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형들
형제들의 고백
2145년 가을, 서울 선우그룹 본사.
박민준(70세)은 은퇴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명예회장으로서 가끔 본사를 방문했다.
그날, 특별한 방문객들이 있었다.
사촌 형들.
선우태민의 아들들과 손자들.
총 10명.
그들은 회의실에서 박민준을 기다렸다.
긴장한 얼굴들이었다.
박민준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형들."
"..."
침묵.
박민준이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장남 선우준영(75세, 태민의 장남)이 입을 열었다.
"민준 형님,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무슨 도움?"
"선우그룹 계열사 중 하나가 위기입니다."
"어느 회사입니까?"
"선우건설입니다. 저희 큰형 준호가 맡고 있는..."
박민준은 알고 있었다.
선우건설이 부실 경영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투자를 해주십시오. 500억만..."
박민준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왜요?"
"부실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돈을 버리는 것입니다."
준영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형님, 우리 가족 아닙니까?"
"가족이기에 더 안 됩니다. 잘못된 경영을 덮어주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박민준이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첫째, 준호 형이 선우건설 대표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형들이 술렁였다.
"그건 너무합니다!"
"둘째, 경영 전문가를 영입해야 합니다."
"셋째, 투명 경영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넷째..."
박민준이 잠시 멈췄다.
"막내 조카 선우지훈을 데려오십시오."
"지훈이요?"
"네. 35세 되는 조카. 미국에서 MBA 하고 있다는."
"왜 지훈이를?"
"그 아이를 선우건설 부사장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가르치겠습니다."
형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지훈이는 아직 어립니다."
"나도 48세에 부회장이 되었습니다. 35세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지훈을 데려오면 투자해주시겠습니까?"
"그러면 500억이 아니라 1000억을 투자하겠습니다."
형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회의가 끝난 후.
형들이 별도로 모였다.
로비 커피숍.
"어떻게 하지?"
"지훈을 데려와야 하나?"
준영이 말했다.
"민준 형님이 너무하신 거 아니야? 우리가 도움 청하러 왔는데..."
둘째 선우준석(73세)이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한 게 있잖아."
"뭐가?"
"25년 전. 지안이 일."
침묵.
셋째 선우준호(71세)가 고개를 숙였다.
"맞아... 우리가 지안이를 막았지."
"그 애가 아프리카 프로젝트 하겠다고 할 때."
"우리가 반대했어."
준영이 변명했다.
"우리도 회사를 생각해서..."
"회사? 우리 이익을 생각한 거지."
준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안이가 혼자 가서 죽었어. 우리 때문에."
준호의 눈에 눈물이고였다.
"민준 형님도 알고 계시겠지. 우리가 지안이를 죽였다는 거."
"그래서 이렇게 조건을 거시는 거야."
"우리를 시험하시는 거지. '너희가 진짜 변했느냐'고."
넷째 선우준민(69세)이 말했다.
"형들, 내가 그때 말했잖아."
"뭐라고?"
"지안이한테 잘못하지 말라고."
"그 애는 옳은 일을 하려는 거라고."
"하지만 형들이 듣지 않았잖아."
준영이 화를 냈다.
"넌 뭔데 우리를 가르치려고 해?"
"가르치는 게 아니야. 사실을 말하는 거지."
"우리가 지안이 피에 대해 책임이 있어."
"그래서 지금 이 고통이 우리한테 온 거야."
형들이 고개를 숙였다.
준석이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지안아. 형들이 잘못했어."
준호도 울었다.
"우리가 너를 죽였어. 우리 때문에 네가 혼자 갔어."
준영도 눈물을 닦았다.
"지안아... 용서해다오."
그들은 알지 못했다.
박민준이 커피숍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것을.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하지만 다 들었다.
형들의 대화를.
고백을.
눈물을.
박민준도 울었다.
신문 뒤에서.
'형들이... 후회하고 계셨구나.'
'25년간 죄책감을 안고 살았구나.'
박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혼자 울었다.
한참을.
'하느님, 형들이 고백했습니다.'
'지안이에 대해.'
'저에 대한 미움도, 시기도...'
'이제 용서해야 합니까?'
박민준은 화장실에서 나와 형들에게 다가갔다.
형들이 놀라 일어섰다.
"민준 형님!"
"앉으십시오."
박민준이 자리에 앉았다.
"형들, 제가 다 들었습니다."
형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안이 이야기."
"..."
"25년 전 일."
준영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우리가... 우리가 지안이를..."
박민준이 손을 들었다.
"알고 있었습니다."
"예?"
"형들이 지안이를 반대했다는 것. 그래서 지안이가 혼자 갔다는 것. 다 알고 있었습니다."
