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346)

혁명의 봄

by 이 범

새해와 불길한 예감
1960년 1월 1일. 새해 아침이었다.
계민은 일찍 일어나 마당에 섰다.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다.


'올해는... 뭔가 일어날 것 같아.'막연한 불안이었다.


지난해부터 들려오던 소문들.3월 대통령 선거.
자유당의 부정선거 준비. 평화롭게 넘어갈 리 없어.'
"아버지!" 승국이가 뛰어나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우리 승국이도."
"저 올해 3학년 돼요!""그래, 벌써 3학년이야."
"더 열심히 공부할게요!" 계민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아이는 아직 세상이 얼마나 혼란한지 모르겠지.''그게 다행이야.'
민화가 부엌에서 떡국을 끓이고 있었다.
"계민 씨, 떡국 다 됐어요!" "네, 들어갈게요."
온 식구가 모였다.
계민, 민화, 승국이, 범현이, 하경이, 희경이, 의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잘 먹겠습니다!"
떡국을 먹으며 의호가 말했다.


"형, 합격자 발표가 이번 주래요." "그래? 떨리겠다." "네... 잠이 안 와요."
"괜찮을 거야. 넌 잘 봤잖아."
"그래도..."
계민이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 마. 합격할 거야." 며칠 후, 결과가 나왔다.
"형! 합격했어요!" 의호가 뛰어 들어왔다.
"정말?"
"네! 서울대 약대 합격이에요!"
"와!"
온 집안이 들썩였다.


"의호 삼촌 대단해요!" 승국이가 박수를 쳤다.
"축하해요!" 범현이도 뛰었다.
민화가 눈물을 닦았다.
"정말 잘됐어요."
계민은 동생을 꽉 안았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형 덕분이에요. 형이 뒷바라지 안 해줬으면..."
"그런 소리 하지 마. 네가 열심히 한 거야."
"고마워요, 형."
그날 저녁은 잔치였다.


고기를 사고, 떡을 사고.
온 식구가 모여 축하했다.


"의호야, 서울 가면 하숙은 어떻게 할 거야?"
"형님 댁 근처에 하숙집 알아볼게요."
"그래. 형이 도와줄게."
"학비는요?"
"걱정 마. 다 준비해뒀어."
계민은 지난해 모아둔 돈을 생각했다.


주유소 수입, 벌목 수입. 충분했다.
'의호가 약사가 되는구나.'
'아버지가 보셨으면 좋아하셨을 텐데.'


2월의 준비
2월 들어 의호는 서울 갈 준비를 했다.
"형, 이것만 있으면 될까요?" 가방 하나에 옷가지 몇 벌. 책 몇 권.


"그 정도면 돼. 부족하면 보내줄게."
"고마워요."
"하숙집은 정했어?"
"네, 학교 근처에 괜찮은 곳 찾았어요."
"좋아. 밥은 잘 주나?"
"그렇다고 하던데요."
"아프면 바로 연락해."
"네, 형."
출발 전날 밤.
온 식구가 모였다.


"의호 삼촌, 서울 가면 편지 써요!" 승국이가 말했다.
"그럼, 꼭 쓸게."
"저한테도요!"
범현이가 끼어들었다.


"너희 둘 다 쓸게."
하경이가 울먹였다.
"삼촌, 안 가면 안 돼요?"
"하경아... 삼촌은 공부하러 가야 해."
"싫어..."
"방학 때 올게. 그때 선물 사줄게."
"정말요?"
"그럼."
계민은 동생을 따로 불렀다.


"의호야."
"네, 형."
"서울 가면... 조심해."
"무슨 일 있어요?"
"...요즘 세상이 어수선해."
계민이 진지하게 말했다.


"3월에 선거가 있잖아."
"네." "부정선거를 한다는 소문이 있어."
"...그럼요?"
"시위가 일어날 수도 있어. 학생들이 나설 거야."
의호의 눈이 빛났다.


