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사찰로 가는 길
잊혀진 절터를 찾아서
"보령 가본 적 있어?"
6월의 어느 주말, 지혜가 물었다. 초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이었다.
"보령? 머드축제?"
준우가 먼저 대답했다.
"그것만 있는 게 아니야. 성주사지라고, 통일신라 때 절터가 있대."
"절터?"
"응. 지금은 절은 없고 터만 남았는데, 가는 길이 아름답대."
민수가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성주사지.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 터. 현재 석불좌상과 석등, 당간지주 등이 남아있음."
"1,200년 됐네."
"그리고 가는 길이 농촌 마을 사이로 나 있어서 시골 풍경이 예쁘대."
서연이가 관심을 보였다.
"시골길 좋아. 요즘 도시만 다녔잖아."
"그래. 이번엔 시골로 가자."
다음 주 토요일, 네 식구는 차를 타고 보령으로 향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다.
"보령은 서해안이지?"
"응. 바다도 가깝고, 산도 있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보령 시내를 지나 산쪽으로 들어갔다. 점점 시골 풍경으로 바뀌었다.
"완전 시골이다."
논밭이 펼쳐지고, 작은 마을들이 이어졌다.
"성주사지가 어디래?"
"성주면 성주리. 산 중턱."
좁은 시골길을 따라 올라갔다. 포장은 되어 있지만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길이 좁네."
"옛길이니까."
마을 사이로 이어진 옛길
차를 세울 곳을 찾다가 작은 마을 입구 공터에 주차했다.
"여기서부터 걸어가자."
"얼마나 걸어야 해?"
"2킬로미터 정도래."
"괜찮아. 풍경 보면서 천천히."
마을로 들어서니 조용했다. 오래된 농가들과 텃밭들.
"사람이 별로 없네."
"다들 일하러 가셨나 봐."
한 집 마당에서 할머니가 고추를 말리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오, 어디서 왔어?"
"서울이요. 성주사지 가려고요."
"아, 절터? 저 위로 쭉 올라가면 돼."
"길 찾기 어렵지 않아요?"
"아니야. 길 하나밖에 없어. 그냥 따라가면 나와."
"감사합니다."
마을을 지나 오솔길이 시작됐다.
양쪽으로 논밭이 이어졌다.
"벼가 자라고 있네."
초록색 벼가 바람에 일렁였다.
"6월이니까 모내기 한 지 한 달쯤 됐을까?"
"벼 보니까 시골 온 게 실감 나."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공기가 좋다."
"맑아. 서울이랑 완전 다르지?"
길 옆으로 작은 개울이 흘렀다. 맑은 물이 졸졸 흘렀다.
"물고기 있을까?"
준우가 개울을 들여다봤다.
"있다! 피라미!"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신기해. 서울에선 못 보는 거."
개울을 따라 계속 걸으니 또 다른 마을이 나왔다.
"마을이 몇 개나 돼?"
"산 아래 마을들이 다 연결되어 있나 봐."
이 마을도 조용했다. 한 집 앞에서 할아버지가 평상에 앉아 계셨다.
"안녕하세요. 성주사지 가는 길 맞나요?"
"맞아. 저기 보이는 산으로 올라가면 돼."
"얼마나 더 가야 해요?"
"한 30분?"
"고맙습니다."
할아버지가 덧붙였다.
"천천히 가. 경치 보면서. 급할 거 없어."
"네, 그럴게요."
마을을 벗어나니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됐다.
"여기서부터 오르막이네."
경사가 완만했다.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는 정도였다.
길 양쪽으로 나무들이 우거졌다.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그늘이 있어서 시원하다."
"여름에 딱 좋은 길이네."
중간쯤 올라가니 정자가 하나 있었다.
"여기서 쉬자."
정자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봤다. 마을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바다가 희미하게 보였다.
"저기 바다다!"
"서해구나."
"여기서 바다까지 보이네."
