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이후
열두 시의 기사
밤 열한 시 오십 분.
강민준과 함재식은 합정동 원룸에 앉아 있었다. 함재식은 오후 늦게 병원에서 퇴원했다. 이마의 붕대가 그대로였고, 움직일 때마다 옆구리를 조심했다. 하지만 앉아있는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사람의 방식이었다.
서윤아는 동료 기자의 집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혜정은 편집국 근처에서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상민은 이태원의 지인 사무실에 있었다.
강민준은 노트북 화면을 열어두었다.
《탐사와 기록》 웹사이트. 새로고침을 눌렀다. 아직 기사가 없었다.
함재식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긴장됩니까."
강민준은 잠시 생각했다.
"모르겠습니다. 긴장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감각이에요."
"어떤 감각이오."
"이미 벌어진 일을 기다리는 감각입니다.
기사를 보낸 순간에 이미 끝난 것이고, 지금은 그것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는 거라서."
함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랬소. 3년 동안 자료를 모으면서. 자료가 완성된 순간에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자정 일 분 전.
강민준은 새로고침을 눌렀다.
화면이 바뀌었다.
《탐사와 기록》 메인 화면 상단에 기사가 떴다.
굵은 제목이었다.
[단독] 한성그룹 한재원 부회장 타살 의혹 — 비자금 780억, 국책사업 로비, 그리고 15년의 구조
기자 강민준
강민준은 그 제목을 화면에서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함재식이 화면을 보았다.
그 옆에서 강민준은 함재식의 눈을 읽었다. 처음 보는 감정이었다. 오랫동안 닫혀있던 무언가가 열리는 눈이었다.
3년.
그 시간이 지금 이 화면 앞에서 완성됐다.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기사가 뜨고 나서 삼 분이 지났을 때였다.
이혜정이었다.
"올라갔어."
"네."
"벌써 공유가 시작됐어. SNS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어."
강민준은 다른 창을 열었다. 포털 뉴스 섹션을 확인했다. 아직 메인에는 없었다. 하지만 SNS 검색창에 한성그룹을 치자 실시간 반응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기자, 변호사, 시민들의 반응이 빠르게 쌓이고 있었다.
십 분이 지났다.
포털 뉴스 랭킹에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른 언론사들이 받아쓰기 시작했다. 《한겨레》, 《경향신문》, JTBC가 관련 기사를 준비 중이라는 트윗이 올라왔다.
스무 분이 지났다.
한성그룹 주가가 실시간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코스피 장외 거래에서 한성홀딩스 주식이 급락하고 있었다.
삼십 분이 지났다.
경찰청 공식 트위터에 입장 표명이 올라왔다. 한재원 부회장 사망 건을 재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사십 분이 지났을 때.
강민준의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예상치 못한 방향의 반격
"강민준 기자님."
남자 목소리였다. 강민준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누구십니까."
"제 이름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지금 방송국 PD입니다. 방금 기사 봤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저희가 이 사건 관련해서 세 달 전부터 독자적으로 취재를 해왔습니다. 방금 기자님 기사에 담긴 내용 중에, 저희가 취재한 것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강민준은 그 말에서 등줄기에 무언가가 지나갔다.
"다른 부분이 어떤 겁니까."
"기사에 GV-3의 설계자가 한무경 명예회장이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저희 취재로는 그것이 사실과 다릅니다."
강민준은 핸드폰을 꽉 쥐었다.
"한무경 명예회장이 직접 인정한 사실입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예회장이 설계자라고 인정한 것이, 실제 설계자여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강민준은 그 말을 이해하려 했다.
"무슨 뜻입니까."
"GV-3은 한무경이 만든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구조의 실질적인 운영 설계를 한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한무경은 외형을 만들었고, 진짜 돈의 흐름을 설계한 사람은 다른 인물입니다. 그 인물이 지금 기자님 기사에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강민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인물이 누굽니까."
전화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있었다.
"홍준기입니다."
홍준기. 한성그룹 대외협력실장. 한재원이 죽은 날 밤 저택 앞에서 목격된 법인 차량의 배정 부서 실장. 강민준이 추적했지만 한상민에게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않았던 이름.
"홍준기가 어떤 역할입니까."
