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는 남자 (15)

한 사람에 대하여

by seungbum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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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강민준은 편집국으로 돌아왔다.
기자증 회수 절차가 법적으로 막힌 덕분이었다. 이혜정이 편집국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특별한 말은 없었다. 그냥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탐사보도팀 자리에 앉는 순간, 이상하게 오래된 느낌이 들었다. 열닷새밖에 안 됐는데 훨씬 오래전에 떠난 것 같은 느낌. 이 자리에서 박기태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만큼.


허윤서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혜정이 조용히 처리했다고 했다. 강민준은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었다.
빈 문서를 열었다.


이번 기사의 제목을 뭐라고 해야 하는가. 강민준은 한참 생각했다.
한성그룹 부회장 한재원 씨의 생애. 너무 부고 형식이었다.


한재원이 남긴 것. 너무 추상적이었다.
강민준은 제목을 비워두기로 했다. 기사를 다 쓰고 나서 제목을 붙이기로. 제목은 기사를 다 쓴 뒤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첫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폭로 기사는 달랐다. 첫 문장이 명확했다. 누가, 언제, 무엇을. 사실이 이끌었다. 감정을 실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한 사람에 대한 기사는 달랐다.


사실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담으려면, 사실 이면의 것들을 담아야 했다.
강민준은 열 년 기자 생활에서 그런 기사를 많이 쓰지 않았다. 탐사보도 기자였다. 비리를 파헤치고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일이었다.

사람의 내면을 문장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일이었다.


빈 화면을 바라보면서 강민준은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기자가 됐는가.
단순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강민준은 그것을 오래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일을 하면서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던 것도 있었고, 이유가 분명하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했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것이 강민준의 대답이었다. 언제나.
하지만 지금 이 빈 화면 앞에서, 그 대답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방법이었다. 수단이었다. 그 방법과 수단을 통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강민준은 한재원의 사진을 핸드폰에서 꺼내 화면 옆에 세워두었다. 책상 위에 기댄 핸드폰 화면. 온화한 눈이 강민준을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원한 것은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구조가 어떻게 인간을 삼키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 구조에 삼켜진 인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줘야 했다.
강민준은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알았을 때, 처음 문장이 나왔다.
한재원은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한 문장을 타이핑하고 강민준은 멈췄다.
이 문장이 맞았다. 서윤아가 말한 것이었다. 이것이 한재원이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서 이 기사가 시작될 것이었다.
강민준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한재원
강민준은 사흘에 걸쳐 사람들을 만났다.
첫 번째는 서윤아였다.
서윤아와는 두 시간을 이야기했다. 비서로서 한재원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이었다.




강민준은 녹음기를 켜지 않았다. 그냥 이야기를 들었다. 필요한 것을 노트에 적었다.
서윤아가 말한 것들.
한재원은 출근할 때 항상 1층 청소원 아주머니께 인사를 했다. 이름을 알고 있었다.


손자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주머니 손자 이름이 민호인데, 명절마다 챙겼다.
회의에서 누군가 틀린 보고를 해도 다른 사람 앞에서 지적하지 않았다. 나중에 단둘이 조용히 불러서 이야기했다.


퇴근 후에 가끔 혼자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서윤아가 따라가면 싫어하지 않았지만 권하지도 않았다. 그냥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형 한재도와의 관계에 대해서 서윤아가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한재원이 이렇게 답했다고 했다.


형이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다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강민준은 그 말을 노트에 적으면서 잠시 멈췄다.
형이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자신을 구조에 몰아넣은 형에 대해 한재원이 한 말이었다.
두 번째는 함재식이었다.
함재식과는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함재식이 한재원을 직접 만난 것은 두 번이었다. 짧은 만남이었다.
함재식이 기억하는 한재원.


두 번째 만남에서 함재식이 GV-3에 대한 자료를 처음 언급했을 때, 한재원이 한 말이 있었다고 했다.


함재식 씨, 이 일에 시간이 걸릴 겁니다.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하실 겁니까.
함재식이 그렇다고 했다.


그때 한재원이 한 말. 함재식이 기억하는 말.
감사합니다. 저는 혼자서는 할 수가 없어서요.
그 말이 담겨있었다. 강민준은 그것을 노트에 적었다.


