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의 희망

비축금

by 이 범


2130년 봄, 제주도.

박민준(55세)은 7년 준비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었다.

바쁜 나날이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비축 계획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외로웠다.

아내 소연(73세)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어느 날 저녁, 소연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좋은 소식이 있어요."

"무슨 소식?"

"저... 임신했어요."

박민준은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뭐라고요? 73세에?"

"네. 의사도 기적이래요."

"여보... 정말요?"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이에요. 3개월 됐어요."

박민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7년간의 고된 일정.

비난과 오해.

외로움과 스트레스.

하지만 이 소식 하나로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여보, 제가 지금 내려갈게요."

"아니에요. 회의 있잖아요."

"회의는 미룰 수 있어요. 당신이 더 중요해요."


2130년 겨울.
소연이 아들을 낳았다.
박민준은 아기를 안았다.
작고 따뜻했다.
"여보,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요?"
소연이 물었다.


박민준이 한참 아기를 바라보다 말했다.
"므나쎄."
"므나쎄요?"
"네. '잊게 하다'는 뜻이에요."
"왜요?"
박민준이 설명했다.


"하느님께서 나의 모든 고생을 잊게 해주셨어요."
"7년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람들의 비난, 오해, 외로움."
"하지만 이 아이가 태어나니 다 잊혀져요."
박민준이 아기에게 속삭였다.


"므나쎄야, 네가 아빠의 위로구나."
소연이 미소 지었다.
"좋은 이름이에요."


2131년 초.
7년 호황이 끝났다.
정확히 박민준이 예측한 대로.
AI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투자 중단.
스타트업 파산.
대기업 구조조정.
하지만 선우그룹은 준비되어 있었다.


7조 원의 비축금.
박민준이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다.
"여러분, 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준비했습니다."
"7조 원이 있습니다."


"이제 이것을 풀 시간입니다."
"첫째, 한 명도 해고하지 않습니다."
"둘째, 급여를 삭감하지 않습니다."
"셋째,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습니다."
"넷째, 사회 공헌을 계속합니다."
이사들이 걱정했다.


"부회장님, 7조 원이 7년을 버티기에 충분합니까?"
"충분합니다. 계산했습니다."
2132년.
위기가 본격화되었다.


한국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가 무너졌다.
실업률 급증.
기업 파산.
경제 공황.
사람들이 선우그룹 본사 앞에 모였다.


"도와주세요!"
"일자리가 없어요!"
"가족을 먹여 살릴 수가 없어요!"
박민준은 본사 앞으로 나갔다.
"여러분, 저는 선우그룹 부회장 박민준입니다."
군중이 조용해졌다.


"우리 선우그룹은 7년간 준비했습니다."
"이 위기를 위해서."
"우리는 한 명도 해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박민준이 심호흡했다.


"다른 기업에서 해고당한 분들도 채용하겠습니다."
군중이 술렁였다.


"정말입니까?"
"네. 우리는 7조 원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 무렵, 소연이 또 임신했다.
74세.
의사들이 경악했다.
"부인, 또요?"
"네... 또 기적이네요."
박민준도 놀랐지만 기뻤다.


"여보, 이번에는 정말 조심해야 해요."
"알아요. 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아이예요."
2132년 가을.
위기가 한창일 때.
소연이 둘째 아들을 낳았다.


박민준이 아기를 안았다.
"여보, 이름은요?"
"에프라임."
"에프라임? 무슨 뜻이에요?"
"'열매 맺게 하다'는 뜻이에요."
박민준이 설명했다.


"하느님께서 내 고난의 땅에서 나에게 자식을 낳게 해주셨어요."
"서울은 저에게 고난의 땅이었어요."
"비난받고, 오해받고, 외로웠죠."
"하지만 하느님께서 이곳에서도 열매를 맺게 하셨어요."
"므나쎄와 에프라임."


"잊게 하는 아들과 열매 맺게 하는 아들."
소연이 남편을 바라봤다.
"고난 속에서도 축복이네요."
"맞아요. 고난 속 축복."


2133년.
위기 2년차.
한국 정부가 박민준을 불렀다.
"부회장님, 나라가 위기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실업자가 500만 명입니다."


"..."
"선우그룹만 버티고 있습니다."
"비축금을 좀 풀어주실 수 없습니까?"
박민준은 고민했다.
'7조 원은 우리 직원을 위한 것인데...'
'하지만 전국이 굶주리고 있어.'


그날 밤, 박민준은 므나쎄(3세)와 에프라임(1세)을 바라봤다.
두 아들이 평화롭게 자고 있었다.
'이 아이들이 자랄 나라가 무너지면 무슨 소용인가?'
박민준은 결정했다.


다음날, 정부에 연락했다.
"비축금의 일부를 풀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1조 원을 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이 돈은 직접 국민에게 가야 합니다."
"기업이 아니라 개인에게."
"그리고 식량 구매에만 써야 합니다."
정부가 수락했다.


2134년.
박민준이 1조 원을 풀었다는 소식이 퍼졌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선우그룹 본사로 몰려왔다.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을 살려주셔서!"
박민준이 본사 앞에 나갔다.


"여러분, 이것은 제 돈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7년간 쌓은 것을 이제 나누는 것뿐입니다."
한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앞으로 나왔다.
"부회장님, 이 아이 이름을 민준이라고 지었어요."
"예?"
"부회장님 덕분에 이 아이가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박민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을 생각했다.


므나쎄와 에프라임.
'내 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지켜야 해.'


