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성장
새 학년의 시작
1962년 3월.
봄이 왔다.
승국은 4학년이 되었다.
범현은 드디어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 날 아침.
민화가 범현의 옷을 매만졌다.
"우리 범현이, 이제 국민학교 가는구나."
"네, 엄마!"
범현은 새 교복을 입고 있었다.
까만 교복.
모자.
가방.
"형처럼 공부 잘할 거야?"
"응! 열심히 할게!"
승국이 동생에게 다가왔다.
"범현아, 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
"알았어, 형."
"그리고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응."
"형이 학교에서 도와줄게."
"고마워, 형!"
계민이 두 아들을 보며 뿌듯해했다.
'승국이가 벌써 4학년...'
'범현이가 이제 학교에 가고...'
입학식장.
부모들과 아이들로 가득했다.
"신입생 여러분, 환영합니다!"
교장 선생님이 인사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대한민국의 학생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나라의 동량이 되십시오!"
박수가 터졌다.
범현은 반짝이는 눈으로 앞을 봤다.
'나도 이제 학생이야!'
'형처럼 잘할 거야!'
범현의 재능
며칠이 지났다.
범현은 학교 생활에 적응했다.
친구들도 사귀었다.
수업도 재미있었다.
"범현아, 오늘 학교 어땠어?"
민화가 물었다.
"재미있었어요!"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그림 그리는 시간이요!"
범현은 그림을 좋아했다.
유치원 때부터 그랬다.
"선생님이 칭찬하셨어요."
"정말?"
"네! 그림을 제일 잘 그렸대요!"
"대단하다, 우리 범현이!"
하지만 범현은 그림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손재주가 좋았다.
미술 시간에 종이접기를 하면.
"우와, 범현이 거 봐!"
"비행기가 정말 잘 접혔다!"
친구들이 감탄했다.
체육 시간에도 그랬다.
공을 차도, 달리기를 해도.
잘했다.
"범현아, 너 운동신경 좋다!"
"정말?"
"응! 우리 반에서 제일 빨라!"
그리고 범현은 리더십이 있었다.
친구들을 모으고, 이끌었다.
"야, 우리 술래잡기 하자!"
"좋아!"
"내가 술래 정해줄게!"
친구들이 범현을 따랐다.
자연스럽게.
한 달쯤 지났을 때.
담임 선생님이 계민과 민화를 불렀다.
"범현이 아버님, 어머님."
"네, 선생님."
"범현이가... 정말 특별한 아이예요."
"...그런가요?"
"네. 손재주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무엇보다 친구들을 잘 이끌어요."
"리더십이 강해요."
계민과 민화가 서로를 봤다.
'범현이가...'
"다만..."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승국이 형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네?"
"승국이는 공부를 잘하잖아요."
"하지만 범현이는 다른 재능이 있어요."
"억지로 공부만 시키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민화가 말했다.
"계민 씨,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요?"
"범현이는 승국이와 달라요."
"...그렇긴 하죠."
"각자의 길을 가게 해야 할 것 같아요."
"네. 그래야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소외감의 시작
외가 식구들이 모이면.
"승국이는 요즘 공부 어때?"
외할아버지 김학두가 물었다.
"잘하고 있습니다."
"그래? 역시 우리 승국이야."
외삼촌들도 마찬가지였다.
"승국아, 영어는 어때?"
"재미있어요, 외삼촌."
"그래, 잘하고 있구나."
"범현이는요?"
김원태가 물었다.
"범현이는... 그림을 잘 그려요."
민화가 대답했다.
"그림?"
"네. 손재주도 좋고요."
"음... 그렇구나."
그리고 화제는 다시 승국으로 넘어갔다.
"승국이 과외는 계속 받고 있어?"
"네. 이정수 선생님께 영어와 산수를."
"조소학 선생님께 역사를 배우고 있어요."
"대단하다!"
범현은 옆에 앉아 들었다.
'나도 있는데...'
'왜 형 이야기만 해?'
집에서도 그랬다.
"승국아, 이 책 읽어봐."
외삼촌 김원태가 책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외삼촌."
"열심히 읽어."
범현이 다가갔다.
"외삼촌, 저는요?"
"응? 너는...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지?"
"네."
"그럼 그림 그려."
"...네."
범현은 조금 섭섭했다.
'나도 뭔가 받고 싶은데...'
어느 날 저녁.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었다.
"승국아, 오늘 시험 어땠어?"
