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지 마라. 고백하라. 하느님은네 수치를 은혜로 바꾸신다."
2118년 봄, 서울.
선우지안의 죽음 이후 2년이 지났다.
선우 가문은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었다.
특히 넷째 아들 선우유다(62세).
그는 예술가였다. 화가. 서울에서 작업하며 살았다.
하지만 지안의 죽음 이후, 붓을 들 수 없었다.
"여보, 오늘도 안 그려요?"
아내 김수아(60세)가 물었다.
"못 그리겠어. 지안이가 자꾸 생각나."
"당신 잘못이 아니잖아요."
"아니야. 나도 프로젝트 반대했어. 나도 지안을 막았어."
유다는 고개를 떨궜다.
"그림이라도 그려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그려져."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어디 다녀와요."
"어디?"
"제주도 요. 지안이가 살던 곳. 그곳에 가서 정리하고 오세요."
제주도.
유다는 지안의 집을 방문했다.
과부가 된 박소연(55세)이 맞았다.
"유다 형님, 어서 오세요."
"소연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럭저럭요. 남편 없이... 적응 중이에요."
집은 조용했다. 지안의 흔적들이 곳곳에 있었다.
책상, 그림, 할아버지 민준의 노트북(복사본).
"소연이, 지안이 물건들 정리 안 했어?"
"못 하겠어요. 손이 안 가요."
"이해해. 나도 그래."
두 사람은 거실에 앉았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흘렀다.
저녁이 되었다.
"형님, 저녁 드시고 가세요."
"괜찮아. 호텔 예약했어."
"아니에요. 여기서 주무세요. 남편 방 그대로 있어요."
유다는 망설였다.
'형수 집에서 자는 게 맞나?'
하지만 소연의 눈빛이 외로웠다.
"알았어. 고마워."
그날 밤.
유다는 지안의 방에서 잤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안의 책들, 그림들을 보며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지지했다면... 지안이 혼자 가지 않았을 텐데...'
새벽 2시.
복도에서 소리가 들렸다.
흐느끼는 소리.
유다는 나갔다.
소연이 거실에서 울고 있었다.
"소연이..."
"형님, 죄송해요. 깨웠나봐요."
"괜찮아. 무슨 일이야?"
"그냥... 외로워서요. 남편 없이 2년... 너무 길어요."
유다는 옆에 앉았다.
"이해해. 나도 힘들어."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안에 대해, 과거에 대해, 외로움에 대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실수가 일어났다.
외로움이, 죄책감이, 위로가 뒤섞여.
선을 넘었다.
다음날 아침.
유다는 깨어나 충격받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소연도 일어났다.
"형님..."
"소연이, 미안해. 내가... 내가 정신이 없었어."
"저도요. 저도 잘못했어요."
"이건... 이건 비밀로 해야 해."
"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유다는 급히 짐을 쌌다.
"나 서울 가야 해."
"형님, 그래도..."
"미안해, 소연이. 나... 정말 미안해."
유다는 도망치듯 떠났다.
3개월 후.
소연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님, 저... 임신했어요."
유다는 얼어붙었다.
"뭐라고?"
"저 임신했어요. 형님 아이예요."
"확실해?"
"네. 그날 이후로 아무도... 형님밖에 없었어요."
유다는 패닉에 빠졌다.
"소연이, 어떡하지?"
"모르겠어요. 저도 무서워요."
"일단... 일단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하지만 배가 불러오면 다들 알 거예요."
"내가... 내가 생각 좀 해볼게."
유다는 전화를 끊었다.
며칠간 고민했다.
'어떻게 하지? 가족들이 알면?'
'지안의 과부와... 나는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내 수아가 알면?'
유다는 결정했다.
'모른 척하자. 소연이가 알아서 하겠지.'
3개월 더 지났다.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선우지안 과부가 임신했대."
"누구 아이래?"
"모른대. 혼자 사는데."
소문이 선우 가문에 들렸다.
장남 르우벤(72세)이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소연이가 임신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소연이 화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예."
"누구 아입니까?"
"말할 수 없어요."
"말할 수 없다니? 당신 과부인데!"
태민이 분노했다.
"이건 우리 가문의 수치야! 지안이가 죽은 지 2년밖에 안 됐는데!"
준호도 가세했다.
"소연 씨, 당신 지안이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
소연은 울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르우벤이 엄하게 말했다.
"가족회의 결정입니다. 소연 씨, 당신은 선우 가문에서 제명됩니다."
"제명이요?"
"네. 그리고 지안이 유산도 반환하셔야 합니다."
소연은 충격받았다.
"하지만... 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선우 가문의 아이가 아닙니다."
화상이 꺼졌다.
유다는 회의 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말해야 하나?'
'하지만 말하면... 나도 끝이야. 가족도, 명예도, 모든 게 끝이야.'
그는 침묵을 선택했다.
일주일 후.
소연에게서 택배가 왔다.
유다에게만.
상자를 열자 세 가지 물건이 있었다.
유다의 명함 (그날 밤 준 것)
유다의 넥타이 (그날 밤 벗어둔 것)
유다의 시계 (그날 밤 잊고 온 것)
그리고 편지.
"유다 형님,
저는 임신 사실을 가족들에게 들켰습니다.
