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적
음성 분석 의뢰와 방해
다음 날 아침 일찍 강민준은 움직였다.
음성 분석 전문가. 그 분야에서 강민준이 아는 사람은 한 명이었다. 박진수. 전직 국과수 음성분석팀 출신으로, 지금은 서울 서초구에 개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법정 증거 감정부터 방송사 음성 검증까지 다양한 의뢰를 받는 사람이었다. 강민준은 2년 전 다른 사건을 취재할 때 한 번 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받지 않았다. 강민준은 문자를 남겼다. 급한 의뢰가 있다, 연락 달라고.
오전 내내 답이 없었다.
오후 한 시, 강민준은 직접 서초구 박진수의 연구소로 향했다. 건물 3층에 위치한 작은 사무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문 앞에 섰다.
문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사정상 당분간 외부 의뢰를 받지 않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강민준은 그 종이를 바라보았다. 날짜가 적혀 있었다. 오늘 날짜였다. 아침에 붙인 것이었다.
그는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소리가 났다. 발소리.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박진수 소장님, 저 강민준 기자입니다. 2년 전에 뵌 적 있습니다."
침묵.
그리고 낮은 목소리가 문 안에서 들렸다.
"지금은 의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소장님, 잠깐만 문 열어주시겠습니까. 직접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강 기자님."
박진수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저한테 연락하지 마십시오. 저도, 다른 분들도요. 저는 지금 이 일에서 빠져야 합니다."
강민준은 그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읽으려 했다. 문이 닫혀 있으면 눈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읽히는 것이 있었다. 두려움. 그것도 갑자기 생긴 두려움이었다. 오래 쌓인 두려움이 아니라, 최근 며칠 사이에 주입된 종류의 두려움.
"누군가 연락을 했습니까? 의뢰를 받지 말라고."
대답이 없었다.
"소장님."
"강 기자님, 가십시오. 제발요."
강민준은 문 앞에 서서 잠시 더 있다가 몸을 돌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그는 생각했다. 박진수에게 누가 먼저 접촉했다. 강민준이 전화를 건 시각은 아침 여덟 시였다. 그리고 연구소 문에 붙은 종이는 오늘 날짜였다. 그 사이에 박진수가 외부 의뢰를 차단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강민준의 전화가 간 뒤 누군가가 그에게 더 강하고 더 빠르게 접촉했다는 뜻이었다.
한상민이 움직인 것이다.
강민준이 전화를 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 강민준의 통화가 감청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혹은 편집국 내부에 정보가 새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건물을 나서며 강민준은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이 핸드폰이 안전한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일회용 선불 유심을 구매했다. 두 개를 샀다. 하나는 자신을 위해, 하나는 서윤아를 위해. 선불 유심으로 바꾸면 기존 번호 추적이 불가능해졌다.
편의점 화장실에서 유심을 교체하면서, 핸드폰이 울렸다.
교체하기 전의 기존 번호로 걸려온 전화였다. 발신인 표시는 없었다.
강민준은 받았다.
"강민준 기자님."
남자 목소리였다. 조용하고 낮고 담담했다. 감정의 굴곡이 없는 목소리. 훈련된 사람의 목소리.
"누구십니까?"
"한상민입니다."
한상민의 접촉
강민준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주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한상민. 발신인 H. 한성그룹 홍보총괄 전무. 전직 감사실장. 강민준이 박기태의 핸드폰 화면에서 처음 그 이름의 첫 글자를 읽은 날부터 찾고 있던 인물.
그 사람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
"반갑습니다." 강민준은 평정심을 유지했다. "어떻게 제 번호를."
"어렵지 않습니다." 한상민이 말했다. "기자님이 저희 홍보팀장을 만나고 가신 날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는군요."
"시간 낭비를 좋아하지 않아서요."
강민준은 그 목소리를 분석했다. 전화를 통해서는 눈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의 결, 호흡의 속도, 말 사이의 간격. 그것들도 정보였다.
