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로 완성된다
뿌리와 가지
정수한이 고향 마을 광릉으로 돌아온 것은 오십칠 세 늦가을이었다.
서울에서 이십오 년을 살았고,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부동산 개발업자로 꽤 이름을 날렸다. 한강 변 아파트 단지 세 곳, 판교 신도시 상업 지구 하나. 숫자로 치면 화려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칭찬도 박수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초겨울 비가 막 쏟아지던 월요일 오전이었다.
뇌경색.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단어는 수한의 귀 속에서 오래도록 울렸다. 그는 짐을 두 개만 챙겼다. 양복 한 벌과 낡은 일기장. 그것이 전부였다.
광릉은 그가 떠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나무들이 더 굵어졌고, 사람들이 더 느려졌으며, 골목이 더 조용해졌다.
읍내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 가을바람이 귤껍질 타는 냄새와 함께 불어왔다. 그는 코를 킁킁거리다 멈추었다. 어린 시절 기억이 코끝을 통해 먼저 돌아왔다.
어머니는 병원 침대에서 한쪽 눈만 제대로 뜬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눈빛은 말했다. '왜 이제야 왔니.' 수한은 그 눈빛 앞에서 서울에서 쌓은 모든 것이 작아지는 기분을 처음 느꼈다.
간병을 위해 그는 어머니의 낡은 집에 머물기로 했다. 집은 사십 년도 더 된 한옥이었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부엌 바닥에는 물이 스몄다. 그러나 마당의 감나무는 여전히 붉은 감을 달고 서 있었다. 수한은 짐을 내려놓으며 나무를 한참 바라보았다.
처음 며칠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멈추는 법을 잊고 살았는지 깨달았다. 서울에서 그는 항상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음 계약, 다음 개발, 다음 목표. 멈추면 뒤처지는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아무도 달려가지 않았다.
마을이 가르쳐 준 것들
어머니가 조금씩 의식을 회복하는 동안, 수한은 마을 사람들과 마주치기 시작했다.
이웃집 강노인은 일흔여덟이었다. 젊어서는 광릉 일대를 누비던 임업 기술자였는데, 지금은 작은 텃밭을 가꾸며 살았다. 그는 매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상추와 쑥갓을 돌보았다.
수확하면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 팔지 않았다. 그냥 주었다.
"그게 돈이 되긴 하나요?" 수한이 한번은 물었다.
노인은 손을 뻗어 흙을 한 줌 쥐었다가 놓았다. "이미 충분히 받았어. 이 땅이 나한테 준 게 내가 팔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거든."
수한은 그 말을 이해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마을 초등학교 교사 오미선은 서른여덟이었다. 서울 명문 사범대 출신이었지만 발령 첫해에 광릉으로 왔고, 십이 년째 그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전교생이 열여섯 명인 학교. 수한은 처음에 그것이 실패처럼 보였다.
그러나 미선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옆에서 보게 된 날, 생각이 달라졌다. 그녀는 단순히 교과서를 가르치지 않았다. 아이 하나하나의 눈빛을 읽었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아이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불렀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오랜 관계에서 생긴 언어였다.
"왜 서울로 안 가세요?" 수한이 물었다.
미선은 창밖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여기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을 두고 갈 이유를 못 찾겠어요."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사람은 박영근이었다. 예순네 살. 그는 마을 한가운데 있는 작은 대장간에서 호미와 낫을 만들었다. 전국에 주문이 들어왔다. 유명 요리사가 쓰는 칼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의 공방은 여전히 허름했고, 그는 여전히 점심에 된장찌개를 끓여 먹었다.
수한이 왜 더 크게 사업을 벌이지 않느냐고 묻자 영근은 대답 대신 작업 중이던 호미를 그에게 건넸다.
"한번 잡아봐."
수한이 호미를 손에 쥐었다. 놀랍도록 손에 착 감겼다. 무게도, 균형도 완벽했다. 무언가 살아있는 것을 쥔 기분이었다.
"그거," 영근이 말했다. "사흘 걸렸어. 하루에 하나 제대로 만드는 게 열 개 대충 만드는 것보다 나에게는 의미 있어. 그게 내 공간이야."
수한은 그날 밤 일기장을 꺼냈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일기장. 첫 페이지를 펼치니 이십 대의 자신이 써 놓은 문장이 있었다.
'크게 살자.'
그는 그 아래에 연필로 조심스럽게 한 줄을 더 썼다.
'깊게 살자.'
