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바람
1962년, 새로운 시대의 시작
화폐 개혁의 혼란
1962년 6월 10일.
아침부터 동네가 술렁거렸다.
"큰일났어!"
"돈이 바뀐대!"
"환을 원으로 바꾼대!"
주유소에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사장님, 들으셨어요?"
"화폐 개혁이래요!"
"열 환이 일 원이 된대요!"
계민은 신문을 펼쳤다.
"긴급 통화 조치"
"환(圜)을 원(圓)으로"
"10:1 교환"
"예금 일부 동결"
'이게 무슨...'
"사장님, 우리 돈은 어떻게 돼요?"
"은행에 맡긴 돈은요?"
"...일단 농업은행에 가봐야 알겠습니다."
계민은 집으로 급히 돌아왔다.
"여보!"
"계민 씨, 무슨 일이에요?"
민화가 놀라 나왔다.
"화폐 개혁이래요. 지금 당장 현금을 나눠야 해요."
"현금을요?"
"네. 한 사람당 교환할 수 있는 금액이 제한되어 있대요."
계민은 금고를 열었다.
주유소 운영하며 모아둔 현금.
상당한 액수였다.
"모두 모여요!"
계민이 식구들을 불렀다.
민화, 승국, 범현, 하경, 희경, 란경.
정개 할머니, 순이.
그리고 주유소 점원들까지.
"지금부터 여러분께 현금을 나눠드릴 겁니다."
"...?"
"농업은행에 가서 각자 교환하세요."
"사장님, 저희까지요?"
점원들이 놀랐다.
"그럼요. 한 사람당 교환 한도가 있으니까."
"나중에 돌려주시면 됩니다."
계민은 현금을 나눴다.
민화에게, 정개 할머니에게, 순이에게.
점원들에게.
심지어 승국에게까지.
"승국아, 이거 잘 가지고 있어."
"아버지, 이게 뭐예요?"
"돈이야. 은행에서 바꿔야 해."
"제가요?"
"그래. 아버지랑 같이 가자."
외가 식구들에게도 연락했다.
"장인어른, 외삼촌들도 오셔야 합니다."
"무슨 일인가?"
"화폐 교환입니다. 제가 현금을 나눠드릴게요."
김학두, 김영태, 김화태, 김규승, 김원태.
모두 모였다.
"이게 무슨..."
"한 사람당 교환 한도가 있습니다. 나눠서 바꿔야 해요."
계민은 외가 식구들에게도 현금을 나눠줬다.
"나중에 돌려받으면 됩니다."
"계민이... 고맙네."
김학두가 말했다.
"가족인데요."
오전 열 시.
일행은 농업은행으로 향했다.
계민, 민화, 승국, 외가 식구들, 종업원들.
십여 명이 넘었다.
농업은행 앞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내 돈 내놔!"
"예금을 왜 못 찾게 해!"
"이게 무슨 짓이야!"
사람들이 소리쳤다.
줄이 건물 밖까지 이어졌다.
수 백명도 넘어 보였다.
"저걸 어떻게 다 서요..."
점원이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요. 우리는 나눠서 서면 돼요."
계민이 말했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줄을 서요."
"한 줄에 한 명씩만."
"알겠습니다!"
일행은 흩어졌다.
계민은 한 줄에.
민화는 다른 줄에.
외할아버지 김학두는 또 다른 줄에.
승국도 혼자 줄을 섰다.
"승국아, 무섭지 않니?"
"괜찮아요, 아버지."
"돈 잘 가지고 있어."
"네."
사람들이 밀치고 소리쳤다.
"빨리 좀 해요!"
"왜 이렇게 느려!"
은행원들도 지쳐 보였다.
"차례대로 하십시오!"
"고함 지르지 마세요!"
두 시간이 지났다.
계민의 차례가 왔다.
"환을 원으로 교환하러 왔습니다."
"얼마입니까?"
"이만 환입니다."
계민이 돈을 건넸다.
