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온양온천

뜨거운 물의 기억

by seungbum lee

600년 된 온천의 흔적을 찾아서.


"온천 좋아해?"
11월의 어느 주말, 민수가 지혜에게 물었다. 날씨가 추워지며 따뜻한 곳이 그리웠다.
"좋아하지. 왜?"
"아산 온양온천 가보자. 600년 역사래."
"600년?"
"응. 조선시대부터 유명했던 온천이야."
서연이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온천? 나도 갈래!"
"근데 그냥 온천만 가는 게 아니야. 구도심 골목도 있대. 1970-80년대 온천 전성기 시절 모습이 남아있는."
"레트로 감성?"
"응. 그리고 현충사도 가까워. 이순신 장군 유적."
준우도 귀가 솔깃했다.


"온천 하고 역사 공부도 하는 거야?"
"그렇지."
"좋아!"
다음 주 토요일, 네 식구는 차를 타고 아산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거리였다.


"아산은 처음이야."
"나도. 충남 지역은 공주, 서산 다음이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온양 시내로 들어갔다. 조용한 지방 도시였다.
"온양온천역 근처가 구도심이래."
"거기로 가자."
온양온천역을 지나 구도심으로 들어갔다.


풍경이 확 달라졌다.
"여기 진짜 옛날 동네다."
낡은 건물들이 빼곡했다. 대부분 3~4층 건물들이었는데, 1970-80년대 스타일이었다.
"저기 여관 간판 보여."
"'삼성여관', '대왕여관', '온천장여관'..."
여관 간판들이 곳곳에 보였다. 대부분 낡고 오래되어 보였다.
주차를 하고 걸어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온천 골목의 시간들
첫 번째 골목은 '온천탕 골목'이었다. 양쪽으로 목욕탕들이 이어졌다.


"진짜 목욕탕 많다."
"다 온천탕이야."
'온양온천탕', '신온천', '황실온천' 등 간판들이 보였다.


"저기 들어가보자."
'온양온천탕'은 가장 오래되어 보이는 곳이었다. 외관이 1970년대 스타일이었다.


"여기요, 네 명이요."
"어른 8천 원, 어린이 5천 원입니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탈의실부터 옛날 분위기였다. 낡은 나무 사물함, 오래된 의자, 벽에 붙은 목욕 에티켓 안내문까지.
"타임머신 탄 것 같아."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온천탕이 있었다. 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진짜 온천수네."
물에 손을 담갔다. 뜨거웠다.
"온도가 몇 도야?"
"42도 정도?"
물에 들어가자 온몸이 따뜻해졌다.


"기분 좋다."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아."
탕 안에는 할머니 몇 분이 계셨다.
"어디서 오셨어요?"
한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서울이요. 온양온천 보러 왔어요."
"고마워라.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안 오는데."
"여기 오래 오셨어요?"
"50년 왔지. 집이 근처거든."
"온천이 좋으세요?"
"좋지. 관절에 좋아. 나이 들면 이런 데 와야 해."
한 시간쯤 온천을 즐기고 나왔다.


"몸이 개운하다."
"그러게. 역시 온천은 좋아."
온천탕을 나와 골목을 더 걸었다. 여관들이 늘어선 골목이 나왔다.


"여관 골목이네."
대부분 3~4층 건물이었는데, 간판이 화려했다. 형광색, 네온사인.
"1980년대 스타일이다."
하지만 대부분 문을 닫은 것 같았다.


"영업하는 곳이 별로 없네."
한 여관 앞에서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안녕하세요."
"오, 어디서 왔어?"
"서울이요. 구경하러 왔어요."
"구경? 여기 구경할 게 뭐 있어."
"옛날 온천 여관들 보러 왔어요."
할아버지는 여관들을 둘러보며 말씀하셨다.



"옛날엔 사람이 넘쳤어. 주말이면 방 구하기 힘들 정도였지. 전국에서 온천 하러 왔거든."
"언제가 전성기였어요?"
"1970년대, 80년대. 그때가 최고였어. 이 골목에 여관이 30개는 넘었어."
"지금은요?"
"지금? 반도 안 남았지. 다들 문 닫았어."
"왜요?"
"시대가 변했으니까. 요즘은 다들 호텔 가지, 여관 안 와. 그리고 온천도 다른 데 많아졌고."
할아버지는 쓸쓸한 표정이었다.