세 번째는 뜻밖의 사람이었다.
강민준이 편집국에서 자료를 정리하다가 한재원의 과거 공개 발언들을 찾아보았다. 언론 인터뷰가 거의 없었다. 공식 행사에서의 발언도 적었다.


하지만 하나가 있었다.
3년 전, 한성그룹 창립기념일 행사에서 한재원이 한 짧은 인사말이었다. 내부 행사라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참석한 기자가 일부를 메모해 두었고 그것이 짧은 기사로 남아있었다.


강민준은 그 기사를 찾아서 읽었다.
한재원이 그날 한 말의 일부였다.
기업이 오래가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만, 돈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이 안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돈이 있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 행사가 있고 일 년 후에 한재원은 죽었다.
강민준은 그 발언을 오래 바라보았다.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한재원이 원한 것이 그것이었다. 그 말이 GV-3에 반대한 이유였다. 그 구조 안에서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강민준은 노트를 닫았다.


세 사람이 기억하는 한재원이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
조용하고, 이름을 알고, 감사할 줄 알고, 형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이 괜찮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이 그 구조 안에 있었다.
그 불일치가 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한무경이 기억하는 아들
사흘째 되는 날 오후, 강민준은 다시 용인으로 갔다.
이번에는 미리 연락을 했다. 한무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방. 창가 의자. 소나무가 보이는 창.
하지만 한무경의 상태가 달라져 있었다. 더 수척했다. 다음 주 출두가 가까워지면서 몸이 더 힘들어진 것 같았다. 의사가 안정을 권유하고 있다고 집사에게서 들었다.


강민준이 자리에 앉았다.
"무슨 기사를 쓰러 왔소."
한무경이 먼저 물었다.
"재원 씨에 대한 기사입니다. 사건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기사요."
한무경이 잠시 눈을 감았다.


강민준은 그것을 읽었다.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신을 준비시키는 시간.
"뭐가 궁금하오."
"회장님이 기억하시는 재원 씨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한무경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나무가 늦가을 바람에 가지를 움직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조용한 아이였소."
강민준은 노트를 열었다. 하지만 바로 쓰지 않았다. 먼저 들었다.


"형 재도는 어릴 때부터 말이 많았소.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고. 재원이는 달랐소.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생각하고, 정해지면 조용히 했소. 그래서 재원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잘 몰랐소."
"알려고 하셨습니까."
한무경이 잠시 말이 없었다.


"……적게 했소. 재도한테 더 신경을 썼소. 재도가 더 소리가 컸으니까."
그 말에서 강민준이 읽은 것은 후회였다. 앞에서 봤던 것과 같은 후회였지만 지금은 층이 달랐다.
사건에 대한 후회가 아니었다. 아버지로서의 후회였다.


"재원이가 한성그룹에 들어온 것이 본인이 원한 겁니까."
"둘 다였소. 내가 원했고, 재원이도 싫지 않았소.


하지만 재원이가 그룹을 진심으로 원했는지는 모르겠소. 들어온 뒤에 보면 일을 열심히 했소. 열심히 했는데, 어느 시점부터 표정이 달라졌소."
"언제부터요."
"재도가 GV-3을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요. 재원이가 그것을 알게 됐을 때."
강민준은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그때 재원이한테 뭐라고 하셨습니까."
한무경이 강민준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안 했소."
"왜요."
"재원이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재원이한테 틀렸다고 말할 수가 없었소. 하지만 그렇다고 재도를 막을 수도 없었소.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했소."
강민준은 그 말을 노트에 적으면서 그 안의 무게를 생각했다.


아무 말도 안 했다. 그것이 한재원을 가장 외롭게 했을 것이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아버지도 알고 있는데, 아버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재원이가 마지막으로 여기 왔을 때,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무경이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창밖 소나무가 다시 흔들렸다. 그 소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아이는 나한테 화가 나 있었소."
강민준은 기다렸다.
"화가 났는데, 화를 낼 수 없었소. 나는 아비니까. 그래서 용서하라고 한 거요. 화가 난 것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한테 화를 품은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 거요."
강민준은 그 말을 적으면서 손이 멈췄다.


