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수국을 찾아서
겨울 수국을 찾아서
기일이 일 주일 앞으로 다가온 토요일 오전이었다.
강민준과 서윤아는 마포구 망원동 꽃시장에서 만났다. 강민준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렸다.
서윤아가 오 분 후에 나타났다. 두꺼운 코트에 목도리를 감고 있었다. 뺨이 찬 바람에 붉어져 있었다.
"왔어요?"
"왔습니다."
두 사람은 꽃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 꽃시장이었다. 장미, 카네이션, 국화, 포인세티아. 계절에 맞는 꽃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수국은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꽃집 주인에게 물었다.
"수국 있습니까."
주인이 고개를 저었다.
"수국은 봄꽃이에요. 지금은 없어요."
두 번째 꽃집에서도 같은 답이었다.
세 번째 꽃집에서 주인이 말했다.
"수국은 저희도 없는데, 건조 수국은 있어요. 드라이플라워요."
서윤아가 강민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민준은 건조 수국을 생각했다. 색이 바랜 수국. 봄의 것이 겨울까지 남아있는 것.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주인이 안쪽에서 꺼내왔다. 연한 보라색과 흰색이 섞인 건조 수국이었다. 봄에 꺾인 것이 건조가 돼서 지금 여기 있었다.
서윤아가 그것을 손에 들었다.
"이게 더 좋을 수도 있겠어요."
"왜요."
"봄에 피었던 것이 겨울까지 남아있는 거잖아요."
강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봄에 피었던 것이 겨울까지.
"그걸로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건조 수국을 샀다. 연보라와 흰색 두 다발이었다. 주인이 포장해주었다. 겨울 포장지가 예뻤다.
꽃시장을 나오면서 서윤아가 포장된 꽃을 들었다.
"이거 들게요."
강민준이 받으려 했다.
"제가 들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요."
서윤아가 꽃을 가슴 앞에 안았다.
두 사람은 꽃시장 앞 골목을 걸었다. 토요일 오전의 망원동이 북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시장 상인들이 자리를 펼치고, 카페들이 문을 열고, 사람들이 오갔다.
강민준은 오래 걷지 않았던 것을 이 걸음에서 느꼈다.
이 사건이 시작된 이후 강민준은 걷는 것이 목적지를 향한 것이었다. 법원, 병원, 카페, 한성타워. 어디든 이유가 있어서 걸었다.
지금은 달랐다. 그냥 걷고 있었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서윤아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배고파요. 근처에 국밥집 있어요. 거기 갈까요?"
국밥집이었다.
강민준은 대답하기 전에 잠시 생각했다. 이 이야기에서 강민준이 누군가와 밥을 먹은 것이 몇 번이나 됐는가. 함재식과 저녁을 먹은 것, 서윤아와 저녁을 먹은 것. 그리고 한무경과 고택에서 간단하게 무언가를 마신 것.
기사를 쓰는 사람이 취재 대상과 밥을 먹는 것.
하지만 지금 이 자리는 취재가 아니었다.
"가겠습니다."
한재원이 아닌 서로에 대한 이야기
국밥집은 작고 따뜻했다.
두 사람은 안쪽 자리에 앉았다. 주문을 했다. 국밥 두 그릇이 나왔다. 김이 올라왔다.
서윤아가 숟가락을 들면서 말했다.
"기자님, 저 요즘 괜찮아요."
강민준이 서윤아를 바라보았다.
"다행입니다."
"아직 부회장님 생각이 나요. 매일이요. 하지만 그게 아프기만 한 게 아니에요. 그냥 생각나는 것 같아요."
강민준은 그 말을 들었다.
아프기만 한 게 아니다. 그냥 생각나는 것.
그것이 슬픔이 자리를 잡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아프고, 다음에는 무겁고, 그다음에는 그냥 있는 것이 되는.
"저는 새 직장을 알아보고 있어요."
"어디요."
"비영리 쪽이요. 기업 비서실은 이제 못 할 것 같아요. 비슷한 구조 안에 다시 들어가는 게 무서워서요."
강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찾으실 겁니다."
"기자님은요?"
