겼으니... 내가 도와야지."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이계민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고마워하지 마. 당연한 거야."
땅을 찾아서
2월부터 이계민과 김학두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학두가 법원 서류를 준비했다. 수십 년간 쌓은 법률 지식이 빛을 발했다. "이 서류를 법원에 제출해야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현장 확인도 해야 하고."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혼자 가면 안 돼. 내가 같이 가지." 두 사람은 함께 영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걷고... 반나절이 걸렸다. "여기가 자네 아버지 땅이야." 김학두가 논밭을 가리켰다. 이계민은 흙을 한 줌 집어 들었다. '아버지가 마련해두신 땅...' 가슴이 먹먹했다. "지금 누가 경작하고 있습니까?" "인근 농민이 무단으로 쓰고 있어." "법적으로 문제가 됩니까?" "그래서 내가 있는 거 아닌가." 김학두가 서류를 펼쳤다. "등기부상 소유자는 여전히 이계민이야." "그럼 돌려받을 수 있겠군요." "할 수 있어. 하지만 시간이 걸려." "얼마나요?" "반년에서 일 년." 이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이 논이 제 것입니다." "뭐라고요?" "등기부를 확인해보십시오." 처음에 농민들은 거부했다. "전쟁 통에 주인도 없이 버려진 땅인데..." "버려진 게 아닙니다. 저는 피란을 갔던 겁니다." "하지만 몇 년을 우리가 일궈온 땅이오." "그 수고는 알겠습니다." 이계민이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제 땅입니다." "......" "대신 조건을 드리겠습니다." "조건이요?" "소작료를 낮게 받겠습니다. 수확량의 3할만 내시면 됩니다." 농민들이 서로를 봤다. "3할이면... 나쁘지 않군요." "지금 다른 지주들은 5할도 받아요." "그럼 받아들이겠소." 이계민이 안도했다. '아버지처럼 하는 거야. 농민들을 착취하면 안 돼.'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학두가 말했다. "잘 처리했어, 계민이." "장인어른 덕분입니다." "아니야. 자네가 농민들을 배려한 덕분이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당연하지 않아." 김학두가 단호하게 말했다. "많은 지주들이 돌아와서 무조건 쫓아내거든." "그건 옳지 않습니다." "그래. 자네 아버지도 그랬어. 사람을 중하게 여겼지."


호연당 약방
영광을 다녀온 후, 이계민은 처남 김영태를 더 자주 찾았다. 호연당 약방. 영광 최초의 약방이었다. 약재 냄새가 가득했다. "어서 오게, 계민이." "형님, 바쁘십니까?" "항상 바쁘지. 앉아." 김영태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일제시대에 약학을 공부하고, 해방 후 영광에 약방을 열었다. 영광 최초라 환자들이 먼 곳에서도 찾아왔다. "오늘은 왜 왔어?" "형님께 배울 게 있어서요." "뭘?" "장사요. 저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김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한테 들었어. 땅을 찾기 시작했다고." "네." "잘됐군. 땅이 있으면 기반이 되니까." "하지만 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 뭔가 더 있어야지." 김영태가 생각하다 말했다. "계민이, 글 잘 쓰지?" "조금요." "신문에도 기고하고, 한도회 일도 하고..." "그게 돈이 됩니까?" "직접은 아니지만..." 김영태가 약장을 닫으며 말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글 잘 쓰는 재주가 있잖아." "그게 도움이 될까요?"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그런 사람이 필요해." 이계민은 형님의 말을 곱씹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그게 뭔가.'
약방을 나오다가 환자 한 명을 봤다. 늙은 할머니였다. "약값이 없어서..." 할머니가 쭈뼛거렸다. "괜찮습니다. 드리지요." 김영태가 약을 건넸다. "나중에 갚으셔도 됩니다." "고맙소, 선생." 할머니가 허리를 굽혔다. 이계민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형님도 아버지처럼 사람을 먼저 생각하시는구나...'