아버지한테 화를 품은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 것.
한재원이 마지막에 아버지에게 한 말이 그것이었다. 용서하세요. 그것이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한 용서를 구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한테 화가 난 자신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다.


강민준의 눈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감각이 낯설었다. 강민준이 취재하면서 눈이 뜨거워진 것이 얼마 만인지 몰랐다.
한무경의 눈도 달라져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강민준이 한무경의 눈을 세 번 읽었다. 처음에는 후회와 내려놓으려는 마음이 반반이었다. 두 번째에는 결심이 있었다.


지금은.
눈물이 없는 슬픔이었다. 나이 든 사람이 오래 울어서 눈물이 남지 않은 눈이었다.
강민준은 노트를 잠시 덮었다.
"재원 씨가 회장님한테 화가 나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 왜 막지 않으셨습니까."
그 질문이 날카로웠다. 하지만 강민준은 부드럽게 물었다.
한무경이 답했다.


"겁이 났소."
"무엇이."
"재원이가 옳고 재도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을 인정하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다 틀린 것이 되니까."
강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늙은 사람의 두려움이었다. 자신이 쌓아온 것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이 아들보다 구조를 택하게 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한무경이 창밖을 보았다.
"지금은 그냥 보고 싶소."
그 말이 짧았다.
강민준은 노트를 다시 열었다. 그 말을 적었다.


지금은 그냥 보고 싶소.
그 문장이 이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 될 것이었다.


기사의 완성
편집국으로 돌아온 것은 저녁이었다.
강민준은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었다.
첫 문장이 이미 있었다.
한재원은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문장 아래에 강민준은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폭로 기사를 쓸 때의 속도가 아니었다. 천천히 썼다. 문장 하나를 쓰고 읽었다. 다시 썼다. 다시 읽었다.


서윤아가 기억하는 한재원을 썼다. 1층 청소원 아주머니 이름을 알았던 것. 틀린 부고를 다른 사람 앞에서 지적하지 않았던 것. 편의점 컵라면. 형에 대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것.


함재식이 기억하는 한재원을 썼다. 혼자서는 할 수가 없어서요,라고 했던 말.
3년 전 창립기념일 행사에서 한 말을 썼다.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무경이 말한 것을 썼다.


아무 말도 안 했소.
화가 난 것을 용서해 달라고.
지금은 그냥 보고 싶소.
기사의 중간쯤에서 강민준은 GV-3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하지만 다르게 썼다. 구조가 어떻게 작동했는지가 아니라, 그 구조 안에서 한재원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도망가지 않은 것. 직접 대결하지 않고 USB를 남긴 것. 기자를 선택한 것.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강민준은 직접 쓰지 않고 한참을 멈추었다.
마지막에 무엇을 써야 하는가.
강민준은 핸드폰을 꺼냈다. 한재원의 사진을 열었다. 온화한 눈. 그 눈이 강민준을 보고 있었다.


강민준은 이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목소리로만 들었다. 사진으로만 봤다. 그리고 이 사람이 남긴 것들을 통해 이 사람을 알았다.
그것이 이 기사가 끝나야 할 방식이었다.


만나지 못했지만 알게 된 사람에 대한 기사.
강민준은 마지막 문단을 썼다.
한재원을 아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은 조용했다고. 하지만 조용하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 조용함 안에서 이 기사가 나왔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가 떠난 뒤에, 증명됐다.


기자는 한재원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취재하는 내내 그가 남긴 것들을 통해 그를 알았다. 선택한 기자, 설계한 판, 마지막에 남긴 말. 잘 부탁한다.


그 부탁을 받았다.
강민준은 마지막 문장을 타이핑하고 멈췄다.
그 부탁을 받았다.


그것이 이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강민준은 전체를 한 번 읽었다.
맞았다. 이 기사는 맞았다.


폭로가 아니었다. 비리를 드러내는 기사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옳다고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담은 기사였다.


강민준은 제목을 붙였다.
한재원, 조용한 사람
짧았다. 하지만 맞았다.