"저는요?"
"이 사건 끝나고 나서 어떻게 할 거예요?"
강민준은 그 질문을 받으면서 잠시 생각했다.
이 사건 끝나고.
그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기사를 쓰는 동안 다음 기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강민준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질문이 자연스럽게 왔다.
"다음 취재를 할 것입니다."
"무슨 취재요?"
"아직 모릅니다. 나타나겠지요."
서윤아가 국밥을 한 숟가락 먹으면서 강민준을 바라보았다.
"기자님은 언제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강민준은 그 질문을 들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왜 기자가 됐는가를 혼자 물은 적이 있었다. 빈 화면 앞에서. 한재원에 대한 기사를 쓰기 전에.
하지만 소리 내어 말한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 때입니다."
"왜요?"
강민준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고등학교 때 학교 안에서 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한 명이 오래 문제가 있었는데, 학교가 그것을 덮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님이 말했어요?"
"그때는 못 했습니다." 강민준이 말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오래 생각했습니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서윤아가 강민준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기자가 됐어요?"
"그래서 기자가 됐습니다."
강민준은 그 말을 소리 내어 처음 했다. 이유를 말로 꺼낸 것이 처음이었다.
말하고 나니 다른 감각이 왔다. 이유가 말 안에서 더 명확해지는 감각.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사람."
서윤아가 그 말을 받았다.
"부회장님이 기자님을 선택한 이유가 그것이었을 것 같아요."
강민준은 서윤아를 바라보았다.
서윤아의 눈에서 강민준이 읽은 것은 따뜻함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서윤아의 눈을 여러 번 읽었지만 이번처럼 단순하게 따뜻한 것은 처음이었다.
두려움도 없었다. 슬픔도 잠시 물러나 있었다.
그냥 따뜻한 눈이었다.
"감사합니다."
강민준이 말했다.
"제가요?"
"네."
"저는 한 것이 없는데요."
"있습니다." 강민준이 말했다. "USB를 갖고 나왔잖습니까."
서윤아가 잠시 있다가 웃었다.
이 이야기에서 서윤아가 웃은 것이 처음이었다.
작고 짧은 웃음이었다. 하지만 거기 있었다.
강민준은 그것을 읽으면서 자신도 뭔가가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국밥을 다 먹었다.
나오면서 서윤아가 수국을 다시 안았다.
"일 주일 후에 이걸 가지고 가요."
"네."
"날씨가 좋으면 좋겠어요."
"좋을 겁니다."
강민준이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확신이 있었다.
한무경의 퇴원과 한재도의 최후 진술
그 주 화요일, 한무경이 퇴원했다는 연락이 왔다.
집사에게서 문자가 왔다.
"명예회장님이 오늘 퇴원하셨습니다. 기일에 가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십니다."
강민준은 그 문자를 읽으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갈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같은 주 목요일, 마지막 공판이 열렸다.
이날 공판에서 피고인들의 최후 진술이 있었다.
이성준 차관보가 먼저 진술했다. 반성의 말이었다. 준비된 문장들이었다. 강민준은 그 문장들이 진심인지 아닌지 읽으려 했다. 법정의 거리가 있었고, 차관보의 훈련된 표정이 있었다. 읽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어렵다는 것이 하나의 읽기였다.
박기태가 진술했다. 짧았다.
"저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막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법정에 서 있는 이유입니다."
그 말이 전부였다.
강민준은 그 짧음 안에서 박기태가 3년 동안 들어온 것을 다시 읽었다.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은 것. 그것을 이 법정에서 이 말로 끝냈다.
그리고 한재도의 최후 진술.
한재도가 일어섰다.
법정 안이 조용해졌다. 취재진이 집중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도 한재도를 바라보았다.
강민준은 한재도를 읽었다.
합정동 아파트에서 처음 봤을 때의 체념이 있었다. 첫 공판에서 봤을 때의 단단함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두 가지가 섞인 상태였다.
체념과 단단함.
두 가지가 동시에 있는 눈.
한재도가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이 구조를 지키는 것이 한성그룹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성그룹이 지속되는 것이 이 그룹에 속한 수만 명의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법정 안이 조용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 동생이 죽었습니다."
