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만든 골목
대학가의 새로운 바람
"엄마, 나 천안 간다."
10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서연이가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대학 2학년이 된 그녀는 이제 혼자서도 자유롭게 아카이빙을 다녔다.
"천안? 또 혼자?"
"아니, 동아리 애들이랑. 이번엔 성정동 카페거리 조사하러 가."
"성정동?"
"응. 천안역 근처에 있는 대학가 카페 거리.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핫하대."
민수가 거실에서 관심을 보였다.
"대학가? 우리도 갈까?"
"아빠는 왜?"
"궁금하잖아. 젊은 세대가 만드는 골목이 어떤지."
서연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따로 와. 우리는 우리 조사하고,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 관점으로 봐."
"좋은 생각이다. 세대별 시각 차이를 비교하는 거네."
"응. 그럼 내일 점심때 만나자. '블루밍 카페'에서."
다음 날, 민수와 지혜는 차를 타고 천안으로 향했다. 준우는 학교 축제 준비로 집에 남았다.
"둘이 나가는 거 오랜만이다."
"그러게. 포천 이동갈비 이후?"
"맞아. 그것도 1년 전이네."
천안역에 도착해 성정동으로 걸었다. 역에서 10분 거리였다.
"여기부터가 성정동이래."
주택가였다. 2~3층 빌라들과 단독주택들이 섞여 있었다.
"평범한 주택가인데?"
하지만 골목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골목마다 피어난 감성
첫 번째 골목에서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저기 '마당 있는 집'."
2층 주택을 개조한 카페였다. 1층은 카페, 2층은 작업실인 듯했다.
"들어가보자."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공간이었다. 테이블이 다섯 개 정도. 손님은 대부분 20대였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주문을 하고 마당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작은 마당에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분위기 좋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네."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관찰했다. 옆 테이블 학생들은 노트북을 펴놓고 과제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공부하는구나."
"대학가니까."
카페 주인이 커피를 가져오며 말을 걸었다.
"처음 오셨어요?"
"네. 성정동 처음이에요."
"구경 오셨어요?"
"그런 셈이죠. 여기 언제 오픈하셨어요?"
"2년 전이요. 원래 이 집에서 살던 분이 이사 가시고, 빈 집을 카페로 만들었어요."
"주인분이 직접 인테리어 하신 거예요?"
"네. 친구들이랑 같이. DIY로 다 했어요."
"대단하시네요."
"고마워요. 처음엔 힘들었는데, 지금은 단골도 생기고 좋아요."
카페를 나와 골목을 더 걸었다. 몇 걸음마다 카페가 있었다.
"진짜 많다."
"골목마다 카페네."
두 번째로 들어간 곳은 '책방 카페'였다. 한쪽은 책장, 한쪽은 카페였다.
"독립 서점이네."
책장을 둘러봤다. 젊은 작가들의 에세이, 시집, 독립출판물들이 많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읽는 책들이구나."
한 권을 집어 들었다. 『20대의 방』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다.
"서연이도 이런 거 읽을까?"
"아마?"
책을 사고 카페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내용이 솔직하네."
"요즘 젊은이들의 고민이 담겨 있어."
세 번째로 들어간 곳은 소품샵이었다.
"이건 카페가 아니네."
'작은 것들의 가게'라는 이름의 소품샵이었다. 핸드메이드 악세서리, 엽서, 작은 그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다 손으로 만든 거래."
가격표를 보니 저렴했다.
"학생들이 살 수 있는 가격이네."
작은 도자기 그릇을 샀다. 서연이 선물용으로.
"딸이 좋아하겠다."
세대가 만나는 카페
점심때가 되어 서연이가 말한 '블루밍 카페'를 찾아갔다.
"여기 있다."
큰 카페였다. 3층 건물 전체가 카페였다.
1층으로 들어가니 서연이와 동아리 친구들이 이미 와 있었다.
"엄마, 아빠!"
"왔어? 조사는 잘했어?"
"응. 카페 열 곳 돌아봤어. 진짜 많더라."
"우리는 세 곳."
"속도 차이."
모두 웃었다.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카페에서 파는 브런치를 주문했다.
"에그베네딕트, 아보카도 토스트, 팬케이크..."
"요즘 카페는 밥도 파네."
"대학가니까. 학생들 한 끼 해결하는 곳이기도 해."
식사를 하며 서연이 팀의 조사 내용을 들었다.
"성정동에 카페가 몇 개나 돼?"
"정확히 센 건 아닌데, 대충 50개는 넘는 것 같아."
"50개?"
"응. 이 작은 동네에."
