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이 그린 벽화
춘천으로 가는 길
"춘천 가본 적 있어?"
9월의 어느 주말, 서연이가 물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쯤 됐을 때였다.
"춘천? 닭갈비?"
준우가 즉답했다.
"그것만 있는 게 아니야. 효자동 낭만골목이라고, 벽화마을이 있대."
지혜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벽화마을? 송월동이나 수원 행궁동 같은 거?"
"비슷한데 좀 달라. 여기는 스토리가 있대. 효자 이야기."
민수가 검색을 시작했다.
"반희언? 조선시대 효자?"
화면에는 효자동 낭만골목의 사진들이 떠올랐다. 알록달록한 벽화들, 좁은 골목, 그리고 호랑이 조형물들.
"여기 특이하네. 호랑이가 많아."
"효자 전설에 호랑이가 나오나 봐."
"재미있겠다. 이야기가 있는 벽화라니."
"서울 밖으로 나가는 것도 오랜만이고."
"좋아. 가자!"
토요일 아침 일찍, 네 식구는 ITX를 탔다. 청량리역에서 춘천까지 한 시간 반 거리였다.
"기차 여행 오랜만이다."
창밖으로 풍경이 지나갔다. 서울을 벗어나니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조금씩 색을 바꾸고 있었다.
"예쁘다."
"춘천은 산이 많대. 물도 많고."
춘천역에 도착했다. 공기가 서울과 달랐다. 맑고 시원했다.
"춘천이다!"
역 광장에서 택시를 탔다.
"효자1동 행정복지센터로 가주세요."
"낭만골목 가시는 거죠? 거기서 시작하시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10분쯤 가니 주택가가 나타났다. 오래된 동네였다. 낮은 집들, 좁은 골목.
"여기부터가 효자동이에요. 저기 행정복지센터 보이죠? 거기서 시작하시면 돼요."
택시에서 내려 행정복지센터 앞에 섰다. 입구에 큰 안내판이 있었다.
"효자동 낭만골목 안내도."
효자의 이야기를 따라
안내판을 자세히 봤다. 지도와 함께 설명이 적혀 있었다.
"효자동은 조선시대 효자 반희언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입니다. 반희언은 병든 어머니를 위해 한겨울에 죽순을 구하러 갔다가 호랑이를 만났고, 그의 효심에 감동한 호랑이가 죽순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호랑이가 도와줬다고?"
준우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전설이니까. 효심이 대단하면 호랑이도 감동한다는 거지."
안내판에는 두 가지 코스가 표시되어 있었다.
"'뭉클코스' 1.2km - 효자의 일대기를 담은 벽화 코스"
"'상상코스' 0.8km - 호랑이와 상상력을 주제로 한 코스"
"어느 걸로 갈까?"
"뭉클코스부터?"
"좋아."
코스 시작점으로 걸어갔다. 골목 입구에 큰 벽화가 있었다. 한복을 입은 젊은이가 눈 내리는 산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그림이었다.
"이게 반희언이구나."
벽화 아래 설명이 있었다.
"반희언(1603-1638)은 춘천 출신 효자로, 병든 어머니를 위해 겨울 산에서 죽순을 구했다는 전설의 주인공입니다."
"1603년이면... 400년도 더 전이네."
"조선시대 초기?"
"중기야. 임진왜란 후."
골목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양쪽 벽마다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첫 번째 벽화는 어린 반희언이 어머니와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효자의 어린 시절."
다음 벽화는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있고, 반희언이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모습.
"어머니가 아프신 거구나."
그다음은 눈 쌓인 산을 헤매는 반희언.
"죽순을 찾으러 간 거야."
벽화마다 이야기가 이어졌다. 마치 그림책을 보는 것 같았다.
"여기 봐!"
큰 벽화가 나타났다. 반희언 앞에 호랑이가 서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호랑이는 무섭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온화한 표정이었다.
"호랑이가 착해 보여."
"효심에 감동했으니까."
벽화 옆에는 실제 크기의 호랑이 조형물도 있었다.
"사진 찍자!"
아이들이 호랑이 조형물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포즈, 호랑이와 악수하는 포즈.
"재미있다!"
골목을 계속 따라가며 벽화들을 감상했다. 호랑이가 죽순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장면, 반희언이 죽순을 들고 돌아오는 장면, 어머니가 죽순을 드시고 건강해지는 장면.