형들이 더욱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박민준이 말을 이었다.
"지안이도 선택했습니다. 혼자 가는 것을."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안이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을 겁니다."
준석이 물었다.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 지안이는 옳은 일을 했습니다. 끝까지."
박민준이 형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형들도 책임이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건을 걸었습니다."
"지훈을 데려오라고."
박민준이 설명했다.
"지훈이는 지안이와 닮았습니다."
"예?"
"성격, 생각, 열정. 다 닮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훈이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지안이를 가르치지 못한 것을 지훈이를 통해 하고 싶습니다."
형들이 이해했다.
"형님... 그게..."
"네. 지훈이를 데려오는 것은 형들의 회개를 보는 것입니다."
"형들이 정말 변했는지."
"또 다른 지안이를 막지 않을지."
준영이 무릎을 꿇었다.
"형님, 죄송합니다."
"우리가 25년 전에 잘못했습니다."
다른 형들도 무릎을 꿇었다.
"용서해주십시오."
박민준이 형들을 일으켰다.
"일어나십시오."
"하지만..."
"형들, 저는 이미 용서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오래전에."
박민준이 미소 지었다.
"하지만 형들이 스스로 고백하기를 기다렸습니다."
"25년을..."
"네. 형들이 진심으로 후회할 때까지."
준석이 울었다.
"형님, 감사합니다."
박민준이 조건을 바꿨다.
"형들, 지훈을 데려오십시오."
"하지만 제 조건이 바뀌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지훈뿐 아니라 형들도 함께 배우십시오."
"저희도요?"
"네. 1년간 제가 경영 특강을 하겠습니다."
"형들과 지훈, 그리고 다른 젊은 조카들."
"모두 함께."
"지안이가 남긴 지혜를 전하겠습니다."
형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형님."
"하지만 한 사람은 안 됩니다."
"누구입니까?"
"준호 형."
준호가 놀라 얼굴을 들었다.
"저요?"
"네. 형은 선우건설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왜... 왜 저만..."
박민준이 설명했다.
"형이 가장 지안이를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나를 시기했습니다."
준호가 고개를 숙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형은 특별한 과제를 해야 합니다."
"무엇입니까?"
"1년간 '지안 재단'에서 봉사하십시오."
"지안이가 세운 피해자 지원 단체에서."
준호의 눈이 커졌다.
"그곳에서 1년간 일하면서 지안이가 무엇을 했는지 배우십시오."
"그러면 용서하겠습니다."
준호가 눈물을 흘렸다.
"알겠습니다, 형님."
박민준의 일기, 2145년 10월:
"오늘 형들이 고백했다.
25년 전 지안이 일을.
나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듣고 싶었다.
진심 어린 고백을.
그리고 오늘 들었다.
그들의 눈물을 봤다.
후회를 봤다.
이제 용서할 수 있다.
완전히.
준호 형을 지안 재단에 보냈다.
그곳에서 지안이 무엇을 했는지 배울 것이다.
그리고 변할 것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형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셔서.
저에게 용서할 기회를 주셔서.
우리 가족이 치유되고 있습니다.
25년 만에.
아멘."
에필로그
1년 후.
준호(72세)는 지안 재단에서의 봉사를 마쳤다.
그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마지막 날, 박민준을 찾아왔다.
"형님, 1년간 감사했습니다."
"어떠셨습니까?"
"지안이가... 지안이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는지 알았습니다."
준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애가 도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피해자들, 약자들, 소외된 사람들."
"그들이 모두 지안이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는 그런 지안이를 막았습니다."
박민준이 준호의 어깨를 잡았다.
"형님, 이제 알았으니 됐습니다."
"용서해주십니까?"
"이미 용서했습니다."
두 사람이 포옹했다.
25년 만의 진정한 화해.
평창 새벽터에 새 돌이 세워졌다.
"25년 후의 고백"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형제들의 고백
2145
25년 전, 그들은 지안을 막았다.
옳은 일을 하려는 지안을.
그래서 지안은 혼자 갔고,
혼자 죽었다.
25년간 그들은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고백하지 못했다.
두려워서.
부끄러워서.
그러다 위기가 왔다.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고백했다.
"우리가 지안을 죽였다."
그 고백이 치유를 가져왔다.
용서를.
화해를.
회복을.
당신도 고백하지 못한 죄가 있는가?
25년이 지났든,
50년이 지났든,
늦지 않았다.
고백하라.
그러면 치유가 온다.
선우 가문
2145년"
그 돌은 오늘도
고백하지 못한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25년이 지났어도
늦지 않았다.
고백하라.
진심으로.
눈물로.
그러면
용서가 온다.
치유가 온다.
화해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