잠시 쉬고 다시 올라갔다. 10분쯤 더 가니 성주사지 입구 표지판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
천년 전 절터의 고요
성주사지로 들어서니 넓은 터가 나타났다.
"여기가 절터구나."
평평한 대지였다. 한때 큰 절이 있었을 것 같았다.
"건물은 다 없어졌네."
하지만 석조물들이 남아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거대한 석불좌상이었다.
"우와, 크다!"
높이 6미터가 넘는 거대한 부처상이었다.
바위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1,200년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아."
부처는 온화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한 손은 무릎에, 한 손은 가슴에.
"저 표정 좀 봐. 평화로워."
석불 앞에 안내판이 있었다.
"보물 제47호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통일신라 시대 승려 낭혜화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비입니다."
"낭혜화상?"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승려래. 선종을 전파했대."
탑비는 높이 4미터가 넘었다. 거북 받침돌 위에 비석이 서 있었다.
"비문도 있네."
한문으로 빼곡하게 새겨진 글씨들.
"1,200년 전 글씨가 아직도 보이네."
석불과 탑비를 둘러보고 절터를 천천히 걸었다.
"여기가 금당 터, 여기가 강당 터..."
터만 남았지만, 주춧돌들이 배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엄청 큰 절이었구나."
"통일신라 시대 주요 사찰이었을 거야."
절터 한쪽에 벤치가 있었다. 앉아서 쉬었다.
"조용하다."
바람 소리, 새소리만 들렸다.
"1,200년 전 스님들도 여기 있었겠지."
"경을 읽고, 수행하고."
"지금은 다 사라지고 돌만 남았네."
서연이가 조용히 말했다.
"무상하다."
"뭐가?"
"모든 게. 절도 사라지고, 스님들도 사라지고. 돌만 남았잖아."
민수가 딸을 보며 말했다.
"그게 불교의 핵심이야. 무상. 모든 것은 변한다."
한참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평화로워."
"응. 슬프지 않아. 그냥... 고요해."
준우가 석불 앞으로 다시 갔다.
"부처님 표정이 평화로워서 그런 것 같아."
"맞아. 저 표정 보면 마음이 편해져."
절터를 한 바퀴 더 돌고 내려오기로 했다.
"올라올 때랑 다른 길로 내려가볼까?"
"좋아."
돌아오는 길의 깨달음
다른 길로 내려가니 더 좁은 오솔길이었다.
"이 길은 사람들이 잘 안 다니나 봐."
풀이 무성했다.
"옛날 스님들이 다녔던 길일까?"
"그랬을 수도."
길을 따라 내려가니 대나무 숲이 나왔다.
"대나무 숲이다!"
쭉쭉 뻗은 대나무들이 터널을 만들었다.
"시원하다."
"바람 소리 들어봐."
대나무 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청아했다.
"사각사각."
대나무 숲을 지나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아까 그 할아버지 계시네."
"다녀오셨어요?"
"네. 잘 보고 왔어요."
"어때? 좋던?"
"정말 좋았어요.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할아버지가 웃으셨다.
"그래. 저 위는 그래. 1,200년 동안 저기 있었으니까. 평화로울 수밖에."
"할아버지도 자주 가세요?"
"가끔 가지. 마음이 복잡할 때. 거기 가면 평온해져."
"왜요?"
"부처님이 계시니까. 저 돌부처님이 1,200년 동안 저기 앉아서 우리를 지켜보셨어. 그 생각하면 내 고민이 작아 보여."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차로 돌아왔다.
"점심 먹고 가자."
마을 근처 작은 식당을 찾았다.
"성주식당."
들어가니 소박한 시골 식당이었다.
"뭐 드릴까요?"
"추천해주세요."
"된장찌개가 맛있어요. 직접 담근 된장으로."
"그럼 된장찌개 네 개요."
된장찌개가 나왔다. 구수한 냄새가 났다.
"맛있다!"
"진짜 시골 된장 맛이네."
식사를 하며 주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 사시는 분들은 성주사지 자주 가세요?"
