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가장 빠른 사람
이재원이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열세 살이었다.
그것은 취미가 아니었다. 전략이었다. 학교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끊으면 선생님이 박수를 쳤다.
가장 먼저 문제를 풀면 칠판 앞에 나설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시험지를 내면 친구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들이 좋았다.
빠름은 곧 능력이었다. 적어도 재원에게는.
서른다섯이 되던 해, 그는 서울 한복판의 IT 스타트업 대표였다. 창업 사년 만에 직원 오십 명, 연 매출 팔십억 원. 스물아홉에 첫 회사를 만들고, 서른둘에 인수·합병을 경험하고,
서른네 살에 두 번째 회사를 세웠다.
인터뷰마다 기자들은 같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성장하셨어요?"
재원은 항상 같은 답을 했다.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신조였다. 멈추는 순간 뒤처진다.
뒤처지는 순간 잊힌다. 잊히는 순간 끝이다. 그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자정이 넘어서야 잠들었다. 주말이 없었다. 휴가가 없었다. 연인이 떠난 날도, 아버지 기일에도 노트북을 열었다.
그런데 서른다섯의 봄, 처음으로 몸이 먼저 멈추었다.
병원 검사 결과지에는 낯선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과호흡, 자율신경 실조, 만성 피로 증후군. 의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쉬셔야 해요. 석 달은요."
재원은 웃음을 참았다. 석 달이라니. 그 사이 세상이 몇 번을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러나 몸은 웃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귀가하던 재원은 지하철역 계단에서 주저앉았다. 일어설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 옆을 빠르게 지나쳐 갔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다.
처음으로 세상이 자기 없이도 달린다는 것을 느꼈다.
속도가 사라진 자리
강원도 인제의 작은 펜션에서 요양을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재원은 처음으로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산이었다. 봄비에 젖은 산. 나무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새들은 목적지 없이 날았다. 냇물은 막히면 돌아갔고, 돌아가도 결국 흘렀다.
그는 무언가를 처음 보는 기분이 들었다.
펜션 옆에는 작은 서점이 있었다. 주인 할머니 이름은 윤순자. 일흔두 살. 젊어서 서울 명동에서 잡지사 편집장을 했다는 그녀는, 오십 대 중반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왜 여기로 오셨어요?"
할머니는 책 한 권을 천천히 선반에 꽂으며 대답했다.
"서울에서는 항상 다음을 보고 달렸어.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르게 됐거든. 지도는 있는데 나침반이 없는 것처럼."
재원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숨을 멈추었다.
"그래서 여기서 찾으셨나요? 나침반을"
"응. 아주 오래 걸렸지만."
재원은 매일 오전 그 서점에 들렀다. 책도 읽었지만 주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는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제대로 산 사람의 이야기를 했다.
스물다섯에 고향을 떠나 타지를 떠돌며 평생 소금을 만든 장인. 유명해지길 거부하고 한 마을에서 사십 년을 살다 간 화가. 돈보다 사람을 택하고 결국 그 사람들에 둘러싸여 죽은 의사.
재원은 조용히 들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공통점을 찾으려 했다.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재원은 오래된 수첩을 꺼냈다. 창업할 때 목표를 적었던 수첩.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삼십오 세까지 매출 백억.'
그 옆에 작은 별표. 이미 팔십억이었으니 거의 다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숫자를 바라보는 것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그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목표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지도는 있었지만,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는 것을.
방향이 바뀌는 순간
요양 육 주째,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투자자 미팅이 잡혔다는 것, 경쟁사가 신제품을 출시했다는 것, 팀장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재원은 메시지를 읽고 내려놓았다. 예전이라면 즉시 짐을 쌌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오후, 서점에서 할머니가 건네준 책 한 권이 마음을 붙잡았다. 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어느 화가의 회고록이었다. 그는 무명이었지만 단 한 번도 그림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팔리지 않아도, 알려지지 않아도, 자신이 믿는 빛을 향해 붓을 들었다. 그는 가난하게 죽었지만, 지금 그의 그림은 미술관에 걸려 있었다.
재원은 그 페이지를 오래 바라보았다.
밤에 그는 오랫동안 앉아서 생각했다.
나는 왜 달렸는가. 무엇을 향해 달렸는가.
사람들보다 빠르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그것이 전부였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곳이 어디인지, 한 번도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방향 없이 속도만 높이고 있었다.
그는 수첩의 빈 페이지에 처음으로 다른 것을 적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더 솔직한 출발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재원은 투자자에게 전화를 걸어 미팅을 두 달 뒤로 미루었다. 팀장에게는 직접 진심을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 경쟁사 동향은 담당자에게 맡겼다.
처음으로 통제를 내려놓았다.
예상과 달리,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회사도 돌아갔다. 팀장도 답장을 보내왔다. 짧은 메시지였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믿어주신다는 느낌 들었어요."
재원은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나침반을 찾은 사람
서울로 돌아온 재원은 달라진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사무실, 같은 팀, 같은 업무. 그러나 무언가 바뀌어 있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먼저 물었다.
새 프로젝트 기획 회의에서 그는 예전처럼 '얼마나 빨리'를 먼저 묻지 않았다. '왜'와 '어디로'를 먼저 물었다. 팀원들이 처음에는 낯설어했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자 회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수치가 아니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서비스가 누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재원은 그 변화가 어떤 성장률보다 기분 좋았다.
그해 가을, 재원은 회사의 방향을 크게 바꾸었다. 속도 중심의 성장 전략 대신, 사용자 한 명 한 명과의 관계를 깊이 만드는 방향으로. 투자자 일부가 우려를 표했다. 성장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재원은 담담하게 말했다.
"빠른 것이 목표였다면 이미 충분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가고 싶습니다."
투자자 중 한 명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 인제의 서점에서 연락이 왔다. 할머니 윤순자가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제목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부제는 이미 정해 두었다고 했다.
'늦더라도 제 방향으로.'
재원은 그 문자를 받고 오래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빠르게 빛났다. 그러나 그 빛들이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향으로 타오르는 빛들.
그는 수첩을 꺼냈다. 빈 페이지에 석 달 전 남긴 질문이 아직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 아래, 이제는 천천히, 또렷하게 써 내려갔다.
'사람들이 조금 더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
빠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 방향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것이 그의 나침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속도로도 살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이유였다.