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해미읍성

순교자의 발자취

by seungbum lee

성벽을 향하여
"해미읍성 가본 적 있어?"
9월의 어느 주말, 지혜가 물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해미읍성? 서산?"
민수가 대답했다.
"응. 조선시대 읍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래. 그리고 천주교 순교 성지이기도 하고."
서연이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순교 성지? 병인박해 때?"
"맞아. 1866년 병인박해 때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대."
민수는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해미읍성은 1491년에 축조된 조선시대 읍성이야. 둘레가 1.8킬로미터. 성벽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어."
"성벽 위를 걸을 수 있어?"
"응. 성곽길이 조성되어 있대."
준우도 관심을 보였다.
"성 안에는 뭐가 있어?"


"객사, 동헌, 옥사 같은 관아 건물들이 복원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오래된 마을이 있대."
"가자!"
다음 주 토요일, 네 식구는 차를 타고 서산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두 시간 반 거리였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다. 차창 밖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충남은 평야가 많네."
"서해안 지역이니까."
서산 시내를 지나 해미면으로 들어갔다.




멀리서부터 거대한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성벽이다!"
"와, 크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바로 앞에 웅장한 남문이 서 있었다.



"진남문이래."
돌로 쌓은 성벽 위에 목조 누각이 올려져 있었다. 500년 넘은 건축물이었다.


"사진 찍자."
가족 사진을 찍었다. 진남문을 배경으로.


성벽 안 시간의 층위
남문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광장이 펼쳐졌다.
"여기가 성 안이구나."
정면으로 큰 건물이 보였다. 객사였다.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래."
건물은 웅장했다. 기둥이 굵고, 지붕이 높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대청마루가 있었다.




중앙에는 '전패'라고 쓰인 위패가 있었다.
"저게 임금을 상징하는 거야?"
"응. 지방 관리들이 매일 이 앞에서 절을 했대."
객사를 나와 동헌으로 향했다. 동헌은 수령이 집무를 보던 곳이었다.


"여기서 재판도 하고, 행정도 하고."
동헌 마루에 앉아 광장을 바라봤다. 500년 전 이곳에서 수령이 같은 풍경을 봤을 것이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아."
동헌 옆에는 옥사가 있었다. 죄인을 가두던 감옥이었다.


"여기 들어가도 돼?"
좁고 어두운 감방이 줄지어 있었다. 천장이 낮고, 창문이 작았다.
"여기 갇히면 정말 힘들었겠다."
한 감방 앞에 안내판이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이곳에 1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수감되었습니다. 좁은 감방에 여러 명이 함께 갇혀 많은 이들이 옥사했습니다."


"1천 명이나?"
"이 작은 감옥에?"
서연이가 숙연한 표정으로 노트에 적었다.
옥사를 나와 성벽으로 향했다. 성곽길 입구가 보였다.


"성벽 위로 올라가자."
계단을 올라 성벽 위에 섰다. 시야가 확 트였다.
"우와!"
성벽 위에서 보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한쪽으로는 성 안 마을이, 다른 쪽으로는 서산 평야가 펼쳐졌다.


"여기서 적을 감시했겠지."
"그리고 성을 지켰고."
성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성곽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1.8킬로미터면 한 바퀴 도는 데 30분쯤?"
"천천히 걸으면서 보자."
성벽은 높이가 5미터 정도 되었다. 돌로 정교하게 쌓았다.


"500년 전 기술로 이렇게 쌓았다는 게 대단해."
"맞아. 시멘트도 없었을 텐데."
중간쯤 걸으니 북문이 나왔다. 진남문보다는 작았지만, 역시 웅장했다.


"여기서도 사진 찍자."
북문을 배경으로 가족 사진을 찍었다.
성벽을 계속 따라 걸으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성 안쪽으로는 오래된 마을이 보였다.


"저 마을도 가보자."
"응. 성벽 한 바퀴 돌고."


순교의 땅, 기억의 무게
성곽길을 다 돌고 내려와 성 안 마을로 들어갔다.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졌다.


