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속의 빛

선우 가문의 AI 윤리 재단 통합 이사장

by 이 범

감옥 속의 빛

2117년 봄, 서울.
선우 가문의 AI 윤리 재단 통합 이사장 자리는 공석이었다.
지안이 죽고 1년이 지났다.
후임 이사장을 찾아야 했다.
이사회는 외부 인사를 물색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추천되었다.
박민준(45세). 이름이 선우민준과 같았다.
AI 윤리 전문가. 미국 MIT 교수 출신.
단, 조건이 있었다.
"한국으로 귀국해야 합니다. 재단에 상주해야 하니까."
박민준은 수락했다.
제주로 왔다.
그리고 선우지안의 아내 박소연(55세)이 그를 맞이했다.
소연은 지안이 죽은 후 재단 행정처장을 맡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박 이사장님."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 처장님."
두 사람은 함께 일했다.
박민준은 능력 있었다. 지안 못지않게.
소연은 헌신적이었다. 재단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3개월이 지났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졌다.
일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처장님, 오늘 저녁 같이 드실래요? 이야기할 게 많아서요."
"좋아요."
저녁 식사.
지안 이야기, 재단 이야기, 미래 이야기.
박민준의 눈에 소연이 보였다.
'아름다운 분이다. 지적이고, 헌신적이고.'
하지만 그는 선을 지켰다.
'그분은 지안의 아내다. 존중해야 해.'
6개월 후.
이사회에서 박민준의 성과를 보고했다.
"취임 6개월 만에 재단 예산 30% 증가."
"UN 프로젝트 3건 추가 수주."
"직원 만족도 역대 최고."
선우 가문 이사들이 놀랐다.
태민이 말했다.
"박 이사장, 정말 대단합니다."
"소연 처장님 덕분입니다. 그분 없이는 불가능했을 거예요."
박민준이 소연을 바라봤다.
소연도 박민준을 바라봤다.
그 눈빛을 태민이 포착했다.
'저 두 사람... 뭔가 있는 거 아냐?'

2118년 초.
박민준과 소연의 관계는 깊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선을 지켰다.
함께 일하고, 함께 밥 먹고, 함께 대화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 소연이 말했다.
"박 이사장님, 저... 이사장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박민준이 멈췄다.
"처장님..."
"죄송해요. 말하면 안 됐는데."
"아니요. 저도..."
"예?"
"저도 처장님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처장님은 지안 씨의 아내입니다. 저는 지안 씨의 후임이고요. 이건..."
"복잡하죠."
"네. 선우 가문이 어떻게 생각할지."
소연이 웃었다.
"이미 복잡한 가문이에요. 두 어머니, 일곱 자녀, 온갖 사건들."
"그래도..."
"생각해봐요. 서두르지 말고."
박민준은 고민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움직였다.
태민이었다.
태민은 선우 가문 이사회를 소집했다.
"박 이사장과 소연 씨의 관계를 논의해야 합니다."
이사들이 모였다.
"둘이 가깝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소문이 아니라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교제를 시작한다면, 재단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준호가 더 직접적으로 말했다.
"이사장과 행정처장이 연인 관계라면, 이해충돌이 생깁니다."
"둘 중 하나가 나가야 합니다."
"누가요?"
"소연 씨가 나가야죠. 이사장은 바꾸기 어려우니까."
"그건 불공평합니다."
"공평한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재단을 위해서입니다."
그 소식이 소연에게 들렸다.
"처장님, 이사회에서 당신을 내보내려 한다는 말 들었어요?"
박민준이 물었다.
"네.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억울해요. 저는 재단을 위해 10년을 일했는데."
"이건 잘못됐습니다. 제가 이사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이사장님."
"왜요?"
"이사장님이 나서면 더 복잡해져요. 제가 직접 이사회에 가겠어요."

