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347)

1961년, 격변의 시대

by 이 범


봄의 불안
1961년 3월.
봄이 왔지만, 세상은 어수선했다. 국회는 매일 난장판이었다.


"민주당 내분!"
"구파와 신파 대립!"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 난투극!"
계민은 신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작년에 그렇게 혁명을 했는데...'
'이게 뭐야.'
주유소에서 손님들도 불만이 많았다.


"사장님, 들으셨어요?"
"뭘요?"
"국회의원들이 또 싸웠대요."
"의자 던지고, 주먹질하고..."
"...그렇다더군요."
계민이 한숨을 쉬었다.


"작년에 학생들이 피 흘리며 만든 민주주의가 이거예요?"
"정말... 한심합니다."
한도회 회의에서도 화제가 됐다.


"동지 여러분, 국회가 엉망입니다."
"민주당이 분열하고 있습니다."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도 사이가 안 좋다던데요."
"이러다가 큰일 나겠습니다."
계민이 입을 열었다.


"군부가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뭐라고요?"
"군인들이 정치에 개입할지 모릅니다."
"설마... 쿠데타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지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군인이 감히..."
"작년에 혁명이 일어났는데 또?"
계민은 불안했다.


'뭔가... 일어날 것 같아.'
집에서는 평화로웠다.
란경이가 이제 열 달이 되어 걸음마를 시작했다.
"란경아, 이리 와!"
민화가 손을 내밀었다.


"으으..."
란경이가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잘하네!"
"우리 란경이 대단하다!"
하경이와 희경이가 옆에서 박수를 쳤다.


"동생 잘한다!"
"란경아, 언니한테 와!"
승국은 국민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함석지붕 흙벽 교실에서 공부하다가 양조장옆 제1분교로 옮겨 수업을 받고 있었다.


"아버지, 오늘 시험 봤는데 백 점 맞았어요!"
"잘했구나!"
"조 소학 선생님이 또 칭찬하셨어요!"
승국은 여전히 전교에서 1등이었다.


외할아버지 김학두에게 배운 한문.
의호 삼촌에게 배운 산수. 덕분에 또래보다 월등했다.
범현이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다섯 살.
"아빠, 오늘 선생님이 그림 잘 그렸다고 했어요!" "그래? 보여줘.""이거요!"
가족 그림이었다.
아빠, 엄마, 형, 누나들...
"잘 그렸네."
"우리 범현이 화가 되겠다!"


외가 식구들
어느 날 오후.
승국의 외삼촌들이 찾아왔다. 김규승과 김원태.
민화의 남동생들이었다.
호연당 약방을 운영하는 김영태의 동생들.
김학두의 자녀들은 이랬다.


첫째 딸 민화 - 계민과 결혼, 영광에 거주.
둘째 딸 정화 - 국민학교 선생 백호영과 결혼, 나주 남평에 거주.
셋째 딸 복화 - 기자 박화상과 결혼, 백수에 거주.
첫째 아들 김영태 - 호연당 약방 운영, 영광 거주.

둘째아들 김화태
세째 아들 김규승 - 영광 거주.
넷째 아들 김원태 - 영광 거주.
정화는 남평에서 선생 남편과 살았고, 복화는 백수에서 기자 남편과 살았다.


그래서 규승과 원태 두 삼촌은 영광에 남은 큰누나 민화의 집을 자주 찾았다.
특히 승국을 유난히 아꼈다.


"매형!" "응 왔능강?" "네! 승국이 보러 왔어요!"
김규승이 웃으며 말했다.


"큰누나, 안녕하세요!"
"어서 와, 규승아, 원태야."
민화가 반갑게 맞았다.


"승국이 어디 있어요?"
"방에서 공부하고 있어."
"역시 우리 승국이!"
김원태가 기뻐했다.


"승국아!"
"외삼촌!"
승국이 달려왔다.
"우리 승국이 많이 컸네!"
김원태가 승국을 안아 올렸다.


"무거워졌다!"
"저 이제 3학년이에요!"
"그래? 대단하다!"
두 외삼촌은 승국을 유난히 아꼈다.


"승국아, 이거 외삼촌이 사온 거야."
김규승이 책을 꺼냈다.
"산수 문제집이에요!"
"그래. 네가 산수 좋아한다며?"
"네! 감사합니다!"
김원태도 선물을 꺼냈다.