"여기 진짜 옛날 마을이네."
한옥과 오래된 주택들이 섞여 있었다. 대부분 비어 있었다.
"사람이 별로 안 사는 것 같아."
"성 안이라 개발이 제한되나 봐."
골목을 걸으며 한 표지판을 발견했다.
"해미순교성지?"
화살표를 따라가니 작은 성당이 나왔다.


"해미순교성지 성당."
현대식 건물이었지만, 엄숙한 분위기였다.
"들어가볼까?"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했다. 몇몇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었다.


제대 뒤편에 큰 그림이 있었다. 순교자들이 고문당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다.
"저게 병인박해 때..."
그림은 처참했다. 신자들이 매를 맞고, 칼에 찔리고, 목이 잘리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준우가 그림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무서워."
"역사는 때로 잔인해."
성당 옆에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해미순교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병인박해의 역사가 자세히 전시되어 있었다.


"1866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으로 8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가 순교했습니다. 그중 1천여 명이 해미읍성에서 순교했습니다."
전시실에는 당시 사용되던 고문 도구들이 복원되어 있었다.


"주리 틀기, 곤장, 칼..."
"신앙 때문에 이런 고통을 당했다니."
한 코너에는 순교자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김대건 신부님도 여기 계시네."
"한국 최초의 신부님."
서연이는 순교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었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20대, 30대.
"이 나이에..."
박물관을 나오며 모두 말이 없었다. 무거운 역사의 무게가 느껴졌다.
"점심 먹으러 가자."
성 밖으로 나와 근처 식당을 찾았다.


"해미식당."
들어가니 소박한 시골 식당이었다.
"뭐 드릴까요?"
"된장찌개 네 개요."
식사를 하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여기서 오래 하셨어요?"
"30년 됐어요. 해미읍성 근처에서."
"해미읍성에 관광객 많이 와요?"
"요즘은 좀 와요. 순교성지라서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오시고."
"할머니는 천주교 신자세요?"




"아니에요. 근데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알아요.

순교 이야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다.
"슬픈 역사죠.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까. 근데 그래도 기억해야죠. 잊으면 안 되니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갔다.


"회화나무 보러 가자."
"회화나무?"
"해미읍성에서 제일 유명한 나무래. 순교자들을 매달았던 나무."
객사 옆에 거대한 회화나무가 있었다. 수령 500년이 넘는 고목이었다.



안내판을 읽었다.
"병인박해 당시 이 나무에 천주교 신자들을 거꾸로 매달아 고문했습니다."
나무는 오래되어 굵었고,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이 나무가 증인이네."
"500년 동안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봤겠지."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한참을 말없이 나무를 올려다봤다.
"무거운 곳이야, 해미읍성."
"응. 아름답지만 슬픈 곳."


기억을 걷는 골목
오후가 되어 성 안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이번에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를 보기 위해.
좁은 골목 사이로 오래된 집들이 이어졌다. 대부분 비어 있었지만, 몇몇 집은 아직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한 집 대문 앞에서 할아버지가 마당을 쓸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오, 어서 와."
"여기서 오래 사셨어요?"
"태어나서 쭉. 80년."
"와, 그럼 여기가 고향이시네요."
"그렇지. 우리 집안이 대대로 여기 살았어."



"성 안에서 사는 게 어때요?"
할아버지는 성벽을 올려다보며 말씀하셨다.
"좋지. 조용하고, 역사도 있고. 근데 불편하기도 해. 개발을 못 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떠났어요?"
"많이 떠났지. 젊은 사람들은 다 나가고,

노인들만 남았어."


"외롭지 않으세요?"
"외롭지. 근데 이게 내 삶이야.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죽을 거야."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다시 골목을 걸었다.
한 골목 모퉁이에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여기 카페네."
'성벽다방'이라는 간판이었다.
들어가니 한옥을 개조한 카페였다.
"아메리카노 네 잔이요."
젊은 여자가 커피를 내려주었다.