한상민의 목소리는 안정적이었다. 지나치게 안정적이었다.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안정감이었다.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무슨 일로 연락하셨습니까?"
"만나고 싶습니다. 기자님과 직접."
"왜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기자님이 알고 계신 것들에 대해."
그 말에서 강민준이 포착한 것이 있었다. '기자님이 알고 계신 것들.' 한상민은 강민준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안다. 혹은 안다고 생각한다. 그 판단이 이 전화를 걸게 만들었다.
"만나는 자리가 안전합니까?"
한상민이 짧게 웃었다. 비어있는 웃음이었다.
"제가 해를 가한다면 이렇게 전화하지 않았겠죠."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기자님, 저는 지금 기자님을 막으려는 게 아닙니다."
강민준은 그 문장 앞에서 멈췄다.
막으려는 게 아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전화 너머로는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것 자체가 정보였다. 한상민은 지금 강민준에게 뭔가를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막는 것이 목적이라면 설득할 필요가 없다. 서윤아를 협박하는 방식으로 하면 됐다.
"언제 어디서요?"
"오늘 오후 다섯 시. 장소는 제가 정하겠습니다.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강민준은 편의점 화장실 안에서 잠시 서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표정이 없었다. 오랫동안 감정을 읽히지 않도록 훈련한 얼굴.
그는 이혜정에게 새 유심으로 문자를 보냈다. 번호가 바뀌었다는 것, 오늘 오후 다섯 시에 한상민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만남이 끝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으면 경찰에 신고해달라는 것.
이혜정의 답이 왔다.
"미쳤어? 혼자 가게?"
"이 만남이 필요합니다. 한상민의 눈을 봐야 합니다."
잠시 후.
"……위치 공유 켜두고 가. 그리고 녹음 켜."
강민준은 문자를 읽고 핸드폰을 넣었다.
한상민의 문자가 도착했다. 장소는 강남구 논현동의 한 일식 레스토랑 이름이었다. 프라이빗 룸이 있는 고급 식당. 공개된 장소이지만 룸이 있다는 것은 외부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강민준은 구두를 정리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오후 다섯 시까지 세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세 시간 동안 준비할 것들을 생각했다. 녹음기, 위치 공유, 그리고 자신의 머릿속을 최대한 비우는 것. 한상민 앞에서 강민준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야 할 수도 있었고, 이미 다 아는 척해야 할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 더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는지는 한상민의 눈을 보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생애 가장 위험한 만남
논현동 레스토랑은 외관이 조용하고 단정했다.
오후 다섯 시 정각에 강민준이 들어섰다. 입구에서 직원이 이름을 확인하더니 안쪽 프라이빗 룸으로 안내했다. 복도를 지나 미닫이문이 달린 방. 문을 열자 다다미가 깔린 좁은 공간이었다. 테이블 하나, 좌석 둘.
한상민이 이미 앉아 있었다.
강민준은 처음으로 그를 실물로 보았다.
예상보다 젊어 보였다. 나이는 쉰 초반이겠지만 실제로는 마흔 중반처럼 보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검정 수트에 타이를 매지 않은 차림이었다. 머리는 짧게 정돈되어 있었고 얼굴 윤곽이 날카로웠다.
눈이 특이했다.
강민준이 자리에 앉으면서 즉각 그 눈에 집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민준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뭔가를 드러낸다. 긴장하거나, 회피하거나, 경계하거나. 하지만 한상민의 눈은 달랐다. 마주쳤을 때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았다. 물 위에 기름이 뜨는 것처럼, 강민준의 시선이 그 눈 표면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이 사람은 눈을 읽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첫 번째 인식이었다.
훈련된 사람이었다. 감정 표출을 최소화하는 훈련. 군인이나 정보기관 출신에게서 가끔 보이는 종류였다. 하지만 완벽한 차단은 없었다. 어떤 사람도 완벽하게 자신을 닫지는 못한다. 강민준은 더 깊이, 더 세밀하게 읽기 시작했다.