가족들은 저를 제명하고 유산을 빼앗으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압니다.
이 물건들의 주인이 누군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형님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형님의 양심에 맡깁니다.
형님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소연"
유다는 무너졌다.
다음 날, 가족회의.
소연 제명을 최종 결정하는 날.
유다가 일어났다.
"잠깐."
"왜, 유다?"
"소연이를 제명하지 마십시오."
"왜? 그 여자가 우리 가문에 수치를 가져왔는데!"
유다는 심호흡했다.
"그 아이... 제 아이입니다."
침묵.
"뭐라고?"
"소연이의 아이가 제 아이입니다."
회의장이 폭발했다.
"유다! 네가 형수와?!"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짓이야!"
유다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실수? 이게 실수야?!"
태민이 책상을 쳤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죽은 조카의 아내와?!"
유다는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소연이는 제보다 더 의롭습니다."
"뭐?"
"저는 비겁했습니다. 제 잘못을 숨기려 했습니다. 소연이가 혼자 책임지게 하려 했습니다."
유다는 명함, 넥타이, 시계를 꺼냈다.
"하지만 소연이는 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제 양심에 맡겼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백하는 거야?"
"네. 소연이가 저보다 더 의롭습니다. 제가 벌받아야 합니다."
회의는 혼란에 빠졌다.
르우벤이 정리했다.
"유다, 너는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백했다는 것은 인정하마."
르우벤은 한숨을 쉬었다.
"소연 씨 제명은 취소합니다. 하지만 유다, 너는..."
"벌을 받겠습니다. 어떤 벌이든."
"선우 가문 이사회에서 1년간 정직. 그리고 공개 사과."
"알겠습니다."
6개월 후.
소연이 쌍둥이를 낳았다.
두 아들.
병원 분만실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한 아기가 손을 먼저 내밀었다.
간호사가 빨간 팔찌를 그 손에 채웠다.
"첫째네요."
하지만 그 아기가 손을 도로 집어넣고, 다른 아기가 먼저 나왔다.
"어머, 동생이 형을 밀어내고 먼저 나왔어요!"
의사가 웃었다.
"이 아이 이름 뭐라고 지을 거예요?"
유다가 대답했다.
"페레츠. '돌파'라는 뜻입니다. 이 아이가 우리 가문의 수치를 돌파했으니까요."
"그럼 손에 팔찌 찬 아기는?"
"제라. '새벽'이라는 뜻입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 새벽을 알렸으니까요."
유다는 소연에게 말했다.
"소연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뭐가 고마워요?"
"네가 날 폭로하지 않았어. 내 양심에 맡겼어. 그게... 나를 살렸어."
소연은 미소 지었다.
"형님도 용기 있었어요. 고백하신 거."
"비겁했다가 용기 낸 거지."
유다는 쌍둥이를 바라봤다.
"이 아이들... 잘 키우자."
"네."
"결혼은 안 해도 돼. 나도 아내가 있고, 너도 아직 지안이 생각나고."
"네, 알아요."
"하지만 아이들 아버지로서 책임지겠어."
"감사해요, 형님."
유다의 일기, 2118년 12월:
"나는 죄를 지었다.
형수와 관계를 가졌다.
비겁하게 숨기려 했다.
하지만 소연이가 나를 살렸다.
폭로하지 않고
내 양심에 맡겼다.
그래서 나는 고백했다.
쌍둥이가 태어났다.
페레츠와 제라.
이 아이들은 내 수치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또한 내 회개에서 태어났다.
수치가 은혜로 바뀌었다.
하느님은
우리의 실수조차도
구원의 이야기로 만드신다.
감사합니다.
아멘."
—끝—
에필로그
20년 후.
페레츠(20세)와 제라(20세)는 자랐다.
두 아들은 아버지 유다와 어머니 소연의 이야기를 알았다.
"아버지, 저희는 실수에서 태어난 거예요?"
"아니, 너희는 회개에서 태어난 거야."
"차이가 뭐예요?"
"실수는 끝이지만, 회개는 시작이란다."
페레츠가 물었다.
"그럼 저희는 선우 가문의 수치인가요?"
유다가 아들을 안았다.
"아니다. 너희는 선우 가문의 은혜란다."
"왜요?"
"너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어. 실수해도 고백하면 회복된다는 것을."
제라도 물었다.
"저는 왜 손만 내밀고 들어갔어요?"
"하느님이 네 형 페레츠에게 먼저 길을 주셨단다. 그것도 은혜야."
평창 새벽터에 새로운 돌이 세워졌다.
"회개의 은혜"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선우유다의 고백
2118
나는 죄를 지었다.
숨기려 했다.
하지만 한 여인이
나를 폭로하지 않고
내 양심에 맡겼다.
그래서 나는 고백했다.
"그가 나보다 더 의롭다."
죄는 수치를 낳는다.
하지만 고백은 은혜를 낳는다.
페레츠와 제라.
실수에서 태어났지만
회개로 자란 아이들.
수치가 은혜로 바뀌었다.
이것이 하느님의 방식이다.
당신도 실수했는가?
숨기지 마라.
고백하라.
그러면 수치가
은혜로 바뀔 것이다.
선우유다"
그 돌은 오늘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숨기지 마라.
고백하라.
하느님은
네 수치를
은혜로 바꾸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