"다 최근에 생긴 거야?"
"대부분 3~4년 사이에. 코로나 이후에 폭발적으로 늘었대."
민지가 태블릿을 꺼내 자료를 보여줬다.
"2018년엔 카페가 10개 정도였는데, 2023년엔 50개가 넘었어요."
"왜 갑자기 늘어난 거야?"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싸요. 서울보다 훨씬 싸고."
"둘째?"
"천안이 교통 요지예요. KTX 타면 서울까지 30분. 서울 사람들도 와요."
"셋째는?"
"대학가 분위기. 단국대, 상명대, 백석대 학생들이 많아요. 젊은 손님층이 탄탄해요."
서연이가 이어서 설명했다.
"그리고 대부분 젊은 창업자들이에요. 20대 후반, 30대 초반. 대기업 다니다가 나와서 자기 카페 차린 사람들."
"청년 창업이네."
"응. 그리고 서로 연대해요. 경쟁이 아니라 협력."
"무슨 뜻이야?"
"예를 들면, A 카페에 손님이 많으면 B 카페를 추천해줘요. 그리고 함께 플리마켓도 하고, 축제도 만들고."
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동체를 만드는 거네."
"맞아요. 그래서 성정동 카페 거리가 지속 가능한 것 같아요."
식사를 마치고 서연이 팀은 다시 조사를 하러 갔다.
"우리는 우리끼리 더 둘러보자."
"그래."
민수와 지혜는 서연이 팀과 헤어져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아까는 빨리 걸었는데, 이번엔 천천히."
"응. 우리 속도로."
한 골목 모퉁이에 특이한 카페를 발견했다.
"저기 '시간 여행 다방'."
레트로 감성의 카페였다. 1980년대 다방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다.
"우리 세대 감성이네."
들어가니 정말 옛날 다방 같았다. 빨간 벨벳 소파, 나무 테이블, 턴테이블에서 LP가 돌아가고 있었다.
"와, 정말 추억이다."
주인은 50대 아저씨였다.
"어서 오세요. 자리 앉으세요."
"여기 분위기 독특하네요."
"고마워요. 제가 젊었을 때 다니던 다방을 재현한 거예요."
"원래 천안 사세요?"
"아니요. 서울에서 회사 다니다가 은퇴하고 내려왔어요."
"왜 천안으로?"
"서울은 너무 빨랐어요. 여기는 좀 느리죠.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활기차고."
"젊은 사람들이 이런 레트로 카페 좋아해요?"
"의외로 좋아해요. 자기들이 태어나기 전 시대가 신기한가 봐요."
커피를 마시며 LP 음악을 들었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 우리 결혼식 때 나왔던 거 아니야?"
"맞아. 기억나네."
잠시 추억에 잠겼다.
"우리도 젊었지."
"지금도 젊어."
"그래, 마음은."
세대를 잇는 골목
오후가 되어 성정동을 벗어나 성환읍으로 향했다.
"성환읍에도 카페가 있다며?"
"응. 봉서산 자락에."
차를 타고 15분쯤 가니 조용한 주택가가 나왔다.
"여기는 완전 시골 같은데."
하지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숨은 카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산 아래 카페'."
단독주택을 개조한 카페였다. 마당이 넓고, 나무가 많았다.
"분위기 완전 다르다."
"성정동이 도시적이었다면, 여기는 전원적이야."
카페에 들어가니 손님이 별로 없었다.
조용했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마당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봉서산이 보였다.
"여기 정말 좋다."
주인이 커피를 가져오며 말했다.
"조용해서 좋으시죠?"
"네. 성정동이랑 완전 다르네요."
"거기는 북적이죠. 여기는 조용해요. 그래서 좋아요."
"손님 잘 와요?"
"주말엔 좀 와요. 성정동 카페 손님들이 여기까지 오세요. 조용한 카페 찾아서."
"성정동이랑 연결되어 있네요."
"그렇죠. 성정동이 메인이고, 여기는 숨은 공간 같은 거."
커피를 마시며 산을 봤다. 가을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여유롭다."
"응. 시간이 천천히 가는 것 같아."
한 시간쯤 쉬고 나와 다시 성정동으로 돌아왔다.
서연이와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다.
"엄마, 아빠 어디 갔다 와?"
"성환읍. 거기도 카페 있더라."
"아, 거기도 갔구나. 우리는 못 갔는데."
"어땠어? 조사."
"좋았어. 카페 주인들 인터뷰도 많이 했고."
"우리도 몇 명 만났어."
서연이가 노트를 펼쳤다.