눈꺼풀의 긴장도. 미세한 깜빡임 속도. 동공의 크기.
동공이 약간 넓었다. 강민준을 보면서 동공이 좁아지지 않았다. 그것은 위협이나 경계의 신호가 아니었다. 오히려 관심. 강민준을 분석하고 있었다.
한상민도 강민준을 읽으려 하고 있었다.
"앉으시죠." 한상민이 먼저 말했다. "뭐 드시겠습니까?"
"물이면 충분합니다."
한상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을 불러 물을 시켰다. 자신은 이미 놓인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군더더기 없이 정확했다. 감정을 실지 않는 동작들.
"바쁘신데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하셔서 부르셨을 테니까요."
한상민의 입가에 아주 얕은 무언가가 스쳤다. 웃음은 아니었다. 인정의 표시였다.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상민이 말했다. "기자님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요?"
"USB. 함재식. 서윤아. 그리고 여의도공원에서의 만남까지."
강민준은 표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여의도공원에서의 만남. 함재식을 만난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함재식을 감시하고 있었거나, 강민준을 계속 미행했거나, 혹은 둘 다였다.
"그래서요?"
"기자님이 그것들을 기사로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제가 예측해야 할 일입니까?"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한상민이 몸을 앞으로 조금 기울였다. "USB 안의 자료는 원본 검증이 되지 않았습니다. 동영상의 인물도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함재식의 자료는 법적 효력이 없는 개인 추적 기록입니다. 그 상태로 기사가 나가면, 우리는 허위 보도로 법적 대응을 할 것입니다. 기자님 회사는 한성그룹 광고를 잃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자님은 기자직을 잃을 것입니다."
강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한상민의 눈을 읽었다.
이 말을 하면서 한상민이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위협을 즐기는 감정인가. 아니면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는 담담함인가.
둘 다 아니었다.
놀랍게도, 한상민의 눈 안에서 강민준이 읽은 것은 피로였다.
오랫동안 이런 말을 해야 했던 사람의 피로. 이 말이 자신도 지겹고 원하지 않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하는 사람의 피로.
'이 사람은 지금 협박하고 싶어서 이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 인식이 강민준의 판단을 잠시 흔들었다.
한상민이 제안하는 것
강민준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협박이십니까, 아니면 다른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협박이 아닙니다." 한상민이 말했다. "현실을 말씀드린 겁니다."
"그 현실 다음에 오는 말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한상민이 강민준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 시선 안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과정이 있었다. 강민준은 그것을 읽으려 했다. 0.5초, 1초. 한상민의 눈꺼풀이 한 번 내려왔다 올라왔다.
"기자님, 저는 이 일을 끝내고 싶습니다."
강민준은 그 말을 예상하지 못했다.
"어떤 의미입니까."
"제가 지난 3년 동안 해온 일들이 있습니다. 기자님이 생각하시는 것들이요. 그것이 잘못됐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강민준은 한상민의 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진실인가 거짓인가.
그 판단이 지금 이 대화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
한상민의 눈이 이번에는 달랐다. 표면의 기름이 걷히는 것 같았다. 아주 잠깐, 0.3초 남짓. 그 안에서 강민준이 읽은 것은 복잡하고 다층적이었다.
진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실 안에 두려움이 있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자신이 한 일로 인해 발생할 다음 일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 사람은 지금 어딘가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강민준에게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한상민이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동작이 처음으로 약간 불안정했다. 잔이 접시에 닿는 소리가 조금 컸다.
"한재원 부회장의 죽음은 제가 직접 지시한 것이 아닙니다."
강민준은 말없이 기다렸다.
"저는 한재도 회장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 지시가 '처리'를 의미하는 것인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라는 것인지 그 경계가 처음에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네."
한상민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낮아졌다.