"해피엔딩이네."
"효자 이야기는 다 그렇지."
하지만 마지막 벽화는 좀 슬펐다. 반희언의 무덤 앞에서 사람들이 절하는 모습이었다.
설명을 읽었다.
"반희언은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효심은 오래도록 기억되어, 이 동네 이름이 '효자동'이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구나."
"그래도 사람들이 기억해주니까... 의미 있었겠지."
코스 중간쯤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효자공원'이라는 이름이었다.
"쉬어가자."
공원 한가운데는 반희언의 동상이 서 있었다.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모은 자세였다.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인가 봐."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지혜가 말했다.
"벽화마을마다 다 특색이 있네."
"어떻게?"
"송월동은 동화, 수원 행궁동은 일상, 여기는 전설."
"그리고 교훈도 있어."
"효?"
"응. 벽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효에 대해 생각하게 되잖아."
민수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어때? 효자 이야기 보면서 뭘 느꼈어?"
서연이가 먼저 대답했다.
"효심은 대단한 거구나. 겨울 산에 죽순 구하러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준우는?"
"나는 호랑이가 신기해. 무서운 호랑이가 도와줬다니."
"전설이니까 과장은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그만큼 효심이 대단했다는 거야."
상상력의 골목
오후에는 '상상코스'를 걷기로 했다. 뭉클코스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여기는 좀 더 자유로운 느낌?"
상상코스는 효자 이야기를 벗어나 상상력을 주제로 한 벽화들이었다. 호랑이를 다양하게 변주한 그림들, 아이들이 그린 듯한 그림들, 추상적인 패턴들.
"여기는 예술적이네."
한 골목에는 거대한 호랑이 얼굴 벽화가 있었다. 3층 건물 전체를 차지한 크기였다.
"와, 크다!"
또 다른 골목에는 알록달록한 나비와 꽃 그림이 있었다.
"이건 효자랑 관련 없는데?"
"상상코스니까. 자유롭게 그린 거지."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낭만다방'이라는 레트로 감성의 간판이었다.
"여기 들어가보자."
카페는 작고 아늑했다. 옛날 다방 느낌으로 꾸며져 있었다.
"쌍화차 두 잔, 핫초코 두 개요."
주문을 하고 창가에 앉았다. 창밖으로 벽화 골목이 보였다.
"여기 분위기 좋다."
카페 주인이 차를 가져다주며 말을 걸었다.
"서울에서 오셨어요?"
"네. 낭만골목 보러 왔어요."
"고마워요. 요즘 찾아오시는 분들 많아졌어요."
"여기 오래 하셨어요?"
"아니요. 3년 됐어요. 벽화마을 생기고 나서 시작했어요."
"원래 여기 어떤 동네였어요?"
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조용한 주택가였죠.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근데 벽화 그리고 나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좋은 변화인가요?"
"좋죠. 사람들이 오니까 동네가 활기차고. 저 같은 사람도 여기서 장사할 수 있고."
"주민들은 어떠세요?"
"처음엔 좀 낯설어하셨어요. 갑자기 사람들 많이 오니까. 근데 지금은 괜찮으세요. 오히려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차를 마시며 민수가 지혜에게 말했다.
"여기도 젠트리피케이션 가능성 있을까?"
"글쎄. 춘천이니까 서울만큼은 아닐 것 같은데."
"근데 사람들이 계속 오면..."
"그것도 맞아."
카페를 나와 골목을 더 걸었다. 한 집 앞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화분에 물을 주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오, 어서 와요. 구경 왔어요?"
"네. 벽화 보러 왔어요."
"예쁘지? 우리 동네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어."
"여기서 오래 사셨어요?"
"60년 살았지. 태어나서 쭉."
"벽화 생기고 나서 어떠세요?"
할아버지는 벽화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좋아요. 동네가 예뻐지니까. 옛날엔 그냥 회색빛 담벼락이었는데."
"시끄럽지 않으세요?"
"주말엔 좀 시끄럽죠. 근데 괜찮아요. 젊은 사람들 보는 것도 좋고."
"효자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동네 자랑이지. 반희언 효자 이야기. 어렸을 때부터 들어서 다 알아요. 그 이야기를 이렇게 벽화로 만들어주니까 더 의미 있어요."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다시 걸었다. 코스의 끝에는 '효자비'가 있었다.
"진짜 비석이다."