"이건 붓이야. 글씨 연습하라고."
"와, 고급 붓이다!"
"할아버지가 한문 가르쳐주신다며? 열심히 써."
"네!"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큰누나, 밥이 맛있네요."
김규승이 말했다.
"정화 는 요즘 어때?"
민화가 물었다.


"남평에서 잘 지내시던데요. 매형이 학교 선생이라 안정적이시죠."
"아이들은?"
"잘 크고 있대요. 선생 집안이라 공부를 강조하신다던데."
"그렇겠네. 복화는?"
"복화 언니는 백수에서 잘 살고 계세요."
김원태가 대답했다.


"매형이 기자라 바쁘시긴 한데, 재미있게 사신대요."
"다행이네."
"큰누나는요?"
"나? 나도 잘 지내지."
민화가 웃었다.


"계민 씨가 주유소도 잘 되게 하고, 아이들도 건강하고."
"승국이가 정말 똑똑하던데요."
"그래. 공부를 잘해."
"큰누나."
김규승이 진지하게 말했다.


"승국이 꼭 잘 키우세요."
"왜 그래?"
"정화 누님 애들은 남평에 있고, 복화 누님 애들은 백수에 있잖아요." "우리랑은 좀 멀어요."
"하지만 승국이는 여기 영광에서 할아버지 곁에서 자라잖아요."
"...그렇긴 하지."
"큰형님도 바쁘시고, 우리는 아직 장가도 안 갔고."
김원태가 덧붙였다.


"그래서 승국이가 우리한테는 특별해요."
"......"
"할아버지도, 큰형님도, 우리도, 모두 승국이가 잘 되길 바라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승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외삼촌."
김원태가 덧붙였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다 도와줄게."
"책도 사주고, 필요한 것도 사주고."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해."
"감사합니다, 외삼촌들."
계민은 처남들을 보며 감사했다.


'승국이를 이렇게 아껴주다니...'
식사 후, 민화가 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정화 는 남평에서 잘 지내시나 봐?"
"네. 매형이 학교 선생이라 수입은 안정적이시대요."
"그래도 시골 선생은 힘들지 않나?"
"그래도 괜찮으시대요. 아이들 교육에 좋다고."
"복화는 백수에서 어때?"
"매형이 기자라 재미있게 사신대요. 여기저기 취재 다니시고."


"기자는 바쁘지 않아?"
"바쁘죠. 하지만 복화 언니가 좋아하신대요."
"다행이네."
"큰누나는요?"
"나? 나도 잘 지내지."
민화가 웃었다.


"승국이가 정말 똑똑하던데요."
"그래. 외삼촌들이 많이 아껴줘서 고마워."
"당연하죠. 우리 조카인데."
그날 밤, 계민에게 말했다.


"계민 씨, 동생들이 승국이한테 기대가 너무 큰 것 같아요."
"그렇긴 하죠."
"괜찮을까요? 승국이가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요?"
"...모르겠어요."
계민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승국이는 씩씩해요."
"그렇긴 해요."
"조금 더 지켜봐요."
"네."
민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5·16 군사정변
5월 16일. 새벽.
라디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국민 여러분."
낯선 목소리였다.



"우리 군은 오늘 새벽,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계민은 벌떡 일어났다.
"뭐?"
"부패한 구정치인들을 숙청하고..."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쿠데타야."
계민이 중얼거렸다.



민화가 깼다.
"계민 씨, 무슨 일이에요?"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뭐라고요?"
신문에는 큼직하게 실렸다.



"5·16 군사혁명"
"박정희 소장 주도"
"혁명공약 6개항 발표"


1.반공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 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2.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3.이 나라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


4.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5.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6.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발표 배경: 1961년 5월 16일부패한 구정치인에게 국가를 맡길 수 없다며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명의로 발표됨.


실제 결과: 2년여의 군정 후 민정 이양을 약속했으나민주공화당 창당 등 정치에 직접 참여하게 됨



사진도 실렸다.
박정희.
육군 소장.
날카로운 눈빛의 군인.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젊은 장교.
김종필.




"이 사람들이..."
계민은 신문을 보며 굳어버렸다.
'또 시작이구나.'주유소에 나갔다.
손님들이 웅성거렸다.


"사장님, 들으셨어요?"
"네... 들었어요."
"군인들이 정권 잡았대요.""윤보선 대통령은요?" "유명무실해졌대요."
"장면 총리는?" "피신했다가 사표 냈대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계민도 답을 할 수 없었다.
한도회 긴급 회의가 열렸다.


"동지 여러분."
나이 많은 동지가 말했다.
"큰일났습니다."
"군부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용히 있어야 합니다."
계민이 말했다.