"홍준기는 한재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한재도보다 먼저 이 구조에 있었습니다. 한무경의 직계 사람이에요. 한무경이 한재도에게 GV-3을 넘길 때, 홍준기를 함께 넘긴 겁니다. 그런데 홍준기는 한재도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홍준기는 한무경의 구조를 지키려 했고, 한재도는 그것을 확장하려 했으니까요."
강민준의 머릿속에서 이 이야기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다.
한무경이 설계했다. 홍준기가 운영했다. 한재도가 넘겨받아 확장했다. 그 과정에서 홍준기와 한재도 사이에 균열이 있었다.
"홍준기가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습니까."
"기자님 기사가 나가고 삼십 분 만에 홍준기가 자신의 변호사에게 연락했습니다. 저희가 홍준기를 추적하고 있어서 알고 있습니다.
홍준기가 지금 자수를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수를요."
"한재도를 먼저 넘기고 자신은 협조자로 살아남으려는 겁니다. 기자님 기사가 촉발제가 된 겁니다."
강민준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면서 생각했다.
홍준기가 자수를 하면, 강민준의 기사에 담기지 않은 내용이 검찰을 통해 나오게 됐다. 그것은 강민준의 기사를 보완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강민준이 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홍준기가 한재원이 죽은 날 밤에 저택 앞에 있었습니다. 그 차량이 홍준기의 실 소속이었어요."
"알고 있습니다."
"홍준기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과, 자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연결됩니까."
전화 너머에서 PD가 말했다.
"기자님, 저희 취재에 따르면 홍준기는 그날 밤 한재원을 구하려 했습니다. 막으려 했어요.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에 대한 죄책감을 3년 가까이 들고 있었습니다."
강민준은 그 말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구하려 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홍준기는 이 사건의 가해자가 아니라 실패한 방어자였다.
"직접 만나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중간에서 연결하겠습니다. 내일 오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강민준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함재식이 강민준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오."
강민준은 그 이야기를 함재식에게 짧게 전했다.
홍준기. 대외협력실장. 한재원이 죽은 날 밤 저택 앞에 있었던 이유가 구하러 갔던 것일 수 있다는 것.
함재식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홍준기……." 그가 낮게 말했다. "나는 그 사람 알고 있소."
강민준이 함재식을 바라보았다.
"감사실장으로 있을 때 몇 번 마주쳤소. 그 사람이 GV-3 운영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소. 하지만 그 사람이 한재원 부회장과 어떤 관계였는지는 몰랐소."
"한재원 부회장이 홍준기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까." 함재식이 잠시 생각했다.
"한 번 있었소. 부회장이 저한테 연락해서 만나자고 한 날, 그 마지막 밤에요.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부회장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잖소."
"네."
"그 밤에 부회장이 나오기 전에 저한테 문자를 하나 보냈소. 늦어서 미안하다는 문자였는데, 그 뒤에 한 줄이 더 있었소.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소."
"뭐라고 했습니까."
함재식이 핸드폰을 꺼내 오래된 문자를 찾았다. 화면을 강민준에게 보였다.
"준기가 와 있소. 잠깐만."
준기가 와 있소.
그 문자가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한재원은 나오지 않았다.
강민준은 그 문자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한재원이 홍준기를 아는 사이로 이름을 불렀다. 홍준기가 그 밤 저택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재원은 나오지 않았다.
홍준기가 구하러 갔는가. 아니면 막으러 갔는가.
그 경계가 지금 흐릿했다.
흔들리는 믿음
새벽 한 시 반이 넘었다.
함재식은 소파에서 잠들었다. 폭행으로 다친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강민준은 담요를 덮어주고 책상 앞에 앉았다.
기사에 대한 반응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포털 댓글이 수만 개를 넘었다. 한성그룹 앞에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획재정부 차관보 사무실 앞에 취재진이 집결했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경찰청이 한재원 부회장 사망 건 재수사를 공식 발표했다.
기사는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민준의 머릿속은 다른 곳에 있었다.
홍준기.
그리고 그것보다 더 깊은 곳에서 흔들리는 것.
강민준은 이 사건을 처음 접한 날부터 오늘까지의 과정을 다시 훑었다.
서윤아를 만났다. USB를 받았다. 함재식을 만났다. 한상민을 만났다. 한무경을 만났다. 그리고 기사를 썼다.
