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공판, 함재식의 증언
두 번째 공판은 첫 공판으로부터 한 달 뒤에 열렸다.
그 한 달 동안 세상이 조금 더 변했다.
한성그룹 계열사 대표 세 명이 추가로 검찰에 소환됐다. 기획재정부 내 GV-3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 두 명이 입건됐다. 홍준기가 검찰에 자수해서 진술을 마쳤고, 그 진술 내용의 일부가 언론에 흘러나왔다.
한성그룹 주가는 한 달 사이에 조금 안정됐다. 하락이 멈춘 것이지 회복된 것이 아니었다. 시장은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민준은 그 한 달 동안 두 가지를 병행했다.
재판 관련 기사를 꾸준히 썼다. 짧고 정확하게. 사실이 확인된 것만. 그리고 한편으로는 서윤아가 부탁한 기사, 한재원에 대한 기사의 후속편을 준비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재원이 왜 이 선택을 했는지를 더 깊이 담는 기사였다.
두 번째 공판이 열린 날, 강민준은 일찍 법정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오늘 증인이 있었다.
함재식.
한 달 전 첫 공판을 준비하면서 검찰이 함재식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이 반대했다. 법원이 허가했다.
함재식이 증인석에 앉았을 때, 강민준은 그를 읽었다.
이마의 붕대는 없었다. 치료가 끝났다. 하지만 골절된 늑골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했다. 앉는 자세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눈이 달랐다.
이 이야기에서 강민준이 함재식의 눈을 처음 읽었을 때는 3년을 혼자 들어온 무게가 있었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결심이 있었다. 세 번째, 병원에서 읽었을 때는 다쳤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지금 증인석의 함재식의 눈에서 강민준이 읽은 것은 달랐다.
준비됨이었다.
이 자리를 위해 3년을 기다려온 사람의 준비됨. 이 법정에서 말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계산하고, 혼자 버텨온 시간 전체가 지금 이 증인석을 향하고 있었다.
검사가 질문을 시작했다.
"증인은 한성그룹 감사실에 재직하셨습니까."
"네."
"언제부터 언제까지입니까."
"1993년 입사해서 2021년까지 재직했습니다."
"감사실에서 GV-3 계정을 처음 인지한 것은 언제입니까."
함재식이 대답했다.
"2019년 하반기입니다."
검사가 계속 물었다. 함재식이 답했다. 그 대화가 법정 안에 쌓여갔다.
강민준은 노트에 받아 적으면서 함재식의 목소리를 들었다.
흔들리지 않았다. 3년 동안 이 순간을 위해 정리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날짜, 금액, 계좌 번호, 관련 인물의 이름. 모든 것이 정확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이 반대 신문을 시작했다.
"증인이 제출한 자료들은 공식 문서가 아닙니까."
"회사 내부 시스템에서 저장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개인 추적 기록도 있습니다."
"개인 추적 기록이라면 증인 개인의 해석이 개입된 것 아닙니까."
함재식이 잠시 변호인을 바라보았다.
강민준은 그 시선에서 함재식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 생각했다. 함재식은 독심술이 없었다. 하지만 3년 동안 이 사건을 추적한 사람으로서, 상대방이 어떤 의도로 그 질문을 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었다.
"개인 해석이 아닙니다. 자금 흐름은 수치입니다. 수치는 해석이 아닙니다."
법정 안에서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강민준이 느꼈다. 나오지는 않았다. 법정이었으니까. 하지만 기자석 여러 곳에서 펜이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변호인이 다른 방향으로 질문했다.
"증인은 강민준 기자에게 자료를 제공했습니까."
"네."
"그 자료 제공이 이 재판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습니까."
함재식이 변호인을 바라보았다.
"진실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변호인이 다음 질문을 준비하는 사이, 함재식이 덧붙였다.
"그것이 재판에 영향을 준다면, 진실이 재판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판사가 발언을 제지하지 않았다.
강민준은 그 말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
진실이 재판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함재식이 3년 동안 한 일이었다. 진실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는 것. 법원이 그 진실로 무언가를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반대 신문이 끝났다.
함재식이 증인석에서 내려왔다.
법정 복도에서 강민준과 마주쳤다. 함재식이 강민준을 보았다.
강민준이 먼저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함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소?"
"잘 됐습니다."
함재식의 눈에서 강민준이 읽은 것은 다시 가벼움이었다. 한무경의 가벼움과 같은 종류였다. 말해야 할 것을 말한 뒤에 오는 가벼움.
"이제 됐소. 내가 할 것은 다 한 것 같소."