"왜요?"
"지금은 위험합니다. 군부가 장악하고 있을 때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너졌는데..."
"지금 나서면 우리도 위험합니다."
계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조봉암 선생님을 잊으셨습니까?"
"......"
"조용히, 숨죽이고 있어야 합니다."
동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만들어졌다.


군인들이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부정부패 일소!"
"경제 재건!"
"반공 강화!"
구호가 난무했다.
계민은 조심스러웠다.
'또 독재가 시작되는 건 아닐까...'
의호에게 편지를 썼다.


"의호야, 지금은 조심해야 한다. 정치 활동 하지 마라. 공부에만 전념해라."
답장이 왔다.


"형님, 알겠습니다. 하지만 분합니다. 작년에 우리가 피 흘리며 만든 민주주의가 이렇게 무너지다니. 하지만 형님 말씀대로 조심하겠습니다. 공부에 집중하겠습니다."
계민은 안도했다.


'다행이야.'
'의호가 또 시위에 나가면 어쩌나 했는데.'


정국의 변화
6월.
박정희 정권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정치인 활동 금지"
"부정축재자 처벌"
"행정 개편"
변화가 빨랐다.


"사장님, 이거 보셨어요?"
점원이 신문을 가져왔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운대요."
"그래요?"
"공장도 짓고, 도로도 만들고..."
"...그렇군요."
계민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민주주의는 무너졌지만...'
'경제는 나아질까?'
한편으로는 기대도 됐다.
'아이들이 다섯이야.'
'경제가 좋아지면 우리도 나아지겠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군사독재가 되는 건 아닐까.'
'아버지가 평생 반대하셨던 독재가...'

여름의 홍수
7월 들어 장마가 시작됐다.
비가 며칠째 계속 내렸다.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민화가 걱정했다.
"그러게요."
"작년 여름에도 홍수가 있었는데..."
"올해도 조심해야겠어요."
계민도 불안했다.


7월 중순.
폭우가 쏟아졌다. 하루 종일, 이틀 내내.
"승국아, 오늘 학교 가지 마."
"왜요, 아버지?"
"비가 너무 많이 와. 위험해."
"하지만 시험이 있어요."
"시험보다 네 안전이 중요해."
하지만 승국은 고집을 부렸다.


"아버지, 저 꼭 가야 해요. 시험 못 보면 큰일 나요."
"......"
계민은 고민했다.


'교실이 함석지붕에 흙벽이야.'
'비가 새지 않을까...'
"알았어. 하지만 조심해. 물이 차오르면 바로 나와."
"네, 아버지!"
승국은 우비를 입고 학교로 갔다.


군청 앞 교육청 밖에 있는 제2분교. 양조장 옆.
승국이 교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선생님, 물이..." "괜찮아. 조금 있으면 그칠 거야."
하지만 비는 더 세게 내렸다.
교실 바닥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발목까지.


"선생님!"
"...이거, 심상치 않은데."
무릎까지.
"아이들, 책상 위로 올라가!"
칠십 명이 넘는 아이들이 책상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물은 계속 차올랐다.


허리춤까지.
책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둥둥.
마치 배처럼.
"으아아!"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선생님!"
"침착해! 침착하라고!"
선생님이 소리쳤다.


하지만 공포가 퍼졌다.
승국은 책상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물이 허리춤까지 찼다.
책상이 이리저리 떠다녔다.


친구 하나가 균형을 잃고 물에 빠졌다.
"으악!"
"도와줘요!"
선생님이 헤엄쳐 가서 아이를 건졌다.
"모두 밖으로 나간다! 하나씩!"
"문이 안 열려요!"
물의 압력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았다.


"창문으로!"
선생님이 창문을 깼다.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하나씩 나가! 승국이 네가 먼저!"
"네!"
승국이 창문으로 기어나갔다.


밖도 물바다였다.
하지만 교실보다는 나았다.
"빨리! 다들 나와!"
아이들이 하나씩 빠져나왔다.


칠십 명.
다 나오는 데 십 분이 걸렸다.
"모두 높은 곳으로!"
선생님이 소리쳤다.



아이들이 건물 2층으로 대피했다.
승국은 물에 흠뻑 젖어 떨고 있었다.


'무서웠어...'
'죽는 줄 알았어...'
교실을 돌아봤다.
책상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칠판도 물에 잠겼다.
책들이 물에 떠다녔다.
함석지붕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흙벽이 젖어 무너질 것 같았다.