오래된 돌비석이 작은 공원에 서 있었다. 한자로 글씨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이게 반희언 효자비래."
"몇 년 된 거야?"
안내판을 읽었다.
"1709년에 세워졌습니다. 반희언이 죽은 지 70년 후입니다."
"300년 넘었네."
비석 앞에 서서 잠시 묵념했다. 400년 전 이곳에 살았던 효자를 기억하며.
기억이 만든 동네
해가 기울 무렵, 다시 처음 시작했던 행정복지센터 앞으로 돌아왔다.
"한 바퀴 다 돌았네."
"2km 정도 걸었을까?"
"그 정도?"
벤치에 앉아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춘천 어땠어?"
민수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재미있었어."
"나는 호랑이가 제일 좋았어!"
준우가 대답했다.
"서연이는?"
"나는... 의미 있었어."
"어떻게?"
"효자 이야기가 400년 넘게 전해지고, 그게 벽화가 되고, 그래서 동네 이름까지 된 거잖아.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렇게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해."
민수는 딸을 보며 놀랐다. 17살이 된 서연이는 이제 완전히 자기 생각을 가진 어른이었다.
"잘 봤다. 그게 바로 기억의 힘이야."
"우리가 하는 아카이빙도 그런 거지?"
"맞아. 지금은 작은 기록이지만, 100년 후에는 역사가 될 수 있어."
저녁을 먹으러 춘천 시내로 나갔다. 닭갈비 거리로 유명한 명동으로 갔다.
"춘천 왔으면 닭갈비지!"
식당에 앉아 닭갈비를 주문했다. 철판에서 지글지글 끓는 닭갈비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맛있겠다!"
밥을 먹으며 지혜가 말했다.
"효자동은 특별했어."
"뭐가?"
"다른 벽화마을들은 그냥 예쁜 그림이었잖아. 근데 여기는 스토리가 있었어. 그리고 그 스토리가 진짜 역사였어."
"맞아. 전설이긴 하지만 실존 인물이고."
"그게 더 의미 있게 만드는 것 같아."
"교육적이기도 하고."
"응. 아이들이 효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잖아."
닭갈비를 다 먹고 막국수를 시켰다. 시원하고 새콤달콤했다.
"이게 춘천의 맛이구나."
ITX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아이들은 피곤해서 잠들었다.
"오늘 많이 걸었지."
민수와 지혜는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춘천까지 오길 잘했어."
"응. 서울만 다닐 게 아니라 지방 도시들도 가야겠어."
"각 도시마다 이야기가 다르니까."
"그리고 벽화마을도 다 다르고."
"송월동은 동화, 효자동은 효자 전설. 같은 벽화마을이어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
집에 도착해서 사진을 정리했다. 효자 벽화들, 호랑이 조형물, 효자비, 그리고 가족 사진들.
"사진이 따뜻해."
"벽화들이 따뜻해서 그런가 봐."
민수는 노트를 펼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춘천 효자동, 효심이 그린 벽화'.
"400년 전, 춘천에 반희언이라는 효자가 있었다. 그는 병든 어머니를 위해 겨울 산에 죽순을 구하러 갔고, 그의 효심에 감동한 호랑이가 도왔다고 한다. 전설일 수도 있고, 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400년 동안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이야기는 벽화가 되었다. 효자동 골목 1.2km에 걸쳐 반희언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아이들이 벽화를 보며 효를 배우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이야기를 듣는다."
"이것이 기억의 힘이다. 한 사람의 효심이 동네 이름이 되고, 전설이 되고, 벽화가 되고, 교육이 된다.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으로 영원해진다."
"우리가 걸었던 다른 골목들도 마찬가지다. 을지로의 장인들, 해방촌의 피난민들, 성수동의 구두 장인들.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는 아카이빙의 의미다."
글을 다 쓰고 지혜에게 보여줬다.
"좋다. 철학적이면서도 따뜻해."
"효자동이 그랬어. 교훈적이면서도 따뜻했어."
며칠 후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춘천 사는데 효자동을 이렇게 깊이 본 적이 없었어요."
"다음 주말에 가족들과 가보겠습니다. 아이들 교육에 좋을 것 같아요."
"기억의 힘이라는 말이 와닿네요."
그리고 특별한 댓글이 하나 달렸다.
"저는 반희언의 후손입니다. 13대손이에요. 선조님 이야기를 이렇게 의미 있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 집안에서도 이 이야기를 대대로 전해오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니 뿌듯합니다."
