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분원
2082년, 서울.
형 선우태준은 96세였다.
병상에 누워 있었지만, 여전히 정신은 또렷했다.
동생 민준(92세)이 병문안을 왔다.
"형님,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괜찮다, 민준아. 네가 올 줄 알았어."
민준은 형의 손을 잡았다.
"형님, 말씀드릴 게 있어요."
"뭔데?"
"저... 수콧을 떠나려고 합니다."
태준의 눈이 커졌다.
"어디로?"
"제주도요. 거기에 새로운 재단 분원을 세울 겁니다."
"왜 갑자기?"
민준이 창밖을 바라봤다.
"형님, 우리 두 형제가 한국에 함께 있으니까... 자꾸 비교되잖아요."
"비교?"
"예. 선우그룹의 태준 회장, AI 재단의 민준 이사장. 언론이 자꾸 비교해요. '형은 비즈니스, 동생은 교육' 이런 식으로."
태준이 한숨을 쉬었다.
"그게 신경 쓰이냐?"
"저야 괜찮지만, 우리 자식들이 힘들어해요. 특히 르우벤이."
르우벤은 현재 선우그룹 부회장이었다. 태준을 보좌하고 있었다.
"아들이 왜?"
"사람들이 르우벤을 '민준의 아들'이라고 해요. '태준 회장 밑에서 일하는 민준의 아들'. 그게 아이에게 부담이 되나봐요."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래서 떨어지려는 거구나."
"예. 형님과 저, 우리 가문이 너무 가까이 있으면 자꾸 얽히게 돼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래서 제주도?"
"예. 충분히 멀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태준은 잠시 생각했다.
"민준아, 네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냐?"
"레이코와 리나는 저와 함께 갑니다. 일곱 자녀는..."
민준이 손가락을 꼽았다.
"르우벤은 서울에 남아서 형님을 계속 보좌할 겁니다."
"그래야지."
"시메온은 의사니까 춘천에 남습니다. 거기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요."
"레위는?"
"레위는 목사가 되어 지역 교회를 섬기고 있어요. 역시 춘천이요."
"유다는?"
"유다는 예술가인데, 서울에서 작업하고 싶대요. 독립하겠답니다."
"디나는?"
"디나는 저와 함께 제주도로 갑니다. 피해자 지원 단체를 거기서도 할 거예요."
"요셉과 벤자민은?"
"요셉은 AI 재단 제주 분원장이 될 겁니다. 벤자민은... 아직 대학생이니까 서울에 있겠죠."
태준이 웃었다.
"네 자식들이 다 흩어지는구나."
"예. 하지만 각자 제 길을 가는 거죠."
"너도 그렇고."
"예, 형님."
2082년 봄.
민준은 제주도로 이사했다.
레이코, 리나, 디나, 요셉과 함께.
제주 서귀포시, 한라산이 보이는 곳에 새 재단을 세웠다.
'선우 AI 윤리 재단 제주 분원'
춘천 수콧보다 더 작았다. 하지만 아름다웠다.
바다가 보였다. 한라산도 보였다.
"아버지, 여기가 우리 새 집이에요?"
디나가 물었다.
"응. 여기서 새로운 시작이야."
"춘천이 그리울 것 같아요."
"나도. 하지만 필요한 일이야."
레이코가 남편에게 물었다.
"민준, 정말 괜찮아요? 형님과 떨어져서."
"괜찮아요. 형님과 저는 이제 각자의 왕국을 가진 거예요."
"왕국?"
"형님은 선우그룹이라는 비즈니스 왕국. 저는 AI 윤리라는 교육 왕국."
민준이 미소 지었다.
"함께 살기에는 우리 가산이 너무 많았어요. 물리적으로도, 영적으로도."
2085년.
3년이 지났다.
선우 가문은 완전히 분리되었다.
서울:
태준 (99세, 선우그룹 명예회장)
르우벤 (57세, 선우그룹 부회장)
유다 (51세, 예술가)
벤자민 (40세, 스타트업 CEO)
춘천:
시메온 (55세, 병원장)
레위 (53세, 목사)
제주:
민준 (95세, AI 재단 제주 분원장)
레이코, 리나
디나 (38세, 피해자 지원 단체 대표)
요셉 (46세, 재단 부원장)
명절에도 모이지 않았다.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태준의 가족만 해도 50명.
민준의 가족도 30명.
합치면 80명.
한 곳에 모이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래서 각자 명절을 보냈다.
서울 가족은 서울에서.
춘천 가족은 춘천에서.
제주 가족은 제주에서.
어느 날, 민준에게 전화가 왔다.
르우벤이었다.
"아버지, 삼촌 태준이... 위독하십니다."
민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얼마나?"
"의사가 며칠 안 남았다고 합니다."
"알겠다. 바로 가마."