그 말에서 한재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달라졌다.
아주 작은 변화였다. 강민준만 읽을 수 있는 변화였다. 목소리가 낮아진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다른 층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회장으로서의 목소리가 아닌 것이었다.
형으로서의 목소리.
"재원이는 제가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재원이가 이해를 못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그 문제를 두고 이야기했을 때, 저는 재원이한테 네가 아직 그룹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재도가 멈췄다.
강민준은 그 멈춤 안에서 한재도의 눈을 읽었다.
싸우는 중이었다. 무언가와.
그것이 자존심인지, 울음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강민준은 정확하게 읽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재원이가 그룹 전체를 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재원이는 제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법정 안에 그 말이 놓였다.
이상하게 긴 침묵이 흘렀다.
판사가 다음 절차를 진행했다. 공판이 끝났다. 선고 기일이 정해졌다.
강민준은 법정을 나오면서 한재도의 최후 진술 마지막 부분을 노트에 다시 적었다.
재원이는 제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말이 이 이야기에서 한재도가 한 말 중 가장 진심에 가까운 말이었다.
강민준은 그것을 기사에 써야 할지 생각했다.
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이 아니었다.
기일이 지난 뒤에 썼다.
이 이야기를 전체로 돌아보는 밤
기일 사흘 전 밤이었다.
강민준은 합정동 원룸 책상에 앉아서 이 이야기의 처음부터를 돌아봤다.
취재 노트를 첫 번째 것부터 꺼냈다.
한성타워에서 박기태를 만난 날. 엘리베이터 앞에서 핸드폰 화면을 본 것. 그 놈 눈이 이상해.
그때 강민준은 박기태가 강민준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읽었다. 맞았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원인을 완전히 읽지 못했다.
그다음 페이지. 서윤아를 처음 만난 날. 강남구 카페. USB. 서윤아의 눈에서 읽은 두려움과 신뢰.
다음 페이지. 함재식을 여의도공원에서 만난 날. 벤치. 3년의 무게를 들고 있는 눈.
강민준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생각했다.
이 이야기에서 독심술이 한 것.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됐다. 서윤아가 진심이라는 것. 함재식의 결심이 진심이라는 것. 한무경의 후회가 진심이라는 것. 이혜정의 조심스러움이 숨김이 아니라 보호였다는 것.
하지만 독심술이 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박기태를 처음에 완전히 읽지 못한 것. 홍준기라는 변수를 처음부터 보지 못한 것. 한재원의 눈을 직접 읽지 못한 것.
그리고 흔들렸던 것.
이혜정을 의심했던 새벽. 자신의 능력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 직면한 순간.
강민준은 그것들을 정직하게 노트 맨 뒤 페이지에 적었다.
독심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이 사람이 느끼는 것을 읽는 것이었다. 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눈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언제나 더 많았다.
강민준은 그것을 이 이야기에서 배웠다.
홍준기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박기태의 진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었다. 한상민이 기사가 나간 뒤 새벽에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면 그날 밤의 경위를 몰랐을 것이었다. 한무경이 직접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의 뿌리를 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독심술이 이 이야기를 이끈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이끌었다.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선택한 것들이. 강민준은 그것을 읽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기자의 역할이라는 것을 강민준은 오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다시 알았다.
더 깊이.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에 강민준은 이 이야기에 등장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었다.
한재원. 서윤아. 함재식. 한상민. 홍준기. 박기태. 한재도. 한무경. 이혜정. 허윤서.
그리고 함재식의 동료로 도로에서 생을 마감한 이름 모를 직원.
그 이름들을 적으면서 강민준은 각자의 눈을 떠올렸다.
각기 다른 눈들. 각기 다른 두려움, 결심, 피로, 후회, 체념, 안도, 슬픔, 따뜻함.
그 눈들이 모여서 이 이야기가 됐다.
강민준은 노트를 닫았다.
창밖을 보았다. 합정동의 밤. 한강이 멀리 빛났다.
이 이야기를 기자로서 돌아볼 때, 강민준이 잘한 것과 못한 것이 있었다.