"자주요. 우리한텐 산책로거든요. 저 위 올라갔다 내려오면 딱 좋아요."
"1,200년 된 절터가 산책로라니 부럽네요."
"그렇죠? 우리는 당연한 줄 알았는데, 도시 사람들한테는 특별한가 봐요."
"특별해요. 서울엔 이런 데 없어요."
"그럼 자주 오세요. 환영이에요."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모두 조용했다.
"피곤해?"
"아니. 그냥... 평화로워서."
"나도. 마음이 고요해."
집에 도착해서 민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보령 성주사지, 천년 사찰로 가는 길'.
"성주사지로 가는 길은 조용하다. 농촌 마을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2킬로미터. 논밭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고, 숲을 통과한다."
"급할 것이 없다. 천천히 걸으면 된다.
1,200년을 기다린 절터가 어디 도망가겠는가."
"성주사지에 도착하면 돌부처가 맞아준다. 높이 6미터, 1,200년을 한 자리에 앉아 계신 부처. 온화한 표정으로."
"절은 사라졌다. 건물도, 스님도, 경소리도. 하지만 돌은 남았다. 석불도, 탑비도, 주춧돌도."
"무상하다. 모든 것은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 평화가 있다. 석불의 표정처럼."
"마을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부처님이 1,200년 동안 우리를 지켜보셨어.' 그 말이 위로가 됐다."
"가끔은 이런 곳이 필요하다. 빠르지 않고, 시끄럽지 않고, 그저 천천히 걸으며 생각할 수 있는 곳."
"성주사지로 가는 길처럼."
글을 다 쓰고 블로그에 올렸다.
이번에는 사진을 적게 올렸다. 몇 장만. 석불, 오솔길, 대나무 숲.
댓글들이 달렸다.
"평화가 느껴지는 글이에요."
"저도 마음 정리하러 가고 싶어요."
"천천히 걸으며 생각한다... 좋은 말이네요."
일주일 후, 민수는 혼자 성주사지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새벽에 갔다. 아무도 없는 절터를 보고 싶었다.
새벽 5시, 마을을 지나 오솔길을 걸었다. 어둠 속에서.
절터에 도착했을 때 동이 트기 시작했다.
석불 앞에 앉았다. 혼자.
해가 떠올랐다. 석불의 얼굴을 비췄다.
"아름답다."
1,200년 동안 이 부처는 이 자리에서 해를 봤을 것이다. 매일 아침.
민수도 그냥 앉아서 해를 봤다. 부처처럼.
한 시간쯤 그렇게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존재했다.
"이게 명상이구나."
해가 완전히 떴을 때 일어났다.
"고맙습니다."
석불에게 인사하고 내려왔다.
마을로 내려오니 할아버지가 밭일을 하고 계셨다.
"또 오셨네?"
"네. 새벽에 혼자 가봤어요."
"어때? 새벽 부처님."
"평화로웠어요."
"그렇지. 새벽이 제일 좋아. 조용하고."
할아버지와 함께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언제 처음 성주사지 가보셨어요?"
"어렸을 때. 한 10살?"
"지금 몇 살이세요?"
"78."
"그럼 68년 동안 저 부처님 보신 거네요."
"그렇지. 내가 10살 때도, 20살 때도, 지금도. 부처님은 똑같아. 변하지 않아."
"위로가 되시겠어요."
"되지. 세상은 변해도 부처님은 안 변하니까."
서울로 돌아가는 길, 민수는 생각했다.
'변하지 않는 것의 위로.'
을지로는 변했다. 해방촌도 변했다. 성수동도, 온양도, 합덕도.
하지만 성주사지의 석불은 변하지 않았다.
1,200년 동안.
그것이 주는 위로가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해도, 어디선가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석불처럼. 1,200년을 한 자리에서.
민수 가족의 아카이빙은 계속된다. 변하는 것도 기록하고, 변하지 않는 것도 기록하며.
성주사지처럼.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천년의 돌처럼,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