그 과정에서 강민준은 독심술을 사용했다. 각 사람의 눈을 읽었다. 거짓과 진실을 구별했다. 두려움과 결심을 읽었다.
그런데.
지금 홍준기라는 이름이 나왔다. 강민준이 추적했지만 깊이 들어가지 않은 이름. 그리고 방송국 PD가 말한 것처럼 홍준기가 이 이야기에서 강민준이 생각하지 않았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독심술로 읽은 것들이 맞았는가.
서윤아의 눈에서 진심을 읽었다. 함재식의 결심을 읽었다. 한무경의 후회를 읽었다. 한상민의 피로를 읽었다.
하지만 강민준이 직접 읽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홍준기.
그리고 이혜정.
이혜정. 한상민이 가져온 사진. 삼 주 전 한성그룹 직원과의 만남. 이혜정은 편지였다고 했다. 강민준은 그것을 믿었다.
이혜정의 눈에서 악의를 읽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혜정은 이십 년 기자였다. 감정을 통제하는 훈련을 오래 받은 사람이었다.
강민준은 그 생각을 몰아내려 했다.
이혜정을 의심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증거가 없었다. 0.2초의 눈빛 하나로 허윤서를 배신자로 의심했던 것처럼, 이것도 성급한 판단일 수 있었다.
하지만 독심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강민준에게 단순한 오류가 아니었다.
독심술은 강민준의 판단 기준이었다. 그것이 흔들리면 강민준이 이 사건에서 내린 모든 판단이 흔들렸다. 서윤아가 진심이라고 믿은 것도. 함재식을 신뢰한 것도. 한무경의 고백을 진실이라고 판단한 것도.
만약 독심술이 틀릴 수 있다면.
강민준은 책상에 팔꿈치를 짚고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이것이 이 능력을 가지고 살아온 삼십사 년 동안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다.
사람의 눈을 읽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힌 것이 진짜인지 강민준은 어떻게 아는가. 강민준이 읽은 것이 상대의 감정인지, 아니면 강민준이 보고 싶은 것을 본 것인지.
서윤아를 처음 만났을 때, 강민준은 그녀를 믿고 싶었다. 그 마음이 판단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었다.
한무경을 만났을 때, 강민준은 그가 후회하고 있기를 원했다. 그 바람이 읽기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었다.
강민준은 얼굴에서 손을 뗐다.
창밖을 보았다. 합정동의 새벽이 어두웠다.
십 년 동안 이 능력으로 기사를 써왔다.
거짓말하는 임원을 읽었고, 공포를 감추는 공무원을 읽었고, 위선을 행하는 권력자를 읽었다.
그런데 지금 이 사건에서, 강민준은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직면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이혜정이었다.
강민준은 받기 전에 잠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받았다.
"민준아."
"네."
"지금 어때?"
"괜찮습니다."
"한성그룹 주가 30퍼센트 하락했어. 거래정지 됐어. 차관보 사무실에 검찰이 들어갔대."
강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이혜정의 목소리를 읽었다.
전화로 목소리를 읽는 것은 눈을 읽는 것보다 부정확했다. 하지만 긴장이 있었다. 흥분이 있었다. 그것은 기사가 잘 됐을 때의 감정이었다.
그런데.
그 아래에 무언가가 있었다.
강민준이 평소라면 지나쳤을 무언가. 오늘 밤처럼 자신의 독심술을 의심하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냥 넘겼을 무언가.
조심스러움.
이혜정이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평소 이혜정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평소 이혜정은 직접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를 고르고 있었다.
"팀장님."
"응."
"지금 어디 계십니까."
"편집국 근처야. 왜?"
"내일 아침에 만날 수 있습니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짧은 침묵.
"……알았어. 아침 여덟 시에 같은 카페."
전화가 끊겼다.
강민준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혜정의 목소리에서 읽은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강민준은 알 수 없었다.
독심술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 강민준을 이 이야기에서 가장 취약한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반전의 실체
새벽 세 시.
함재식이 잠든 소파 옆에서 강민준은 앉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홍준기. 이혜정. 독심술의 한계.
이 세 가지가 뒤섞여 있었다.
강민준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독심술을 잠시 내려놓고, 순수하게 사실과 시간의 순서만으로 이 이야기를 다시 보기로 했다.
한재원이 죽었다. 그 전에 동생이 형에게 저항했다. 한재도가 처리를 지시했다. 홍준기가 그날 밤 저택에 있었다. 한재원은 죽었다.