강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아직 재판이 남았습니다."
"법원이 할 일이지, 내가 할 일이 아니오."
강민준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한상민의 증언
세 번째 공판은 두 번째 공판으로부터 한 달 후였다.
이번에는 한상민이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강민준은 한상민이 증인석에 앉는 것을 보면서 그를 읽었다.
첫 번째 레스토랑에서 봤을 때. 두 번째 합정동 카페에서 자수 후에 봤을 때. 세 번째 지금 법정에서.
매번 달랐다.
지금 법정의 한상민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레스토랑에서의 기름 위에 뜬 눈도 아니었고, 카페에서의 열려있는 눈도 아니었다.
정돈된 눈이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의 눈. 이것이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눈.
검사가 신문을 시작했다.
"증인은 한성그룹 홍보총괄 전무로 재직했습니까."
"네."
"그 이전에 감사실장으로 재직하셨습니까."
"네. 2019년까지 감사실장, 이후 홍보총괄 전무로 이동했습니다."
"피고인 한재도 회장으로부터 한재원 부회장 관련 지시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한상민이 잠시 있었다.
강민준은 그 잠시를 읽었다.
망설임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답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한재원 부회장을 GV-3 구조에 협조하도록 설득하라는 지시를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마지막 지시는 한재원 부회장이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이었습니다."
"그 지시를 어떻게 이행하셨습니까."
"박기태 홍보팀장에게 전달했습니다."
"왜 직접 이행하지 않고 박기태에게 전달했습니까."
한상민이 답했다.
"저는 그 지시가 어느 수위까지의 지시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박기태는 한재도 회장의 직계 라인에 있었고, 한재도 회장의 의도를 더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회장의 지시를 회피하려는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실제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까."
법정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한상민이 검사를 바라보았다.
강민준은 그 눈을 읽었다.
이 질문이 한상민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알면서 회피한 것인가, 정말 몰랐던 것인가. 그 경계가 한상민 자신에게도 오랫동안 불분명했을 것이었다.
"저는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정직한 답변입니다."
그 말이 법정 안에 놓였다.
검사가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한상민이 GV-3 운영에 감사실장으로서 어떻게 관여했는지. 어떤 자료를 알고 있었는지. 언제부터 이 구조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한상민이 답했다. 모두 정확하게.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도 숨기지 않았다.
피고인 측 변호인이 반대 신문을 했다. 한상민이 검찰과 협조하는 대가로 자신의 책임을 경감받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한상민이 변호인을 바라보았다.
"저는 협조 대가로 무엇을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한 것에 대한 결과는 받겠습니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 신문이 끝났다.
한상민이 증인석에서 내려왔다.
법정 복도에서 한상민이 강민준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강민준이 읽은 것.
한상민의 눈에서 이 이야기 내내 읽어온 피로가 없었다. 처음으로 피로가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비어있음이었다. 들고 있던 것을 다 내려놓은 사람의 비어있음. 그것이 고통인지 해방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비어있음.
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상민이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미 해야 할 말은 다 한 것이었다.
한상민이 먼저 걸어갔다.
강민준은 그 뒷모습을 잠시 보았다.
이 이야기에서 한상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뒷모습이 작아졌다. 법원 복도가 그 뒷모습을 받아들였다.
강민준은 돌아서서 기자석으로 돌아갔다.
서윤아, 법정 안으로
세 번째 공판이 끝난 뒤였다.
강민준이 법정 밖으로 나오는데 서윤아가 서 있었다.
이번에는 법원 앞이 아니었다. 법원 건물 안, 법정 문 앞이었다.
강민준이 놀랐다.
"들어오셨습니까."
서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쪽에 앉았어요. 기자님 보이셨어요."
강민준은 서윤아를 읽었다.
처음과 달랐다. 처음 강남구 카페에서 봤을 때의 두려움이 없었다. 법원 앞에서 들어가지 못했다던 한 달 전과도 달랐다.
지금 서윤아의 눈에서 강민준이 읽은 것은 고요함이었다.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함. 아직 상처가 있지만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의 눈.
"어땠습니까."
서윤아가 잠시 생각했다.
"이상하게 실감이 됐어요."
"무엇이요."
"부회장님이 이 안에서 이름이 불렸어요.
한재원 부회장. 그 이름이 법정 안에서 불리는 것을 들으니까. 그때까지는 제 기억 안에만 있던 사람이 이 공간에도 있게 된 것 같았어요."
강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제 기억 안에만 있던 사람이 이 공간에도 있게 된 것.