부서지는 것들
어머니의 상태가 나빠진 것은 그해 겨울 가장 추운 날이었다.
새벽 두 시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수한은 달려갔다. 어머니는 작은 침대 위에서 기계 소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의식은 다시 흐릿해졌다.
수한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이 얼마나 거친지 처음 제대로 느꼈다. 평생 밭을 갈고, 빨래를 하고, 아들의 옷을 꿰매던 손. 서울에서 전화 한 통으로 송금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어머니를 위해 한 것이 무엇인가.'
그 질문은 대답이 없었다.
이틀 후, 어머니는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에는 양쪽 눈을 모두. 말은 여전히 불분명했지만, 오른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리치료사가 말했다. 옆에서 많이 이야기해 주세요.
들리니까요.
수한은 그때부터 어머니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평생 숫자와 계약서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머니 앞에서는 그런 언어가 소용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감나무에서 떨어지던 날. 겨울에 냇가에서 썰매를 타다 빠진 날. 처음으로 서울 버스를 타고 가던 날 얼마나 떨렸는지. 어머니가 싸준 김밥 도시락을 혼자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던 그 기차 안.
어머니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수한도 울었다.
그것이 이십오 년 만에 처음 나누는 진짜 대화였다.
수한은 그 무렵 서울에서 연락을 받았다. 새 개발 프로젝트 제안이었다. 규모가 컸다. 예전의 그라면 당장 짐을 챙겼을 것이다.
그는 이틀을 고민했다.
그리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전화를 끊고 마당에 나오니 감나무에서 마지막 남은 감이 떨어졌다. 붉고 물렀다. 그는 그것을 주워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았다.
뿌리로 돌아가는 일
봄이 왔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마당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말도 조금씩 돌아왔다. 짧은 단어들. 밥. 따뜻해. 거기. 수한은 그 단어 하나하나를 보물처럼 들었다.
그는 광릉에 남기로 결정했다.
서울 사무실을 정리하고, 함께 일하던 직원들과 마지막 식사를 했다. 아무도 그의 결정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아무도 뜯어 말리지도 않았다. 어쩌면 다들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가 오래전부터 어디론가 돌아가야 했다는 것을.
마을로 돌아온 수한은 영근의 대장간 옆 빈 가게를 빌렸다. 그는 거기서 작은 목공소를 열었다. 손재주는 없었다. 처음에는 연장 잡는 법도 몰랐다. 영근이 틈틈이 가르쳐 주었다.
강 노인은 나무를 고르는 법을 알려주었다.
수한이 처음 혼자 만든 것은 작은 의자였다. 삐뚤어졌고, 다리 길이가 달랐으며, 앉으면 삐걱거렸다. 그러나 그것을 어머니 방에 가져다 놓았을 때, 어머니는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예쁘다."
수한은 그날 처음으로, 오래전 서울에서 계약을 딸 때도 느끼지 못했던 어떤 충만함을 느꼈다.
여름이 되자 미선 선생의 반 아이들이 목공소로 놀러 왔다. 그는 아이들에게 작은 나무 팽이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시끄럽고 손재주도 없었지만, 눈빛이 빛났다. 그 눈빛을 보는 것이 좋았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들르기 시작했다. 부서진 의자를 고쳐달라는 사람, 손자 선물로 장난감을 만들어달라는 사람. 그는 천천히, 하나씩 만들었다.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확했고, 정성스러웠다.
어느 날 저녁, 마당에서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별을 보다가 수한이 말했다.
"어머니, 나 서울에서 뭘 쌓았는지 모르겠어."
어머니는 한참 하늘을 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살았잖아."
"그런데 여기서야 비로소 살고 있는 것 같아."
어머니가 수한의 손을 잡았다. 거칠고 따뜻한 손이었다.
가을이 왔다. 감나무에 다시 감이 열렸다.
수한은 마당에 나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이십오 년 전 그가 떠날 때도 이 나무는 거기 있었다. 그 사이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했는지와 무관하게, 나무는 해마다 제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었다.
크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제 자리에서, 깊이.
그는 일기장을 다시 꺼냈다. 이번에는 연필이 아니라 만년필로 썼다.
"인생은 얼마나 오래 달렸느냐로 기억되지 않는다.
어디서 멈추어,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렸느냐로 기억된다."
그해 겨울, 정수한의 목공소에는 작은 나무 간판이 하나 걸렸다.
한 뼘 공방
좁지만 깊은 곳.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