은행원이 세어보고 도장을 찍었다.
"이천 원입니다."
새 화폐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계민은 밖으로 나왔다.
민화도 나왔다.
"잘 됐어요?"
"네. 당신은요?"
"저도 끝났어요."
하나둘씩 식구들이 나왔다.
외할아버지, 외삼촌들, 정개 할머니, 순이, 점원들.
"다들 교환했어요?"
"네!"
마지막으로 승국이 나왔다.
손에 새 화폐를 쥐고 있었다.
"승국아, 잘했니?"
"네, 아버지. 바꿨어요."
"대단하다, 우리 승국이."
계민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계민이 일행에게 말했다.
"덕분에 무사히 교환했습니다."
"천만에요, 사장님."
"고맙습니다, 매형."
"내일 우리 집에서 잔치를 합시다."
"잔치요?"
"네. 여러분 수고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럴 필요까지야..."
"아닙니다. 꼭 해야겠어요."
계민은 단호했다.
감사의 잔치
다음 날.
계민의 집은 분주했다.
"오늘 손님이 많이 와요."
민화가 음식을 준비했다.
삼겹살, 생선, 나물, 김치...
정개 할머니와 순이도 도왔다.
"도련님이 큰마음 먹으셨네유."
"감사한 일이잖아요. 모두 도와주셨으니까."
저녁이 되자 손님들이 왔다.
외할아버지 김학두.
외삼촌들 - 김영태, 김화태, 김규승, 김원태.
주유소 점원들.
정개 할머니와 순이.
마당에 상을 차렸다.
"어서 앉으세요!"
계민이 손님들을 맞았다.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는데..."
"아닙니다. 여러분 덕분에 무사히 교환했습니다."
음식이 차려졌다.
고기를 구웠다.
술을 마셨다.
"사장님, 건배!"
"건배!"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어제 은행 앞이 정말 대단했죠?"
"그러게요.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우리는 그래도 빨리 끝났어요."
"나눠서 선 덕분이죠."
김학두가 계민에게 말했다.
"계민이, 자네 참 똑똑하네."
"장인어른,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나눠서 교환하다니."
"덕분에 우리 식구들 다 무사했어."
김규승도 고개를 끄덕였다.
"매형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은행에 예금했던 돈은 동결됐잖아요."
"현금을 미리 나눠준 게 신의 한 수였어요."
계민은 겸손하게 웃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아니야, 지혜지."
술이 돌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승국도 옆에 앉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승국아."
외할아버지 김학두가 불렀다.
"네, 할아버지."
"어제 은행에서 혼자 줄 섰다며?"
"네."
"무섭지 않았니?"
"조금요. 하지만 괜찮았어요."
"대단하구나."
김원태가 승국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 승국이가 벌써 컸네."
"은행 일도 혼자 하고."
"...아버지가 시키셔서요."
"그래도 대단해."
점원들도 칭찬했다.
"사장님 큰아드님, 정말 똑똑하시더라고요."
"맞아요. 차분하게 줄 서서 기다리시던데."
"보통 아이가 아니에요."
계민은 아들을 보며 뿌듯했다.
'승국이가... 정말 잘 해줬어.'
민화가 음식을 더 가져왔다.
"더 드세요!"
"고맙습니다, 큰누나!"
김규승이 받았다.
"정말 잘 먹었어요."
잔치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당에는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다.
"사장님."
점원 한 명이 일어났다.
"저희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저희...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아니었으면 저희 돈도 다 날아갔을 거예요."
"은행에 맡긴 돈은 동결됐잖아요."
"맞아요. 사장님 덕분에 살았어요."
점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일어나세요."
계민이 그들을 일으켰다.
"여러분이 늘 주유소를 잘 지켜주셨잖아요."
"이 정도는 당연한 겁니다."
"......"
"우리는 가족 같은 사이잖아요."
점원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사장님..."
"자, 더 드세요!"
계민이 술잔을 채웠다.
"오늘은 마음껏 드세요!"