2135년.
소문이 해외로 퍼졌다.
"한국 선우그룹에 식량이 있다."
"그들만 버티고 있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한국으로 왔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선우그룹과 거래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박민준은 그들을 맞이했다.


"환영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자원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공정하게 배분하겠습니다."
박민준은 글로벌 지원 시스템을 만들었다.


각국 대표들과 회의를 했다.
"우리는 국가별로 할당량을 정하겠습니다."
"인구 비례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우선권을 주겠습니다."
선진국 대표가 항의했다.


"우리가 더 많은 돈을 낼 수 있는데요!"
박민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것은 경매가 아닙니다."
"인도주의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입니다."
회의장이 숙연해졌다.


2136년.
한국 대통령이 선우그룹을 방문했다.
"박 부회장님, 국가를 대표하여 감사드립니다."
"과찬이십니다."
"아닙니다. 당신 덕분에 한국이 버텼습니다."
"그리고 세계도 버텼습니다."
대통령이 훈장을 수여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박민준은 므나쎄(6세)와 에프라임(4세)을 데리고 왔다.
"아빠, 저게 뭐예요?"
므나쎄가 물었다.


"상이야. 나라에서 주는 상."
"왜 줘요?"
"아빠가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이야."
"어떻게요?"
박민준이 아들을 안아 올렸다.


"므나쎄야, 기억해라."
"우리는 받은 것을 나눠야 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에프라임도 물었다.


"아빠, 나도 커서 아빠처럼 할 거예요."
박민준이 둘째도 안아 올렸다.
"에프라임, 고마워."
"아빠는 너희가 자랑스러워."

2138년.
7년의 위기가 끝났다.


박민준은 최종 보고를 했다.
"7년간 우리는 비축금 7조 중 5조를 사용했습니다."
"1조는 국내 지원."
"2조는 해외 지원."
"2조는 우리 직원 유지."
"그리고 2조가 남았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이사회가 박수를 쳤다.
태민(81세)이 휠체어에서 말했다.


"박 부회장, 당신이 우리를 구했소."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구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실행했소."
박민준이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저 도구였을 뿐입니다."
그날 밤, 박민준은 가족과 함께 제주 집으로 돌아왔다
소연, 므나쎄, 에프라임.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여보, 14년이 끝났어요."
소연이 말했다.
"네. 48세에 시작해서 62세가 되었네요."
"긴 시간이었죠?"
"길었어요. 하지만 보람 있었어요."
므나쎄가 물었다.


"아빠, 14년간 뭐가 가장 좋았어요?"
박민준이 아들들을 바라봤다.


"너희가 태어난 거."
"정말요?"
"응. 위기 속에서 너희가 태어났어."
"므나쎄는 고생을 잊게 해줬고."
"에프라임은 고난 속에서 열매를 보여줬어."
"너희 덕분에 아빠가 버틸 수 있었어."
두 아들이 아빠를 껴안았다.


박민준의 일기, 2138년 12월:
"14년이 끝났다.
48세에 시작해서 62세가 되었다.


청년에서 노년으로.
그 과정에서 두 아들을 얻었다.
므나쎄 - 잊게 하다.
에프라임 - 열매 맺다.
이 아이들이 내 힘이었다.


외로울 때 위로가 되었고,
힘들 때 희망이 되었고,
포기하고 싶을 때 이유가 되었다.
7조를 쌓았다.
5조를 풀었다.
수백만 명을 살렸다.


하지만 내 승리가 아니다.
하느님의 승리다.
므나쎄와 에프라임을 주신 하느님.
지혜를 주신 하느님.
인내를 주신 하느님.
그분의 승리다.


감사합니다.
이 두 아들과 함께
남은 인생을 살겠습니다.


평화롭게.
감사하며.
아멘."


에필로그
므나쎄와 에프라임은 자랐다.
므나쎄(18세)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아버지처럼 기업을 이끌고 싶어요."
에프라임(16세)은 사회학을 공부했다.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아버지처럼."
2148년, 박민준(73세)은 은퇴했다.
마지막 연설에서 그는 두 아들을 소개했다.
"이 두 아들은 위기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므나쎄는 제 고생을 잊게 해줬습니다."
"에프라임은 고난 속에서 열매를 보여줬습니다."
"이 아이들이 제 희망이었습니다."
"위기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 아이들을 볼 때마다 희망을 봤습니다."
"여러분도 위기 속에 있다면,"
"작은 희망들을 보십시오."
"그것이 당신을 버티게 할 것입니다."
청중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평창 새벽터에 새로운 돌이 세워졌다.
"위기 속의 희망"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므나쎄와 에프라임
2130, 2132년생
위기가 시작될 때 태어난 아들들.
하지만 그들이 희망이었다.
므나쎄 - 하느님께서 내 고생을 잊게 하셨다.
에프라임 - 하느님께서 고난의 땅에서 열매 맺게 하셨다.
위기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내 이유였다.
버틸 이유.
싸울 이유.
희망을 잃지 않을 이유.
당신도 위기 속에 있는가?
작은 희망들을 보라.
아이들의 웃음.
배우자의 손.
친구의 위로.
하느님의 작은 선물들.
그것이 당신을 버티게 할 것이다.
위기는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 받은 축복은
영원하다.
박민준
'두 아들의 아버지'"

그 돌은 오늘도
위기 속에 있는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위기 속에서도
하느님은 선물을 주신다.
작은 희망들을.
그것을 보라.
그것이 너를
끝까지 버티게 할 것이다."

월, 화, 수,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