"여기 언제 오픈하셨어요?"
"1년 됐어요."
"왜 해미읍성에?"
"조용해서요.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여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역사도 있고, 평화롭고."
"장사 돼요?"
"주말에는 좀 되는데, 평일은 한산해요. 근데 괜찮아요. 여유롭게 살고 싶어서 온 거니까."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봤다. 성벽이 보였다.


"여기서 성벽 보면서 커피 마시는 거 좋다."
"응. 500년 전 성벽이랑 현대 커피의 조합."
카페를 나와 마지막으로 성벽을 한 번 더 걸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석양이 성벽을 물들였다.



"예쁘다."
"사진 찍자."
석양을 배경으로 성벽 위에서 가족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 마음에 든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성을 나왔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민수가 말했다.
"해미읍성 어땠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거웠어."
서연이가 먼저 대답했다.


"순교 이야기 때문에?"
"응. 그리고 그 무게를 지금도 지고 있는 이 마을 때문에."
"무슨 뜻이야?"
"역사의 무게를 간직하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할아버지처럼."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역사는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이기도 하지."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서연이는 노트를 펼쳤다.
"이번엔 내가 글 써도 돼?"
"그래. 네 관점으로."
서연이는 차 안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서산 해미읍성, 순교자의 발자취'.
"해미읍성은 두 개의 시간을 품고 있다. 1491년 축조된 성벽의 시간과, 1866년 순교의 시간."
"성벽은 웅장하다. 500년이 넘었지만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그 위를 걸으며 조선시대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성은 단순히 아름다운 유적이 아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1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좁은 옥사에 갇혀, 회화나무에 매달려, 칼에 맞아 죽었다."


"그 무게가 지금도 이 성에 남아 있다. 성 안 마을의 80세 할아버지는 말했다.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죽을 거야.' 그의 삶이 곧 이 성의 역사다."
"우리는 관광객으로 왔다. 성벽을 걷고, 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아름다운 성벽 안에 슬픈 역사가 있다는 것을."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해미읍성을 방문하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글을 다 쓰고 부모님께 보여줬다.


"어때?"
민수는 글을 읽고 딸을 안아줬다.
"잘 썼어. 네 시각이 확실히 있어."
"고마워, 아빠."
집에 도착해서 서연이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해미읍성의 무게를 잘 표현하셨네요."
"저도 다음 주에 가보겠습니다.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젊은 세대가 이런 역사를 기억해주니 고맙습니다."
한 달 후, 서산시 문화관광과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해미읍성 가이드북 집필에 참여하실 수 있나요? 젊은 세대 관점이 필요해서요."
서연이는 흔쾌히 수락했다.


"네, 하겠습니다."
그렇게 서연이는 해미읍성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순교 역사를 젊은 세대에게 알리는 가이드북을 만드는 일이었다.


6개월 동안 해미읍성을 여러 번 방문했다.

순교성지 신부님, 마을 주민들, 역사학자들을 인터뷰했다.
가이드북은 단순한 관광 안내가 아니었다. 순교의 역사와 그것을 기억하는 현대인들의 이야기였다.
출판 기념회가 해미읍성 안에서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 천주교 신자들, 마을 주민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
80세 할아버지도 오셨다.


"네가 쓴 책이구나."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야기도 들어갔어요."
"고마워. 우리 이야기를 젊은이들이 기억해줘서."
행사가 끝나고 서연이는 혼자 성벽을 걸었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500년 전에도, 150년 전에도, 그리고 오늘도 같은 석양이 이 성벽을 비췄을 것이다.


"기억하겠습니다."
서연이는 조용히 다짐했다.
"순교자들을. 그리고 그 기억을 지키는 사람들을."
해미읍성은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 500년의 시간과 순교의 역사를 품고.
그리고 한 젊은 아카이버가 그 역사를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고 있다.


성벽처럼 굳건하게, 회화나무처럼 깊이 뿌리내려.
기억은 이어진다. 세대를 넘어, 시간을 넘어.
해미읍성처럼,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