"감사합니다!"
잔치가 끝나고.
손님들이 돌아갔다.
"조심히 가세요!"
"고마웠어요, 매형!"
"내일 봐요, 사장님!"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돌아갔다.
마당을 정리하며 민화가 말했다.
"계민 씨, 잘하셨어요."
"뭘요?"
"어제 현금을 나눠주신 거요."
"당연한 일이었어요."
"아니에요. 누가 그렇게 생각해요?"
"......"
"덕분에 모두 살았어요."
"다행이죠."
민화가 남편을 안았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고맙소."
승국이 다가왔다.
"아버지."
"왜, 승국아?"
"아버지... 멋있었어요."
"...?"
"어제 은행에서요."
"모두를 도와주셨잖아요."
"......"
"저도 나중에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요."
계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승국아..."
"네?"
"고맙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승국이 아버지를 안았다.
계민은 아들을 꽉 안았다.
'이 아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조소학 선생님
6월이 지나고 7월이 왔다.
승국은 3학년 2학기가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다.
조소학 선생님.
삼십대 중반의 여선생님이었다.
키가 크고, 목소리가 우렁찼다.
눈빛이 날카로웠다.
"여러분, 나는 조소학 선생님입니다."
"올해부터 너희를 가르칠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아이들이 조용히 앉았다.
선생님의 기세에 눌렸다.
수업이 시작됐다.
"오늘은 우리 학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조소학 선생님이 칠판에 글을 썼다.
"영광초등학교."
"1896년에 세워졌습니다."
"전라남도에서 제일 먼저 생긴 근대 학교입니다."
"고종 황제님의 칙령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이들이 눈을 빛냈다.
"우와, 우리 학교가 그렇게 오래됐어요?"
"그럼. 66년이나 됐어."
"대단하다!"
"그리고..."
조소학 선생님이 창밖을 가리켰다.
"운동장에 있는 큰 나무 봤지?"
"네!"
"저 팽나무는 몇 백 년이나 됐어."
"우리 학교보다 훨씬 오래됐지."
"저 나무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승국은 창밖의 팽나무를 바라봤다.
거대한 나무였다.
가지가 넓게 퍼져 있었다.
햇빛을 가려주는 천연 그늘.
아이들이 그 아래서 놀았다.
'저렇게 오래된 나무가...'
'수백 년을...'
어느 날 수업 시간.
조소학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너희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어."
"......"
"선생님이 살고 있는 집 말이야."
"적산가옥이야."
"적산가옥이요?"
한 아이가 물었다.
"그래. 일본 사람들이 살던 집이야."
"해방 후에 우리가 받은 거지."
"......"
"그런데 말이야."
조소학 선생님의 목소리가 떨렸다.
"1950년, 전쟁 때였어."
"인민군과 빨치산들이 우리 학교를 불태우려고 했어."
아이들이 숨을 죽였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왜요?"
한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는... 대한민국의 상징이었으니까."
"교육을 받은 사람들, 지식인들을 그들은 싫어했어."
"......"
"선생님은 앞장서서 막았어."
"안 돼! 이 학교는 우리 아이들의 학교야!"
"불태울 수 없어!"
"선생님 혼자요?"
"아니. 마을 사람들을 모았지."
"다같이 학교 앞에 섰어."
"인민군과 빨치산들이 총을 겨눴어."
"......"
"무섭지 않았어요?"
한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서웠지."
조소학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어."
"이 학교는 고종 황제님이 세우신 학교야."
"66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곳이야."
"불태울 수 없어."
"그래서요?"
"인민군과 빨치산들이 선생님을 쫓아냈어."
"관람산으로."
조소학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산 속에서 며칠을 숨었어."
"죽을 뻔했어."
"총소리가 들렸어."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
"......"
"다시 사람들을 모았어."
"마을 어른들, 젊은이들."
"다같이 학교로 돌아왔어."
"그리고 인민군과 빨치산들을 몰아냈어."
"학교를 지켜냈어."