계민이 물었다.
"잘 봤어요, 아버지."
"역시 우리 승국이!"
민화가 웃었다.
"범현이는 오늘 학교 어땠어?"
"...좋았어요."
"뭐 했어?"
"그림 그렸어요."
"그래, 잘했네."
그리고 대화는 다시 승국으로.
"승국아, 조소학 선생님은 요즘 뭘 가르쳐주시니?"
"역사요. 고려시대를 배우고 있어요."
"오, 재미있겠다!"
범현은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관심이 없지?'
'형만 중요한 건가?'
물론 승국은 착했다.
범현에게 깍듯했다.
"범현아, 숙제 도와줄까?"
"괜찮아, 형."
"그래? 어려우면 말해."
"응."
하지만 범현은 은근히 소외감을 느꼈다.
'모두가 형만 챙겨.'
'나는... 그냥 둘째일 뿐이야.'
어느 날 밤.
범현은 혼자 그림을 그렸다.
가족 그림.
아버지, 어머니, 승국 형, 그리고... 자기.
하지만 자기는 작게 그렸다.
구석에.
민화가 그림을 보고 놀랐다.
"범현아, 왜 너는 이렇게 작게 그렸어?"
"...그냥요."
"왜?"
"...모르겠어요."
민화는 아들을 안았다.
"범현아."
"네?"
"엄마는 너도 사랑해."
"...알아요."
"정말로."
"...네."
하지만 범현은 알고 있었다.
'형이 더 중요해.'
'그건 어쩔 수 없어.'
원태 삼촌의 사랑
그런 범현에게 유일한 위로는 원태 삼촌이었다.
김원태.
민화의 막내 남동생.
스물다섯 살의 청년.
아직 장가를 안 갔다.
자주 큰누나 집에 놀러 왔다.
"큰누나!"
"어서 와, 원태야."
"승국이, 범현이 어디 있어요?"
"방에 있어."
원태는 두 조카를 똑같이 아꼈다.
"승국아!"
"외삼촌!"
"요즘 공부 어때?"
"잘하고 있어요."
"그래, 대단하다."
그리고 범현에게도.
"범현아!"
"외삼촌!"
"학교 재미있어?"
"네!"
"뭐가 제일 재미있어?"
"그림 그리는 거요!"
"그래? 그림 그려봐."
범현이 그림을 그렸다.
집 그림.
나무 그림.
원태가 감탄했다.
"우와, 잘 그렸다!"
"정말요?"
"응! 외삼촌은 이렇게 못 그려."
"히히."
원태는 두 조카와 함께 놀았다.
"야, 우리 술래잡기 하자!"
"좋아요!"
마당에서 뛰어놀았다.
원태가 술래.
"잡았다!"
"으악!"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공부도 가르쳤다.
"승국아, 산수 문제 풀어봐."
"네, 외삼촌."
"범현아, 너도 와."
"저도요?"
"그럼. 너도 배워야지."
원태는 두 조카에게 똑같이 가르쳤다.
차별하지 않았다.
"승국이는 이해가 빠르네."
"감사합니다, 외삼촌."
"범현이는... 손으로 하는 게 나아."
"...?"
"이렇게 직접 그려보면서 배워."
"아, 네!"
범현은 원태 삼촌이 좋았다.
'외삼촌은... 나도 똑같이 대해줘.'
'형만 챙기지 않아.'
어느 날 원태가 범현에게만 선물을 줬다.
"범현아, 이거 너 주는 거야."
"저요?"
"응."
크레파스였다.
새 크레파스.
스물네 색.
"우와!"
범현의 눈이 빛났다.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잖아."
"이걸로 예쁜 그림 그려."
"감사합니다, 외삼촌!"
범현이 원태를 안았다.
원태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범현아."
"네?"
"너는 너만의 재능이 있어."
"...?"
"형이랑 비교하지 마."
"......"
"너는 그림을 잘 그려. 손재주도 좋아."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리고."
"그게 너의 재능이야."
"...정말요?"
"그럼. 외삼촌이 봤어."
범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고마워요, 외삼촌."
"뭘. 당연한 얘기야."
그날부터 범현은 원태 삼촌을 더 좋아했다.
'외삼촌은... 나를 봐줘.'
'나만의 재능을 인정해줘.'
전 - 계민의 베풂
그 무렵.
계민의 주유소는 잘 되고 있었다.