민수는 가슴이 뭉클했다. 즉시 답글을 달았다.
"후손분께서 직접 댓글을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반희언 선조님의 효심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선조님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일주일 후, 그 후손과 만났다. 춘천의 한 카페에서였다.
"반갑습니다. 저는 반희언의 13대손 반영수입니다."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야말로요. 선생님 책 다 읽었어요. 『골목, 그 안의 시간들』 시리즈. 정말 감동적이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반희언에 대한 가문의 기록, 전해지는 이야기들, 효자비가 세워지게 된 과정.
"사실 저희 집안에서도 효를 중요하게 여겨왔어요. 선조님의 정신을 이어가려고."
"그게 400년 동안 이어진 거네요."
"그렇죠. 그리고 이제는 효자동 벽화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고요."
"벽화 생겼을 때 어떠셨어요?"
"처음엔 좀 낯설었어요. 선조님 이야기가 만화처럼 그려진 게. 근데 아이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손자들 데리고 가면 신기해하면서 '이게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이러면서."
"몇 대 할아버지예요?"
"13대 할아버지죠."
모두 웃었다.
그날 민수는 반영수씨로부터 귀한 자료를 받았다. 가문에 전해오는 반희언의 초상화 사진, 족보, 그리고 효자비 건립 당시의 기록.
"이걸 제게 주시는 거예요?"
"사본이에요. 선생님이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선조님도 기뻐하실 거예요."
3개월 후, 『골목, 그 안의 시간들 4』가 출간됐다. 이번에는 춘천 효자동이 중심이었다.
특히 반희언의 후손 인터뷰가 큰 화제가 됐다. 400년을 이어온 가문의 이야기, 효를 실천하는 후손들의 모습.
책은 교육계에서 주목받았다. 여러 학교에서 인성교육 자료로 활용했다.
"선생님, 저희 학교에서 효자동 현장학습 가려고 하는데, 혹시 가이드 가능하세요?"
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요?"
"네. 책 쓰신 분이 직접 설명해주시면 아이들이 더 잘 이해할 것 같아서요."
민수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해보겠습니다."
한 달 후, 초등학교 4학년 30명과 함께 효자동을 걸었다. 아이들은 벽화를 보며 질문을 쏟아냈다.
"선생님, 호랑이가 진짜 도와줬어요?"
"글쎄, 전설이니까 과장은 있을 거야. 하지만 반희언의 효심만큼은 진짜였어."
"효심이 뭐예요?"
"부모님을 사랑하고 잘 모시는 마음이야."
"저도 효자예요!"
아이들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너희도 반희언처럼 벽화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현장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한 아이가 민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도 나중에 기억되고 싶어요. 반희언처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일 많이 하면 돼요?"
"맞아. 그리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 기억해주는 거지."
"선생님처럼요?"
"응. 나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야. 너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면 돼."
그날 이후, 민수는 가이드 요청을 여러 번 더 받았다. 다른 학교들, 가족 단위 관광객들, 효 교육 세미나.
"내가 효자동 전문가가 된 것 같아."
지혜가 웃으며 말했다.
"좋은 거 아니야? 의미 있는 일이잖아."
"응. 아이들이 효를 배우는 걸 보면 뿌듯해."
1년 후, 춘천시에서 '효자동 스토리텔링 사업'을 시작했다. 민수는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벽화만이 아니라 체험 프로그램, 교육 자료, 효자 축제까지. 효자동은 단순한 벽화마을을 넘어 인성교육의 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부의 골목 아카이빙은 이제 완전히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기록이 교육이 되고, 교육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다시 기록되는 선순환.
춘천 효자동은 그 중심에 있었다. 400년 전 한 효자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는 곳.
오늘도 효자동 골목에는 벽화가 있다. 그리고 그 벽화를 보며 걷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이 효를 배우고, 가족들이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조용히 반희언을 기억한다.
민수는 가끔 혼자 효자동을 찾는다. 조용한 평일 오후, 사람이 없을 때.
효자비 앞에 서서 생각한다. 기억이란 무엇일까.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400년을 넘어 이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깨닫는다. 기록의 힘을. 이야기의 힘을.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사람의 책임을.
골목은 기억을 품는다. 그리고 기억은 사람을 만든다.
효자동의 벽화처럼,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