민준은 레이코, 리나와 함께 서울로 향했다.
병원.
태준이 누워 있었다.
99세. 더 이상 말도 거의 못 했다.
민준이 형의 손을 잡았다.
"형님, 저 왔어요."
태준이 눈을 떴다.
"민준아..."
"예, 형님."
"잘... 살았니?"
"예, 형님. 제주도에서 잘 살았어요."
"그래... 다행이다..."
태준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민준아... 우리... 떨어져서..."
"예."
"후회... 안 하니?"
민준이 미소 지었다.
"전혀요, 형님. 우리는 각자의 길을 잘 갔어요."
"그래... 좋았어..."
태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민준아... 사랑한다..."
"저도 사랑합니다, 형님."
그날 밤, 태준은 세상을 떠났다.
99세.
태준의 장례식.
선우그룹 본사 앞 광장.
수만 명이 모였다.
민준이 조사를 읽었다.
"형 선우태준. 1986년생, 2085년 별세."
"형님은 선우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셨습니다."
"직원 10만 명, 매출 200조 원의 기업."
"하지만 형님의 진정한 유산은 숫자가 아닙니다."
민준이 목이 메었다.
"형님은 저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화해. 우리는 45년을 떨어져 있었지만, 결국 화해했습니다."
"둘째, 분리. 우리는 함께하되 떨어져 있었습니다. 각자의 길을 존중했습니다."
"형님 덕분에 저는 제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민준은 관을 바라봤다.
"형님, 이제 편히 쉬세요."
"우리는 각자의 왕국을 세웠습니다."
"형님은 서울의 왕국, 저는 제주의 왕국."
"다르지만 같았습니다. 떨어져 있었지만 함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장례식 후, 민준은 제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평창 새벽터로 차를 몰았다.
밤 11시.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민준은 무릎을 꿇었다.
"하느님, 형님을 데려가셨습니다."
바람이 불었다.
"99년의 생애였습니다. 길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너무 짧았습니다."
"형님과 저는 마지막 몇 년을 떨어져 살았습니다."
"함께 살기에는 우리 가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민준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잘 갔습니다."
"형님은 서울에서 비즈니스로."
"저는 제주에서 교육으로."
"각자의 왕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섬겼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민준은 눈물을 닦았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제게 형님을 주셔서."
"그리고 각자의 길을 갈 지혜를 주셔서."
"아멘."
민준의 일기, 2085년 6월 1일:
"오늘 형님이 떠나셨습니다.
99세.
저보다 7년 먼저 태어나셨고,
4년 먼저 떠나셨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3년을 떨어져 살았습니다.
형님은 서울, 저는 제주.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왜 떨어져 사느냐?'
하지만 우리는 알았습니다.
함께 살기에는 우리 가산이 너무 많다는 것을.
물리적 재산만이 아닙니다.
각자의 비전, 사명, 가족이 너무 컸습니다.
한 땅에 함께 있으면
자꾸 비교되고, 경쟁하고, 얽히게 됩니다.
그래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형제였습니다.
각자의 왕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형님,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때는 떨어질 필요가 없겠죠.
하늘나라는 충분히 넓으니까요.
감사합니다, 형님.
좋은 형이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끝—
에필로그
민준은 형이 떠나고 7년을 더 살았다.
2092년, 100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은 제주에서 열렸다.
조용했다. 태준의 장례식과 달리.
하지만 의미 있었다.
평창 새벽터에 두 개의 돌이 나란히 세워졌다.
"태준의 왕국" (이미 세워진 돌)
그리고 새로운 돌:
"민준의 왕국"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각자의 왕국
1992-2092
나와 형은 떨어져 살았다.
함께 살기에는
우리 가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물리적 재산만이 아니었다.
비전도, 사명도, 가족도 컸다.
한 땅에 함께 있으면
자꾸 비교되고 얽혔다.
그래서 떨어졌다.
형은 서울의 왕국을 세웠다.
나는 제주의 왕국을 세웠다.
다른 길이었지만
같은 목적지였다.
떨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형제였다.
각자의 왕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하느님을 섬겼다.
당신도 두려워 말라.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이
가족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떨어져야
더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다.
각자의 왕국을 세워라.
하지만 같은 하늘을 바라보라.
선우민준
'사랑받는 자'
'제주 왕국의 건설자'"
오늘도 새벽터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두 돌을 함께 바라보며.
"태준의 왕국" - 서울, 비즈니스
"민준의 왕국" - 제주, 교육
두 형제.
두 길.
하나의 하늘.
그들은 생각한다.
'나도 내 왕국을 세워야 하나?'
'가족과 떨어져도 괜찮을까?'
그리고 돌들은 대답한다.
"떨어지는 것이 버리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떨어져야
더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다.
각자의 왕국을 세워라.
하지만 같은 하늘을 바라보라.
그것이 진정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