"우리 여관도 3년 전에 문 닫았어. 손님이 없어서."
"할아버지도 여관 하셨어요?"
"30년 했지. 근데 이제 끝이야."
여관 골목을 지나 옛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시장이었나 봐."
지금은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몇몇 가게는 아직 영업 중이었다.


"저기 이발소 있다."
'미남이발관'이라는 오래된 간판이 붙어 있었다.
"들어가볼까?"
"머리 자를 거야?"
"아니, 그냥 구경."
안으로 들어가니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어서 오세요."
"머리는 안 자르고요, 구경해도 돼요?"
"그래요? 좋아요."
이발소 안은 정말 1970년대 그대로였다.


오래된 이발 의자, 큰 거울, 벽에 붙은 머리 스타일 사진들.
"여기 언제부터 하셨어요?"
"1975년부터. 거의 50년 됐네."
"와... 온천 전성기 때부터."
"그렇지. 그때는 정말 바쁘었어. 온천 온 손님들이 머리도 하러 오고."
"지금은요?"
"지금은 동네 노인들만 와. 젊은 사람들은 안 와."
"그래도 계속 하시네요."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그리고 단골들이 있으니까."


역사의 무게, 온천의 온기
이발소를 나와 온양민속박물관으로 향했다.
"온천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래."
박물관은 작았지만 알차게 꾸며져 있었다.
"온양온천의 역사."
전시실에 들어가니 연대기가 적혀 있었다.


"신라시대부터 온천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이곳에서 온천 요양을 하셨고,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는 온천장이 개발되었습니다. 1970-80년대에는 전국 최고의 온천 관광지로 번영했습니다."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970년대 온양온천의 모습. 사람들로 북적이는 온천탕, 여관들, 시장.


"정말 붐볐네."
"지금이랑 완전 다르다."
한 코너에는 온천의 효능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온양온천은 라돈 성분이 풍부한 알칼리성 온천으로, 신경통, 관절염, 피부병에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많이 왔구나."
"치료하러 온 거지."
박물관을 나와 현충사로 향했다.


"현충사가 여기서 가깝대."
차로 10분 거리였다.
현충사에 도착하니 웅장한 사당이 나타났다.
"이순신 장군 사당이구나."
경내로 들어가니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이 아산이래."
"그래서 여기 사당이 있는 거야."
본전으로 들어가 참배했다.


"이순신 장군님, 잘 다녀갑니다."
경내를 돌아보며 유물관에도 들렀다.
"난중일기 원본도 있네."
"대단하다. 진짜 유물이야."
현충사를 나오며 준우가 말했다.


"아산이 이순신 장군 도시구나."
"맞아. 온천도 유명하지만, 이순신 장군으로도 유명해."
다시 온양 구도심으로 돌아왔다.


"온천 한 번 더 할까?"
"좋아!"
이번에는 다른 온천탕에 갔다. '신온천'이라는 곳이었다.
여기는 좀 더 현대적으로 리모델링되어 있었다.


"아까 그 온천보다 깔끔하네."
하지만 물은 똑같이 뜨거웠다.
"역시 온천은 좋아."
온천을 마치고 나오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저녁 먹으러 가자."
온천 근처 식당에서 순대국을 먹었다.
"아산 순대국 유명하대."
"맛있다!"
식사를 하며 주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 오래 하셨어요?"
"20년 됐어요."
"온천 손님들 많이 와요?"
"예전보단 줄었죠. 근데 아직 오세요. 특히 겨울엔."
"구도심이 많이 쇠퇴한 것 같던데."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많이 변했어요. 여관들도 다 문 닫고, 가게들도 줄어들고."
"아쉽지 않으세요?"
"아쉽죠. 근데 어쩌겠어요. 시대가 변하는 걸."
"그래도 온천은 남아있잖아요."
"그렇죠. 온천은 600년 동안 여기 있었으니까. 앞으로도 있을 거예요."



온기는 계속된다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구도심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저녁이 되니 네온사인이 켜지기 시작했다. 여관 간판들, 온천탕 간판들.


"밤에 보니까 또 다르네."
"레트로 감성 제대로다."
한 골목 모퉁이에서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여기 카페네. '온천 다방'."
들어가니 레트로 인테리어로 꾸며진 카페였다.


