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백마강

천년 전 나루의 기억

by seungbum lee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부여 가본 적 있어?"
5월의 어느 주말, 민수가 가족에게 물었다. 봄이 깊어가는 계절이었다.
"부여? 백제?"
서연이가 대답했다.


"응. 백제 마지막 수도였던 곳. 사비성."
"낙화암 있는 곳?"
"맞아. 삼천궁녀가 떨어졌다는."
준우가 역사책을 떠올렸다.


"660년에 망한 거 맞지?"
"그래. 나당연합군한테."
지혜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거기 골목도 있어?"


"응. 구드래 나루터 골목이랑 정림사지 주변 골목. 백제 역사가 살아있는 곳이래."
"좋아. 가자."
다음 주 토요일, 네 식구는 차를 타고 부여로 향했다. 서울에서 두 시간 반 거리였다.


"부여는 공주 옆이지?"
"응. 백제 수도가 공주(웅진)에서 부여(사비)로 옮겨간 거야."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부여 시내로 들어갔다. 조용한 지방 도시였다. 하지만 곳곳에 백제 유적들이 보였다.


"저기 정림사지 오층석탑!"
멀리서도 보이는 높은 석탑이었다.
"나중에 가보자. 먼저 백마강으로."
네비게이션을 따라 구드래 나루터로 향했다.


백마강을 따라 걷는 역사
구드래 나루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여기가 구드래구나."
백마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넓고 잔잔한 강이었다.


"백마강 예쁘다."
"색깔이 독특해. 갈색이면서 푸른색 같기도 하고."
나루터에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었다.
"유람선 타볼까?"
"좋아!"
유람선 표를 끊고 배에 올랐다.


"출발합니다!"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마강 위를 따라.
선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백마강은 금강의 부여 구간을 말합니다. 백제 시대에는 사비하라고 불렸으며, 왕궁과 외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수로였습니다."
강변을 따라 경치가 펼쳐졌다. 한쪽으로는 부소산성, 다른 쪽으로는 마을들.
"저기 낙화암이다!"
절벽이 보였다. 높고 가파른 바위였다.


"삼천궁녀가 떨어졌다는..."
방송이 계속됐다.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함락되자, 궁녀들이 이 낙화암에서 백마강으로 몸을 던졌다고 전해집니다. 역사적 사실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백제 멸망의 비극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모두 숙연한 표정으로 낙화암을 바라봤다.


"슬픈 역사다."
유람선은 낙화암 아래 고란사까지 갔다가 다시 구드래로 돌아왔다.
"30분 코스인데 의미 있었어."
배에서 내려 강변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구드래 나루터 골목은 어디야?"
"저쪽."
나루터 뒤편으로 오래된 마을이 보였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근대 가옥들이 나타났다.
"1920-30년대 건물들 같아."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2층 목조 건물들이 이어졌다.


"일본식 가옥이네."
"부여도 일제강점기를 겪었으니까."
한 집 앞에 안내판이 있었다.


"구드래 나루터 근대 가옥. 193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나루터 상인들이 거주했던 집입니다."
"나루터 상인?"
"백마강으로 물건이 오가니까 상인들이 살았겠지."
골목을 따라 걸으며 집들을 하나씩 봤다. 대부분 비어 있었지만, 몇몇은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저기 카페네."
한 근대 가옥을 개조한 카페였다. '강변다방'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들어가보자."


골목에 스며든 백제의 시간
카페는 1930년대 가옥을 살려서 만든 곳이었다. 나무 기둥, 다다미방, 일본식 창문.
"분위기 독특하다."
"아메리카노 네 잔이요."
주문을 하고 강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백마강이 보였다.
"여기 전망 좋다."
주인이 커피를 가져오며 말을 걸었다.
"처음 오셨어요?"
"네. 부여는 처음이에요."
"환영합니다. 여기 언제 오픈하셨어요?"
"3년 됐어요. 이 집이 제 할아버지 집이었거든요."
"할아버지 집이요?"
"네. 할아버지가 1950년대부터 여기 사셨어요.