이혜정에게 기사를 보냈다. 이혜정이 읽고 십 분 후에 답이 왔다.
"이거 우리 회사에 내자."
강민준은 그 문자를 읽었다.
대표이사의 보류 지시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괜찮겠습니까."
"내가 책임지겠어. 탐사보도팀 이름으로 내자."
강민준은 잠시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기사는 다음 날 아침 《한국시사주간》 웹사이트에 올라갔다. 대표이사가 사전에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혜정이 직접 편집국장을 설득해서 통과시켰다.


기사가 올라가고 두 시간 만에 대표이사가 이혜정을 호출했다.
강민준은 그 소식을 들으면서 편집국에 앉아 있었다.


이혜정이 대표이사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혜정이 강민준을 보면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강민준은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
기사가 올라간 날 오후, 강민준은 편집국을 나와 한강변을 걸었다.
합정동 한강변. 한재도가 있던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강민준이 매일 오가는 동네였지만 한강변을 이렇게 걷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늦가을 한강이었다. 바람이 찼다. 강물이 낮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강민준은 걸으면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기사 반응이 올라오고 있었다. 폭로 기사만큼의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하지만 달랐다. 조용하게 퍼지고 있었다.


댓글들이 달랐다. 공유를 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달랐다.
한 댓글이 강민준의 눈에 들어왔다.
"이 기사 읽으면서 처음으로 이 사람이 실제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강민준은 그 댓글을 읽고 걸음을 멈추었다.
실제 사람.


그렇다. 이 이야기는 구조에 관한 것이기도 했지만, 결국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구조를 만든 사람, 구조에 저항한 사람, 구조에 삼켜진 사람, 구조를 막으려다 실패한 사람. 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강민준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혜정에게서 문자가 왔다.
"대표이사가 기사 내린다고 했어."
강민준은 그 문자를 읽었다.
"그래서요."
"나는 안 된다고 했어. 기사는 이미 나갔고, 내리면 더 큰 문제가 된다고. 결국 대표가 물러섰어. 기사는 그대로야."
"팀장님."
"응."
"감사합니다."
"됐어. 그리고."
이혜정의 다음 문자가 왔다.


"대표가 나한테 이런 말 했어. 이혜정 씨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냐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강민준이 들어오고 나서요,라고 했어."
강민준은 그 문자를 읽으면서 한강을 바라보았다.



강물이 흘렀다. 늦은 오후 빛이 강 위에 깔리고 있었다.
강민준은 이 이야기에서 자신이 읽은 눈들을 생각했다.


서윤아의 두려움과 신뢰. 함재식의 3년의 결심. 한상민의 오래된 피로. 홍준기의 눌린 죄책감. 박기태의 안도. 한재도의 체념. 한무경의 눈물 없는 슬픔. 이혜정의 분노와 동료애.
그 눈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강민준이 그것을 읽었다. 하나씩. 틀리기도 했고, 흔들리기도 했지만, 결국 읽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서윤아였다.
"기자님, 기사 읽었어요."
"어땠습니까."
잠시 침묵이 있었다.


"부회장님이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강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한강 위로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저물어가는 빛이 강 위에 길게 누워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기자님이 써주셔서 감사해요."
전화가 끊겼다.
강민준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강변 벤치에 앉았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건드렸다. 강민준은 피하지 않았다. 그냥 맞았다.


이 이야기에서 아직 남은 것들을 생각했다.
재판이 시작될 것이었다. 한재도, 박기태, 차관보. 각자의 법정에서 각자의 결과를 받을 것이었다. 한무경이 다음 주 월요일에 출두할 것이었다. 한상민은 협조하면서 자신의 몫을 감당할 것이었다. 함재식이 증인으로 서게 될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을 강민준은 기사로 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의 끝은 다른 곳에 있었다.
강민준은 그것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한재원의 기일.
한무경이 부탁한 것. 다음 달 한재원의 기일에 용인 고택에 가는 것.


그 자리에서 이 이야기가 끝날 것이었다.
강민준은 벤치에서 일어섰다.
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오래 흘러온 강. 앞으로도 오래 흘러갈 강.

강민준은 그것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강 위에 불빛들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강물이 그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강민준은 걸었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