민화의 기쁜 소식
3월 어느 날. "계민 씨!" 민화가 불렀다. "왜요?" "저... 또 아이가 생긴 것 같아요." "정말이에요?" "네, 병원에 가봐야겠지만..." 다음 날, 병원에 갔다. "축하합니다. 임신 두 달째시네요."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민화가 말했다. "이번엔...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딸이요?" "네. 범현이 남동생도 좋지만..." "딸도 이쁘죠." "그럼요." 두 사람은 웃었다. "이름은 생각해뒀어요?" "아직이요. 계민 씨가 지어줘요." "내가요?" "범현이도 계민 씨가 지었잖아요." 이계민은 생각에 잠겼다. '딸이라면... 어떤 이름이 좋을까.'


대통령 선거
5월이 다가왔다. 대통령 선거가 열렸다. "신익희 선생님이 출마하셨습니다!" "드디어 야당이 뭉쳤군요!" 한도회 동지들이 기뻐했다. "이번엔 해볼 만합니다!" 이계민도 기대했다. 하지만 운명은 잔인했다. 5월 5일. "신익희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뭐라고!" 충격이었다. "유세 중에 기차 안에서 갑자기..." "뇌졸중이랍니다..." 이계민은 말을 잃었다. '이럴 수가...'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못 가네! 못 가! 어딜 가!" 국민들이 울부짖었다. 이계민은 신익희 선생의 운구 행렬을 바라봤다.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 왜 이리 일찍..." 민화가 남편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요, 계민 씨." "괜찮지 않아요." 이계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좋은 사람이 먼저 가는 건지..." 선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이승만이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그나마 장면 선생이 부통령에 당선된 것이 위안이었다.
집을 되찾은 날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김학두의 오랜 노력이 마침내 빛을 발했다.
"계민이, 드디어 됐어."
"어떻게 됐습니까?"
"자네 아버지 집이 돌아왔어. 이산갑 선생 집."
이계민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정말입니까?"
"등기 완료됐어. 자네 이름으로."
이계민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눈물이 차올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집이...'
'어머니가 살던 집이...'
다음 날, 이계민은 오랜만에 옛집으로 향했다.
민화와 의호, 그리고 어린 범현이를 데리고.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낯익은 골목, 낯익은 담장...
하지만 집은 낡고 황폐해져 있었다.
"형..."
의호가 형의 소매를 잡았다.
"괜찮아."
이계민이 짧게 말했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당이 보였다.
어릴 때 뛰어놀던 그 마당.
아버지가 저녁 이후 차를 마시던 대청.
어머니가 바느질하시던 안방 창가...
모든 것이 기억 속 그대로였다.
하지만 부모님은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이계민은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봤다.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눈물이 흘렀다.
그때였다.