"이번에 흥미로웠던 건, 세대가 섞여 있다는 거야."
"무슨 뜻이야?"
"카페 손님은 대부분 20대지만, 카페 주인은 다양해. 20대도 있고, 30대도 있고, 50대도 있어."
"우리가 간 레트로 카페처럼?"
"맞아. 그리고 서로 존중해. 젊은 카페도 존중하고, 나이 든 카페도 존중하고."
"그게 성정동의 특징이네."
"응. 세대 간 공존."
저녁을 먹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민수와 지혜는 이야기를 나눴다.
"성정동은 특별했어."
"뭐가?"
"젊은 에너지. 그리고 그 에너지를 존중하는 분위기."
"나도 느꼈어. 경쟁이 아니라 협력하는 문화."
"우리 세대가 배워야 할 게 많은 것 같아."
집에 도착해서 민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천안 성정동, 청춘이 만든 골목'.
"성정동은 젊다. 50개가 넘는 카페가 작은 주택가를 가득 채웠다.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 만든 카페들이다."
"이들은 왜 성정동을 택했을까? 첫째, 저렴한 임대료. 서울에서는 불가능한 창업이 여기서는 가능하다. 둘째, 편리한 교통. KTX로 30분이면 서울이다. 셋째, 젊은 손님층. 대학가라서 20대 손님이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동체'다. 성정동 카페들은 경쟁하지 않는다. 협력한다. 손님이 많으면 다른 카페를 추천해준다. 함께 플리마켓을 연다. 함께 축제를 만든다."
"그리고 세대가 공존한다. 20대 카페 옆에 50대 레트로 다방이 있다. 젊은이들은 레트로 다방을 신기해하고, 나이 든 주인은 젊은이들을 환영한다."
"성정동은 희망이다. 청년 창업의 희망, 세대 공존의 희망, 지방 도시 활성화의 희망."
글을 다 쓰고 서연이에게 보냈다.
"어때?"
서연이가 답장을 보냈다.
"좋아. 근데 나도 쓸 거야. 내 관점으로."
"그래. 같이 올리자. 세대별 시각."
서연이도 글을 썼다.
제목은 같았다. '천안 성정동, 청춘이 만든 골목'.
하지만 내용은 달랐다.
"성정동은 우리 세대의 공간이다. 서울에서 밀려난 청년들이 만든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
"서울은 너무 비싸다. 월세 100만 원으로는 방 하나 구하기 힘들다. 카페를 창업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천안으로 왔다. 여기는 가능하다. 보증금 1천만 원, 월세 50만 원이면 작은 카페를 시작할 수 있다."
"성정동은 실험이다. 청년들이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에서 꿈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
"아직 완벽하지 않다. 수익이 많지 않다.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 버틴다."
"이것이 성정동의 힘이다. 개인의 힘이 아니라 공동체의 힘."
두 글을 나란히 블로그에 올렸다.
제목은 '세대별 시각: 천안 성정동'.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딸의 다른 시각이 흥미롭네요."
"저도 20대인데 서연씨 글에 공감해요."
"50대인데 민수씨 글도 좋고 서연씨 글도 좋네요. 둘 다 맞는 말 같아요."
한 달 후, 성정동 카페 연합회에서 연락이 왔다.
"저희가 '성정동 카페 축제'를 기획 중입니다. 혹시 두 분이 토크쇼에 참여해주실 수 있나요? 세대 간 대화라는 주제로."
민수와 서연이는 함께 축제에 참석했다.
"성정동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회자가 물었다.
민수가 먼저 대답했다.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
서연이가 이었다.
"그리고 가능성이요. 우리 세대가 새로운 방식으로 살 수 있다는 가능성."
"세대 차이는 없나요?"
민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있죠. 저는 안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딸은 도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서연이도 웃었다.
"근데 배워요. 아빠한테서는 인내를, 저는 아빠한테 용기를."
"그게 세대 공존이네요."
"맞아요."
토크쇼가 끝나고 민수와 서연이는 성정동 골목을 걸었다.
"아빠."
"응?"
"고마워."
"왜?"
"같이 아카이빙 해줘서. 그리고 내 시각을 존중해줘서."
민수가 딸의 어깨를 안았다.
"나도 고마워. 네가 새로운 시각을 가르쳐줘서."
두 사람은 카페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아버지와 딸, 50대와 20대, 두 세대가 함께.
성정동은 오늘도 젊은 에너지로 가득하다. 50개가 넘는 카페에서 꿈을 꾸는 청년들.
그리고 그 꿈을 기록하는 두 세대의 아카이버들.
성정동처럼, 함께 만들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