나루터에서 장사하셨고요."
"어떤 장사요?"
"배 장사요. 사람들 강 건너주고, 짐 실어주고."
"그때는 나루터가 중요했겠네요."
"중요했죠. 다리가 없었으니까. 백마강 건너려면 배를 타야 했어요."
"지금은요?"
주인은 창밖을 가리켰다.


"저 다리 보이시죠? 백제대교. 저게 생기면서 나루터는 끝났어요."
"할아버지는요?"
"할아버지는 배 그만두시고 이 집에서 쉬셨어요. 작년에 돌아가셨고요."
"그래서 카페를 여기에?"
"네. 할아버지 집을 없애기 싫어서요. 그리고 이 골목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전하고 싶었어요."
커피를 마시며 백마강을 봤다. 1,400년 전에도 이 강물이 흘렀을 것이다. 백제 사람들도 이 강을 봤을 것이다.


"옛날에는 여기가 번화했을까?"
"백제 수도였으니까 당연히 번화했겠지."
카페를 나와 골목을 더 걸었다. 끝까지 가니 부소산성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왔다.
"부소산성 올라가볼까?"
"좋아."
산성 입구부터 가파른 계단이 시작됐다.


"숨차다."
중간쯤 올라가니 전망대가 있었다. 거기서 보는 부여 전경이 장관이었다.
"우와!"
백마강이 S자로 휘어지며 부여를 감싸고 있었다. 강 건너편으로 평야가 펼쳐졌다.


"백제 왕들도 여기서 이 풍경을 봤겠지."
"1,400년 전에."
잠시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왔다.
"이제 정림사지 가보자."
차를 타고 정림사지로 이동했다. 10분 거리였다.


정림사지에 도착하니 거대한 석탑이 서 있었다.
"국보 제9호 정림사지 오층석탑."
높이 8.3미터의 웅장한 석탑이었다.
"1,400년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아."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탑 주변을 천천히 돌며 감상했다. 각 층마다 섬세한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백제 예술의 정수네."
탑 옆 안내판을 읽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백제 무왕 때인 7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 석탑의 시원적 형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무왕... 서동요 그 왕?"
"맞아. 선화공주랑."
석탑을 뒤로하고 주변 골목으로 들어갔다.


정림사지 주변은 조용한 주택가였다. 한옥들이 이어졌다.
"여기는 한옥 골목이네."
대부분 전통 한옥 스타일이었다. 기와지붕, 낮은 담장.
한 골목을 걸으며 작은 찻집을 발견했다.


"백제 다원?"
전통 찻집이었다.
"들어가보자."
한옥을 개조한 찻집이었다. 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는 방식이었다.
"인삼차 두 잔, 유자차 두 잔이요."
주인은 60대 할머니였다.


"어서 오세요. 편하게 앉으세요."
마루에 앉으니 작은 정원이 보였다. 소나무, 돌, 연못.
"정원 예쁘네요."
"고마워요. 제가 직접 가꿨어요."
차를 마시며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 오래 하셨어요?"
"15년 됐어요."
"왜 정림사지 근처에?"
할머니는 창밖 석탑을 가리켰다.


"저 석탑이 좋아서요. 1,400년 동안 저기 서 있잖아요. 그 옆에서 차 마시고 싶었어요."
"백제를 좋아하세요?"
"좋아해요.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아름다운 문화를 남겼잖아요. 저 석탑처럼."



남겨진 것, 전해질 것
찻집을 나와 다시 한 번 정림사지로 돌아갔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석양이 석탑을 비췄다.
"석양에 보니까 더 아름답다."
"1,400년 동안 이 자리에서 석양을 봤겠지."
석탑 앞에 앉아 한참을 바라봤다.