강민준은 그 낮아짐 안에서 무언가를 읽었다. 죄책감. 그것이 있었다. 작지 않은 크기로. 하지만 그 죄책감이 회한인지, 아니면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왔을 때 느끼는 후회인지, 그 경계가 아직 불분명했다.
"제안이 있습니다." 한상민이 말했다. "기자님이 원하시는 것을 드리겠습니다."
"원하는 것이요."
"동영상 속 첫 번째 인물이 한재도 회장임을 입증하는 추가 자료. GV-3 계정과 기획재정부 차관보의 연결을 증명하는 원본 서류. 그리고 한재원 부회장의 사인이 자연사가 아님을 뒷받침하는 의료 기록."
강민준은 그 목록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세 가지 구멍. 동영상 인물 특정, 차관보 연결고리, 타살 증명. 한상민이 그 세 가지를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왜 저한테 그것들을 주시려는 겁니까."
"거래입니다."
"어떤 거래요."
한상민이 강민준을 바라보았다.
"제 이름을 기사에서 빼주십시오."
강민준은 그 말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 모든 증거를 주는 대신 자신은 빠지겠다는 것. 그것은 한재도 회장을 팔고 자신은 살겠다는 의미였다.
강민준은 한상민의 눈을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더 오래, 더 깊이.
두려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처벌 두려움이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두려움 아래에 다른 층이 있었다. 더 오래된 무언가. 지쳐있는 무언가.
그리고 아주 깊은 곳에, 강민준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안도를 원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원하는 마음. 더 이상 이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는 마음.
한상민은 지금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강민준은 생각했다.
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한상민의 이름을 빼는 것은 이 사건의 진실을 절반만 쓰는 것이었다. 한재도 회장을 지목하면서 그 지시를 실행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 언론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온전한 기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한상민이 제공하겠다는 자료들은 강민준이 혼자 힘으로 몇 달을 뛰어도 확보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있으면 기사는 완성되었다. 한재도 회장과 차관보, 그리고 한재원의 타살. 그 세 가지를 증명하는 기사.
한상민의 이름이 없어도 사건의 핵심 진실은 드러난다.
하지만 진실이 절반이라면 그것은 진실인가.
강민준은 그 질문 앞에서 대답을 미루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은 지금 당장 드리기 어렵습니다."
한상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생각하시겠습니까."
"사흘. 그 안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한상민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다가 멈췄다. "기자님."
"네."
"박진수 소장은 저희 쪽에서 압박한 게 맞습니다. 사흘 안에 기자님이 연락을 주시면, 박진수 소장의 압박을 풀겠습니다. 음성 분석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하는 한상민의 목소리는 다시 담담했다. 하지만 강민준은 그 담담함 뒤에서 무언가를 읽었다.
사과.
표현하지 못하는 사과.
강민준은 그것을 읽으면서 자신도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 사람이 저지른 일들을 알고 있었다. 함재식의 직원이 죽은 것도, 서윤아가 계단에서 굴렀던 것도, 한재원이 새벽에 홀로 죽은 것도. 그 모든 것의 라인에 이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의 눈 안에서 강민준이 읽은 것은 괴물의 눈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괴물 역할을 해온 인간의 눈이었다.
그 차이가 강민준의 판단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결정과 복선
레스토랑을 나온 것은 오후 여섯 시가 되어서였다.
논현동 거리에 퇴근 인파가 흘러다녔다. 강민준은 그 흐름 안에 섞여 걸으면서 생각했다. 아니, 생각보다 느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이 직업을 하면서 머리와 감각이 다른 방향을 가리킬 때가 있었다. 지금이 그런 순간이었다.
머리는 말했다. 한상민의 제안을 이용해라. 증거를 확보하고, 기사를 쓰고, 이름을 빼는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라. 증거 없는 원칙보다 증거 있는 타협이 더 많은 진실을 세상에 꺼낸다.