"그럼 저도 참여해야죠!" "안 돼."
계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공부가 먼저야."
"하지만 형, 부정선거가 일어나는데..."
"안 돼."
"형!"
"의호야."
계민이 동생의 어깨를 잡았다.


"형 말 들어. 위험해."
"......"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너한테 바라는 게 뭐겠어?"
"......"
"훌륭한 약사가 되는 거야. 사람들을 돕는 거야."
"...알겠어요."
의호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계민은 알았다.
동생이 쉽게 물러설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도 말은 해둬야지.'


다음 날 아침.
의호가 떠났다.
"형, 다녀올게요."
"잘 다녀와. 공부 열심히 하고."
"네."
기차역까지 배웅을 갔다.


"편지 자주 써."
"네, 형."
"밥 굶지 말고."
"알았어요." 버스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의호가 손을 흔들었다.
계민도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멀어졌다.


'잘 다녀오렴.'그리고 부디... 시위 같은 데 참여하지 마라.'
하지만 그것은 계민의 바람일 뿐이었다.


3·15 부정선거
3월이 왔다.
선거를 앞두고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사장님, 들으셨어요?"
주유소 점원인 김대식이 말했다.


"뭘?" "자유당이 부정선거 준비하고 있대요."
"...알아."
"공개투표를 한대요. 3인조, 9인조로."
"말도 안 되는..." 계민이 한숨을 쉬었다.


한도회 긴급 회의가 열렸다.
"동지 여러분."
나이 많은 동지가 말했다.
"이번 선거가 심상치 않습니다."
"자유당이 노골적으로 부정을 저지를 것 같습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감시단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계민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감시단을 만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합니다."
결국 개인 자격으로 참관하기로 했다.


3월 15일.
선거 당일.
계민은 투표소에 갔다.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상했다.


"저기 보세요."
누군가 속삭였다.
"3인조로 투표하라고 하네요."
"공개투표잖아요."
"말도 안 돼..."
투표소 안에서는 자유당원들이 버젓이 서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 이기붕 부통령 찍으세요!"
"야당 참관인은 나가!"
야당 참관인들이 쫓겨났다.


계민은 주먹을 쥐었다.
'이건... 선거가 아니야.'
저녁, 결과가 나왔다.
"이승만 대통령 당선!"
"이기붕 부통령 당선!"
압도적 표차.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부정선거다!"
"말도 안 돼!"
그날 밤, 마산에서 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산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답니다."
"부정선거 규탄 시위래요."
"경찰이 발포했대요."
계민은 신문을 읽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시작됐구나...'
며칠 후, 더 충격적인 소식.


"마산에서 학생 한 명이 실종됐답니다."
"김주열이라는 학생이래요."
"시위 중에 사라졌대요."
계민은 불안했다.
'의호는 괜찮겠지...'
편지를 썼다.


"의호야, 시위에 참여하지 마라. 위험하다. 공부에만 집중해라."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4월의 폭풍
4월 11일.
신문에 충격적인 사진이 실렸다.
김주열 학생의 시신.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이럴 수가."
계민은 신문을 보며 굳어버렸다.
"계민 씨..."
민화도 신문을 봤다.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
"학생을... 어린 학생을..."
민화가 울기 시작했다.


계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승만 정권이... 이런 짓을...'
주유소에 나갔다.
손님들이 웅성거렸다.


"들었어요? 마산에서..."
"끔찍하더라고요."
"우리 아들도 고등학생인데..."
"걱정되죠."
계민은 하루 종일 침통했다.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를 했다는 소식.
"서울에서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답니다."
"경찰이 막았대요."
계민은 걱정이 앞섰다.


'의호는... 괜찮겠지...'
4월 19일.
그날이 왔다.
아침부터 신문에 난리였다.


"전국 대학생 총궐기!"
"서울 시내 대규모 시위!"
계민은 주유소에 나가지 못했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서울 시내에 수만 명의 학생들이..."
"경무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발포했습니다..."
"학생들이 쓰러지고 있습니다..."
민화가 떨고 있었다.