확장한 덕분에 손님이 더 늘었다.
"사장님, 기름 가득 넣어주세요!"
"네!"
수입이 늘었다.
하지만 계민은 그 돈을 혼자 쓰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을 도왔다.
"사장님..."
어느 날 한 남자가 주유소로 왔다.
"무슨 일이세요?"
"저...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데요."
"혹시 주유소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
계민이 남자를 봤다.
마른 몸.
낡은 옷.
"가족이 있으신가요?"
"네... 아내와 아이 셋이 있습니다."
"요즘 힘드시겠어요."
"...네."
계민은 잠시 생각했다.
이미 점원이 다섯 명이었다.
더 뽑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좋습니다. 일해보세요."
"...정말입니까?"
"네. 내일부터 나오세요."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민화가 걱정했다.
"계민 씨, 점원이 벌써 다섯인데..."
"괜찮아요."
"하지만..."
"저 사람 가족이 굶고 있대요."
"......"
"우리가 도와줘야죠."
민화는 남편을 보며 감탄했다.
'이 사람은... 정말 착해.'
또 어느 날.
동네 할머니가 찾아왔다.
"사장님..."
"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손자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계민이 주머니를 꺼냈다.
"이거 드세요."
"사장님..."
"빨리 병원 가보세요."
"고맙습니다..."
할머니가 고개를 숙였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알았다.
'이 사장님은... 좋은 분이야.'
'어려울 때 도와주셔.'
계민의 평판이 좋아졌다.
"이 사장님은 인심이 좋아."
"그러게. 우리 동네 복덩이야."
"주유소도 잘 되고, 사람도 좋고."
한도회 모임에서도 그랬다.
"계민이, 자네 요즘 베풂이 많다던데."
동지 한 명이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다들 알고 있어."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일자리도 만들어주고."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하지 않아. 요즘 같은 시대에."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든데."
"자네는 남을 돕잖아."
계민은 겸손하게 웃었다.
"우리가 조금 나으니까요."
"나눠야죠."
동지들이 감탄했다.
"역시 이산갑 선생님 아드님이야."
"아버지를 닮으셨어."
계민은 아버지 생각이 났다.
이산갑.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던 아버지.
'아버지처럼 살고 싶어.'
'아버지처럼.'
희망의 시대
1962년.
나라는 변하고 있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잘 살아보세!"
"10년 후면 우리도 선진국!"
구호가 넘쳤다.
사람들은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정말 잘 살 수 있을까?"
"모르지. 하지만 희망은 있어."
"공장도 짓고, 도로도 만들고."
"뭔가 달라지긴 할 거야."
주유소에도 변화가 느껴졌다.
자동차가 조금씩 늘었다.
"사장님, 차가 많아졌죠?"
점원이 말했다.
"그러게요."
"경제가 좋아지나 봐요."
"그런 것 같아요."
계민은 확장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때를 잘 맞췄어.'
'앞으로 더 좋아질 거야.'
그날 밤, 일기를 썼다.
"1962년."
"승국이가 4학년이 되었다."
"범현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범현이는 손재주가 좋고, 리더십이 강하다."
"그림도 잘 그린다."
"승국이와는 다른 재능이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승국이만 챙기는 것 같다."
"범현이가 조금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아 걱정이다."
"다행히 원태가 범현이를 잘 챙긴다."
"원태는 좋은 삼촌이다."
"두 조카를 똑같이 아낀다."
"나도 범현이를 더 신경 써야겠다."
"주유소가 잘 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을 도왔다."
"일자리도 주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
"나라가 변하고 있다."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있다."
"우리 가족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민화가 들어왔다.
"계민 씨, 아직 안 주무세요?"
"응, 일기 쓰고 있어."
"범현이 걱정되죠?"
"...조금."
"저도요."
민화가 앉았다.
"우리가 승국이만 너무 챙긴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범현이도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네. 그래야죠."
"범현이는 범현이만의 재능이 있잖아요."
"맞아요."
"그림도 잘 그리고, 손재주도 좋고."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리고."
"그래요. 범현이를 더 격려해야겠어요."
두 사람은 약속했다.
범현이를 더 신경 쓰기로.
창밖으로 별이 빛났다.
1962년의 봄밤.
희망의 시대.
변화의 시대.
승국은 책을 읽고 있었다.
범현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두 형제.
각자의 재능을 가진.
각자의 길을 갈.
형제들.
그렇게 그들은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