만약 홍준기가 구하러 갔다면, 홍준기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구하러 갔지만 막지 못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한재원을 죽인 것은 홍준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
한상민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강민준은 그것을 진실로 읽었다.
홍준기가 구하러 갔다. 한상민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실제 실행자는 누구인가.
강민준은 그 질문 앞에서 멈췄다.
이 사건에서 강민준이 읽지 않은 눈이 있었다. 한재도의 눈. 강민준은 한재도를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동영상 속의 목소리만 들었다. 한재도의 내면을 읽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한상민이 '한재도의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지시가 한재도에서 어떻게 실행됐는지의 경로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강민준은 이 사건의 실행자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하지만 새벽 세 시에 오는 문자는 무시할 수 없었다.
열었다.
"기자님. 한상민입니다. 새 번호예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려도 됩니까."
강민준이 답했다.
"하십시오."
한상민의 문자가 이어졌다.
"기사를 보면서 제가 하지 않은 말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재원 부회장이 죽은 날 밤, 한재도 회장이 저한테 지시를 내렸습니다. 저는 그 지시를 홍준기 실장에게 전달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협박의 지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러서게 만드는 지시라고 생각했어요."
강민준은 문자를 읽으면서 손이 멈췄다.
"하지만 홍준기 실장은 그 지시를 다르게 해석했거나, 아니면 저한테 말하지 않은 다른 지시를 받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홍준기 실장은 그날 밤 저한테 연락을 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막겠다. 너는 모르는 일이야.'"
강민준은 그 문자를 세 번 읽었다.
홍준기가 막겠다고 했다. 한상민에게. 그날 밤.
막겠다는 것이 한재원을 막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한재원을 해치려는 것을 막겠다는 뜻인가.
"홍준기 실장이 그날 밤 저택에 들어간 것이 한재원 부회장을 막기 위한 것인지,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하지 않고서는 기자님한테 솔직하지 못한 것 같아서요."
강민준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한상민이 이 말을 기사가 나간 뒤에 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했다. 기사 전에 말했더라면 기사 내용이 달라졌을 것이었다. 기사 후에 말했다는 것은 기사가 나간 사실을 바꿀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양심을 정리한 것이었다.
강민준은 독심술 없이 이 상황을 판단했다.
홍준기가 막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재원은 죽었다. 막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홍준기가 저택에 들어갔을 때 이미 누군가가 먼저 있었거나, 홍준기 자신이 막는 것에 실패했거나, 아니면 홍준기의 막겠다는 말이 다른 의미였거나.
세 가능성 중 하나.
강민준은 내일 홍준기를 만나야 했다.
그 사람의 눈을 봐야 했다.
독심술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서류와 데이터가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들을 알기 위해서는.
새벽 네 시가 됐다.
강민준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정리했다.
이 이야기에서 자신이 읽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홍준기의 눈. 한재도의 눈. 그리고 어쩌면 이혜정의 눈.
그 세 개의 눈이 내일 이 이야기의 남은 방향을 결정할 것이었다.
최대 위기와 복선
아침 여섯 시, 해가 뜨기 시작했다.
강민준은 결국 잠을 자지 못했다. 함재식은 소파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강민준은 조용히 원룸을 나섰다.
합정동 거리는 이른 아침이었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면서 걸었다. 차가운 공기가 밤새 과열된 머릿속을 식혀주었다.
핸드폰을 꺼냈다. 기사 관련 알림들이 쌓여있었다.
한성그룹이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는 알림. 입장 내용을 열었다. 기사 내용 중 일부를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한무경 명예회장의 건강 이상을 언급하며 인터뷰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예상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다음 알림이 달랐다.
검색어 순위에 강민준의 이름이 올라왔다는 알림이었다. 기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었다.
그런데 강민준의 이름이 올라온 이유가 기사 때문이 아니었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 링크를 눌렀다.
기사 하나가 떴다. 발행 시각이 새벽 다섯 시였다. 발행처는 친한성그룹 성향의 경제 전문지였다.
제목이었다.
[단독] 한성그룹 비리 보도 기자 강민준, 과거 취재 윤리 위반 전력 있어 — 5년 전 취재원 사생활 무단 공개 의혹
강민준은 그 제목을 읽었다.