"계민 씨... 의호는 괜찮을까요?"
"...모르겠어요."
"서울대생들도 나갔을 텐데..."
"......"
계민은 대답할 수 없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소식이 더 들렸다.


"186명 사망..."
"수천 명 부상..."
"계민 씨!"
민화가 소리쳤다.


"의호한테 연락해봐요!"
"어떻게요?"
"전화라도!"
하지만 전화는 불통이었다.
서울로 가는 길도 막혔다.
계민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의호야... 제발 무사해라...'
4월 20일.
아침 일찍 전보가 왔다.
"형, 무사합니다. 걱정 마세요. 의호"
계민은 전보를 보며 주저앉았다.


"...살았구나."
눈물이 흘렀다.
"계민 씨!"
민화가 달려왔다.
"의호가... 무사대요."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두 사람은 안고 울었다.
하지만 나라는 여전히 혼란 속이었다.


며칠 후, 더 자세한 편지가 왔다.
"형님, 저는 무사합니다. 걱정하셨죠? 죄송합니다."
"저도 시위에 나갔습니다. 형님 말씀 어기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나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죽었습니다. 제 눈앞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형님, 이게 나라입니까?"
"학생들이 정의를 외치는데 총을 쏩니까?"
"저는 분합니다. 너무 분합니다."
"하지만 형님, 우리가 이겼습니다."
"이승만이 물러난다고 합니다."
"4월 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형님, 우리가 해냈습니다!"
계민은 편지를 읽으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안도.
자랑스러움.
그리고 슬픔.
'의호가... 그 현장에 있었구나.'


'친구가 죽는 걸 봤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웠다.
'우리 의호가... 정의를 위해 싸웠어.'


'할아버지가 보셨으면 자랑스러워하셨을 거야.'
결 - 혁명 이후
5월.
세상이 바뀌었다.
이승만이 하와이로 떠났다.
허정 과도정부가 들어섰다.


"새 시대가 왔습니다!"
"자유의 봄입니다!"
거리가 들썩였다.
하지만 계민은 조심스러웠다.


'진짜 바뀐 걸까?'
'아니면 잠깐일까?'
한도회 회의가 열렸다.
"동지 여러분, 독재가 무너졌습니다."
"학생들이 해냈습니다."
"이제 우리도 활동을 재개할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계민이 말했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아직 불안정합니다."
"...그렇긴 합니다."
"조용히, 꾸준히 갑시다."
"우리는 과격한 단체가 아닙니다."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동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6월, 의호가 방학을 맞아 집에 왔다.
"의호야!"
"형!"
계민은 동생을 꽉 안았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형, 미안해요. 걱정 끼쳐서."
"괜찮아. 네가 무사한 게 제일 중요해."
의호는 많이 변해 있었다.
눈빛이 달랐다.


더 성숙해 보였다.
"형, 제가 본 걸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 말해봐."
의호가 4·19를 이야기했다.


거리로 쏟아진 학생들.
"민주주의 살려라!"
"학원의 자유!"
경찰의 발포.
쓰러지는 친구들.
피.
울음.
그리고 분노.


"형님, 저는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그래."
"친구가 제 옆에서 쓰러졌어요."
"가슴에 총을 맞았어요."
"피를 토하면서... 저한테 말했어요."
"'의호야, 우리가 이겨야 해. 꼭 이겨야 해.'"
"그리고... 죽었어요."
의호가 울었다.
계민은 동생을 안았다.


"많이 힘들었구나."
"네... 힘들었어요."
"하지만 의호야."
"네?"
"너희가 해냈어. 독재를 무너뜨렸어."
"...네."
"친구는 헛되이 죽지 않았어."
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저는 평생 그 친구를 기억할 거예요."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거예요."
"약사가 되어서도."
계민은 동생이 자랑스러웠다.