감각은 말했다. 한상민의 눈에서 읽은 것을 믿어라. 그 사람은 지금 어딘가에서 압박을 받고 있고, 그 압박이 그를 강민준에게 보낸 것이다. 그 압박의 출처가 무엇인지 알기 전에는 어떤 거래도 안전하지 않다.
두 목소리 사이에서 강민준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혜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 유심으로 걸었다.
"끝났어?"
"네. 만났습니다."
"어떠했어?"
강민준은 잠시 생각했다가 말했다.
"한상민이 내부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재도 회장이나 다른 누군가에게서요. 그래서 저한테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증거를 주는 대신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이혜정이 잠시 침묵했다.
"그 증거가 진짜라면 받아야지."
"하지만 한상민의 이름을 빼는 건."
"이름이 빠진 기사가 이름이 없는 기사보다 낫잖아."
강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걸음을 멈췄다.
이혜정의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강민준의 감각은 여전히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팀장님, 한상민이 왜 지금 이 시점에 저한테 왔겠습니까."
"증거를 막을 수 없으니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재도 회장과 한상민 사이에 균열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상민이 한재도에게 압박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한재도가 한상민도 처리하려 한다는 뜻일 수 있어요."
이혜정이 말이 없었다.
"한상민은 자신이 다음 차례라는 것을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왔습니다. 증거를 주고 저를 통해 한재도를 제거하면, 자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면 안 되니까 거래를 하는 겁니다."
"……그 가능성이 맞다면?"
"한상민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입니다. 그 둘을 동시에 기사에 담아야 합니다."
이혜정이 한참 후에 말했다.
"사흘 말했다고?"
"네."
"그 사흘 안에 독립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지 먼저 봐. 한상민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세울 수 있는 기사의 뼈대가 있으면, 거래의 조건이 달라지잖아."
강민준은 그 말에서 이혜정이 이 사건을 같이 끌고 가겠다는 결심을 읽었다. 대표이사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민준아."
"네."
"한상민이 압박을 받고 있다면, 그 압박이 강해질수록 그 사람은 더 위험해져. 그 사람만이 아니라 네 주변 사람들도."
강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서윤아를 떠올렸다. 함재식을 떠올렸다.
"알고 있습니다."
전화를 끊고 강민준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사흘.
사흘 안에 그는 세 가지를 해야 했다. 독립적인 증거 확보, 한상민이 받는 압박의 출처 파악, 그리고 한재도 회장의 법인 차량 운행 기록 — 함재식이 본 그 차량의 번호판을 통한 추적.
그리고 네 번째. 서윤아가 안전한지 확인하는 것.
강민준의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새 유심으로 바꾼 번호인데 문자가 왔다. 강민준은 멈춰서 화면을 확인했다.
"기자님. 저 서윤아예요. 번호 바꾸셨더라고요. 저도 새 번호예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중요한 거요. 부회장님이 저한테 하신 말씀 중에, 제가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어요."
강민준은 그 문자를 읽었다.
아직 말하지 않은 것.
서윤아는 USB를 열어보았다고 했다. 엑셀 파일과 동영상을 봤다. 그리고 USB를 열어본 적 없다고 거짓말했다가 강민준에게 들켰다. 그때 그녀가 숨긴 것이 있었다.
강민준은 답장을 보냈다.
"언제 만날 수 있습니까."
답이 빠르게 왔다.
"지금 바로요. 나와 계세요?"
강민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논현동 거리.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어디에 계십니까."
"기자님 뒤에 있어요."
강민준이 몸을 돌렸다.
이십 미터 뒤, 회색 코트를 입은 서윤아가 서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어제보다 더 창백했다. 하지만 눈은 또렷했다.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의 눈이었다.
강민준은 그 눈을 읽으면서 한 가지를 즉각적으로 인식했다.
그녀가 숨겨온 것이 이 사건의 방향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듣기도 전에 그 무게가 느껴졌다.
강민준은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사흘.
그 사흘이 이 이야기에서 가장 긴 사흘이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