잘한 것. 멈추지 않은 것. 흔들렸지만 읽기를 포기하지 않은 것. 함재식이 폭행을 당한 날 밤에도 기사를 계속 쓴 것.
못한 것. 박기태를 처음에 더 깊이 읽지 않은 것. 홍준기를 처음부터 추적하지 않은 것. 더 빨리 전체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있었다.
강민준은 못한 것을 자책하지 않았다. 잘한 것에 만족하지도 않았다.
다음 이야기에서 더 잘하면 됐다.
그것이 이 직업의 방식이었다.
핸드폰을 꺼냈다.
함재식에게 문자를 보냈다.
"기일 다음 주입니다. 잘 지내고 계십니까."
함재식의 답이 왔다.
"잘 있소. 기자님은요."
"잘 있습니다."
"기일에 나도 가도 되겠소?"
강민준은 그 문자를 읽었다.
함재식이 가고 싶다고 했다. 한재원을 가장 오래 추적한 사람. 직접 만난 것은 두 번이었지만, 3년을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있었던 사람.
"서윤아 씨한테 확인해보겠습니다."
서윤아에게 전화했다.
"함재식 씨가 기일에 오시고 싶다고 합니다."
서윤아가 잠시 생각했다.
"오세요. 부회장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요."
강민준은 함재식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십시오."
함재식의 답이 왔다.
"고맙소."
강민준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이제 기일에 가는 사람이 정해졌다.
한무경. 서윤아. 함재식. 강민준.
한재원이 이 이야기에서 연결한 사람들이었다.
기일 전날 밤의 고요
기일 전날 밤이었다.
강민준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일.
내일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시작될 것이었다. 마지막이 하루 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이 내일 있었다.
강민준은 내일을 위해 준비한 것들을 생각했다.
용인 고택으로 가는 길. 한무경이 보내준 주소. 오전 열한 시에 모이기로 했다. 서윤아가 수국을 가져온다. 함재식이 기차를 타고 온다.
그리고 강민준은 한무경의 말을 전해야 했다.
네가 옳았소.
한무경이 직접 가겠다고 했다. 직접 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강민준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는 것을 강민준이 지켜볼 것이었다.
그것이 강민준이 해야 할 마지막 일이었다.
기록하는 것.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기록하는 것.
기사로 쓸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글로 옮기는 것이 옳은지. 강민준은 그것을 내일 그 자리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기사로 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었다. 기록이 모두 활자가 될 필요는 없었다.
강민준은 그것을 이 이야기에서 배웠다.
한재원이 죽은 것을 강민준이 기사로 썼다. 그 죽음의 구조를 기사로 썼다. 한재원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사로 썼다.
하지만 내일 그 묘 앞에서 일어나는 것은, 기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강민준 안에 남을 것이었다.
그것도 기록이었다. 다만 활자가 아닌 기록.
강민준은 눈을 감았다.
한재원의 사진이 떠올랐다. 온화한 눈. 서윤아가 전해준 사진.
강민준이 이 이야기에서 한 번도 직접 읽지 못한 눈.
내일 그 묘 앞에 서면, 그 눈을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읽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것은 강민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강민준이 알게 된 것들. 서윤아가 말한 것들. 함재식이 3년 동안 버텨온 것. 한무경이 가지 못한 말들. 박기태가 증인석에서 고개를 숙인 것. 한재도가 최후 진술에서 처음으로 형으로서 말한 것.
그 모든 것이 한재원이라는 사람을 만들었다.
강민준은 그 사람을 알게 됐다.
읽지 않아도, 직접 만나지 않아도.
잠이 오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편안한 잠이었다.
강민준은 잠들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생각했다.
내일 날씨가 좋을 것이었다.
서윤아가 원한 것처럼.
근거가 없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았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야 했다.
맑은 날.
겨울이지만 해가 나는 날.
그 햇빛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 그 아이를 알았던 사람들이 있고, 그 아이가 선택한 기자가 있고, 건조 수국이 있는 날.
강민준은 잠들었다.
합정동의 밤이 고요했다.
한강이 흘렀다.
내일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