서윤아가 왜 법정 문 앞에서 한 달을 망설였는지 강민준은 이해했다. 들어가면 한재원이 이 차가운 법정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서윤아는 들어왔다.
"잘 하셨습니다."
서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법원 밖으로 나왔다.
겨울 오후 햇빛이 법원 앞 계단을 비추고 있었다. 낮게 내려온 빛이 계단을 오렌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서윤아가 그 빛 안에 서서 말했다.
"기자님, 기일이 이 주 남았어요."
"알고 있습니다."
"한무경 회장님은요?"
"회복 중이십니다. 올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서윤아가 그 말을 들으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빛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이었다.
"그날 날씨가 좋으면 좋겠어요."
강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날씨.
한재원의 기일. 용인 고택의 묘. 한무경, 서윤아, 강민준.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지 못한 말.
그날 날씨가 좋으면 좋겠다는 서윤아의 말이 맞았다.
"좋을 겁니다."
강민준이 말했다.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서윤아가 강민준을 바라보았다.
"기자님은 그날 뭘 느낄 것 같아요?"
강민준은 그 질문을 받으면서 생각했다.
처음으로 한재원의 공간에 서게 될 것이었다. 그 사람이 잠든 곳. 강민준이 한 번도 직접 읽지 못한 눈의 주인이 있는 곳.
"모릅니다." 강민준이 솔직하게 말했다. "가봐야 알겠습니다."
서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두 사람은 계단 위에 잠시 서 있었다.
겨울 빛이 길게 깔려 있었다. 그 빛이 따뜻하지는 않았다. 겨울이었으니까. 하지만 눈에는 편안했다.
한무경의 회복
세 번째 공판 이틀 후, 강민준은 다시 병원으로 갔다.
한무경이 회복 중이라는 소식은 들었지만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병실에 들어서자 한무경이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완전히 누워있지 않았다. 팔의 링거가 빠져 있었다.
얼굴에 혈색이 조금 돌아왔다.
강민준이 자리에 앉았다.
"좀 어떠십니까."
"나쁘지 않소." 한무경이 말했다. "의사가 이번 주 안에 퇴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소."
"다행입니다."
"기일이 이 주 남았소."
"네."
한무경이 강민준을 바라보았다.
"갈 수 있을 것 같소."
강민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한무경의 눈을 읽었다.
회복되고 있는 눈이었다. 힘이 조금 돌아온 눈. 하지만 그 눈이 강민준에게 지금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건강 회복이 아니었다.
간절함이었다.
그날 거기에 있고 싶다는 간절함. 아들 곁에 있고 싶다는 간절함.
"의사가 허락합니까."
"설득해야 하오." 한무경이 말했다. "안 된다고 하면 설득해서 가겠소."
강민준은 그 말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그 자리를 원하는지를 읽었다.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알고 있소." 한무경이 말했다. "하지만 그 아이한테 할 말이 있소. 직접 가서 해야 하오. 기자 양반한테 대신 부탁했지만, 내가 직접 가야 하오."
강민준은 그것을 이해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직접 가는 것과, 다른 누군가를 통해 전하는 것은 달랐다.
강민준이 전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한무경이 갈 수 없을 경우를 위한 것이었다.
"가실 수 있으면 직접 가십시오."
"그래야겠소."
한무경이 창밖을 보았다. 병원 창밖에는 겨울 나무들이 서 있었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 가지만 남은 나무들.
"기자 양반."
"네."
"재원이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있소. 용서하세요, 라고. 내가 그 말을 십 년은 오해했소."
강민준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무경이 지금 그것을 꺼내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어떻게 오해하셨습니까."
"재원이가 나를 용서해달라는 말인 줄 알았소. 내가 한 것들을 용서해달라고. 그래서 그 말이 더 무거웠소."
"하지만 아니었습니까."
"박기태한테서 들었소. 재원이가 나한테 화가 나 있었다고. 화가 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해서 용서하라고 한 거라고."
강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것을 알고 나서 어떠셨습니까."
한무경이 잠시 있었다.
"더 무거워졌소."
강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더 무거워졌다.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것보다 아들이 자신에게 화를 품은 것을 미안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더 무겁다는 것.
그것이 어떤 무게인지 강민준은 정확하게는 몰랐다. 하지만 그 무게의 종류는 알았다.
부모가 자식에게 짐이 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무게.
"기일에 가셔서 직접 말씀드리십시오."
"그럴 거요."
한무경이 창밖을 다시 보았다. 겨울 나무들이 흔들리지 않고 서 있었다.