"아메리카노 네 잔이요."
주인은 30대 젊은 여자였다.
"여기 언제 오픈하셨어요?"
"1년 전이요."
"왜 온양에?"
"저희 할머니가 여기 사셨어요. 어렸을 때 자주 왔었는데, 추억이 있어서."
"장사 돼요?"


"아직은 힘들어요. 손님이 많지 않아서. 근데 천천히 알려지고 있어요."
"여기 분위기 좋은데요."
"고마워요. 구도심이 쇠퇴하고 있지만, 그래도 매력이 있잖아요. 그 매력을 보여주고 싶어요."
카페를 나와 차로 돌아가는 길, 민수가 말했다.


"온양은 복잡한 곳이네."
"어떻게?"
"전성기의 영광과 현재의 쇠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곳."
"그래도 온천은 여전하잖아."
"그게 희망인 것 같아."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모두 피곤해서 조용했다.
"온천 효과인가, 몸이 나른해."
"나도. 졸려."
집에 도착해서 민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아산 온양온천, 뜨거운 물의 기억'.
"온양온천은 600년을 흘렀다. 신라시대부터 기록에 남아있고, 세종대왕이 요양했고, 1970년대에는 전국 최고의 온천 관광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쇠퇴하고 있다. 30개가 넘던 여관은 반도 안 남았다. 북적이던 시장은 텅 비었다. 50년 된 이발소에는 노인들만 온다."
"그러나 온천은 여전히 뜨겁다. 42도의 물은 600년 전처럼 지금도 솟아난다. 할머니들은 관절 치료하러 오고, 서울 사람들은 피로를 풀러 온다."


"온양온천의 미래는 어떨까? 화려한 재생일까, 조용한 쇠퇴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온천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600년 동안 그랬듯이."


"그리고 그 온천 골목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산다. 30년 여관을 운영했던 할아버지, 50년 이발소를 지키는 할아버지, 1년 전 카페를 연 젊은 여자."
"온기는 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에도 있다."
글을 다 쓰고 블로그에 올렸다.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온양온천 추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어렸을 때 부모님 손 잡고 갔었는데..."
"쇠퇴하고 있다니 안타깝네요. 그래도 온천은 영원할 것 같아요."
한 달 후, 아산시 문화관광과에서 연락이 왔다.


"온양온천 구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기획 중입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감명받았습니다. 자문에 참여해주실 수 있나요?"
민수는 수락했다.
6개월 동안 아산을 여러 번 방문했다. 온천 관계자들, 구도심 상인들, 역사학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온양온천 구도심 재생 마스터플랜'이 나왔다.


핵심은 '온천의 본질 회복'이었다.
화려한 개발이 아니라, 온천의 치유 기능을 강화하는 것. 여관들을 헬스케어 숙소로 전환하고, 온천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고, 온천 역사 투어를 개발하는 것.
1년 후, 계획이 실행되기 시작했다.


몇몇 여관이 '온천 치유 숙소'로 리모델링되었다. 낡았지만 깨끗하게, 레트로하지만 편안하게.
50년 된 이발소는 '추억의 이발소 체험관'으로 지정되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이발을 하시지만, 이제는 관광 명소이기도 했다.


'온천 다방'은 방문객 정보 센터 역할도 하게 되었다.
민수는 가끔 온양을 방문했다.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
"조금씩 살아나고 있어."
여관 골목에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치유를 원하는 사람들, 레트로를 즐기려는 젊은이들, 추억을 찾아온 노인들.


어느 날, 30년 여관을 했던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할아버지, 기억하세요?"
"오, 서울서 온 그 사람. 기억하지."
"요즘 어떠세요?"
할아버지는 변화하는 골목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좀 나아진 것 같아. 사람들이 다시 오고 있어."
"기분 좋으시겠어요."
"좋지. 내가 살던 이 골목이 완전히 죽는 건 보기 싫었거든."
"앞으로 더 좋아질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어. 온천은 600년 동안 여기 있었으니까, 앞으로도 있어야지."
온양온천은 변하고 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600년의 역사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며.
그리고 한 아카이버가 그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온천물처럼 끊임없이, 사람들의 온기처럼 따뜻하게.
온양온천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뜨거운 물과 함께,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