"백제는 망했지만, 석탑은 남았네."
"그게 문화유산이지. 왕조는 사라져도 예술은 남는 거."
준우가 조용히 말했다.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맞아. 그게 백제야."
마지막으로 백마강으로 돌아왔다. 구드래 나루터에서 석양을 보기 위해.
강변 벤치에 앉아 석양을 기다렸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백마강 물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예쁘다."
"1,400년 전 백제 사람들도 이 석양을 봤을까?"
"당연히 봤겠지."
"같은 강, 같은 석양."
서연이가 노트를 꺼내 뭔가 적기 시작했다.


"뭐 써?"
"느낌. 백제에 대한."
한참 후 서연이가 읽어줬다.
"백제는 660년에 망했다. 하지만 석탑은 남았고, 강은 흐르고, 석양은 진다. 왕조는 사라져도 아름다움은 남는다."
민수가 딸을 안아줬다.
"잘 썼어. 그게 핵심이야."
저녁을 먹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차 안이 조용했다.




"피곤해?"
"아니. 그냥... 생각 중."
"무슨 생각?"
"백제. 그리고 역사."
집에 도착해서 민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부여 백마강, 천년 전 나루의 기억'.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다. 538년부터 660년까지 122년간. 그리고 660년, 나당연합군에게 함락되어 역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부여에는 백제가 살아있다. 백마강은 여전히 흐르고, 낙화암은 여전히 서 있고,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구드래 나루터 골목을 걸었다. 1930년대 근대 가옥들이 남아있는 골목. 한때 번성했던 나루터는 다리가 생기며 쇠퇴했지만, 골목은 남았다."


"정림사지 주변 골목도 걸었다. 1,400년 된 석탑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찻집, 조용한 한옥 골목. 백제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
"백제는 망했지만, 문화는 남았다. 그리고 그 문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드래에서 할아버지의 집을 카페로 만든 손자, 정림사지 옆에서 15년째 찻집을 운영하는 할머니."
"역사는 과거만이 아니다. 현재에도 살아있고, 미래로 이어진다. 백마강처럼 계속 흐르며."
글을 다 쓰고 서연이의 글과 함께 블로그에 올렸다.


제목은 '세대별 시각: 부여 백제 유적'.
댓글들이 달렸다.
"아버지와 딸의 관점이 다르면서도 같네요."
"백제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부여 꼭 가보고 싶어요."
한 달 후, 부여군청에서 연락이 왔다.


"백제 문화 관광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선생님과 따님께서 자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민수와 서연이는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6개월 동안 부여를 여러 번 방문했다. 문화재 전문가들, 마을 주민들, 관광업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백제 역사 골목 투어'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단순한 유적 관람이 아니라, 골목을 걸으며 백제의 삶을 체험하는 프로그램.
구드래 나루터에서 출발해, 백마강을 따라 걷고, 근대 가옥 골목을 지나, 정림사지까지.
그리고 각 지점에서 역사 해설과 함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1년 후,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민수와 서연이는 첫 투어의 가이드를 맡았다.
"백제는 660년에 망했습니다."
민수가 낙화암 아래에서 설명했다.


"하지만 문화는 남았습니다. 이 강, 이 바위,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서연이가 이었다.
"저 건너편 정림사지에는 1,400년 된 석탑이 있습니다. 왕조는 사라져도 예술은 영원합니다."
투어 참가자들은 진지하게 들었다.


투어가 끝난 후, 한 참가자가 다가왔다.
"감동적이었어요. 단순히 유적을 보는 게 아니라, 백제를 느낄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딸이 함께 해설하는 게 특별했어요. 세대가 함께 역사를 전하는 느낌?"
"그게 저희 목표였어요."


부여는 계속 변하고 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백제의 역사를 지키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며.
그리고 두 세대의 아카이버가 그 변화를 함께 기록하고 있다.



백마강처럼 끊임없이, 석탑처럼 굳건하게.
부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660년에 끝나지 않고, 1,400년을 넘어,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