"기자 양반도 오겠소?"
"약속했습니다."
"서윤아도 오겠소?"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한무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됐소."
그 말이 짧았지만 안에 무언가가 가득 찬 말이었다.
그러면 됐소.
아들이 잠든 곳에 아버지가 가고, 그 아이를 아끼던 사람이 가고, 그 아이가 선택한 기자가 간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강민준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퇴원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그러겠소."
병실을 나오면서 강민준은 복도에서 멈추었다.
이틀 전에 봤던 한무경보다 오늘의 한무경이 나았다. 눈이 돌아왔다. 말이 더 명확해졌다.
기일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강민준에게 중요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는 것. 그것을 강민준이 지켜볼 것이었다.
[문단 5] 결(結) 후반 — 기일을 향한 복선
그날 저녁, 강민준은 합정동 원룸에 돌아와 취재 노트를 정리했다.
세 번의 공판. 함재식의 증언. 한상민의 증언. 서윤아가 처음으로 법정 안으로 들어온 것.
한무경의 회복.
그리고 이 주 후의 기일.
이 이야기가 그 기일을 향해 모이고 있었다.
강민준은 그것을 느꼈다.
여러 줄이 한 점으로 수렴하는 느낌이었다. 이 이야기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그 날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함재식은 병원에서 퇴원해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증언이 끝났다. 재판은 계속되겠지만 함재식이 해야 할 것은 끝났다.
한상민은 검찰 조사를 마치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협조 의사가 있었고, 그것이 판결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했다.
박기태도 마찬가지였다. 자백을 했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홍준기가 자수해서 진술을 마쳤다. 그의 법적 처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진행 중이었다.
서윤아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다고 했다. 아직 한재원과 한성그룹에서 멀어지지 못했지만, 멀어지는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이혜정은 편집국에서 싸우고 있었다. 대표이사와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사는 계속 나가고 있었다. 그것이 중요했다.
강민준은 그 모든 것을 노트에 적으면서 생각했다.
이 이야기에서 각자가 감당해야 할 무게가 달랐다. 한재도는 가장 큰 무게를 법정에서 감당하고 있었다. 박기태는 자신이 막지 않은 것의 무게를. 한상민은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의 무게를. 홍준기는 막으러 갔다가 실패한 것의 무게를. 한무경은 아버지로서 틀린 선택을 한 것의 무게를.
그리고 강민준은 이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의 무게를.
그 무게가 가장 가볍다고 강민준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종류였다. 기록하는 사람의 무게.
강민준은 노트를 닫고 핸드폰을 들었다.
기일까지 이 주.
그 이 주 동안 강민준이 해야 할 것을 생각했다.
재판 기사를 계속 쓰는 것. 한무경의 퇴원을 확인하는 것. 서윤아와 기일 일정을 맞추는 것.
그리고 하나 더.
한재원에 대한 기사의 마지막 편을 쓰는 것. 이 모든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 이야기가 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을 담는 기사.
강민준은 빈 문서를 열었다.
제목을 먼저 썼다.
한재원이 원한 것
그리고 첫 문장을 썼다.
그 사람이 원한 것은 구조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깊은 곳에서 원한 것이 있었다. 괜찮은 사람들이 괜찮게 살 수 있는 것.
강민준은 그 문장을 읽었다.
맞았다.
이 문장이 맞았다.
강민준은 계속 썼다.
창밖에서 겨울 바람이 지나갔다. 합정동의 밤이 깊었다.
이 주 후면 기일이었다.
그리고 기일이 지나면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왔다.
강민준은 그것을 알면서 지금 이 문장들을 썼다.
끝을 알면서 쓰는 것.
그것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들이 놓여야 할 방식이었다.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서윤아였다.
"기자님, 기일에 꽃을 가져가려 해요. 부회장님이 좋아하신 꽃이 있는데. 수국이에요. 겨울에 수국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돼요."
강민준은 그 문자를 읽고 답했다.
"꽃집에 물어보겠습니다."
"같이 찾아봐요."
"네."
강민준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수국.
겨울에 수국을 찾는 것. 그것이 지금 강민준이 해야 할 것이기도 했다.
기사만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좋아했던 꽃을 찾는 것.
강민준은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괜찮은 사람들이 괜찮게 살 수 있는 것.
그 문장이 화면에 있었다.
강민준은 계속 썼다.
이 주가 지나면 그 자리에 서게 될 것이었다.
한재원이 잠든 곳.
그리고 그 앞에서 이 이야기의 마지막 것들이 놓일 것이었다.
강민준은 그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향해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