'우리 교실이...'
저녁이 되어서야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계민이 달려왔다.
"승국아!"
"아버지!"
승국이 아버지 품에 안겼다.


"다쳤니? 괜찮니?"
"네... 괜찮아요."
하지만 몸이 떨렸다.
"무서웠구나."
"...네."
계민이 아들을 꽉 안았다.


"다행이야. 무사해서 다행이야."
집으로 돌아왔다.
민화가 달려왔다.
"승국아!"
"엄마..."
"괜찮아? 다친 데 없어?"
"없어요."
민화가 젖은 옷을 벗기고 마른 옷을 입혔다.


"아이고, 온몸이 차갑네..."
따뜻한 국을 끓여줬다.
"먹어. 몸 녹여야지."
"고맙습니다, 엄마."
승국이 국을 마셨다.
그제야 몸이 좀 녹는 것 같았다.


범현이가 다가왔다.
"형, 무서웠어?"
"...응, 좀."
"괜찮아?"
"이제 괜찮아."
하경이와 희경이, 란경이도 오빠를 걱정스럽게 봤다.


"오빠..."
"괜찮아. 걱정 마."
승국이 웃어 보였다.
그날 밤.
계민은 승국 곁에 앉았다.


"승국아."
"네, 아버지."
"오늘 정말 무서웠지?"
"...네."
"하지만 잘 견뎠어."
"......"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승국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 저 정말 무서웠어요."
"알아."
"물이 계속 차올라서... 죽는 줄 알았어요."
"......"
"책상이 떠다니고... 친구들이 울고..."
승국이 울기 시작했다.


계민은 아들을 안았다.
"울어도 돼. 참지 마."
"으으..."
승국이 아버지 품에서 울었다.
오래, 길게.
그날의 공포를 토해냈다.
계민은 말없이 아들을 안았다.


'이 아이가... 이런 일을...'
'함석지붕 흙벽 교실에서...'
'이 나라는 언제쯤 나아질까.'


외가 식구들의 위로
며칠 후.
소식을 들은 외삼촌들이 달려왔다.
"승국아!"
김규승이 승국을 안았다.


"무섭지 않았니?"
"...무서웠어요, 외삼촌."
"우리 승국이... 많이 놀랐겠다."
김원태도 승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하지만 잘 견뎠어. 정말 대단해."
"......"
"큰누나."
김규승이 민화를 봤다.


"승국이가 많이 놀랐죠?"
"네... 그날 밤에 악몽을 꿨어요."
"그랬겠어요."
"정화 누님한테도 편지 보냈어요. 걱정하시더라고요."
"남평에서?"
"네. 매형이 학교 선생이라 교실 사정을 잘 아시잖아요. 함석지붕 흙벽 교실이 얼마나 위험한지."
"복화 누나도 연락 왔어요?"
"네. 매형이 기자라서 홍수 취재 다니시다가 소식 들으셨나 봐요."
김원태가 승국에게 말했다.


"승국아, 외삼촌이 새 책 사줄게."
"괜찮아요, 외삼촌."
"아니야. 네가 놀란 걸 위로해주고 싶어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승국아."
김규승이 진지하게 말했다.
"이런 일을 겪었지만, 공부는 계속해야 해."
"...네."
"우리가 네 뒤에 있어. 할아버지도, 우리도, 큰형님도."
"정화 이모, 복화 이모도 다 네 편이야."
"...네, 외삼촌."
승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남평에서 정화가 편지를 보내왔다.
"민화야, 승국이 괜찮니? 많이 놀랐을 텐데. 호영이(남편 백호영)가 학교 선생이라 그런 교실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 꼭 조심하라고 전해줘. 승국이한테 책 보낼게."
며칠 후 소포가 왔다.


책 몇 권과 편지.
"승국아, 이모야. 무서웠지? 하지만 잘 견뎠어. 이모가 자랑스러워. 이 책들 읽으면서 힘내. 이모부도 안부 전하래."
백수에서도 복화가 편지를 보냈다.


"민화 언니, 승국이 홍수 사고 소식 들었어요. 화상이(남편 박화상)가 취재 다니다가 얼마나 심각한 홍수였는지 알려줬어요. 승국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조카 얼굴 보고 싶네요. 방학 때 영광 갈게요."
민화가 편지들을 계민에게 보여줬다.


"언니들이 다 걱정하네요."
"가족이니까요."
"승국이가 복받은 아이예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껴주니까."
"그러게요."
계민이 아내의 손을 잡았다.