5년 전. 취재원 사생활. 무단 공개.
기사 내용을 열었다. 짧은 기사였다. 강민준이 5년 전에 취재한 사건에서 취재원의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기사에 공개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제보자를 익명으로 처리했지만 식별 가능한 정보가 담겨있었다는 주장이었다.
강민준은 그 기사를 읽으면서 5년 전 사건을 떠올렸다.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취재원과 충분히 협의했고, 공개 범위에 대해 동의를 받았다. 당시에 아무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것이 나왔다.
기사 보도 다섯 시간 만에. 강민준의 신뢰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역공이었다.
한재도의 다음 카드였다.
강민준의 과거를 꺼내서 이번 기사의 신뢰성을 흔드는 것.
강민준은 기사를 닫았다.
이것은 예상 가능한 반격이었다.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강민준이 지금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이 경제 전문지가 강민준의 5년 전 취재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꺼내왔는가.
5년 전 취재.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편집국 내부 사람이었다. 기자증 번호, 취재 일지, 당시 취재원과의 연락 기록. 그것들이 있어야 이런 기사를 빠르게 쓸 수 있었다.
허윤서가 이미 손을 뗀 뒤였다.
그렇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정보를 흘렸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강민준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니면, 허윤서가 아직 정보를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혜정이 허윤서와 얘기했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 얘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강민준은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하나.
허윤서가 편집국에서 나간 뒤에 내부 정보가 계속 새고 있다면, 그 출처는 허윤서가 아니었다.
강민준은 걷기 시작했다.
여덟 시까지 두 시간이 남았다. 이혜정을 만나는 시각.
강민준은 오늘 이혜정의 눈을 봐야 했다. 그리고 흔들리는 독심술에 의존하지 않고, 이혜정에게 직접 물어야 했다.
그 질문이 무엇인지 강민준은 걸으면서 정리했다.
삼 주 전 한성그룹 직원과의 만남. 편지라고 했다. 기록을 해두었다고 했다. 그 기록을 강민준이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하나 더.
이혜정이 강민준에게 이 사건을 처음 맡겼을 때, 한재원이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화 내용을 처음에는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말했다. 그 사이의 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강민준은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차가웠다.
이 이야기에서 강민준은 여러 사람의 눈을 읽었다. 그리고 그 읽음이 지금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이유가 두 가지였다.
첫째, 홍준기라는 변수가 나타났다. 강민준이 읽지 않은 눈.
둘째, 이혜정에 대한 불안이 생겼다. 강민준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
두 가지 모두 오늘 안에 해결해야 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방송국 PD였다. 새벽에 전화했던 그 목소리.
"홍준기 씨가 만나겠다고 합니다. 오늘 오전 열 시에."
"장소는요."
"홍준기 씨가 지정하는 곳입니다.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강민준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
오전 여덟 시에 이혜정을 만난다. 오전 열 시에 홍준기를 만난다.
두 개의 눈.
그 두 개의 눈이 이 이야기의 남은 절반을 결정할 것이었다.
강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람이 더 강해지고 있었다. 하늘이 흐렸다. 비가 내릴 것 같았다.
그때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함재식이었다.
"일어났소. 기자님이 없군요. 기사 반응 보고 있소. 잘 됐소. 그런데."
다음 문자가 왔다.
"기자님 혼자 너무 오래 버텼소. 오늘 하루는 내가 같이 움직이겠소."
강민준은 그 문자를 읽으면서 잠시 멈췄다.
함재식. 이마에 붕대를 감고 늑골이 두 개 골절된 사람이.
같이 움직이겠다고.
강민준은 답장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여덟 시에 나오세요."
그리고 벤치에서 일어서면서 강민준은 생각했다.
이 이야기에서 강민준을 지탱하는 것들이 있었다. 한재원이 남긴 선택. 서윤아가 전해준 목소리. 함재식이 3년을 버텨온 것. 이혜정이 대표이사의 압박에도 함께 온 것.
독심술이 흔들려도, 그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강민준은 걷기 시작했다.
오늘 이 이야기는 전환점의 한가운데 있었다.
반전과 배신과 최대 위기의 장.
하지만 전환점은 끝이 아니었다. 방향이 바뀌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방향의 끝에는 결(結)이 있었다.
강민준은 그 끝을 향해 걸음을 이어갔다.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