이승국
이계민의 큰아들 이승국.
그날 따라 함께 왔던 어린 이승국은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대청 가까이에 다가갔다.
그리고 멈췄다.
대청에서 안방으로 난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니...
"형님! 살려주십시오! 제발!"
낯선 어른들의 목소리였다.
이승국은 숨을 죽이고 들여다봤다.
세 명의 어른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모두 이 마을 사람들이었다.
이승국도 아는 얼굴들이었다.
그들 앞에는 신문지에 싼 두툼한 돈다발이 놓여 있었다.
"형님, 저희가 죽을죄를 저질렀습니다!"
"제발... 이것으로라도..."
"형님, 용서해주십시오!"
세 사람이 이마를 바닥에 조아렸다.
이계민은 돈다발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이승국에게는 더 무서웠다.
"형님..."
그때였다.
"필요없다!"
이계민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낮지만 울림이 있었다.
"이까짓 돈이 우리 가족을 살린다더냐!"
이계민이 돈다발을 밀쳐냈다.
신문지가 풀리며 돈이 바닥에 흩어졌다.
"나쁜 놈들!!"
이계민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분노였다.
그리고 슬픔이었다.
수십 년을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한이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세 사람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형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죽창으로... 그러면 안 됐는데..."
"저희도 겁이 나서... 인민군들이..."
"닥쳐!"
이계민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변명하지 마! 변명도 듣기 싫어!"
"우리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가..."
이계민이 벽을 짚었다.
몸이 떨렸다.
"그분들이 당신들한테 뭘 잘못했어?"
"평생 마을 사람들한테 잘해주셨잖아!"
"......"
"인민군이 무서웠으면 그냥 숨어있지!"
"왜... 왜 그랬어!"
이계민의 목소리가 꺾였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억누르려 해도 억누를 수 없었다.
문틈 너머에서 이승국은 굳어 있었다.
다리가 떨렸다.
무서웠다.
하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큰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항상 의젓하고, 침착하고, 흔들리지 않던 이계민.
그 이계민이 저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세 사람은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
"형님, 어떤 벌이든 받겠습니다..."
"죽으라 하시면 죽겠습니다..."
이계민은 한참 동안 울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추스렸다.
"...가."
조용한 목소리였다.
"가라고."
"형님..."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세 사람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돈다발을 집으려 했다.
"그것도 가져가."
이계민이 돈을 발로 밀었다.
"그 돈은 내 가족 목숨 값이 아니야."
세 사람이 돈을 집어 들고 방을 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대문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계민은 혼자 안방에 남았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어깨가 흔들렸다.
이승국은 문틈에서 물러섰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몰랐다.
그냥 나왔다.
그날의 장면이 어린 이승국의 가슴속 깊이 박혀버렸다.
신문지에 싸인 돈다발.
바닥에 흩어진 돈.
울부짖던 아버지의 모습.
'이까짓 돈이 우리 가족을 살린다더냐!'
그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훗날 이승국이 어른이 되어 이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된 것은 그날의 충격 때문이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 박힌 트라우마.
지워지지 않는 기억.
그것이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저녁의 침묵
그날 저녁, 이계민은 말이 없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민화가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계민 씨..."
"괜찮아요."
"아니에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죠?"
"...별거 아니에요."
민화는 더 묻지 않았다.
그냥 남편 곁에 앉았다.
범현이가 아빠 무릎 위로 기어왔다.
"응애..."
이계민이 아들을 안았다.
꼭 안았다.
"범현아..."
아들의 온기가 전해졌다.
따뜻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렇게 나를 안아주셨겠지...'
눈물이 또 흘렀다.
하지만 이번엔 조용히 흘렀다.
민화가 말없이 손수건을 건넸다.
의호가 눈치를 채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이 집을 되찾았어...'
'하지만 돌아오신 분은 없어...'
이계민은 하늘을 봤다.
'아버지, 집을 되찾았습니다.'
'이제 이 집에서 살겠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가을 달이 높이 떠 있었다.
집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치 부모님이 바라보는 것 같았다.
연말의 다짐
12월, 1956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계민은 서재에 앉아 일기를 썼다. "1956년. 신익희 선생님을 잃었고, 이승만 독재는 계속됐다. 하지만 아버지가 남겨두신 땅을 찾기 시작했다. 장인어른 덕분이다. 범현이가 첫돌을 맞았고, 의호가 장학금을 받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을 되찾았다." "원수들을 만났다. 용서하지 못했다. 그것이 옳은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 범현이를 위해, 뱃속의 아이를 위해, 의호를 위해." "내년엔...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의호가 들어왔다. "형, 아직 안 자요?" "그래,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오늘... 많이 힘드셨죠?" 이계민이 동생을 봤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요." 의호가 형 곁에 앉았다. "형, 저는 형이 자랑스러워요." "왜?" "그 돈 안 받은 거요." "......" "저 같으면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형은..." "자랑스러운 게 아니야, 의호야." 이계민이 조용히 말했다. "그냥... 그 돈을 받으면 안 될 것 같았어. 아버지 어머니한테." "...네, 형."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민화가 방문을 열었다. "두 사람 뭐 해요? 얼른 자야죠." "네, 형수님" 의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민화가 의호의 손을쓰다듬었다. "의호야, 잘 자." "네, 형수님." 의호가 방으로 들어갔다.
민화가 남편 곁에 앉았다. "계민 씨." "네?" "오늘... 많이 힘드셨죠?" "...네." "다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민화가 남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계민 씨, 우리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네." "뱃속 아이도 기다리고 있고요." "그래요." 이계민이 아내의 배에 손을 얹었다. "아가야, 좋은 세상에 태어나렴."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1956년의 마지막 눈. 이계민은 하늘을 봤다. '아버지, 어머니... 집을 되찾았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잘 살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닦지 않았다. 민화가 조용히 손수건을 건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손을 잡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1957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역사는 계속 흘러갔다. 이계민의 싸움도 계속됐다. 희망을 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잃었던 집을 되찾으며. 새 생명을 기다리며. 그리고 어린 이승국의 가슴속에는 그날의 기억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훗날 이 모든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게 될 씨앗으로.

월, 화, 수,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