'우리 의호가... 이렇게 컸구나.'
7월, 총선거가 열렸다.
이번엔 공정했다.
부정이 없었다.
"민주당 압승!"
"장면 내각 출범!"
새 정부가 들어섰다.


계민은 투표소에서 나오며 생각했다.
'정말 바뀐 걸까?'
'이제 좋아질까?'
하지만 확신은 없었다.
'두고 봐야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승국이가 3학년이 되었고.
범현이가 드디어 유치원에 들어갔다.
"아빠, 저 오늘 유치원 갔어요!"
"그래? 어땠어?"
"재미있었어요! 친구들도 많고!"
"잘됐구나."
하경이는 네 살이 되었고.


희경이는 돌이 지나 걸음마를 시작했다.
주유소는 여전히 잘 됐다.
오히려 더 잘 됐다.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계민은 돈을 모았다. 더 많이.
'아이들 학비도 있고...'
'의호 졸업할 때까지도 있고...'
'집도 더 크게 지어야 하고...'
가을 어느 날.
계민은 임야를 또 찾았다.


장인 김학두가 또 찾아준 것이다.
"계민이, 또 하나 나왔어."
"정말입니까?"
"자네 아버지가 정말 꼼꼼하게 해두셨어."
"이번엔 밤나무 밭이야."
"밤나무요?"
"그래. 가을이면 밤이 주렁주렁."
"팔 수 있겠군요."
"그럼."
계민은 감사했다.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준비해두셨어.'
'정말 감사합니다.'
12월이 왔다.
한 해가 저물어갔다.
계민은 서재에 앉아 일기를 썼다.


"1960년."
"혁명의 해였다."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독재를 무너뜨렸다."
"18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의호도 그 현장에 있었다. 친구를 잃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겼다."
"이승만이 물러났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
"세상이 바뀌었다."
"정말 바뀐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승국이는 3학년이 되었다."
"범현이는 유치원에 들어갔다."
"하경이와 희경이도 잘 크고 있다."
"의호는 약대 1학년을 무사히 마쳤다."
"주유소는 잘 되고 있다."
"임야도 하나 더 찾았다."
"아버지의 유산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가족이 무사하다."
"그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다."
"내년에는..."
펜을 멈췄다.
'내년엔 뭐가 일어날까.'
'평화로울까?'
'아니면 또 다른 혼란이 올까?'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1960년의 마지막 눈.
민화가 방에 들어왔다.
"계민 씨.""네?"
"올해 정말... 파란만장했죠?"
"그러게요."
"의호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네... 정말."
"계민 씨."
민화가 남편의 손을 잡았다.


"우리 내년에도 잘해봐요."
"그럼요."
"아이들도 잘 크고 있고..."
"의호도 무사히 학교 다니고..."
"그래요. 감사한 일이죠."
두 사람은 창밖을 봤다.


눈이 계속 내렸다.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혁명이 일어났어.'
'독재가 무너졌어.'
'하지만...'
계민은 알 수 없었다.


이 평화가 얼마나 갈지.
불과 1년 후, 또 다른 쿠데타가 일어날 줄은.
5·16이 일어날 줄은.
하지만 그건 미래의 일이었다.


지금은 그냥.
혁명의 여운 속에서.
가족과 함께.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했다.


"계민 씨."
"네?"
"행복해요."
"...저도요."
"이렇게 사는 게."
"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았다.

민화는 잡은 손을 자신의 배로 가져갔다

" 저...아이 가졌어요"

" 저..정말이요? "계민의 눈은 커지며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


마당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형! 눈사람 만들어요!"
"좋아!"
"나도! 나도!"
웃음소리가 울렸다.


계민은 미소 지었다.
'이게 행복이지.'
'이게 평화지.'
'이걸 지키는 게 내 일이야.'
1960년이 저물어갔다.


혁명의 해.
피의 해.
하지만 희망의 해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해가 끝났다.

월, 화, 수,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