"우리가 잘 키워야죠."
"네."
8월.
학교가 한 달간 휴교에 들어갔다.
교실을 수리해야 했다.
흙벽이 무너지고, 함석지붕이 찌그러지고.
"한 달간 휴교합니다."
선생님이 공지했다.


"교실을 수리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쉬었다.
승국은 집에서 책을 읽었다.
외삼촌들이 사준 산수 문제집.
정화 이모가 보내준 책들.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신 한문.


"승국아, 공부만 하니?"
범현이가 물었다.
"응."
"놀지 않아?"
"나중에."
"형은 정말 공부 좋아하네."
"...그냥 해야 할 것 같아서."
승국은 홍수 이후 더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잘 해야 해.'
'외삼촌들도,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기대하시잖아.'
'정화 이모도, 복화 이모도.'
'잘 해야 해.'
어느 날 외할아버지 김학두가 승국을 불렀다.


"승국아."
"네, 할아버지."
"홍수 때 무서웠지?"
"...네."
"하지만 잘 견뎠어."
"......"
"우리 승국이가 강하구나."
김학두가 승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승국아, 할아버지가 하나 말해줄게."
"네, 할아버지."
"세상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
"......"
"하지만 그걸 견디고 이겨내는 게 중요해."
"네."
"너는 그걸 할 수 있어. 할아버지가 믿어."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그리고 승국아."
"네?"
"우리 가족이 다 너를 응원해. 알지?"
"네, 할아버지."
승국은 할아버지의 따뜻한 손을 느꼈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외삼촌들도, 이모들도.'
'다들 나를 응원하고 계셔.'
9월.
학교가 재개됐다.
교실이 수리됐다.
함석지붕을 새로 얹고, 흙벽을 보수했다.


"승국아, 조심해서 다녀와."
"네, 아버지!"
승국이 학교로 갔다.
교실에 들어서니 새 냄새가 났다.
"우와, 깨끗하다!"
친구들이 기뻐했다.


"다시 공부할 수 있겠네!"
선생님이 들어왔다.
"여러분, 한 달 만이네요."
"네!"
"지난번 홍수 때 다들 무서웠죠?"
"...네."
"하지만 잘 견뎠어요. 다들 대단해요."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열심히 합시다!"
"네!"
승국은 책상에 앉아 생각했다.


'다시 시작이야.'
'열심히 해야지.'
연말
12월이 왔다.
한 해가 저물어갔다.
계민은 서재에 앉아 일기를 썼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박정희와 김종필이 권력을 잡았다."
"민주주의가 또 무너졌다."
"하지만 경제개발 계획이 시작됐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여름에 홍수가 있었다."
"승국이가 학교에서 물난리를 겪었다."
"책상이 떠다니고, 물이 허리춤까지 찼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지만 잘 견뎠다."
"외가 식구들이 승국이를 많이 아낀다."
"민화의 동생들인 규승과 원태."
"남평에 사는 정화 도, 백수에 사는 복화 도."
"정화 언니의 남편 백호영은 국민학교 선생이다."
"복화 언니의 남편 박화상은 기자다."
"승국이한테 모두들 책도 보내주고, 격려도 해주고."
"승국이가 기대에 부응하려 열심히 한다."
"란경이가 이제 돌이 지났다. 걸음마를 잘 한다."
"범현이는 유치원을 잘 다니고 있다."
"하경이, 희경이도 잘 크고 있다."
"주유소는 여전히 잘 된다."
"가족이 무사하다."
"그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다."
민화가 방에 들어왔다.


"계민 씨, 아직 안 자요?"
"응, 일기 쓰고 있어."
"올해도... 참 많은 일이 있었죠?"
"그러게."
"쿠데타도 일어나고, 홍수도 나고..."
"하지만 우리는 무사해요."
"다행이죠."
두 사람은 창밖을 봤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계민 씨."
"네?"
"내년엔... 평화로웠으면 좋겠어요."
"...그럴까요?"
"모르죠. 하지만 바라는 거예요."
"네. 저도 그래요."
"그리고 승국이가..."
"응?"
"너무 부담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래요."
계민이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승국이는 강해요."
"그래도..."
"우리가 잘 지켜봐요."
"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았다.


1961년이 저물어갔다.
쿠데타의 해.
홍수의 해.
하지만 가족은 무사했다.
외가 식구들의 사랑도 있었다.
남평의 정화 이모.
백수의 복화 이모.
영광의 외삼촌들.
모두가 승국을 아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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