이사회.
소연이 들어섰다.
태민이 말했다.
"소연 씨, 당신과 박 이사장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연이 조용히 말했다.
"저는 박민준 이사장님을 좋아합니다."
이사회가 술렁였다.
"하지만 아직 어떤 관계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감정이 있다면..."
"감정을 가지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죠."
"하지만 이해충돌이..."
소연이 서류를 꺼냈다.
"저는 처장직을 사임하겠습니다."
침묵.
"이사회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사임합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첫째, 제 후임은 제가 추천합니다. 재단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둘째, 저는 재단 자문위원으로 계속 활동합니다. 무보수로."
"셋째, 박 이사장님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태민이 물었다.
"왜 이렇게 하시는 겁니까?"
"재단이 중요하니까요. 제 감정보다."
"지안 씨를 생각하면..."
소연의 눈이 흔들렸다.
"지안 씨도 재단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어요.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사회는 수락했다.
소연의 사임 후.
박민준이 소연을 찾아갔다.
"처장님, 아니... 소연 씨, 왜 그랬어요? 제가 이야기했으면 됐는데."
"이사장님이 나서면 더 힘들어졌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 자리를 잃었잖아요."
"자리는 잃었지만 재단은 지켰어요."
"소연 씨..."
"그리고 이사장님도 지켰고요."
박민준은 소연을 바라봤다.
"소연 씨, 당신은 정말..."
"웃기죠? 좋아하는 사람을 지키려고 자리를 버리다니."
"웃기지 않아요. 아름다워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소연 씨, 저는 당신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재단 때문에 당신이 희생하는 건 원하지 않아요."
"희생이 아니에요. 선택이에요."
"그 차이가 뭐예요?"
소연이 미소 지었다.
"희생은 억울하지만, 선택은 평화로워요. 저는 평화로워요."
3개월 후.
이사회에서 새로운 처장이 임명되었다.
소연이 추천한 사람.
재단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다.
그리고 박민준과 소연은 조용히 교제를 시작했다.
선우 가문에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숨기지도 않았다.
태민이 어느 날 박민준에게 말했다.
"박 이사장,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 우리가 잘못 판단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니요. 소연 씨를 의심했어요. 사실 당신도. 하지만 둘 다 재단을 위해 행동했죠."
"태민 이사님..."
"소연 씨가 처장직을 포기한 것... 그것이 당신보다 더 의로웠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을 더 존경합니다."
태민이 웃었다.
"잘 사십시오. 둘이서."

2119년 봄.
박민준은 이사회에서 발표했다.
"재단 운영 2년간의 성과를 보고드립니다."
"UN 프로젝트 15건."
"교육 대상 50개국."
"학생 수 10만 명 돌파."
이사들이 박수를 쳤다.
"이 성과는 제 것이 아닙니다."
"선우민준 증조할아버지의 씨앗."
"선우지안의 헌신."
"그리고..."
박민준이 소연을 바라봤다.
"박소연 씨의 지혜와 희생 덕분입니다."
소연이 고개를 숙였다.
이사들도 고개를 숙였다.
그날 저녁.
박민준과 소연은 제주 바닷가를 걸었다.
"여보, 오늘 발표 잘 하셨어요."
"여보라고 부르니 아직도 어색하네요."
소연이 웃었다.
"6개월 됐는데 아직도요?"
"지안 씨 생각이 나서."
"저도 나요. 하지만..."
소연이 손을 잡았다.
"지안이라면 우리를 응원했을 거예요."
"그럴 것 같아요?"
"네. 지안은 사랑을 믿었으니까. 어떤 형태든."
박민준이 손을 꼭 잡았다.
"소연 씨, 감사해요."
"뭐가요?"
"재단을 위해 자리를 포기해줘서. 그리고..."
"그리고?"
"저를 선택해줘서."
소연이 미소 지었다.
"저도 감사해요. 저를 지켜봐줘서."
바다가 빛났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둠이 아니라 빛이었다.
선우 가문에도 변화가 있었다.
태민이 이사회에서 말했다.
"박민준 이사장의 임기를 5년 연장하겠습니다."
"이의 없습니다."
"그리고 소연 씨를 명예 이사로 추천합니다."
"예?"
"재단을 위해 자리를 포기한 분이에요. 그 공로를 인정합니다."
만장일치로 통과.
박민준의 일기, 2119년 3월:
"나는 이곳에 왔다.
낯선 땅, 낯선 재단.
하지만 하느님께서 함께하셨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느님께서 내게 자애를 베푸셨다.
이사회의 신뢰를 얻었다.
좋은 동역자를 만났다.
그리고 사랑도 얻었다.
소연은 나보다 더 의롭다.
자리를 포기하면서도
재단을 지키고
나를 지켰다.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낯선 곳에서도
함께하셨으니.
아멘."
—끝—
에필로그
10년 후.
선우지안 AI 윤리 재단은 세계 최고의 기관이 되었다.
박민준 이사장의 리더십 아래.
소연의 지혜 아래.
그리고 선우 가문의 지원 아래.
100개국에서 학생들이 배웠다.
"기술은 인간을 섬겨야 한다."
그것이 선우민준의 꿈이었고.
선우지안의 꿈이었고.
이제 박민준과 소연의 꿈이 되었다.
평창 새벽터에 새 돌이 세워졌다.
"낯선 곳의 은혜"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박민준의 기록
2117-2127
나는 낯선 곳에 왔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함께하셨다.
이사회의 눈에 들게 하셨다.
좋은 동역자를 주셨다.
사랑도 주셨다.
낯선 곳이 집이 되었다.
어려운 상황이 은혜가 되었다.
당신도 낯선 곳에 있는가?
두려워 말라.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
그분이 함께하시면
어디든 집이 된다.
그분이 함께하시면
무슨 일이든 잘 이루어진다.
박민준
'낯선 곳에서 은혜를 받은 자'"
그 돌은 오늘도
낯선 곳에서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두려워 말라.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
그분이 함께하시면
어디든 빛이 된다."

월, 화, 수,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