교실이 조용했다.
아이들이 숨소리조차 죽이고 들었다.
승국은 가슴이 뛰었다.
'선생님이... 그런 일을...'
'목숨을 걸고 학교를...'
"너희는 알아야 해."
조소학 선생님이 아이들을 둘러봤다.
"이 학교가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낸 곳인지."
"......"
"전쟁 때 이 나라를 지키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싸웠는지."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해야 해."
"불의에 맞서야 해."
"옳은 일을 해야 해."
"알겠지?"
"네!"
아이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승국도 목이 메었다.
'선생님은... 영웅이야.'
'불의에 맞선 거야.'
그날 이후, 승국은 조소학 선생님을 존경했다.
며칠 후.
승국은 용기를 냈다.
"선생님."
"왜, 승국아?"
"선생님 댁에 찾아가도 될까요?"
"...내 집에?"
"네. 공부를 더 배우고 싶어요."
조소학 선생님이 승국을 보았다.
"너... 정말 공부를 좋아하는구나."
"네."
"좋아. 와도 돼."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
승국은 조소학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
적산가옥이었다.
일본식 건물.
다다미방과 미닫이문.
"어서 와, 승국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앉아."
승국이 방에 앉았다.
일본식 방이었지만, 따뜻했다.
"뭘 배우고 싶니?"
"...모든 걸 배우고 싶어요."
"모든 걸?"
"네. 선생님이 아시는 걸 다."
조소학 선생님이 웃었다.
"욕심쟁이로구나."
"...죄송합니다."
"아니야. 좋은 거야."
선생님이 책을 꺼냈다.
"그럼 역사부터 배워볼까?"
"네!"
조소학 선생님은 역사를 가르쳤다.
고종 황제 이야기.
독립운동 이야기.
해방 이야기.
그리고 전쟁 이야기.
"승국아, 역사를 배우는 건 중요해."
"왜요?"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만들 수 있어."
"......"
"그리고 불의를 알아야 맞설 수 있어."
"공산주의가 뭔지 알아야 해."
"왜 그들이 학교를 불태우려 했는지."
"왜 우리가 싸워야 했는지."
승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의에 맞서는 것...'
'그게 중요한 거구나.'
일주일에 한두 번씩 승국은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
이정수 선생님께 영어와 산수를 배우고.
조소학 선생님께 역사와 국어를 배우고.
외할아버지께 한문을 배우고.
집에서는 세계 사상대계와 학원 월간지를 읽었다.
바쁜 나날이었다.
하지만 행복했다.
'배우는 게 이렇게 재미있어.'
어느 날, 조소학 선생님이 물었다.
"승국아,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잘 모르겠어요."
"그래?"
"하지만..."
"응?"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
"나처럼?"
"네. 불의에 맞서는 사람."
"옳은 일을 하는 사람."
조소학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승국아..."
"네?"
"넌 정말 착한 아이야."
"그리고 똑똑한 아이야."
"...감사합니다."
"꼭 훌륭한 사람이 돼라."
"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돼라."
"네, 선생님."
승국은 그날의 대화를 평생 잊지 않았다.
'어릴 때 정신의 계도는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훗날 승국이 쓴 글에 나오는 말이었다.
조소학 선생님.
불의에 맞서 학교를 지켜낸 선생님.
인민군과 빨치산에 맞서 싸운 선생님.
그 선생님이 승국의 정신을 만들었다
경제개발의 시작
1962년.
나라는 변하고 있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울산공업센터 기공"
"잘 살아보세!"
신문마다 구호가 넘쳤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가난했다.
1인당 국민소득 80~90달러.
세계 최빈국.
실업률 30%.
"보릿고개가 왔다."
동네 사람들이 한숨을 쉬었다.
"올해도 힘들겠어."
"쌀이 떨어졌어."
"보리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계민의 집은 그래도 괜찮았다.
주유소가 잘 됐다.
화폐 개혁 때 지혜롭게 대처했다.
"여보, 쌀 좀 사왔어요."
민화가 말했다.
"얼마나요?"
"한 가마."
"비쌌겠네요."
"그래도 사야죠. 아이들이 다섯이나 되는데."
승국, 범현, 하경, 희경, 란경.
다섯 남매.
모두 먹여 살려야 했다.
"승국이 과외비도 나가고..."
"괜찮아요. 주유소가 잘 되니까."
계민이 아내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복받은 거예요."
"...그렇죠."
"화폐 개혁 때도 무사했고."
"당신 덕분이에요."
하지만 계민은 걱정이 됐다.
'나라가 이렇게 가난한데...'
'아이들 미래는 괜찮을까.'
신문을 보면 희망적인 기사도 있었다.
"울산에 공업단지를 짓는다"
"외국 자본을 유치한다"
"10년 후에는 잘 살게 될 것이다"
'정말 그럴까?'
계민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이들 세대는 나아지겠지.'
'특히 승국이는...'
'잘 공부하고 있으니까.'
어느 날 저녁.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었다.
보리밥이었다.
쌀이 귀해서 보리를 섞었다.
"아빠, 밥이 거칠어요."
하경이가 투덜거렸다.
"참아라. 요즘 쌀이 귀해."
"...알았어요."
승국은 묵묵히 밥을 먹었다.
'나라가 가난하구나.'
'사람들이 힘들어하는구나.'
'나중에 크면... 뭔가 도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밥을 먹었다.
민화가 승국을 봤다.
"승국아, 너는 불평이 없네?"
"...네."
"왜?"
"...밥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전쟁 때는... 밥도 없었다고 하잖아요."
민화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우리 승국이..."
"어쩜 이렇게 착할까."
계민도 뿌듯했다.
'저 아이는... 정말 특별해.'
그날 밤, 일기를 썼다.
"1962년."
"화폐 개혁이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현금을 나눠서 식구들, 종업원들, 외가 식구들이 모두 교환할 수 있었다."
"농업은행 앞은 인산인해였지만, 우리는 무사했다."
다음 날 감사 잔치를 베풀었다.
"모두가 기뻐했다."
"승국이도 혼자 은행에 가서 교환했다."
"대견했다."
"나라는 여전히 가난하다."
"보릿고개가 왔다."
"하지만 경제개발 계획이 시작됐다."
"희망이 있다고 한다."
"승국이가 3학년 2학기가 됐다."
"조소학 선생님을 만났다."
"대단한 분이다."
"전쟁 때 인민군과 빨치산에 맞서 학교를 지켜낸 분이다."
"목숨을 걸고 싸우셨다."
승국이가 그 선생님을 존경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선생님 댁을 찾아가 공부한다."
"어릴 때 정신의 계도는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승국이가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다행이다."
"불의에 맞서는 정신을 배우고 있다."
"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나라는 가난하지만."
"우리 아이들 세대는 나아질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민화가 들어왔다.
"계민 씨, 아직 안 주무세요?"
"응, 일기 쓰고 있어."
"올해도... 힘든 해였죠?"
"그렇죠."
"화폐 개혁도 있었고..."
"하지만 우리는 잘 넘겼어요."
"당신 덕분이에요."
"우리 모두 덕분이죠."
두 사람은 창밖을 봤다.
어둠 속에서도 승국의 방만 밝았다.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다.
"저 아이는... 정말 대단해요."
민화가 말했다.
"이렇게 힘든 시대에도."
"묵묵히 공부하고."
"불평 하나 없이."
"...그러게요."
계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승국이가 자랑스러워요."
"저도요."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았다.
1962년이 저물어갔다.
가난한 시대.
혼란의 시대.
하지만 지혜와 희망의 시대이기도 했다.
계민은 화폐 개혁 때 지혜롭게 대처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고.
경제개발이 시작됐고.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고.
특히 승국은.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불의에 맞서는 정신을 배우며.
묵묵히 성장하고 있었다.
책과 함께.
빛과 함께.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